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어둠이 걷히며 들려오는 장구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태어나서 이런 공연은 물론 장구 실물도 육안으로 처음 봤다는 후배가 공연 끝나자마자 한 말입니다. “내 안에 숨어있던 울림을 다시 느꼈다” “매쳤던 가슴이 뻥 뚫렸다” “얼떨결에 끌려와 헤머에 한 대 맏았다! 강추다!” “애인 생기면 단 둘이 꼭 한번 더 보고 싶다” 친구가, 선배가 입장료까지 대주겠다고 만나자하니 억지반 끌려왔다가 뱉은 감상들입니다.
어느 후배의 말 처럼 저 역시 핑하고 눈물이 돌았습니다. 그 후배처럼 처음 보는 굿도 아닌데... 고마웠습니다. 1.4후퇴 때 잃어버린 자식을 장성해서 만난 것처럼 반갑고 잘 자라줘 고마웠습니다. 미친 유신시대의 그림자를 예감하며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던 올 여름의 길목을 매주 ‘굿쟁이전“만 기다리며 보냈습니다. 혼자만 굿보고 복을 너무 받아 복장이 터지면 어쩌나하고 함께 복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일내내 전화를 돌렸습니다. 저를 만나는 약속은 무조건 수요일이어야 했습니다. 지금 후회되는 것은 부모님을 못 모시고 간 것입니다.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았었나 봅니다.
왜 그랬을까요? 굿이라 그랬습니다. 그 놈의 굿이 무엇이기에? 갑자기 굿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도 많지만 뭐라고 딱 한마디로 정의도 할 수 없습니다. 한때는 공연적으로 접근해 해석해보고 직업상 언어학적으로 인도차이나의 산악을 떠돌며 어원도 추적해 보았지만
꿈보다 해몽이었습니다. 단지 자신 있게 굿의 반대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는 있습니다. ‘굿’의 반대는 ‘자기딸딸이“라고...
연속 공연내내 내 머리 속을 맴돌고 떠나지 않았던 것은 80년대 채희완 선생이 던진 화두
‘마당극이냐? 마당굿이냐?’이었습니다. 답을 이미 정해놓은 화두였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하니 ‘굿’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극’이였구나 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처님 손가락 밖을 못 벗어났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남들처럼 풍물이 좋아 풍물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브레히트에 빠져 돌고 돌아 추적하다 풍물굿을 알게 된 나에겐 ‘극’과 ‘굿’의 개념은 예민합니다. 80년대 이후 대학가에서 열렬히 진행되던 마당굿 운동은 졸업후 어디로 갔을까요? 극단 현장, 아리랑, 민요연구회, 한두레... 마당이었나요? 그렇다면 ‘굿쟁이전’은 ‘극’이었을까요? ‘굿’이었을까요? 평가서 쓰기를 고사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쓰기로 했으니 여기까지 물음만 던지겠습니다.
단지 이제는 ‘마당’과 ‘무대’ ‘굿’과 ‘극’에대한 흑백의 호불호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 그렇게 어리석었던 적이 있었나 봅니다. 민족(닭)이냐 노동(달걀)이냐 같은... 쓸데없이 묵은 이론을 끄집어들은 이유는 ‘굿쟁이전’의 장소가 <소극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굿은 돌고 돌다 소극장까지 왔을까? 관객의 입장에서 유추해 볼 때 서양연극의 ‘소극장운동’에서 찾아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세기 불란서에서 소극장운동이 제기되었을 때처럼 무언가 절박했으리라... 그 해결의 대안으로 우리 굿이 소극장까지 왔으리라... 그리고 한때 김덕수와 공옥진을 스타로 만든 ‘공간 사랑’도 떠올렸습니다. 넓게보면 첫 시도는 아니었습니다.
그 절박함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굿쟁이’들이 평생을 업으로 굿을 소중히 간직하고 외길을 사는 동안 저 같은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지름길만을 찾아 경쟁의 세계에 온갖 직업을 떠돌며 아웅다웅 살아왔던 사람이 눈치를 챌 수야 있겠습니까?
몇 번의 공연과 뒷풀이를 함께하며 어느날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형은 도데체 정체가 뭐예요?” 궁금했을 것입니다. 이 바닥 사람도 아닌데 매주 새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그것도 꾸역꾸역 뒷풀이 까지 찾아와 나중에는 터주대감 행세도 하니... 그렇다고 프락치도 아닌것 같고... (요즘 굿은 운동판에서도 소외된 듯 ㅋ^^,)
그냥 굿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쇠 한가락 장구 한 장단 못치지만 굿판이 벌어지면 언제든지 기웃거리며 굿도 보고 떡도 알아서 훔쳐먹는 저도 그냥 그런 ‘관객 굿쟁이’입니다. 굿이니까 저 같은 보통사람이 감히 ‘쟁이’를 부치지 그 어느 바닥에서 ‘쟁이’를 부치는 것을 허할까 생각했습니다. 화랑 간다고 ‘그림쟁이’? 영화관 자주 간다고 ‘영화쟁이’?
작은무대에서 우뢰같은 감동을 주었던 굿쟁이님들에게 사족같은 한마디만 합니다. ‘굿쟁이전’은 굳이 분류하자면 ‘무대굿’입니다. ‘샘굿’이 다르고 ‘당산굿’이 다르듯 무대굿은 무대의 장소에 맞는 공연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굿을 보는 동안 무대의 특성을 염두에 둔 굿과 그렇지 않은 굿은 가락 한 가닥 칠 줄 모르는 비전문가 보통사람들의 눈에도 객관적으로 차이가 났습니다. 이건은 각각의 ‘역량’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굿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정성’이라면 무대에 맞는 굿의 형태와 내용을 새롭게 고민하고 적용해 나가는 것도 ‘정성’의 하나라고 생각해봅니다.
말이 깊어질 것 같아 맺습니다. 말 많은 관객보다 뒤로 빼지 않고 함께 뒷풀이 대동춤을 추는 관객을 더 좋아할테니... 공연을 본 벗들의 공통된 몇 가지 의견으로 맺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와보니 죄다 전에 보았던 그 사람들인데”...
이렇게 좋은 공연을 왜 끼리끼리 알음알음만 보게하느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홍보부족은 곧 예산부족... 왠들 그렇게 안 하고 싶었겠습니까... 다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물적 넘어가면 나중에 귀를 물릴까봐 한마디 더 해봅니다. 이렇게 좋은 공연이 SNS페이지 하나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연히 페이북 친구인 고안나님의 담벼락을 보지 않았다면 저 역시 까마득히 몰랐을 것입니다. 함께 갔던 어떤 형님은 또 언제 하냐 얼마전 물어오기에 내년에나 아마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하게 될 거라 답했더니 1년에 2번 하면 안되냐고 하더군요. 한 번도 힘들었을텐데 두 번이나 할 수 있겠냐고 웃어 대답했지만 일반대중에게도 홍보만 제대로 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소극장운동은 기존 공연계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관객과 대면하듯 가까이서 만난다는 것은 사실 서양연극에서도 파격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작해 전 유럽을 덮고 뉴욕까지 휩쓴 문화에서의 제2의 ‘프랑스혁명’입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백화점에 소극장을 만들지 않으면 백화점 흥행이 안 되는 공식이 성립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성공한 혁명이지요.
우리 ‘굿’이 소극장으로 들어온 것에 제 개인적으로 그 용기에 먼저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기존 ‘굿’에 저항하기위해 시작했다기 보다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모색으로 보지만 ‘소극장운동’처럼 성공하리라 감히 예언해봅니다.
이 혁명을 성공하기 위해 저는 극의 3요소를 다시 떠올립니다.
희곡,배우,관객.
희곡은 기획이라고 보아야겠지요. 또다른 말로 혁명본부입니다. 이번에 ‘굿연구소’에서 그 깃발을 세운 것 같습니다. 좀 더 견고한 조직으로 확대하고 매진하면 더 좋은 시나리오의 기획이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배우는 굿쟁이입니다. 너무나 출중한 배우들이기에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혁명전선에서 이탈하지 말기를 바랄뿐입니다. 문제는 관객입니다. 관객이 있어야 배우도 있고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굿쟁이전의 뒷풀이에서 맞았던 마흔아홉번째 제 생일. 정말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4년만에 만난 이성호 굿쟁이님. 향린교회풍물패의 원조 박영희 선배님 또한 잊을 수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아니 잊지 않고 이제부터 응원하겠습니다. 단지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관심 갖고 응원해 주는 것. 굿판이 벌어지면 온동네 소문내며 맨발로 쫓아가 어깨춤이라도 춰주는 것이 ‘관객 굿쟁이’의 몫이겠지요.
어두운 죽음의 시대로 다시 되돌아갑니다. 백성은 점점 숨소리를 죽여갑니다. 앞으로 더 몇 년을 숨막히게 죄어올 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의 2013년 대한민국입니다. 백성은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라도 들려오면 뛰쳐나갈 기세입니다. 백성은 숨어있는 관객입니다. 관객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굿쟁이전’이 이 시대의 진심의 소리를 울리면 백성은 움직입니다. 백성은 관객도 되고 굿쟁이도 됩니다. 사실 ‘관객’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모래알 같이 수많은 민중들은 ‘굿쟁이전’을 기다립니다.
사람 살기 팍팍해 굿판을 기다리는 백성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 걸판진 굿을 쳐주는 것이 ‘굿쟁이’의 소명이 아닐까요?
더 어두워질 2014년. 더 빛나는 ‘2014굿쟁이전’을 벌써부터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