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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W은행의 강남역 지점장이다.
강남역은 한국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사거리 주변은 빌딩의 숲이고, 테헤란로와 강남대로가 교차하는 지점은 교통의 요충이라 유동인구가 많다.
거리엔 고급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다 들어와 있고 극장이며 성형외과를 비롯한 유명병원하며 유명학원의 간판들로 넘쳐난다.
경기도 남부에 소재한 각 대학의 분교로 통학하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강남역에서 출발하므로
강남역일대는 언제나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강남역 지하도엔 천 개를 넘을듯한 의류점으로 복잡하며 처음온 사람은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붐빈다.
낮이나 밤이나 팔짱을 낀 젊은이들로 넘쳐나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번화가 1번지이다.
지점장은 아침 저녁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넘쳐나는 이 거리의 인파에 파묻힌다.
k지점장은 은행내에서 고지식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방대학 회계학과를 나와 숫자에는 밝으나 사람이 붙임성이 없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주변에선 정치에 관심이 많아 야성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70cm의 키에 64kg이면 한국인으로 표준체형이다.
그가 차장시절엔 퇴근후면 헬스클럽에 나가 한 시간정도 근력운동하고 집에 들어갔다.
탄탄한 체구에 머리숱이 새까맣고 선텐한 듯이 거무스럼한 피부가 건강함을 나타내고 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입이 크다.
그에 관한 일화는 많다.
그가 영업점 차장 시절 사무보직에 불만을 품은 부하 책임자가 영업장에서 사무용품을 팽개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바로 넥타이를 풀고 그 책임자를 점내 식당으로 끌고가 벽면에 밀어 붙였다.
체력운동으로 다진 그의 손아귀에 잡힌 책임자는 꼼짝 못하고 응시하다가 눈길을 돌려 항복 선언을 했다.
사무보직에 불만을 품은것은 차장은 물론 지점장에 대한 항명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건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있다. 전화에 얽힌 사연이다.
그가 입행한 1974년 , 당시엔 전화사정이 좋지않아 공중전화 박스앞에 대기자들이 순서를 기다릴 때가 있었다.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런지라 3분 통화를 권장할 때였고,
행내교육에서도 그걸 강조하던 때라 그 때 받은 교육으로 그 정신이 오늘날 까지 몸에 배워 있다.
k 지점장은 지금 까지 누구하고 통화하던 간에 상대방을 확인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만 얘기하고
전화를 끊는것이 몸에 꽉배여 있는 습관이다.
3분 통화는 커녕 1분이면 끝난다.
어떤 경우엔 해야할 말이 남았는데 깜박하고 전화기를 놓고 후회한 적도 많다.
그러니 부하 직원들이 장시간 업무외적인 통화를 하면 그 꼴을 못본다.
은행직원이 전화기를 잡고 오래있으면 가만히 뒤에가서 지켜보다가
여직원이 전화기를 내려 놓으면 바로 쏴 버린다.
"미스,리! 사적인 통화를 그렇게 오래하면 어쩌누..."
하고 현장에서 바로 타박을 줘 버린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깜작 놀란 여직원이 몸서리치는 장면도 가끔씩 본다.
그 대신 k지점장은 출근시간이 시계처럼 정확하다.
매일 1시간전에 어김없이 출근하여 그날 배달된 조간신문을 본다.
중앙일간지를 비롯하여 경제신문을 합하면 8개의 일간지가 탁자위에 올라와 있으나
중앙지와 경제신문하나 이렇게 두가지 신문만 골라 헤드라인을 살피고 관심있는 기사에만 집중해서 읽는다.
오늘은 월요일, 일주일에 두번 있는 책임자회의 날이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아침영업개시 1시간 전에 책임자회의를 해오고 있다
k지점장은 회의시작전 10분 간 아침조간신문에 난 주요기사에 대해 자기 나름의 품평을 하고 난 후에야
정식으로 회의를 이끈다.
오늘 아침에도 지점 책임자 7명이 지점장실에 들어와 착석하자 마자 아침조간 신문의 1면을 펼쳐놓고 품평을 시작했다.
"허,그것 참... 미국놈들도 별거 아니야!"
책임자 7명의 반짝이는 눈알 14개가 동시에 지점장의 안면으로 집중되었다.
"여러분! 잘 들으시요. 개인이나 집단, 국가조차도 탐욕으로 눈이 어두우면 재난을 초래하게 됩니다.
자, 지금 미국의 금융위기를 보세요! "
그렇게 시작된 지점장의 품평은 시작되었다.
지점장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미국이 현재의 금융위기를 겪게된 동기부문에서 역설했다.
합리적이고 투명하다는 미국에서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냐?
투자은행이란 금융회사가 금융공학이란 미명하에 고수익 고위험의 파생상품을 만들어내
시장에서 고수익을 내면 종사자들이 고액의 년봉을 받고,
그들의 CEO는 수백억원의 년봉을 챙겼다.
이게 과연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거냐?
고수익이 있는 곳엔 반드시 고위험이 있기 마련인데,
고위험은 애써 무시하고 단기업적주의로 고수익을 냈다고 해서 그 수익을 다 챙겨 가는게 말이 되느냐?
아무리 CEO가 유능한 사람이래도 그의 하루치 년봉이 종사자 한 사람의 일년 년봉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는게 말이 되느냐?
청교도 정신으로 건국한 국가에서 모럴 헤저드가 말이 아니다.
"여러분도 잘 알잖습니까.
198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금융기관의 모럴 헤저드가 원인입니다."
그랬다.
그 당시 종합금융사는 물론 국내 은행들도 저리의 단기외자를 들여와 국내의 고금리 이자놀이를 하면서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자 국제 헤지펀드의 공격이 시작었고 ,
대외신인도가 떨어지자 해외은행에서 차입한 외자의 만기연장이 안되자 급격하게 외환이 빠져나가 IMF를 맞았던 것이다.
"욕심이 화를 자초한다.이것이 세상사 이치입니다.
은행원은 돈 만지는 직업이니만치 욕심을 내다가 잘못되면 인생 종치는 것입니다!
제가 은행생활 30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사고처 직장 그만두는 사례를 무수히 봐 왔는데 모두 금전사고 였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 고 소득계층에 듭니다.
은행원은 무리하지 않으면 돈 걱정은 않하고 살 만큼 급여를 줍니다.
왜 그럴까요?
은행원이 박봉에 시달리면 자연히 금전사고에 연루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평균이상의 년봉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은행원은 평균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산층으로서 욕심내지 않으면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너무 욕심 내지 말고 근검하게 사십시요."
라는 말로 여담인지 정신교육인지 오늘은 말이 길어 30분이 소요되었다.
이어서 관행적으로 책임자들이 지난 주의 업무결과와 금주의 업무계획을 보고받는 식으로 회의를 끝냈다.
책임자들이 회의장인 지점장실을 빠져 나가자 k지점장은 탁자위에 있는 말보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는
향로처럼 생긴 탁상라이타 불을 붙이고 담배연기가 위장아래 췌장에 이르도록 깊게 빨아 들이고
"후"하고 길게 내뿜었다.
"아이쿠, 머리야"
전날 미국 다우존수는 900포인트나 빠져 있었다.
그가 투자한 펀드는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다.
작년 10월에 투자한 인사이트 펀드는 벌써 반 타작이 난지 오래다.
여기 저기 조금씩 묻어 두었던 재산을 정리해 분당으로 이사하면서 남은 돈 5천만원과 딸아이가 2년동안 직장생활해 어렵게 모은 돈 2천만원 이렇게 7천만원을 투자했는데 1년이 지나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당시 은행에서는 펀드로 은행예금이 줄줄이 빠져 나가자 펀드를 팔기 시작했다.
판매사로 펀드를 팔면 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있다.
어차피 빠져 나가는 예금, 수수료라도 챙기자고 예금을 해약하는 고객들 한테는 펀드 상품을 적극 권유했다.
은행내에서도 영업점별로 판매목표를 주었으며 , 영업점에서는 직원 개인별로 할당을 주어 판매를 독려했다.
그래서 부하직원들 독려차원에서도 솔선수범한다고 집안에 있는 돈을 몽땅 펀드에 들었다.
물론 그 당시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가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 음, 기가 찬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k지점장은 생각조차 싫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87년 10월에 IMF가 터졌다.
그 때도 k 지점장은 가지고 있던 주식이 날아가 쪽박을 찼다.
그해 봄 신문지상에서는 발등의 불은 보지 못하고 국내 경제학자들 사이에 경기저점 논쟁이 일었다.
그때의 주가지수는 700~750언저리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지점장은 일산 신도시에 대형아파트 2채중 한채를 팔아 남은 차액 2억원을 현찰로 들고 있었다.
그 해 3월에 땅을 사보자고 띄어 다녔다.
100평, 2백평은 양에 차지 않는다.
"살려면 적어도 1,000평은 사야제."
1.000평이란 실제로 보니 넓었다.
지금의 화정과 일산 신도시 사이에 산황동이란 동네는 넓은 야산이 전개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 절대농지인 논을 2군데나 둘러 보았으나 절충이 되지 않아 그만 두었다.
한군데 계약하러 갔더니 하루전에 평당 13만원에 팔렸다는 것이다 .
두 군데 가보니 땅주인이 평당 18만원을 불렀다.
바로 인근에 평당 13만원에 팔렸으니 14만원 주겠다고 했으나 땅 주인은 18만원을 고집해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
거긴 절대농지가 아닌 준농림으로 25만원을 불렀다.
계약성사단계에서 보니 땅이 제 3자앞으로 근저당이 설정되어 그 문제로 흥정이 깨져 버렸다.
그곳이 지금의 교하지구 신도시가 들어온 땅이다.
대신 그해 5월에 그 돈을 몽땅 주식에 투자했다.
그 당시 신문지상에서는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경기저점논쟁으로 연일 기사가 넘쳐났다.
k지점장은 회계학과 출신답게 재무분석에 일가견이 있다.
복잡한 대차대조표를 갖다 놓고도 계정과목상의 백분율을 추정할 만큼 숫자에 밝았다.
그가 중요하게 보는 지표는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총자본이 자기자본 대비 얼마인가?
매출액은? 부채비율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PER(주가수이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roa(총자산이익율), roe(자기자본이익율)등을 따져 시세가 현재가 대비 저 평가된 종목이라고 확신하여야 투자를 결정한다.
그는 분석을 끝내고 증권 건설 은행주 3종목에 분산에 투자하였다.
그러나 1987년 10월 외환위기가 가져온 금융쓰나미에 그가 투자한 주식은 경영분석지표에 상관없이 폭락을 거듭했다.
그가 투자한 증권 건설 은행주는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주가는 연일 폭락해 12월 초에 처분했는데
그 땐 이미 원금의 4분의 3이 손실이 난 상태였다.
신용을 걸어둔 것이 있어 처분치 않을수 없는 코너에 몰려있었다.
그때의 참담했던 상황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내는 안먹고 안입어 알뜰살뜰 살아왔다.
애들이 둘이나 교육투자도 옳게 못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늘였고, 이제 제법 살만해 여유를 가지게 되였는데 또 다시 마가 찾아 온것임에 처연했다.
"아, 내가 원수다."
이듬해 2월엔 은행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명예퇴직이 붐을 이루었다.
명예퇴직이란 말이 좋아 붙인 명칭일 뿐 하나도 명예스럽지 않고 등 떠밀려 나가는 퇴직이었다.
은행마다 세계결제은행(bis)의 bis비율을 맞추려 갖고 있던 보유주식을 위험자산이라고 팔아 치웠다.
피같은 돈 1억 5천만원를 날려버린 지점장은 명예퇴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퇴직위로금으로 상당액의 보상금을 제시했다.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손실을 만회하려면 현금을 수중에 넣어 저가매수에 들어가야 하는데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럼 난 어떻게 사나? 무얼해 먹고 살지?
그 동안 쌓아온 은행내 사적모임과 사외의 친목모임은 어떻게 ?"
k지점장은 중간 관리자 시절을 본부 노른자리라고 하는 외환업무실과 영업2부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외환업무실은 명문대 출신과 해외영업점 근무직원, 전임 노조위원장등
은행내에서 잘나간다는 인물들이 많았다.
책임자는 물론 평사원까지 출신과 배경이 좋은 직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행내 직원들은 모두 이 부서에 근무하길 원했다.
이 부서를 뚝심하나로 개척해 들어 갔으며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고
같은 동료들 사이에 말발도 세웠다.
거기서 같이 근무하면서 친목모임으로 조직된 외우회원 14명 가운데 2명이 현재 w은행의 계열 지방은행인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장으로 내려가 있다.
은행외의 친목모임중에는 같은 성씨인 의성 김씨 종친회 젊은 사업가들의 모임인 금오회가 있는데
박사인 경찰대학장을 비롯해서 용인시 수지지구에 거대한 면적의 부지를 확보해 대형 평수의 LG아파트를 5차까지 분양한
주택건설업자도 있다.
내가 여기서 명퇴를 하면 이런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어진다.
이거다 저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울의 균형추는 평행의 상태다.
이 중요한 문제를 상의할 만한 사람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은행이라는 온실에서 30년을 풍파없이 살아온 인생이기에 은행을 떠나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저 막막하게만 생각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마감일자가 임박했다.
그러나 여전히 결정을 못하고 마감일자인 토요일 오후 3시를 넘겨 버렸다.
평소엔 은행조직이 마음에 안들어 못해 먹겠다고 불만을 터트리긴 했으나 막상 닦치고 보니 그 결정이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와 상의하지 않었다.
내 인생의 중대기로에서 일어난 참담한 투자실패에 그저 넋을 잃었다.
토요일 마감이 끝난 후 퇴근하면서 일요일을 보내면서도 끙끙 앓았다.
이처럼 어려운 결정이 또 있을까?
끙끙 앓으면서 월요일 아침을 맞았다.
뭔지 모를 저울의 균형추가 한 쪽으로 기을어져 있었다.
"그래 , 어차피 정년은 언제고 오는것, 미리 나가 제2의 인생을 찾는것도 괜찮다."
는 결론에 이르렀다.
출근하자마자 인사부 담당 차장에게 전화를 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게 아니니 명단에 끼어 달라고 했고 인사부 차장은 수락했다.
오전에 k차장이 명퇴를 신청했다는 소문이 영업점에 확 돌았다.
그 때 지점장이 보고를 받고 점심을 같이 하자고 불렀다.
지점장은 은행 승용차를 타고 인근 장흥유원지로 데리고 갔다.
비닐하우스에 식당을 차렸으나 진흙에 구운 유황오리가 별미인 거기엔 사전주문이 되어 있었고
오리구이가 나오기 전 소주부터 한 잔 걸쳤다.
"아내하고 의논했습니까?"
" 아니요, 안했습니다."
그러자 지점장은 충고했다.
"아내가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니 상의하십시요, 일생을 두고 중요한 일이 아닙니까,
나중에 원망듣지 마시고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마디 마디 옳은 말이지 싶었다.
지점장과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자 마자 집으로 전화했다.
그의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차를 갖고 나왔다.
다시 장흥유원지로 갔다.
어느 오솔길에 이르자 주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께냈다.
"유진엄마, 나 사표냈어!"
그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그의 아내는 질려 버렸다.
찌그러진 얼굴, 아니 공포에 질린 얼굴이랄까.
한 참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순간 k차장도 질렸다.
"어이쿠, 내가 잘못한 거로구나!"
아내는 분식집 아줌마를 먼저 떠 올렸다.
이제 신도시에서도 밀려나 경기도 어느 빈민촌에서 분식집은 차린다는 거였다.
그는 무엇보다 그처럼 아내의 찌그러진 얼굴은 그의 생애 처음보는 절망감이었다.
"아, 번복해야지 안되겠다."
그는 차를 몰아 마을이 있고 전화있는 데를 찾았다.
그 땐 휴대폰이 나오기 전이었다.
허둥지둥 인사부 차장에게 전화를 했다.
" 죄송합니다, 저의 명퇴신청을 취소해 주십시요."
상대방은
" 알았습니다. "
하고 짧게 전화를 끊었다.
그의 일생을 두고 그렇게 고심해서 어려운 결정을 해놓고 또 그렇게 쉽게 그 결정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IMF의 경제위기 앞에 그의 의지도 그렇게 휩쓸려 떠내려 갔다.
그후 그는 구조조정으로 선배들이 일찍 퇴직하는 바람에 지점장 승진을 남보다 빨리 할 수 있었다.
ㄱ지점에 발령을 받은 후 거래하던 의료보험공단을 찾았다.
의보공단은 ㄱ지점의 거액거래처로서 뭉칫돈을 넣어두고 있었다.
은행예금유치차 담당과장을 만나 예금을 부탁했다.
담당과장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1998년 2월엔 대우사태가 터지고 각 시중은행들이 자금부족에 시달리던 때였다.
은행신용이 추락해 담당과장은 지금은 종금사가 은행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개 종금사에 거액의 단기자금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종금사 영업형태는 외국의 저리자금을 들여와 국내에서 고리의 대출사업을 벌여
이자차익을 따먹으며 호황을 누린 시기였었다.
이들의 무분별한 차입으로 거액의 외환이 들어 왔는데 국가신용등급 하향으로 외자의 만기연장이 거부되자
국내 외환이 급격하게 빠져 나가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때 종금사는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영업정지 내지는 문을 닫았다.
그렇게 하여 국내 굴지의 3대 종금사는 없어지고 말았다.
세상에 금융회사가 그렇게 위험관리를 못하고 무너진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되나?
사람이 행복해지면 불행한 과거를 잊어 버린다.
호황때 마냥 잘 나갈 줄 아는게 개인의 생각인 만큼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동종업자하고의 경쟁에서 경쟁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규모를 키우면 그 영업방식이 아니다 싶어도 같이 따라가지 않으면
뒤떨어질 것같아 뒤쫓아 가지 않을 수 없다.
위험관리 한다고 영업력에서 뒤지면 조직내에서의 반발도 거세어진다.
오우너는 당장 사장을 무능력자로 인정해 해임 시킬 것이다.
그래서 은행을 위시한 금융회사는 서로 특색이 없이 타조직이 하는 데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임자가 아닌 봉급쟁이 사장은 망해도 다 같이 망하는 것은 괞찮다.
자기 혼자만의 책임에서 벗어날수 있다.
동종업계가 다 같이 망해버리면 자신은 면피할 수있으나 자기 혼자 딴 방식으로 경영을 잘하나 영업력에서 뒤지면
당장 무능력자로 비판받기 때문에 그런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내 혼자 독불장군처럼 행세해 봤자 별로 건질게 없기 때문이다.
종금사가 무너지고 지방은행이 통합내지는 흡수 되어 간판이 없어질 때 의료보험공단의 담당과장을 찾아갔다.
40대의 담당과장은 공단도 물린 돈이 수 십억된다고 하면서 누가 감히 이런일을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했다.
그는 그 소리가 마치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소리로 들렸다.
아무도 예상못한 IMF사태임으로, 종금사에 맡긴 돈이 위험할 줄이냐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했다.
k지점장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가 종금사보다 이율이 적은 은행을 이용하겠는가? "
세상에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그런식으로 말한다면 세상에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다 .
"난 그런 줄 모르고 했다. 그때 그런줄 알았다면 내가 그런 행위를 했겠는가?"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다.
고수익이 있는곳이면 고위험도 있다.그게 정답이다.
종금사가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주는 것은 그 이자 차이만큼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고 해야 경제학을 배운 사람의 논리가 된다.
기업이나 공단의 자금관리 책임자라면 당연히 위험관리를 해야하고 그 위험관리를 잘못해 낸 손실에 대해서
손해배상은 못할지라도 응분의 처분을 받아야 그와 같은 행위가 재발되지 않는다.
왜 책임이 없다고 하는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어마어마한 손실금액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가능하지 않지만
책임지고 그 자리는 물러나야 마땅하다.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스스로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떠들어 왓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자기들은 금융부문에 경쟁력이 있으니 FTA에서는 금융개방을 첫째로 내세운다.
우리나라가 IMF때 미국의 헤지펀드는 헐값으로 한국의 은행과 부동산을 매입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국이다.
우리나라가 뒤따르려는 미국의 투자은행들!
그 들의 투자행위와 관리능력이 별게 아니라는 것이 만 천하에 들어났다.
자식들!
MBA를 나와 투자분석과 재무분석의 대가들이 모인 뉴욕 월가에서 고액의 년봉을 받아 처 먹으며
그들이 개발해낸 파생상품이라는 것도 결국은 레버리지를 키운 고수익 고위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해 손해를 본 사람이 있으면 그 손해만큼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
고위험은 애써 무시하고 고수익을 쫓아 불나방처럼 날아다닌 것이 투자은행이다.
자본금의 몇 십배 돈을 빌려 위험한 장사에 뛰어들어 용케도 고수익을 내면 그 조직원과 그들의 CEO가 거액의 년봉을 챙겨갔다.
그들은 세계 최대 도시 뉴욕에서 한끼 백 만원짜리 바닷가재와 철갑상어알 요리를 즐겼으며,
한 병에 천만원짜리 마티니를 마시며 풍요로움을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이들이 금융마피아가 아닐는지?
주식값이 오르니 주주들에게도 이익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손실은 ?
지금 손실을 보고있는 그들의 투자자들이나 주주들이 그동안 그들이 돈 잔치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그들 금융마피아 들에게 죄를 물어야 하나 자본주의 속성상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
오직 잘못 판단한 투자자들이나 주주들의 몫일 뿐이란다.
한국에는 한국경제신문에 한상춘이라는 논설위원이 있다.
WOW 채널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전문가라고 하는데 그 사람 말도 이상하다.
미래에셋증권의 연구소 부소장이라는데 펀드가 손실이 많이 난 것은 투자자들의 탐욕이라고
시사토론에 나와 말했는데 참, 어이 없는 말이다.
투자자들은 미래에셋의 능력을 믿고 수익을 내달라고 돈을 맡겼다.
그렇다면 시황이 안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펀드에서 관리하는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던가 주식을 팔아치우고
관망했어야 한다.
정 자신이 없으면 그대로 청산했어야 마땅하다.
작년 중국의 주가지수가 정점을 이룰때 미래에셋은 인사이트 펀드라는것을 발매해 불과 한 달만에
수 조원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이 펀드의 성격은 고수익이 있느곳이면 어디든 투자한다는 공격적인 펀드였다.
세간의 화제를 모은 이 펀드는 중국의 미래를 좋게보고 중국 주식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지금 중국시장은 그 때의 정점대비 3분의 1수준으로 추락한 상황이다.
수 많은 투자자들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는데 그건 투자자들이 환매하지 않고 탐욕을 부린 게 잘못이다!
그게 전문가라는 사람이 할 소린가?
그야말로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믿고 맡긴 투자자들에게 떠넘기는
몰염치한 처사가 아닌가?
당신들이 과연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는가?
이렇게 빠질주 알았으면 보유주식도 팔아서 현금으로 비축해 두었다 이렇게 폭락할 때 저가매수하던지 하여
다른 펀드가 -50%수익율을 냈을 때 -20%의 수익율이라도 유지해야 할 말이 있지 않겠는가?
다른 펀드보다 더 많은 손실을 내고도 투자자가 환매요청을 안하고 욕심 부렸다는게 말이 되는가?
투자자는 당신한테 수익을 내달라고 돈을 맡겼다.
사고 팔고 하는 주체는 당신들이다.
어째서 당신들의 판단 착오를 투자자들에게 떠 넘기는 것인가.
" 썩어 빠질 놈! 하, 이사람 이제보니 전문가가 아니라 순 엉터리구먼!"
지점장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처 죽일놈 들! 뭐 어쩌구 어째,
지눔들이 올라갈땐 올라가는데 왜 파느냐고 말리고, 떨어지면 지금 팔면 손해니 좀만 기다려 보라하고,
더 떨어지면 지금 파는 것은 의미없다며 기다려라 하고 ,
쳇, 지눔들 멋대로야!"
지점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 이번이 몇번째인가! 내 인생에 실패란 그 놈의 주식이다.
망할 놈의 주식!"
지점장은 회상에 잠긴다.
결혼을 하자마자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 갔었다.
갓 결혼한 아내와 10개월 난 어린 딸을 데리고 타관객지에 발을 디뎠던 것이다.
왜 부산으로 내려간 지는 정확한 이유를 델 수 없다.
그냥 가보고 싶었다.
고향인 대구를 떠나 한국의 3대 도시중 하나이고 항구도시가 막연히 한 번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다음 서울로 가야지, 서울로 가보기 전에 징검다리로 부산을 택했다는 말이 맞다.
부산에서 4년을 살았다.
부산은 아름답고 볼것이 많은 항구도시다.
중심인 용두산공원 전망대에 올라가면 부산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아래 건너 보이는 섬이 영도인데 영도다리는 배가 지나갈수 있게 하루에 두 번 씩 다리 반쪽이 들렸다고 한다.
그는 영도 청학동에서 2년을 살았다.
청학동은 영도섬의 가파른 산 중턱에 위치한다.
창문을 열면 부산항구와 먼 바다쪽으론 오륙도가 보였다.
청학동에서 해안도로를 타면 차량으로 십분이면 망망대해쪽으로 태종대가 나온다.
태종대는 신라시대 화랑들이 무예를 수련하고 심신을 딲은 도장이라 한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 위에서 저 멀리 태평양을 바라 보노라면 호연지기가 길러질 법도 하다.
추위가 가신 봄날 일요일 아침 그는 청학동에서 태종대까지 마라톤으로 달려 보았다.
새벽 안개를 마시며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도로를 뛰어 태종대에 이르면 꽤나 감동적이다.
가슴이 벅찼다.
그 후 대연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장만했었다.
역시 산 비탈에 있는 대연동에서는 광안리 해수욕장이 바로 눈 앞이다.
넓고 넓은 광안리 해수욕장을 걸어 끄트머리에 닿으면 거기엔 바위위에 고무다라이에
싱싱한 횟감을 파는 아낙네들이 있었다.
횟감을 사서 가까운 길위에 있는 횟집에 갔다주면 회를 떠주고 안주와 소주를 파는 집들이 몰려있다.
그 때 그가 먹은 멍게와 산낙지 맛이란 부산을 떠나온 후에도 잊을 수없는 맛의 향수가 되었다.
해운대는 또 얼마나 장관인가!
길고 긴 백사장이며, 폭넓은 모래사장은 세계에 내어놔도 부족함이 없다.
k지점장은 젊은 날, 30대 초반에 해외연수차 하와이의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에서 해수욕을 한 경험이 있다.
해운대를 본 그에게 그 유명한 와이키키해변은 실망 스러울 만치 적었다.
그래도 그 주변엔 호텔이 엄청나게 줄지어 있고, 아침시간에 서핑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야자수가 해변에 드문드문 있는게
이국적인 풍물이었다.
수영복을 사서 입고 바닷물에 몸을 담구니 수온만은 체적의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도 서핑하는 젊은이들의 묘기는 보아줄 만하다.
늘씬한 8등신 백인 미녀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모래밭에 배를 깔고 독서하는 것이 좋게 보였다.
k지점장은 신혼여행의 첫날밤을 이 해운대에 있는 웨스턴비치호텔에서 묵었었다.
특급호텔인 이 호텔 8층에서 창을열면 해운대 백사장이 길게 뻗어 끝까지 다 내려다 보인다.
그는 신혼 첫 날밤에 호텔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아내인 신부와 침대에서 딩굴었다.
"오호, 그 때 아내는 참새같았으며 예쁜 얼굴에 매끄럽고 흰 피부로 날 달구었는 데..."
그 때가 몇년도 였더라?
1983년 이었었다.
그 땐 중동의 건설바람이 불어 건설주식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다음 조정을 많이 받을 때였다.
그 땐 칼라 tv기 시판되기 이전 이었다.
4년을 살아 저축한 돈이 모이자 주식에 관심을 가졌다.
k지점장은 건설주 중에서도 중동의 건설수주 실적이 가장많다는 진흥기업주식에 투자를 했다.
그 때 당시 그 주식은 건설주의 황제라고 이름을 날렸었다.
그러나 수주 실적이 많은게 탈이었다.
중동의 시행사들이 초기엔 한국의 건설사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 였지만 국내건설사들의 과당경쟁에다
한국의 건설사를 상대해 본 현지의 발주처는 이후 하자로 클레임을 걸기 시작했다.
국내건설사들의 경쟁으로 수주가격이 깍이다보니 수익율이 떨어진 마당에 클레임까지 걸리면 그냥 밑지는 장사다.
그러니 나중엔 수주실적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해 주가가 형편없이 추락했다.
그 당시 돈으로 금 오백만원!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 했다.
아니 피눈물을 흘렸다 .
사실 그 당시 그의 처지로 보면 5백만원은 거금이었다.
그가 산 주식은 부도가 나 관리종목에 편입되었다.
주가는 폭락하여 거의 휴지수준이 되어 내팽게쳤다.
생각할 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아내는 아이를 키우면서 유아를 태우는 카트를 사지 못하고 안고 업어 키웠다 .
후일에 젊은 부부들이 유아를 카트에 앉히고 끌고 다니는 것을 그렇게 부러워했다.
그런 뼈아픈 추억이 있는데 ,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면 안되는데
IMF의 국가파산앞에 그도 참담한 파산을 겪어 심신이 피폐해 졌다.
그는 그때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는 신도시 일산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일산 신도시로 가다보면 신도시 못미쳐 고양시 행신동에 행주호텔 이라고 있었다.
삼류호텔인 그 호텔 꼭대기 층인 10층에 사우나가 있었다.
호텔 사우나로서는 목욕비가 비싸지 않은 그 욕탕은 벽면을 유리로 처리해 밖의 전원풍경이 그대로 보였다.
창 밖으로 넓게 펼쳐진 들에는 벼가 푸르러 마치 초록색의 카페트를 깔아 놓은 것 같았고,
저 멀리 한강 쪽에 행주산성이 바라보였다.
그리 높지 않은 행주산성은 한강 하류에 위치해 한쪽은 깍아지른 강물이며 한쪽은 평야로 방어하기 좋은 위치이다.
저 행주산성에서 임진왜란때 권율장군이 이끈 군관민 연합부대가 아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담아 날랐다는 돌로
올라오는 왜군을 상대하여 대승을 거두었단다.
그 때 이름없이 죽어간 원혼이 얼마나 많았을까.
산다는 것이 무엇을 위함인지?
돈이란 또 얼마나 사람을 울리는지...
참담한 패배에 이어 오는 심신의 고통은 피를 말렸다.
뜨거운 열탕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 자리에서 그냥 눈을 감고 스스르 잠자듯이 죽는다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내는 초죽음이 되다싶이 상심해 그 고운 얼굴에 홍조가 없어졌다.
"아아! 처자식 하나 온전히 건사하지 못하고 헤매는 내꼴이 이게 뭔가."
그래도 산 목숨 끊지 못해 살다가 살다가 보니 여기 까지 왔다.
근무하면서 억지 웃음으로 표정관리하느라 힘들었다.
인생을 살면서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라고 조회시간에 직원들에게 훈시를 하면서 나는 이게 뭔가.
또 되풀이 하다니! 이게 중독이 아니고 뭔가!
왜 털어버리지 못하고 욕심을 부렸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인 빌 공 자의 공 , 비우면 편안해지고 비우면 살아 있다는게 행복이라는 데
40을 훌쩍넘긴 불혹의 나이에도 비우지 못하는 나란 정녕 어떤 인간인가.
그 때 뼈를 깍는 아픔으로 그렇게 절규했었다. 크리스찬이 아니었지만
'오, 하느님! 오, 주여!"하고 부르짖었었다.
눈을 뜨니 담배가 타 들어가 재가 바닥에 떨어지고 연기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마지막으로 빨고는 담배 잿털이에 비벼껐다.
"후 "하고 길게 한 숨을 쉬었다.
담배연기는 길게도 날아갔다.
"제기랄,"
세계적인 금융위기, 그것도 자본주의 종주국에서 터져 나왔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세계 유일의 초 강대국인 미국이 ,
합리적이고 투명하다는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회사의 파산 ,
자본주의 역사에서 공황과 위기는 불가피한 것인가?
1929년의 대공항에서 89년의 저축대부조합의 파산, 2000년 닷컴 버블로 인한 거품붕괴,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k지점장이 화곡동 지점장일때 2,000년엔 닷컴 버블이 광풍처럼 휘몰아쳤다.
나스닥의 기술주들이 춤을 추고 오르자 한국의 코스닥종목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튀어 올랐다.
액면 500짜리 주식이 1백만원을 넘어갔다.
매출도 없고 한번도 수익을 내보지 못한 주식이건만 인터넷의 새로운 세상이 온다며 닷컴 주식은 승승장구 했다.
그 때 기술주의 황제라고 불린 주식이 새롬기술이었다 .
일찌기 명퇴한 선배는 그 주식에 투자해 받은 무상주 겨우 일곱주 만으로 7백만원을 벌었다고 자랑했다.
그 때 k지점장은 버블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관심을 끊었었다.
그래서 그 이후 닷컴 버블이 붕괴될 때 그 때는 용케도 피해갔다.
그 당시 1백만원이 넘어가던 그 주식은 상호를 변경해 현재 솔본이라는 종목으로 남아 있는데 현재가는 1,000원 정도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십 수년 째 계속하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였다면 벌써 국가파산을 해도 몇번 했을 나라다.
한국이 IMF를 겪은 것은 외환부족으로 일어난 것인데 미국은 자기나라 통화임으로 발권력으로 돈을 찍어 내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문제, 자꾸만 찍어내면 결국엔 돈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은적이 있다.
천 년 동안 유럽대륙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넓고도 강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제국이 망한 것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국가재정이 피폐해진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 이상주의자인 황제가 나타나 로마가 지배하던 전 지역의 속국을 로마화 한다는 미명하에
속국의 민족에게 일제히 로마시민권을 주었다.
그렇게되니 10분의 1인 속주세가 없어져 버렸다.
제국의 전 지역에서 들어오던 속주세가 없어지자 재정이 궁핍해져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 할 수 없었다.
나중엔 동 서 로마로 분할해 통치했으나 이미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
그 땐 이미 노블레스 오브리제라는 귀족들의 애국심도 없어지고
농업 생산력도 떨어져서 로마의 본거지인 서로마는 불과 500명의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태리반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조그만 도시국가였으나 동방과의 향료무역으로 번성해
강소국으로 자력방위를 하면서 1,000년을 유지했다.
오늘 날 미국이 세계 초 강대국으로 세계의 경찰을 자처 해오고 있으나,
그 역활이 다해가고 있슴을 시인과 역사가는 예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미국도 이제는 역사의 무대에서 서서히 퇴장해 가는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형제간에 다툼이 일듯이 미국이라는 연방국가도 언제 주 정부끼리의 이해다툼으로
구소련 처럼 붕괴될지 모른다.
지도를 놓고 보면 미국대륙의 북동부에 뉴욕을 중심으로한 거대한 경제권이 있고
서부에 LA를 중심으로한 캘리포니아 경제권이 있다.
남부쪽으론 텍사스와 플로리다가 또 한 축을 형성하고 있고,
5대호가 있는 중북부지역에 시카고 경제권이 있다.
이 4곳을 제외하면 그외의 지역은 황무지나 다름없다.
주 정부가 소재한 조그만 도시만 점으로 있을 뿐이다.
역사의 법칙은 엄정하다.
인류역사에서 대 제국을 건설했던 강대국이 석양의 노을처럼 사라져갔다.
로마제국 이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이 중동지방을 차지하고 인도까지 원정하지 않았던가.
그 후 훈제국을 거쳐 몽고제국은 중국대륙은 물론 동 유럽까지 진출했었다.
중세를 넘으면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중남미의 전 지역을 식민지로 개척했고,
영국이 무적함대를 격파하자 대영제국은 지구상에서 해가 지지않은 나라로 영광을 누렸다.
2차대전을 끝으로 영국이 강대국의 위치에서 퇴장하자
미국과 소련이 대립했고 소련 연방의 해체로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었으나
도덕성의 상실, 국가정체성의 상실로 언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금융위기로 그 서막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
강력한 군사력도 국가재정이 받혀주지 않으면 유지 할 수가 없다.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미국.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째는 도덕성의 상실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건국이념은 청교도정신에서 출발했다.
청교도는 영국에서 핍박받은 그들의 조상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건강하였으며,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알고 황무지를 개척하였다.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농업국가였으나 흑인노예의 중노동에 의한 노동착취로 번영에 들어갔다.
노예노동력에 의한 값싼 면화와 사탕수수의 농업생산력 발전으로 경쟁력있는 국가가 되었으며
공업국으로의 이행은 당시 공업이 발달한 동북부지역에서 공업노동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으로 인류역사에 그 이름을 올렸으나 그 당시의 경제적인 배경에는 북부에
흑인노예해방으로 인한 공업노동자의 노동력이 필요했었다.
어쨌던 남북전쟁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도덕적인 국가로 위상을 찾았으며
그후 신흥공업국으로 역사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신장한 미국으로 유럽각국의 이민자가 넘쳐났으며,
누구든 근면하고 성실하고 창의적이면 성공할 수있는 사회가 되었다.
흔히 말하는 아메리카 드림은 세계인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에 등장한 나치즘의 세력확산을 막고자 참전한 2차대전의 승리로 미국은 초 강대국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이 때부터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칭했다.
정치적으로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미국의 CIA는 약소국가의 국가수반을 암살하거나 붙잡아 미국 법정에 세웠다.
아직도 미스테리로 나아있는 스웨덴 총리의 암살이라던가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가를 체포해 마이아미법정에 세웠다.
이라크로 침공해 한 나라의 대통령인 후세인을 사형시켰다.
도덕적인 권위의 상실이다.
경제적으로 세계의 선진국이 되었으나 닉슨 대통령 시절 월남전의 참전으로 막대한 군사비 지출때문에
늘어난 국가재정의 고갈로 그 때까지 유지하였던 금본위제도의 금태환을 없애 버렸다.
국고의 고갈로 달러를 들고오는 사람에게 금으로 교환해 줄수 있는 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다보니 십 수년을 넘는 재정적자와 무역수지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달러를 찍어내 보충하면 되었으므로 국가파산을 면해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닥친 금융위기로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국가가 될 수 밖에 없다.
무진장으로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종국에는 달러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세계인의 머리에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잃고 만다.
그게 세상의 평범한 이치다.
국가가 탐욕을 부린 대가가 아닐까?
미국의 규제를 받지 않은 금융자본주의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왜치며 세계를 지배하려 했으나
이번 탐욕이부른 금융위기로 크게 상처를 입은 사자에 불과 할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k지점장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서무 여직원이 문을 열고 VIP거래처인 백세한의원 원장님이 오셨다는 전갈을 하고 갔다.
k지점장은 스프링처럼 튀면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와 인사했다.
" 아이쿠, 원장님 어서 오세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 지점장, 잘 지내고 말고 내 펀드는 어떻게 되는거요?"
" 아, 예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가 권유해서 든 펀드인데..."
백세 한의원 박원장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한의사이다.
한의사 임에도 이비인후과의 하나인 귀병에 대해선 신출하게 잘 치료한다는 소문이 나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 자신이 개발한 치료약과 처방은 자기자신의 몸을 시험삼아 수십 수백번 테스트한 결과라고 한다.
그래서 돈을 벌어 인근에 5층짜리 빌딩을 소유한 알부자로 소문나 있다.
박원장의 취미는 수렵이다.
수렵 이야기만 나오면 신나게 얘기를 끌어갔다. 호기심을 보이면 이야기가 끝도 없다.
주위에서 골프를 권해 해보기도 했는데 재미없어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의 병원 원장실 벽면에는 수렵할 때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산을 배경으로 SUV 차량인 무쏘앞에서
엽총을 울러매고 한 손으론 사냥개의 목줄을 쥐고 있는 모습이 꽤나 멋있게 보였다.
사람이 젊잔하고 무게가 있는 분이다.
절대 남한테 싫은 소리할 분이 아닌데 펀드손해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나이가 65세로 k지점장하고는 동향으로 10년 년상이라 말을 트고 지내는게 오히려 고마울 정도다.
그만큼 친밀감을 느낀다는 반증이 아닌가.
k지점장은 실내에 있는 작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박원장의 앞에 갖다 놓는다.
박원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대뜸
" 김 지점장 , 내 펀드 어떡해야 하오? 내월이면 1년 만기인데..."
" 아, 예 죄송합니다. 손해가 많으시지요. 저도 원장님 생각하면 마음 아픕니다.
이런 말씀드리면 역정을 내실까 두렵습니다만, 제가 오래 고민해 보니
내 달 만기에 펀드 인출하시고 그 돈으로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제 소견으로는 지금 금융위기의 공포감으로 투매가 나와 회사의 사업성은 괜찮은데 액면 이하로 저 평가된 종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주식을 3종목 정도로 분산투자하여 한 1년만 기다리시면 원금회복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떠십니까?"
"허, 그것 참, 반토막난 재산을 또 다시 더 위험한 주식에 투자한다! 그걸 말이라고 하요?
지금 펀드 손실도 김지점장이 권유해서 한 것아니요?"
하고 버럭 역정을 낸다.
" 녜, 맞습니다. 책임감을 통감합니다.
그러나, 원장님 저를 한 번만 더 믿어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보기엔 가격메리트가 충분한 주식이 많이 있습니다.
전 이번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T증권사 주식은 액면이 5천원인데 현시세가 2,500으로 저가 메리트가 충분하고요,
k 자동차주식은 액면가 5,000인데 4년전 가격이하로 추락해 8,000원대에 와 있습니다.
자동차가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고 발전가능성 또한 많습니다.
또 하나는 제약주로서 Y약품주식이 1년전에 70,000하던 주식이 지금 8,000대에 와 있으므로 충분히 거품이 빠졌다고 봅니다.
제가 추천해 드리는 3종목에 대해 한 번 검토해 주시고 절 또 한번만 믿어 주십시요.
제가 이런 말씀드리는 것은 오랜 거래처인 원장님의 재산손실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느껴 충분히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 입니다.
살펴봐 주십시요."
지점장은 이런 말 밖에 할게 없었고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지점장의 펀드투자도 반토막 난 상태에서 만기에 돈 찾으며 실제로 이 종목에 투자할려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나 박원장은 미더워 하지 않고 투덜댄다.
" 내가 지금껏 살면서 주식이란 주자도 모른 사람이요! 놔 두시요! "
박원장은 배알이 꼴린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전화가 왔다. 강남지역 본부장이다.
" 김지점장, 이번 특판 정기예금 신규 가입금액이 너무 저조합니다.
우리 본부에서는 강남역 지점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신경 좀 쓰십시요!
이번 특판정기예금은 금리가 년 7.5%아니요, 그만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보는데...
월말이 마감이니 이제 7일 밖에 안남았어요. 분발해 주시요1"
" 아, 예 잘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지점장은 배알이 꼴렸다. 같은 부서에 근무한 적은 없지만 본부 차장회의에서나 금융연수원에서 같이 연수받으면서
대충 어느 정도의 인물인줄 아는데 명문대 출신이라는 것으로 덕좀 봐 승진한 본부장은 나이가 1살 적고 입사년도로 보면
2년 후배였다.
K지점장은 갑자기 서글퍼 졌다.
지점장 나이 금년 55세 ,
금년을 지나면 본부 조사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조사역이란 조사할 게 없는 책 걸상만 있는 한직이다.
현업에서 은퇴하는 것이다.
정년이 아직 3년 남이있어 명예퇴직을 하든가 임금 픽크제를 선택해 반으로 준 년봉을 받든가 선택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중간관리자인 책임자 시절 본부에서 같이 근무하던 문 아무개는 강동구 길동 같은 사원아파트에 살면서
호연지기가 맞아 천호동 색시집에서 하루 밤을 같이 보냈는데...
그 때 먹은 술 안주 접시가 20개 였었다.
똑같은 접시를 쌓아놓으니 탑 같았다. 왕창 바가지를 쓴 것이다.
3명이 먹은 주대값이 그 때 돈 30만원으로 호주머니 돈이 모자라 아내가 일요일 아침에 택시타고 와 돈을 주고 갔었다.
그런 인연으로 말을 트고 친하게 지냈으나 그 사람은 현재 W은행의 계열은행인 경남은행장으로 나가있다.
과거에 친한 사이였으나 직급이 차이가 나니 서로가 불편해 졌다.
은행장과 지점장은 군대계급으로치면 별4개의 군사령관과 별 하나의 사단장과 같은 처지다.
그러니 마주치는 것도 불편하고 전화도 거북해 피해 버린다.
K지점장 스스로 자격지심에서 나온 행동이다.
백세한의원 박원장은 빠쁘니 이만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김 지점장! 김지점장이 날 조졌뿌렷소. 허허,."
" 안녕히 가십시요, 원장님. 또 뵙겠습니다."
평소엔 "또 오십시요" 란 인사가 지점장도 모르게 "또 뵙겠습니다."로 바뀌었다.
지점장도 생각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후에는 객장이 떠들썩 했다.
남자의 고함소리가 객장에서 들렸다.
지점장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객장의 손님들이 키 큰 남자에게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 은행에서 책임져라! 은행이 망하기 전에는 원금 손실나는 일은 없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그 말듣고 권유에 못이겨 펀드 들었는데 1년만에 반 토막 났다,
내가 이 은행 15년 동안 거래해 왔는데 억울해서 몬살것다!"
키 큰 50대의 남자는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며 창구직원에게 달려 들었다.
창구 여직원이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k 지점장은 왜 소란스러운지 단박에 알아 차렸다.
서무대리를 불러 그 손님을 지점장실로 모시게 했다.
키 큰 남자는 따지겠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지점장실로 들어 왔다.
" 어서 오세요, 제가 지점장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아, 이게 보통 일입니까! 내 피같은 돈 천만원이 날아 갔어요!
은행에서 책임지세요!"
날카롭게 대드는 사람의 얼굴을 보니 낮이 익었다.
은행앞 길거리에 있는 가판대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k지점장은 매주 금요일 이면 어김없이 로또 복권을 5천원씩 사왔다.
복권살 때 가판대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슬쩍 봤는데 바로 그 사람이다.
" 아, 손님, 펀드 투자 하셨군요. 죄송합니다. 큰 피해를 드리게 되었네요.
저 역시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은행원이 펀드 손실을 책임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 왜요? 창구직원이 원금 손실날 일은 없다고 장담했습니다. "
그러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무식해서 펀드가 뭔지도 모르고 창구직원이 은행예금보다는 수익율이 좋다고 해서 맡긴 겁니다.
이제와서 오리 발이면 저는 어떻합니까 !
속터져 죽겠습니다. 안 그래요?"
" 예, 맞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우리 나라에 손님처럼 손실난 분이 오죽 많겠습니까?
그 사람들 손실 물어주면 은행 다 망합니다. 그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은행원이 아무리 권유했다 할지라도 최종 결정은 손님이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처럼 손실이 많이 난데 대해선 미안합니다만, 만일 큰 수익이 났다면 좋아했을 거 아닙니까? "
k지점장의 차분한 논리적인 반박에 키 큰 남자는 수그러 들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자, 차나 한 잔 하십시요."
지점장은 작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키 큰 남자앞에 드밀었다.
키 큰 남자는
"내가 은행원을 믿은게 잘못입니다. 내 앞으로 은행원 말 믿으면 사람이 아니요!"
하고는 커피잔을 들어 반쯤 마시고는 바로 일어섰다.
"가시게요.?"
" 가야지 그럼, 여긴 있어봐야 뭘 하겠소!"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점장실을 나가 버린다.
" 안녕히 가십시요."
지점장은 홀로남아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하모, 역정낼만도 하제, 어떻게 번 돈인데..."
가판대란 비좁은 공간에서 신문팔고 껌팔고 복권팔아 모은 돈이 아닌가.
하루종일 독방같은데서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서 물건파는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한 여름에는 무더위에 지쳤을 테고 한 겨울엔 추위에 몸 떨면서 번 돈이 천만원 날아 갔는데
입장 바꾸면 나라도 항의하고 싶을것이다.
우월적 지위에서 중소기업에 권한 KIKO로 손실을 크게 본 거래처도 2군데가 나왔다.
그들 역시 은행을 원망하며 불만을 터트렸다.
지점장은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펀드손실이 뼈아프게 닦아왔고 ,
그 다음 백세한의원 박원장, KIKO 손실을 본 중소기업 S사 윤사장 등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손실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교차한다.
나비효과라고 했던가.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태풍처럼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탐욕이, 규제에서 벗어난 투자은행들의 탐욕이 , 개인의 탐욕이 거대하게 얽히고 설켜 만들어낸
먹구름이 세찬 비가 되어 지구상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으로 닦아온다.
아무것도 모르고, 죄도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다.
오후 6시가 되자 계산담당 책임자가 오늘 계산이 마감되었다고 보고 해왔다
지점장은 집무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도 오늘은 드라이브중인 특판정기예금이 5억 늘었다.
그리고 나서 거액거래처 입출상황을 점검하고 컴퓨터를 껏다.
퇴근한다고 서무책임자에게 알리고 직원통용문으로 빌딩을 빠져 나왔다 .
10월인지라 벌써 어둠이 내리고 네온사인이 켜지고 있다.
밝은 네온사인 밑으로
젊은이들은 쌍쌍이, 또는 삼삼오오 이리 저리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들의 얼굴엔
어떤 심각함도 ,고민도 없는 행복한 모습으로 생기 발날했다.
스커트나 반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들의 건강한 다리가 예쁘게 보였다.
그들에겐 금융위기도 IMF한파보다 더 하다는 경기침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에겐 젊음이 있기에 가진것 없어도 사랑할 수있고, 미래가 있기에 도전할 수가 있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나, 나는...
거리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을씨년 스럽다.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 전철을 타러 개찰을 하고 또 계단을 내려가니 열차가 들어 온다는 아나운스멘트가 나왔다.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도 오늘따라 멜랑코리하게 들린다.
객차에 들어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다음 역에서 내리는 손님이 일어나 운좋게 앉을 수가 있었다.
역시 한국에는 줄을 잘 서야 되는 모양이다.
객차안은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여행용 케리가방을 끌고 젊은 남자가 밤깍는 기계를 손수 시연해 보이며
팔고 지나갔다. 한 정거장 더 가니 이번엔 허리 꼬부러진 할머니가 껌을 팔려고 손을 내민다.
지점장은 평소 이런 사람들을 보면 갈등을 느낀다.
도와줘야 되나 말어야 되나....
도와주면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 도시미관은 물론 한국의 이미지에 안 좋을거 같고
무시하자니 양심에 걸린다. 저 들도 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인 것을...
그러나 오늘 따라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를 보니 왠지 안쓰럽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의 할머니가 그를 키우다 싶이 했는데
효도 한 번 못해 드리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할머니가 지점장앞으로 껌을 내밀었을때 지점장은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주었다.
할머니 두 눈이 놀라는 사람모양 휘둥그래졌다.
지점장은 그냥 가지라는 뜻으로 손짓하며 껌 2통을 받았다.
할머니는 꼬부라진 허리로 굽실 굽실 절을 세 번이나 하고 갔다.
지점장은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의 가사가 머리에 떠 올랐다.
"한 세상 걱정없이 살면 무슨 재미....."
다음역은 환승역이라 객차의 문이 열리자 마자 빠져 나가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으로 붐볐다.
여름에 탄천을 걸으면 하루살이 들이 떼지어 날아올라 얼굴에 와 닿는다.
k지점장은 빠져 나가는 사람 ,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여름철 천변에서 떼지어 날아오르는
하루살이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래 우리 인생도 어쩌면 하루살이가 아닌가 ."
_ 끝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