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바닷가까지 7리, 남쪽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경계까지 24리, 서쪽도 같은 부의 수비부곡(首比部曲) 경계까지 51리, 북쪽은 울진현(蔚珍縣) 경계까지 38리이며, 서울과의 거리는 9백 71리이다.
【건치연혁】 원래 고구려의 근을어(斤乙於)인데 고려 초기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군(郡)을 삼았다. 현종(顯宗) 때에 예주(禮州)에 소속시키고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 때 고을 사람 황서(黃瑞)가 왕을 따라 원(元) 나라에 들어가서, 왕을 호위하여 받든 공이 있었으므로 승격하여 군(郡)으로 하였는데 본조에서도 그대로 하였다.
【관원】 군수ㆍ훈도 각 1인.
【군명】 근을어ㆍ기성(箕城).
【성씨】 본군 황ㆍ손ㆍ방(房)ㆍ영(永)ㆍ구(丘), 섭(葉)ㆍ하(河)ㆍ신(申)ㆍ김 모두 촌성(村姓)이다. 김ㆍ이ㆍ박ㆍ정(鄭) 모두 속성(續姓)이다.
【형승】 동남쪽은 바다에 의지하고, 서북쪽은 산을 등졌다. 유의손(柳義孫)의 풍월루(風月樓) 기문에, “동남쪽은 바다에 의지하고, 서북쪽은 산을 등졌다.” 하였다.
【산천】 부곡산(釜谷山) 고을 서쪽 1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금장산(金莊山) 고을 서쪽 32리에 있다. 백암산(白岩山) 고을 서쪽 29리에 있다. 후리산(厚里山) 고을 남쪽 11리에 있다. 표산(表山) 고을 북쪽 18리에 있다. 사동산(沙銅山) 고을 북쪽 34리에 있다. 신래봉(辛來峯) 고을 서쪽 6리에 있다. 구질리현(仇叱里峴) 고을 서쪽 41리에 있다. 대현(大峴) 고을 서쪽 18리에 있다. 바다 고을 동쪽 7리에 있다. 선연(仙淵) 고을 서쪽 35리에 있는데 가물면 이곳에서 비를 빈다. 온천 고을 서쪽 26리, 백암산(白岩山) 아래 소태곡(所台谷)에 있다. 구며포(仇㫆浦) 고을 북쪽 13리에 있다. 정명포(正明浦) 고을 북쪽 24리에 있다. 후리포(厚里浦) 고을 남쪽 15리에 있다. ○ 이상 세 포구에는 척후소(斥候所)가 있다. 남대천(南大川) 고을 남쪽 2리에 있다. 근원이 백암산 남쪽 기슭에서 나와, 고을 동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토산】 죽전(竹箭) 고을 동남쪽 산에서 나온다. 방어ㆍ광어ㆍ문어ㆍ대구[大口魚]ㆍ송어ㆍ적어(赤魚)ㆍ고등어[古刀魚]ㆍ연어(鰱魚)ㆍ황어(黃魚)ㆍ은어[銀口魚]ㆍ삼치[麻魚]ㆍ복어ㆍ홍합ㆍ회세합(回細蛤)ㆍ자해(紫蟹)ㆍ해삼ㆍ미역ㆍ김[海衣]ㆍ해달(海獺)ㆍ꿀ㆍ송이ㆍ석이버섯ㆍ지치[紫草]ㆍ인삼ㆍ지황ㆍ복령ㆍ산무애뱀[白花蛇].
【성곽】 읍성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2천 3백 25척이고, 높이 9척이다. 성 안에 우물 여섯 곳이 있고, 군량 창고가 있다.
【관방】 월송포영(越松浦營) 고을 동쪽 7리에 있다. ○ 수군만호(水軍萬戶) 1인이 있다.
【봉수】 후리산 봉수(厚里山烽燧) 남쪽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대소산(大所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표산(表山)에 응한다. 표산 봉수 북쪽은 사동산(沙銅山)에 응하고 남쪽으로는 후리산에 응한다. 사동산 봉수 북쪽은 울진현(蔚珍縣) 전반인산(全反仁山)에 응하고 남쪽으로는 표산에 응한다.
【누정】 풍월루(風月樓) 객사 북쪽에 있다. 유의손(柳義孫)의 기문이 있다. 봉서루(鳳栖樓) 객사 동쪽에 있다.
월송정(越松亭) 고을 동쪽 7리에 있다. 푸른 소나무가 만 그루이고, 흰 모래는 눈 같다. 소나무 사이에는 개미도 다니지 않으며, 새들도 집을 짓지 않는다. 민간에서 전하여 오는 말이, “신라 때 신선 술랑(述郞) 등이 여기서 놀고 쉬었다.” 한다.
○ 안축(安軸)의 시에, “일은 지나가고 사람은 옛 사람 아닌데 물만 스스로 동쪽으로 흐르고 천 년 전 남긴 자취 정자 소나무에 있네. 겨우사리[女蘿] 다정한 듯 서로 엉켰으니 아교풀로 붙인 듯 풀기 어렵고, 형제죽(兄弟竹)이 마음으로 친하니 좁쌀 방아찧을 것이, 어느 선랑(仙郞)이 있어 함께 학을 구울까, 초부(樵夫)의 도끼로 용 잡는 것 배우게 하지 말라. 머리털 절반이나 희어, 예전 놀던 곳 찾으니, 푸르른 옛날 모습 불현듯 부럽구나.” 하였다.
○ 이곡(李穀)의 시에, “가을 바람에 옛 자취 찾아 말 머리 동쪽으로 돌리니, 울창한 정자 소나무 좋기도 하구나. 몇 해 동안이나 이 마음은 신선 지경 찾으려 했나, 천 리 먼 길에 길 떠나려 양식을 방아찧었네. 도끼의 액운이 없었으니 한위(漢魏)를 지났고, 재목은 큰 집[廓廟] 지을 수 있으니 기룡(蘷龍 기ㆍ용은 순 임금의 어진 신하)에도 비기겠네. 난간을 의지하여 침음(沈吟)하기 절로 오래인데, 졸렬한 붓으로 만분의 일도 형용하기 어렵다.” 하였다. 『신증』 예전에는 집이 없었는데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처음으로 지었다.
망사정(望槎亭) 고을 남쪽에 있다. ○ 안축(安軸)의 시에, “단청 빛 공중에 떠서 물 속에 비치는데, 올라와 구경하며 한 번 바라보니, 속정(俗情) 씻어지네. 비 개인 푸른 수림엔 꾀꼬리 소리 나고, 바람 잔잔한 푸른 물결엔 흰 갈매기들 즐기네. 8월의 신선 배는 은하수를 가는 듯, 백 년의 오랜 생선 가게는 앞 수풀 건너 있네. 이 강산을 만고에 알아볼 이 없어서 하늘이 깊이 감추어 오늘을 기다렸다네.” 하였다.
망양정(望洋亭) 고을 북쪽 40리에 있는데 동쪽은 큰 바다에 임하였다. ○ 정추(鄭樞)의 시에, “망양정 위에 한참 동안 서 있으니, 늦은 봄이 가을 같아서 마음 더욱 아득해지네. 아무래도 바다 가운데 바람과 안개 나쁜 모양이지, 전나무ㆍ소나무 동쪽 향한 가지는 자라지 못했네. ○ 일만 골짜기 일천 바위가 잇따라 놓였는데, 산을 따라 돌아가고 산을 따라 왔다네. 구름이 큰 물결에서 나니 하늘을 다 감쌌고, 바람은 놀란 물결을 보내어 언덕을 치고 돌아오네.” 하였다.
○ 채수(蔡壽)의 기문에, “이 정자는 여덟 기둥으로 둘렀는데 기와는 옛 것을 쓰고, 재목도 새로운 것을 쓰지 않았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풍경 물색의 기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자의 조금 북쪽을 둘러 8칸을 지으니 이름을 영휘원(迎暉院)이라 한다. 벼랑을 따라 내려가면 또, 한 돌이 우뚝 솟아 그 위에 7, 8명은 앉을 만하며 그 아래는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이름을 임의대(臨漪臺)라 한다. 북쪽을 바라보면 백 보쯤 밖에 위험한 사다리가 구름을 의지하여 그 위로 사람이 가는 것이 공중에 있는 것 같으니 이름을 조도잔(鳥道棧)이라 하는데,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유람 관광하는 즐거움이 이 이상 없다. 바람 자고 물결 고요하며 구름 걷고 비 갤 때에, 눈을 들어 한 번 바라보면 동쪽이 동쪽이 아니요, 남쪽이 남쪽이 아닌데 신기루(蜃氣樓)는 보이다 말다 하고, 섬들은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가다가 큰 물결이 거세게 부딪치고, 고래가 물을 내뿜으면 은은하고도 시끄러운 소리에 하늘이 부딪치고 땅이 터지는 것 같으며, 흰 수레가 바람 속을 달리고 은산(銀山)이 언덕에 부서지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면 고운 모래가 희게 펼쳐지고 해당화는 붉게 번득이는데, 고기들은 떼지어 물결 사이에서 희롱하고 향백(香柏)은 덩굴 뻗어 돌 틈에 났다. 옷깃을 헤치고 한 번 오르면 유유히 드넓은 기운과 짝하여 놀아도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며, 널리 조물주와 함께 하여 그 끝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서 비로소 이 정자가 기이하고, 하늘과 땅이 크고 또 넓은 줄을 알게 된다. 아, 우리나라에서 봉래(蓬萊)ㆍ영주(瀛洲)를 산수의 고장이라 하지만 그중에도 관동(關東) 지방이 제일이 되며, 관동지방의 누대(樓臺)가 수없이 많지만 이 정자가 제일 으뜸이 된다. 이는 하늘도 감추지 못하고 땅도 숨기지 못하니, 모습을 드러내어 바쳐서 사람에게 기쁨을 줌이 많다. 어찌 이 고을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를 적어서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학교】 향교 고을 남쪽 2리에 있다.
【역원】 달효역(達孝驛) 고을 동쪽 5리에 있다. 평등원(平等院) 고을 남쪽 13리에 있다. 다시원(多施院) 고을 서쪽 45리에 있다. 망양원(望洋院) 고을 북쪽 42리에 있다.
【불우】 백암사(白岩寺)ㆍ선암사(禪菴寺) 모두 백암산에 있다. 수진사(修眞寺) 동팔리산(動八里山)에 있다. 심수사(深水寺) 다호천산(多乎川山)에 있다.
【사묘】 사직단 고을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성안 동쪽에 있다. 여단(厲壇) 고을 북쪽에 있다.
【고적】 백암산 고성(白岩山古城)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천 5백 60척이요, 높이 3척이며 안에 우물 세 곳이 있다.
【명환】 고려 김을권(金乙權) 군수가 되었는데, 고을이 왜구로 인하여 인물(人物)이 흩어져 없어진 것을 을권이 남은 백성들은 안주시키고 토성을 쌓아서 도적을 대비하였다. 이에 힙입어 읍 사람들이 생업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지금껏 어질다고 칭송한다.
【인물】 고려 황서(黃瑞) 충렬왕 때에 왕을 보호하여 받든 공으로 여러 번 벼슬이 승진하여 첨의평리(僉議評理)까지 되었다.본조 황희석(黃希碩) 태조조의 개국공신이며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황현(黃鉉) 경서에 밝고 행동이 법도 있어, 세상의 사표가 되었다.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손순효(孫舜孝) 두 번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이 의정부 찬성에 이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성질이 소탕하고 세상일을 멀리 하였으며 칠휴거사(七休居士)라고 자호하였다.
【효자】 본조 이윤(李閏) 부친 상사를 만나 3년 동안 시묘 살았으며 효성이 남달리 뛰어났다. 사실이 알려지니 정문을 세웠다.
【제영】 성곽을 두른 긴 시내는 고향 마을 같네. 신천(辛蕆)의 시에, “어지럽게 붉은 것과, 진하게 푸른 것이 마을마다 덮었는데, 평평한 풀밭 비온 뒤의 들판을 말가는 대로 지나네. 성곽을 두른 긴 시내는 고향 마을 같은데, 산을 의지한 대숲은 누구의 동산인가. 벼슬길 나보다 먼저 채찍을 대는 것 몇 번이나 보았는고, 객지에 다니는 몸 자리가 따스할 겨를 없는 것 부끄럽네. 다행히도 한가한 여가를 얻어 대낮에 베개를 베었는데, 수풀을 격하여 수없는 자고(鷓鴣)새 울어 떠드네.” 하였다. 하늘 나직하니 수면(水面)이 평평하구나. 안축(安軸)의 시에, “공관(公舘)이 하도 답답하여, 옷을 걷고 뒷 정자로 올라갔네. 성긴 발엔 바람 따라 제비가 춤을 추고, 높은 나무엔 이슬 먹은 매미의 소리 나네. 땅이 오래되어 마을 모습이 늙었고, 하늘이 나직하니 수면이 평평하구나. 시내와 산이 모두 예전 보던 모습이라, 내가 지난해 지나던 일 생각나누나.” 하였다. 바다의 뗏목을 멀리 바라보니 은하수에 통하고 이달충(李達衷)의 시에, “소나무 그늘 다 지나서야 마을이 보이는데, 푸르고 푸른 보리 평원에 가득했네. 바다의 뗏목을 멀리 바라보니 은하수에 통하고, 산의 나무 해가 오래니 칠원(漆園)에게 물으려네. 서쪽 산기슭에서 구름을 보니 붙은 데 없고, 동쪽창에서 해를 마시니 남은 온기가 있네. 매년 이 고을에서는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우나, 강릉 울진의 비틀며 다투고 송사하는 것 괴롭고 싫었노라.” 하였다. 기이한 풍경 좌우쪽에 보는 것마다 평원이로세. 이곡(李穀)의 시에, “강 위의 인가 대숲 밖 마을에, 기이한 풍경 좌우쪽에 보는 곳마다 평원이로세. 거듭 찾아오니 백발 친한 친구 놀라게 하고, 두어 점 청산은 옛 동산을 격해 있네. 성이 넓은 바다를 꼈으니 바람 자못 사납고, 땅이 해뜨는 곳에 접하였으니 기운이 항상 따스하구나. 우연히 쓴 시구를 지워버림이 마땅하니 어찌 여러 사람의 입에 흘러 전하기를 바랄 것이랴.” 하였다. 먼 멧부리는 비가 씻어 푸르네. 정추(鄭樞)의 시에, “발을 걷으니 들빛이 들어오고, 책상에 의지하니 솔바람 소리 들리네. 늙은 나무는 연기가 엉겨 붉고, 먼 멧부리 비에 씻겨 푸르네.” 하였다.팔영서거정(徐居正)의 시. 해당안(海棠岸) 금 자라 이고 있는 산 겹겹하여, 두 언덕을 끼고 달리니 푸른 용 서렸는 듯, 하룻밤 사이 좋은 바람 솔솔 부니, 해당화 여기저기 피어 붉게도 얽혔네. 뉘 집의 멋진 놀이인고, 준마(駿馬)가 울음 우는데, 떨어진 꽃 흩어져 거센 말발굽에 번득이네. 자고(鷓鴣) 새 날아오다가 놀라지도 않고 날 저문데 다시 나뭇가지에 올라 우누나.
『신증』 성현(成俔)의 시에, “긴 뚝이 은은하여 바닷가에 임했는데, 밝은 모래 흰 물결 서로 삼키고 뱉네. 해당화 수없이 땅을 덮어 피었는데, 말발굽이 차고 밟아 붉은 비 뿌리누나. 붉게 나부끼는 일만 점 끝이 없이 날아가니, 맑은 향기 은은하여 돌아가는 길손을 의심하게 하네. 어찌하면 옮겨다 집 처마 아래 두고, 오래오래 서로 대하여 함께 취하여 줄꼬.” 하였다. ○ 민수천(閔壽千)의 시에, “남쪽으로 달리는 산곡이 검푸르기도 한데, 높은 난간 바로 아래서는 고기와 용이 떠드누나. 언덕에 가득 밝은 모래는 한 눈이 넘치는데, 붉은 아지랑이 눈을 가리워 어른어른 거리누나. 좋은 바람 불어오는데 말은 자주 울더니, 10리 되는 비단 병풍에 옥발굽 자국났다. 연지 언덕[臙肢坡]으로 잘못 알까 염려함인지, 산새들 종일토록 나뭇가지에서 우네.” 하였다. 월송정(越松亭) 평사(平沙) 10리나 흰 담요 깔았는데, 장송(長松)이 하늘에 닿아 옥창끝[甁]도 가늘구나. 쳐다보니 밝은 달은 황금 떡과도 같은데, 푸른 하늘 물 같아 넓기도 하구나. 객이 와서 1년마다 퉁소를 부니, 풍류는 모두 신선(神仙) 무리이네. 내가 따라가 요지(瑤池)에 장치하려 하니, 날아오는 푸른 새가 입에 벽도(碧桃)를 물었네. 『신증』 성현의 시에, “백사장 주변 길에 푸른 솔 둘렀으니, 신령한 바람소리 10리에 찬 바람이 나네. 용의 수염, 무쇠 가지가 울창하게 가리웠으니 검은 기운 하늘을 막아 그늘도 넓고 넓네. 달빛이 그 그늘 뚫어 절반쯤 어둡고 밝은데, 일만 가지 황금이 부서진다. 가다가 신선들 퉁소 불면, 안개 옷깃 펄렁 펄렁, 옥패 소리 들린다네.” 하였다. 조도잔(鳥道棧) 푸른 벼랑 일만 길이 바다 언덕에 임했는데, 새도 날아 지나지 못하고, 푸른 하늘 나직하네. 얽힌 외나무 사다리가 가늘기 실 같은데, 붉은 사다리 열두 층계를 부여잡고 오른다네. 지나는 사람 발을 헛딛고 말은 자주 엎어지니, 위태롭기 염여(灩澦)보다 위태롭고 높기는 태항산(太行山)보다 높네. 벼슬길에도 엎어지는 수레 많은 것이, 인간 가는 곳마다 양장(羊腸)같이 굽은 길 아닌 곳 없다네. 『신증』 성현의 시에, “푸른 산 바다에 꺼꾸러져 높은 멧부리 되었는데, 벼랑에 두른 구름사다리 양장(羊腸)처럼 서렸네. 새도 날아 지나지 못하고 원숭이조차 걱정하니, 맹문과 왕옥[孟門王屋]이 태항산에 잇따랐네. 이끼 낀 돌층계 기어올라 두 다리를 걷고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술잔 만하구나. 삼성(參星)을 만져보고 정성(井星)을 지난다는 적선옹(謫仙翁 이태백)은 일생에 아는 것,금성락(錦城樂)뿐이었네.” 하였다. ○ 민수천(閔壽千)의 시에, “누가 저 위험한 나무사다리로 바다 언덕을 둘렀나, 한 번 오르니 땅은 보이지 않고 하늘만 나직하구나. 다리뼈가 시고 저린데 눈은 아찔한 것이, 온종일 울퉁불퉁한 돌 위에서 개미 기어오르듯 하네. 내 평생 어느 곳에서 자빠지고 엎어지는 것 알았으랴. 큰 거리에 마음껏 말을 나란히 달렸었네. 본래는 성질을 참는 것이 답답한데, 험한 길 지나보니 마음이 참아지는 것 기쁘구나.” 하였다. 경파해(鯨波海) 천지간 큰 것 중에 바다가 제일 되니, 그 둘레가 가없고 또 그 바깥도 없다네. 그래서 바다를 한번 보면 다른 물은 물도 아니니 사해(四海)가 이다지도 크니, 내 눈도 커졌네. 내 한번 시험삼아 단구(丹丘 신선 사는 곳)까지 가서, 삼도(三島 삼신산)를 내려다 보고 십주(十洲)를 희롱하려네. 만일에 뽕나무 밭에 선수 한번 들어오면, 그대 나를 위하여 산가지 하나 더 놓아주소.”『신증』 성현의 시에, “동쪽 바다 까마득 끝간 데가 없는데, 위의 구름 아래 물 한 빛 되었네. 큰 고래 갈기를 흔들며 솟아 올라 춤추니, 공중에 가득한 물결 눈꽃인 양 희구나. 구슬 누대 층층한 집에 신광(蜃光)이 퍼지니, 세 봉우리 삼신산이 나왔다 없어졌다 털끝 같기도 하네. 긴 바람 따라 큰 물결 헤치고, 가벼운 돛 일만 리에 부상(扶桑)까지 가 볼거나.” 하였다. 임의대(臨漪臺) 대 높게도 섰는데, 교룡은 깊이 잠들고 고래는 물결 일으키지 않네. 부상이 바로 지척, 아침해 붉게 떠오르는데, 금물결 뛰놀아 맑은 안개 자욱하네. 구름 사이에 어른어른 신선 사는 섬이 보이는데, 구슬나무 구슬꽃에 구슬 풀이 자랐네. 일찍이 들으니 대추가 참외만 하다는데, 안기생(安期生 신선의 이름)을 찾아가 놀아보기나 할거나. 『신증』 성현의 시에, “망양정 앞 일천 척 되는 대(臺)에, 용이 당기고 호랑이 움키는 듯 푸르게 솟았네. 나고 들고 어지러운 돌들 바닷가에 꽂혔으니, 물결이 일만 길은 솟으매 눈 무더기 날리네. 안기생 연문자(羨門子)가 어데쯤 있나, 자라 멧부리가 단구(丹丘) 섬에 어른거리네. 아마도 구슬풀 향기 자욱하리니, 맑은 바람 타고서 돌아가려 하노라.” 하였다. ○ 민수천의 시에, “하늘 도끼로 무쇠를 깎아낸 듯 높기도 한데, 천 년 동안 일없이 경파해(鯨波海)에 임했네. 아침엔 흰 수레 꺽어지고, 저녁엔 은산이 부서지는 것이, 선관(仙官)을 불러다 연하(煙霞) 음식 준비했다네. 나를 맞아 구경하며 구슬섬 바라보니, 저 아래 부상 꺾기를 풀 줍는 것같이 하네. 십주(十洲)의 좋은 광경 오랫동안 아껴 오던 것을 반 돛의 맑은 바람 따라 내가 모두 찾으려네.” 하였다. 망사정(望槎亭) 망사정 위는 신선의 집인데, 망사정 아래는 어룡(魚龍)의 물결이네. 은하수 한 줄기 넓은 바다에 닿아 있는데, 저 멀리 가을바람 따라 견우성까지 간다네. 한 번 박망후(博望候 장건(張騫))가 신령한 근원 찾은 후로, 지금까지 내왕하는 이들 모두가 신선이라네. 돌아올 때 나에게 베틀 괴는 돌[支機石]을 빌려주소,내가 그 돌 갈아서 푸른 하늘 수리하려 하네.『신증』 성현의 시에, “박망후의 신선 뗏목, 하늘 위의 나그네라, 그 손에 베틀 괴는 돌 가지고 왔다네. 그 당시 객성(客星)이 자미성(紫微星)을 침범하였는데, 그 후엔 은하수 멀리 떨어져 있었다네. 정자가 동해에 임하여 까마득하게 가이없는데, 큰 물결 번쩍번쩍, 공중에 꽃이 번득이네. 신령한 근원 찾아 은하물가에 이르면, 아름다운 손으로 비단 빨고 있으리.” 하였다. 통제암(通濟菴) 매달린 절벽 일백 길, 무쇠를 깎은 것 같은데, 그 위에 황금 빛 보찰(寶刹)이 있네. 10홀(十笏 열 채) 선방(禪房)이 깊고 또 깊은데, 소나무 바람 일만 골짜기에 갠 날도 눈이 뿌리는 듯, 한 점의 세상 티끌도 여기는 날아오지 못하는 것이, 속객(俗客)은 자취를 볼 수 없었다네. 짚신과 대지팡이로 들어가려 하니, 흰 구름 땅에 가득, 바다와 산이 아득하네. 『신증』 성현의 시에, “층층한 멧부리 높이 솟고 푸른 아지랑이 떠도는데, 절로 가는 외길이 소나무 전나무 수풀을 뚫고 들어가네. 광채 영롱한 절간이 공중에 서 있는데, 금부처는 말없이 깊은 감실[龕]을 의지했네. 번망한 세상일은 파초잎 언덕 속의 사슴이니, 홍진(紅塵)을 헤치고 백족(白足) 중발(中鉢)을 찾으려네. 짚신과 대지팡이로 먼 곳을 마다하리, 세 사람 웃으며 서로 따라 호계(虎溪) 굽이를 지나리.” 하였다. 탕목정(湯沐井) 여섯 자라 힘도 세어 산을 높이 들었는데, 아홉 용이 우물을 보호하며 신령한 수원 통해서라. 더운 샘물 따스하여 훈훈하기 봄 같은데, 귀신이 호위하는 듯, 티끌 기운 없구나. 듣는 말엔 한 줌으로 오랜 병이 낫고, 두 겨드랑으로 풍기면 뼈도 신선이 된다네. 이내 몸 지금 시와 술이 고질 되었으니, 한 번 가서 쾌히 씻으려네.
『신증』 성현의 시에, “옥 구멍의 음화(陰火)가 불 때는 것 같은데, 아홉 용이 엄하게 지키며 신령한 수원 열어 놓았네. 뭉게뭉게 연기ㆍ안개가 바위 굽이에 퍼지는데, 한 줄기 샘물 푸른 산 밑에서 끓어 오르네. 훈훈한 더운 기운, 술에 취하는 것 같은데, 가마솥에 섶으로 불땔 필요 없네. 몸을 씻는데 기이한 공 있으니, 탕반(湯盤)에서만 티끌 때를 벗는 것이 아니라네.” 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방면】 상리면(上里面) 끝이 7리. 하리(下里) 끝이 10리. 남서(南西) 처음은 10리, 끝은 20리. 근서(近西) 처음은 15리, 끝은 25리. 원서(遠西) 처음은 25리, 끝은 50리. 근북(近北) 처음은 10리, 끝은 30리. 원북(遠北) 처음은 20리, 끝은 40리.
【성지】 읍성(邑城) 둘레가 2천 3백 25척이고 우물이 여섯이다. ○ 고려 때 서울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사람들이 산산이 흩어졌으나 지군사(知郡事) 김을권(金乙權)과 안집(安集)이 남아 있는 백성들과 토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 백암산고성(白岩山古城) 둘레가 2천 5백 60척이고 우물이 3개 있다. 고성(姑城)ㆍ오태봉성(吾台峯城).
【창고】 서창(西倉) 근서면(近西面)에 있다.
【누정】 망학루(望鶴樓)ㆍ오월루(梧月樓)ㆍ환월루(喚月樓), 월송정(越松亭) 월송진(越松鎭)에 있으며 푸른 솔이 만 그루나 있으며 모래가 10리나 깔렸다. 망양정(望洋亭) 북쪽으로 40리인 울진(蔚珍)과 경계인 해안에 있는데 기이한 돌들이 우쭉우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