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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처럼 지내야 하는 나라 中國(Zhongguo 중궈, China)
<長江(Changjiang)을 거슬러 오르면서 ⑤ ; 쓰촨(四川)
厚堂 고 광 창
쓰촨(四川 Sichuan)은 중국 남서부 山岳지역인데 이 지역을 흐르는 80개가 넘는 많은 江들 중 민강(‘岷江)’ 등 규모가 큰 네 개의 강이 있어 이곳을 쓰촨(四川)이라 한다고 한다.
쓰촨(四川)은 예로부터 풍부한 천연자원과 문화유산이 있어 이곳을 텐부지궈(天府之國-땅이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땅)라 불려 졌다고 한다. 쓰촨은 중국 남서부 최대의 省으로 동쪽은 촨시(川西)평원이 있는 農耕지역이고 서쪽의 티베트 고원과 울창한 숲은 창족과 티벳인들의 고향이다.
춘추 전국시대 촉나라 지방관 리빙(李冰)이 두장옌(都江堰 도강연)댐을 쌓아 흐름이 빠르고 물살이 사나운 민허(岷河)를 관개(灌漑 농사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어 줌)공사를 통하여 홍수를 예방하는 한편 이 지역을 풍요의 땅으로 만들었다. 이곳이 번영을 누리게 되자 중국 공산당이 선진적인 농업개혁을 처음 시도한 곳이 바로 여기다. 농작물 일부를 정부에 되판다는 조건으로 농부들에게 땅을 조금씩 임대했고 이것이 성공을 거두자 이를 전국에 확대했고 결국 농지개혁 경제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곳은 또 과거에는 많은 독립국가의 거점이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蜀나라 중심지이고, 삼국시대 때 隋나라가 독립적으로 왕조를 세운 곳이고 唐나라 때는 漢族의 주요 거점이었고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옮겨 가기 전 마지막 시기를 보낸 곳이다.
이곳은 요즘은 관광객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어메이(峨眉 아미)산, 쥬자이거우(九寨溝 구체구), 야딩(亞丁 아정)이 중국 10대 관광지이고 어메이(峨眉 아미)산, 러(樂)산, 쥬자이거우(九寨溝 구체구), 黃龍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일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또 주위의 산세가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곳은 좋은 茶가 많이 생산되는 茶의 고장으로 康定과 德格가 茶馬古道의 중국 측 교역의 중심지였는데 當時에는 ‘茶馬司’라는 관리를 두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 북부와 북서부 전역에 걸쳐 수천 마리의 자이언트 슝마오(熊猫 곰고양이, 판다)가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고 있어 정부에서 이곳을 ‘판다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5월에는 7.9의 대지진으로 2만 명 이상의 목숨을 잃는 참사를 겪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구호품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쓰촨성에서 답례로 ‘코로나19 의료품’을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의 4대 요리에 들어가는 쓰촨 요리는 香이 강하고 마라(麻辣 -얼얼하게 마비된 듯한 매운 맛)가 특징인데 대표적인 것은 샤브샤브인 ‘훠궈(火鍋 화고)’, 쓰촨식 바비큐인 ‘사오카오(燒烤 소고)’ 또 ‘마파터우푸(麻婆豆腐 마파두부)’등이 있다.
(1) 청두(成都 Chengdu 성도)
청두(成都 성도)는 三國志의 주 무대로 촉나라의 수도였고 漢族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지금은 두장옌(都江堰 도강연) 댐이 완공되어 홍수도 막아주고 물 관리를 잘 해주므로 그 아래 마을들은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두장옌(都江堰 도강연) 댐이 완공된 후 세워진 도시 청두(成都 성도)는 해발 500m에 위치한 쓰촨성의 省都인데 ‘成都’란 완벽한 首都’라는 뜻이란다.
시내 중심은 런민루(人民路)인데 그 광장에 마오쩌둥(毛澤東) 동상이 있고 행정 건물도 이곳에 모여 있다. 중심을 관통하는 대로는 런민루를 중심으로 베이(北), 중(中), 난(南)으로 구별되고 이환루(一環路), 얼환루(二環路), 산환루(三環路)의 순환도로가 시외곽을 감싸고 있어 찾기가 용이하다. 등산복 차람을 한 여행객이 많고 외국인도 상당수 ---
‘원수위안’(文殊院 문수원)은 唐나라 때 세워진 청두(成都)에서는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된 불교 사찰이다. 넓은 경내의 많은 건물이 절묘한 浮彫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참배객도 많았다. 사찰 정원에 많은 탁자를 갖춰 놓은 찻(茶)집이 있는데 청두(成都)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찻집이라고 한다. 야외 찻집인데도 앉아서 끼리끼리 차 마시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또 찻집 옆에는 菜食식당이 있는데 적당한 가격에 맛있다고 소문 나 있어서 우리 일행도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다. 청두에는 유난히 찻집이 많은 것 같다.
우호우쓰(武候祠)는 三國志에 나오는 제갈량의 祠堂인데 인근에 유비의 묘 혜릉과 유비, 관우, 장비가 義를 기린 장소인 산이미아오(三義廟)도 있어 관람객이 붐볐다. 중국에서 이곳을 4A급 관광구로 지정해 놓았다.
청두(成都)시에서 번화가는 춘시루(春熙路 춘희로)인데 베이징의 왕푸징(王府井)처럼 상업의 거리이고 고급품 쇼핑의 거리였다. 見物生心이라 사고픈 마음은 있으나 워낙 가격대가 높아서 눈요기로 만족하는 수밖에 --
다음에는 중국의 動物大使인 슝마오(熊猫 곰고양이 판다)를 보기 위해 판다 번식 연구 센터를 찾아갔다. 버스 노선도 없어 택시를 타고 갔는데 판다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판다가 잠을 자러 집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입장료가 10元인데 잠자는 동안에는 입장권을 팔지 않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 우리도 판다의 잠자는 시간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갔으니 잘못이지만 누가 이럴 줄 알았겠는가? 판다의 먹이는 댓잎이고 대의 종류도 여러 가지 인데 판다가 좋아하는 댓잎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리고 판다는 먹이를 먹으면 바로 잠자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판다는 개체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보호구역을 설정할 정도이니 사냥을 해서는 안 되고 몰래 사냥하는 사람을 발견 시에 신고를 하면 신고자에게 보상을 해 주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알고 온 것이 오늘 소득인 것 같다.
저녁에는 이곳의 오페라인 게쥬(歌劇 geju 가극)를 보러갔다. 200년의 전통을 가진 쓰촨 가극의 고향이 바로 청두(成都)라고 한다. 익살 극, 우렁찬 노래, 女裝 남자 춤, 곡예 등을 선보이는데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스차오스창’(靑石橋市場)은 청두 최대 매일 시장인데 정말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 어을 릴 정도로 파는 물건이 수 천 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市場이다. 市場은 또 웃음 띈 얼굴을 많이 볼 수 있은 곳이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물건을 사게 되면 만족감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의류 몇 점을 사가지고 왔는데 집 사람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옷감 소재에 접촉성 피부 질환을 일으키는 약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 얼마 전 방송되었다는 것이다. 모처럼 칭찬 좀 받아볼까 했는데 ---
(2) 두장옌(都江堰 Dujiangyan 도강연)
옛날부터 지도자들은 治山治水에 온 정성을 다해야 했다. 산과 내를 잘 관리해야 가뭄과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들은 가뭄이 들면 靈山에 올라가 祈雨祭를 지내기도 했다. 세계 4대 文明 發祥地도 모두 江가였고 지금도 세계 큰 도시들은 모두 江을 끼고 있다. 그런데 당시 쓰촨지역은 비가 오면 자주 범람했고 강이 마르면 가뭄이 오곤 했다고 한다.
‘두장옌(都江堰 도강연)’은 청두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곳에 있는데 기원전 3세기 촉나라 때 유명한 지방관이자 기술자인 ‘리빙(李冰)이 흐름이 빠른 岷河를 흐름이 느린 관개(灌漑)운하로 바꾸었다. 관개 시설은 빠르고 세찬 강의 힘을 나누고 산을 가로질러 수로를 건설하였다. 이렇게 해서 강력한 ’岷河‘는 순하게 길들여졌고 청두 평야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청두평야를 비옥한 옥토로 만들었다. 리빙(李冰)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이 지어졌고 ’리두이 궁위안‘의 푸릉관(伏龍觀 복룡관)에 자랑스런 업적을 기리는 사진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도
‘두장옌(都江堰 도강연)’은 ‘都(도읍)의 江 堰(둑)’이라 뜻이다. 옛날에 지은 地名인데 어쩌먼 이렇게 현실과 꼭 들어맞을까?
(3) 어메이산(峨眉山 Emeishan 아미산)
어메이산(峨眉山 해발 3,099m)은 청두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높은 산으로 중국 中世王朝 佛敎의 유명한 4대 聖山 중의 하나이고, 중국 10대 名山 중의 하나이며 1996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지구’로 선정된 곳이다. 어메이(峨眉 아미)는 ‘높게 뜬 구름에 있는 눈썹’ 처럼 예쁘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境內가 워낙 넓고 볼거리가 많아 모두 다 보려면 3일 정도 걸린다고 하고 경내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호텔 식당 등이 많이 있다고 한다.
먼저 万年寺(1,020m)에 가서 구리와 청동으로 만든 높이 8.5m, 무게 62,000kg인 커다란 보현보살의 동상을 보았다. 이 절은 어메이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데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에게 바쳐진 절로서 1945년 절에 불이 났을 때에도 손상되지 않은 유일한 절이라고 한다. 보현스님이 코끼리 목욕을 시켜주었다는 연못 시상츠(洗象池)를 지나 진딩쓰(金頂寺)로 향했다.
진딩쓰(金頂寺 해발 3,077m)가는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관광사진사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진딩쓰(金頂寺)가는 길 안내판이 케이블카 타는 곳 옆에 있는데 중국어, 영어, 일어, 한국어로 되어 있어서 내가 사진사에게 우리 한글을 가리키면서 우리나라 글 ‘한국어’ 라고 말하니까 사진사 얼굴색이 금새 변하면서 한국어가 아니고 우리 중국 ‘조선족 어’(차오센주 위)라고 한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 한국어로 썼다는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내가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었으면 55개 소수민족 중 왜 조선족어로만 안내판을 썼겠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는 수밖에 --
잠시 후 金頂寺에 올라 갔다. 청동이 입혀진 지붕 때문에 金頂(금색 꼭대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흰 대리석 난간으로 둘러싸인 이 절은 면적이 1,695㎢로 매우 넓었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와 있는데 안개가 잔뜩 끼어 옆 사람 얼굴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다음은 모노레일(왕복 요금 50元)을 타고 완포딩(万佛頂 해발 3,099m)에 올랐다. 여기가 어메이산의 정상이다. 오랜만에 모노레일을 타보니 어린애처럼 즐겁기만 하다. 아래쪽을 보고 싶었지만 안개가 심술을 부린다.
(4) 러산(樂山 Leshan 낙산)
러산(樂山 Leshan)은 어메이산에서 35㎞ 거리인데 버스로 1시간 걸렸다. 다포(大佛 대불)는 다두허(大渡河)와 민허(岷河)가 합류하는 곳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새겨졌는데 大佛은 키 71m, 어깨 넓이 28m, 발가락 크기 8.5m 로 크기가 엄청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다포(大佛)는 山의 암벽을 통째로 깎아 磨崖石佛을 만들었으니 ‘佛像이 하나의 山이요 산이 하나의 佛像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大佛 아래에는 두 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여울이 있었는데 급류 때문에 뱃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한다. AD 713년 하이통(海通 해통)이란 승려가 급류를 완화시키기 위해 다포(大佛) 공사를 시작했는데 완공까지 90년이나 걸렸다 한다. 하이통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다포(大佛)를 조각할 때 나온 바위 조각으로 여울을 채워 넣으니 좋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佛心?의 영향이라고 해야 할까?
배를 타고 하천을 오르내리면서 여러 각도에서 대불을 관찰하면서 다포(大佛) 全身을 사진 찍을 수 있고 다포(大佛) 옆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손 발 등 신체 부위를 크게 사진 찍을 수 있다. ‘樂’은 즐긴다는 뜻이므로 山 주위 絶境을 보면서 각자 즐겨야 할 것 같다.
(5) 캉딩(康定 Kangding 강정)
청두(成都) 신 난먼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 일찍 캉딩(康定 강정)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7~8시간 후에 도착한다. 캉딩(康定 해발 2,560m)은 쓰촨 서부지역의 입구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장엄한 궁가산(貢暇山 7,556m)이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서부지역으로 가려면 일정상 이곳에서 하루 밤 묵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시가지는 물살이 빠른 가파른 계곡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공기도 산뜻하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캉딩’은 수세기 동안 중국 문화와 티벳 문화의 거래 즉 茶馬古道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티벳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내가 티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康定’이란 地名을 보면 이곳은 ‘평안하고 즐거움이 정해진 곳’인가 보다. 깨끗한 물이 시원스럽게 흐르는 ‘지뤄강’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을이 형성되어있어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만 온천은 북쪽으로 5㎞ 쯤 가면 약간 달걀 냄새가 나는 따뜻한 유황 온천(입장료 10元)에서 30분 정도 온천욕을 할 수 있다.
식사는 뷔페, 훠궈 등 메뉴가 다양한데 저녁이면 북쪽에 쓰촨 포장마차촌이 들어서는데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일은 ‘리탕(理塘 리당)’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6) 리탕(理塘 Litang, 해발 4,680m)
캉딩(康定)에서 쏸짱고속도로를 타고 리탕(理塘)으로 가는데 가는 도중 구름 안개에 둘러 싸인 궁가산(貢暇山 7,556m)이 보인다. 이처럼 높은 산을 가까이에서 대하고 보니 무척 장엄하게 보였다. 언제 또 다시 이렇게 높은 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
우리 차는 20인승 버스인데 5,000m가 넘는 산마루에서 차가 잠깐 쉬어간다. 차도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데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보기는 처음이다, 내려서 앞을 보니 겹겹이 연이어 있는 높은 산들이 흰 구름에 휩싸여 봉우리만 보인다. 산들도 추워서 흰 이불을 덥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야호! 하고 한 번 외쳐본다. 발밑을 보니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위로는 자라지 않고 땅에 누워 있고 이름 모를 잡초들도 잔디처럼 땅에 딱 붙어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나무나 풀이 자라는 걸 보니 식물의 생명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차가 천천히 내려갈 때 혹시 양(야크)떼나 목동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잔뜩 했는데 안개구름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보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캉딩을 떠난 버스는 7시간이 지나 ‘리탕(理塘)’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두통이 오고 머리에 열이 나고 토할 것 같은 高山症勢가 느껴졌다. 호텔에서 마중 나온 직원이 내 얼굴색이 하얗게 된 걸 보고 얼른 내 가방을 챙겨들고 나를 부축한다. 高山症을 처음 느껴보니까 어떻게 해야 좋은지 모르겠는데 경험이 많은 ‘리더’친구가 약국에 가서 약을 사다주어서 먹었지만 증세는 가라앉지 않는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시내 구경도 못했다. ‘리더’친구가 이런 증세는 내일 우리가 낮은 곳으로 가면 바로 없어지니까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준다. 하지만 여기서 고산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내 여행계획은 물거품이 되는데 걱정 안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 네 명은 비행기표를 단체로 끊었기 때문에 네 명이 한 몸처럼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시내 구경을 하고 온 일행 말을 들으니 이곳도 티벳인들이 많다고 하니 티벳인들 자치구인 모양이다.
‘理塘’(제방을 다스리다)이란 지명을 보면 여기에 호수나 저수지가 있는 모양인데 -- 이곳 理塘에서 상청(鄕城 향성)을 지나 雲南 중덴(中甸 중전)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길이 험난해서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7) 다오청(稻城 Daocheng 도성, 해발 3,700m)
내가 高山症에 시달리고 있으니 나를 위해서 보다 낮은 지역인 다오청(稻城)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버스를 타고 가니 차창에 푸른 나무 풀은 사라지고 바위가 무수히 솟구쳐있는 산이 나타난다. 버스 기사 말이 여기가 ‘하이즈’(海子) 풍경구라고 하는데 여기 바위산 사이에 크고 작은 호수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理塘이란 지명이 생겼구나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리막길을 1시간 30분 달려서 다오청(稻城 도성)에 도착했다.
리탕보다 1,000m가 낮은 지역이라 고산증이 거의 사라져 이제 살 것 같았다. 여기는 야딩(亞丁 아정) 여행의 베이스캠프라 불리는 지역으로 등산복 차림의 여행자가 눈에 띄게 많았고 눈에 보이는 건물 양식으로 보아 티벳 장족(藏族)이 많이 사는 마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행정구역상 쓰촨이지 티벳 장족 자치주(인구 96%가 장족)라 티벳과 다름없다고 한다. 다오청(稻城)’에 오는 여행객 대부분은 야딩에 가기 위해 오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야딩은 고원지역이라 야딩 가기 전 여기서 1~2일 동안 적응을 해야 한단다.
장족이 운영하는 호텔에 숙소를 정했는데 방안에 파리가 무척 많아서 종업원을 불러 fly(영어), yingzi(중국어)하면서 파리 날아가는 시늉을 해 보였으나 고개만 갸웃거린다. 할 수 없이 파리를 가리키면서 파리채로 잡는 시늉을 해 보였더니 종업원 아가씨가 신문을 들고 와서 이 신문으로 파리를 쫒아 내라고 한다. 殺生을 금지하는 티벳 불교의 가르침인 것 같았다.
호텔 종업원이 호텔 앞쪽 길 건너에 온천수가 있으니 온천욕을 하라고 권한다. 가서 보니 가정집도 아닌 露天에서 온천수가 콸콸 솟아나오고 있는데 온천욕을 할 수 있도록 가림막을 해 놓았다. 우리 일행 모두 가서 온천욕을 했다. 흘러가는 온천수가 무척 아까웠다. 저녁 식사 후 옥상에 나가서 보니 오염되지 않은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이 떠있다. 아! 참 좋다. 이 고장 사람들은 여기가 진짜 샹거릴라(香格理拉)라고 한단다. 낮은 지역이라 벼농사가 가능해서 지명을 ‘다오청(稻城)’이라 한 것 같았다.
(8) 야딩(亞丁 Yading 아정) 자연보호지역
야딩(亞丁) 볼거리의 핵심은 萬年雪山인 센나이르(仙乃日 선내일, 6,032m) 설산을 비롯한 3좌의 설산이다. 티벳인들은 이 산에 神의 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이곳을 聖地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다오청에서 야딩(亞丁)가는 버스가 없다. 청정지역이라 공해 방지 차원에서 버스가 없기 때문에 숙소에서 알선 해 준 택시를 타고 야딩 입구인 용동패(龍同壩)까지 갔다.
용동패(龍同壩)에서는 마부가 이끄는 말(馬)을 타고 충고사(冲古寺)까지 1시간 이상 가는데 도중에 原始林이 볼만했다. 가는 도중 길가의 야생화 색깔이 무척 고왔다. 이곳 야생화는 공해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가니 이곳이 야생화의 천국처럼 보였다. 말(馬)은 여행객 집단촌이 있는 천막 앞에서 멈춰섰다. 이 집단촌은 이곳이 자연보호지역이라 정식으로 건축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천막으로 만든 임시 공동 주거 공간이다. 전기 시설도 되어있지 않아 전깃불도 없고 난방도 안 되어 있다. 한 천막에 20명 정도가 들어가는데 밤이 되면 개인용 침낭을 주면서 거기 들어가 자라고 하는데 해발 4,000m정도 되는 고원지대라 여름철이지만 밤이 되면 어떻게나 추운지 겨울 내복을 입어도 아래턱이 떨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두 사람이 서로 부등켜안고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도 숙박비는 두 끼 식사비 포함하여 500元이나 받는다. 이튿날 아침 내가 왜 이렇게 추운 곳에서 자야만 하는가 하고 불평조로 물어보니 리더 친구가 하는 말 ‘이곳이 샹그릴라 아니냐! 이곳에서 하루 밤 자는 거 영원히 못 잊을 것이야‘하는 게 아닌가. 할 말이 없어 웃기만 했다.
아침을 먹은 후 나는 발목상태가 안 좋아 걷기가 힘드니까 천막에 남아 있다가 말을 타고 용동패로 바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천막 뒤쪽에 있는 티벳 불교 사원인 충고사(冲古寺)를 보고 거기서 말을 타고 낙융목장과 우유해(牛乳海)를 거쳐 야딩 입구인 용동패로 와서 함께 만나기로 했다. 내가 용동패 도착하고 40분 후에 일행과 만났다.
다오청에 돌아와 밤에 일행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말을 타고 갔지만 비탈길이 너무 험해서 말(馬)도 힘들어 했지만 말을 탄 사람도 힘들고 목이 마려서 우유해에서 물을 먹으려고 하니 그곳 주민이 멀리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못 먹게 했다고 한다. 이곳 티벳인들은 이 연못이 神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聖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을 마시려고 집 부근으로 가니 조금 전 호수 물을 못 마시게 소리소리 질렀던 여자가 야크 젖을 이용해 만든 음료를 주더라고 한다. 이 여자는 티벳족인데 一妻多夫制라 여자가 혼자 집에서 살림을 하고 남자들(2~3명)은 야크를 몰고 풀밭을 찾아다닌다고 했단다. 티벳족 중에는 一夫多妻制인 종족도 있다.
요즘 야딩(亞丁)을 다녀 온 사람 말에 의하면 지금은 임시 공동 주거지였던 천막을 모두 없애고 말도 없애고 용동패에서 걸어서 충고사까지 트레킹으로 다녀온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들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를 가보기 위해서 중국 여행사에 ’샹그릴라’가 어디냐고 물어 본다고 한다. 윈난(雲南)에서는 ‘샹그릴라‘는 윈난 ’중덴(中甸 더친德欽)이라고 하고 쓰촨에서는 ’샹그릴라‘는 ’야딩‘이라고 말싸움을 해 왔다. ’잃어버린 지평선‘의 저자 제임스 힐튼이 사진 두 장을 주면서 내가 쓴 소설의 배경은 여기였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사진 두 장중, 한 장은 윈난(雲南)省 중덴(中甸 더친德欽)부근이고 나머지 한 장은 쓰촨(四川)省 理塘의 야딩(亞丁)부근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 윈난(雲南)省 중덴(中甸 더친德欽)부근을 샹그릴라로 정해 버린 것이다. 최근에 발간된 중국 지도에는 윈난(雲南)省 중덴(中甸)이라는 도시가 ’香格里拉市‘로 지명이 바뀌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윈난(雲南)省 중덴(中甸 더친德欽)에는 관광객이 많은 반면 쓰촨(四川)省 理塘의 야딩(亞丁)부근에는 외국 관광객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에 쓰촨에서는 최근에 ’亞丁‘이라는 地名을 아예 ’香格里拉鎭‘이라고 고쳐 부르기로 했다고 하니 ’샹그릴라‘전쟁이 漸入佳境이다. 내가 中國 지도를 펴 놓고 보니 윈난성 중덴(中甸)과 쓰촨(四川)省 야딩(亞丁)은 가운데 山이 가로 막고 있을 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내 생각은 정부에서 두 곳 모두 ‘잃어버린 地平線’의 무대라고 말하고 두 지역 간 도로를 확포장하면 관광객이 두 곳을 모두 관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윈난성은 서북쪽에 출입문이 생기고 쓰촨성은 남서쪽에 출입문이 생겨 두 지역간 교류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두 省 모두 서쪽 지역 개발이 뒤떨어져 있으니까 --
이것이 내가 이곳 관광을 마치고 떠나면서 중국 정부에 주는 작은 선물이다.
(9) 쑹판(宋潘 Songpan 송반)
‘쥬자이거우(九寨溝)’ 가는 길목에 있는 쑹판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쑹판(宋潘) 은 계곡 속에 있는 아주 예쁜 도시였다. 이곳은 말(馬) 트레이킹 하기에 적합한 장소이고 티벳족 자치주다. 티벳족 물건 특히 야크 가죽(革)이 싸다고 소문난 곳이다.
쑹판 외곽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에메랄드 초록빛 호수가 있는데 이 곳에서 말 트레이킹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은 숲길을 서서이 걸으면서 깨끗한 공기도 마시고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휴양하기엔 참 좋은 곳이다. 여기는 시골이라 수도와 전기 시설이 좋지 않다고 해서 숙소는 가장 고급인 타이양 다쥬댄(太陽大酒店)으로 정했고 식사는 무슬림 식당에서 위샹체즈(魚香茄子 생선 맛이 나는 가지 요리)를 먹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평상에 앉아 있는데 마이크를 단 차가 사이렌 소릴 내면서 다가오니 시민들이 구경하러 몰려나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산에서 ‘冬虫夏草’을 캐다가 싸움이 나서 다른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사형시키는데 죽이기 전에 얼굴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宋潘’은 ‘소나무 뜨물’이란 뜻인데 이곳에 소나무가 많아 ‘冬虫夏草’도 많았던 모양이다. 1톤 쯤 되는 차에 사형수를 싣고 왔다. 몸은 차에 묶어 놓고 눈도 가렸다. 40세 쯤 되 보이는 남자다. 이곳에서는 남을 죽인 자는 너도 죽어보라고 바로 사형에 처하는 모양이다. 끔직한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신문에서 중국에서 마약 밀수업자를 사형에 처했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사형 제도를 없애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인데 --
(10) 황룽(黃龍 Huanglong 황룡)
황룽(黃龍)은 쥬자이거우(九寨溝)의 남쪽 100㎞ 지점, 해발 3,800m의 고산 협곡 습지다. 케이블카를 타고 2㎞ 정도를 오르면 五彩池에 도착한다. 지질 구성이 석회암으로 된 카르스트 지형인데 연못 밑의 광물 성질에 따라 연못 물빛이 다른 색깔을 보인다고 하는데 크고 작은 연못 3,400여 개가 계단식으로 이어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그 아름다움을 나는 ‘야! 참 아름답다!‘ 는 말 외에 다른 말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 연못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엎드려 있는 누런 龍을 닮았다고 해서 ‘黃龍’이라 한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 상상력은 무척 뛰어나다. 龍이 상상의 동물인데 그 龍이 엎드려 누워있다는 것까지 상상했으니 --- 黃龍의 四絶은 萬年雪山, 그림 같은 峽谷, 울창한 原始林, 다양한 빛깔의 연못이라고 한다.
五彩池 아래에는 티벳 불교(라마교) 사찰로 明代에 건축한 黃龍寺가 있는데 요즘은 이 절의 내부가 중국의 민족 종교인 道敎사원으로 변해 있었다. 여러 소수 민족의 문명을 ‘하나의 중국 문명’으로 통일하려는 노력이라고 보여 진다.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 黃金색이고 또 가장 좋아하는 이상적인 동물이 龍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왕이나 황제가 입는 黃金색 옷에 龍을 그리고 龍袍라고 한다. 그러므로 黃龍이란 즉 황제를 가리킨다. 이곳이 그만큼 중요한 곳이란 뜻이리라. 중국 국립공원이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UN이 정한 생물보호구다. 폭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큰 것 2개 정도만 보고 왔다.
(11) 쥬자이거우(九寨溝 Jiuzhaigou 구체구)
黃龍에서 1시간 쯤 가면 쥬자이거우(九寨溝 구체구)에 도착한다.
쥬자이거우(九寨溝)는 해발 2,000~3,000m 고산지대에 있는데 ‘쥬자이거우’란 티베트어로 ‘9개 藏族마을’이라는 뜻이다. 장족(藏族)은 원래 티벳에 살았는데 ‘라마교’ 종파분리로 쫒겨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윈난省은 남쪽이 소수민족 밀집 지역이었는데 이곳 쓰촨省 九寨溝는 티벳 아바짱족•창족(阿壩藏族•羌族)자치주이고, 중국 10대 관광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세계생물보호구, 중국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580㎢ 지역에 원시삼림, 만년설산, 108개의 호수, 12개의 폭포가 어우러져 무척 아름답다. 중국인들이 평생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지 1위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 빛’, ‘지상의 天堂‘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곳이다. 9개의 溝중에 수정구(樹正溝), 칙사와구(則査窪溝), 일칙구(日則溝) 등 3개의 溝만 개발되어있다. 이곳 地名은 장족들이 자기들 장족어로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셔틀버스가 있어 주요 관광 포인트 마다 멈추었다 가기 때문에 참 편리했다.
먼저 樹正溝다 공원 입구에서 좌측으로 오면 樹正 瀑布가 있는데 거울 같은 호수인 樹正池에서 새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공원 입구에서 14.5㎞ 지점인 樹正溝의 끝에는 눠르랑(落日郞)폭포가 있는데 폭이 300m, 낙차 20m로 시원한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다음 칙사와구(則査窪溝)다.
눠르랑(落日郞)폭포에서 반듯이 계속 가면 여기에서 가장 크고 높은 곳에 위치한 창하이(長海 장해)가 나타난다. 해발 3,060m, 폭 400m, 수심 40m인데 만년설산에서 눈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가뭄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보물 표주박’이라 한단다. 안내 표지판이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증거다. 식당 메뉴판에 한글로 ‘비빕밥’이란 쓴 식당도 있고 ‘오리온 초코파일’이란 쓴 홍보판도 보인다. 중국 명승지는 가는 곳마다 우리 한글이 公用語가 되어있어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조금 내려오면 오채지(五彩池)가 있다. 한 湖水에서 5가지 영롱한 색이 뿜어져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2,995m에, 폭 56m, 길이 66m, 면적 5.6㎡인 조그만 연못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안내 표지판에 중국어, 영어, 일본어와 함께 우리 한글도 씌여있다. 표지판 옆에 있는 측백나무는 한쪽 가지가 없다. 그래서 외팔노인 측백나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부근에 티벳족 마을이 있다. 호화스럽게 치장한 건물에 깃발이 여러 개 나부끼고 있다. 깃발이 있는 집은 야크나 들소의 살생(殺生)이 허용된 티벳 장족집이라는 표시고 깃발이 없는 집은 살생이 허용되지 회족(回族)집이라고 한다. 여기에 숙박업소와 식당들이 있음으로 굳이 정문 밖에 있는 숙박업소를 찾아갈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곳 숙박업소는 방안 장식을 티벳인들 방과 똑같이 예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티벳인들 생활상도 살펴볼 수 있어 1석 2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칙구(日則溝)다.
호수 물빛이 가장 다채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原始森林은 아닌 것 같은데 하여튼 빽빽한 나무들이 심어진 숲 사이를 지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이곳은 전죽해(箭竹海)에서 진주탄(珍珠灘)폭포 사이가 최고 하이라이트인 것 같았다. 웅묘해(熊猫海 슝마오하이)는 투명한 호수 안에 석회화된 고목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곳이 판다 서식지라서 ‘판다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오화해(五花海)는 가장 화려한 물빛을 자랑하는 곳이다. 다섯 가지 꽃이 피었다는 뜻으로 五花海라 불리 운다고 한다. 진주탄(珍珠灘)폭포는 진주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인데 새하얀 진주가 물방울이 되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진주처럼 아름답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정말 진주처럼 예뻤다. 탄산칼슘이 함유된 물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호수마다 다른 기기묘묘한 형형색색의 물빛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기기묘묘한 물빛 감상하느라 정신이 쭉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중국은 땅도 크지만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너무 부러웠다.
九寨溝의 9개의 溝중 3溝만 개방했다고 하니 나머지 6溝는 언제 쯤 개방하고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중국인들이 우스개 소리로 平生해도 다 못하는 것이 3가지 있다는데
첫째는 여행이다. 땅이 워낙 넓고 명승지와 유적지가 많아서 다 볼 수가 없단다.
둘째는 음식 먹기다. 음식 종류가 너무 많아서 다 먹어볼 수가 없단다.
셋째는 글자 배우기다. 漢字가 너무 어렵고 글자 수가 많아서 다 배우지 못한단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수밖에 -- ㅎㅎㅎㅎ
쥬자이거우(九寨溝)에서 청두(成都)로 와서 청두에서 하루 밤 자고 그 다음 날 윈난(雲南) 쿤밍(昆明)으로 돌아 왔다.
드디어 오늘 上海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茶商店에 갔다. 우리가 주문한대로 茶보타리를 포장해 놓았다고 하면서 예매해 놓은 上海 기차표도 건네준다. 우리는 지난번에도 이곳 사장님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큰 도움을 받고 간다. 자기 승용차로 우리를 태우고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 속까지 들어와 짐을 넣어주고 간다. 깐시에(感謝)! 깐시에(感謝)! 를 여러 번 해 주었다.
우리가 탄 기차는 터콰이(特快 Tekuai 특쾌, 우리나라 KTX)로 가장 빠른 寢臺車인데 쿤밍(昆明)에서 上海까지 46시간 걸린다. 한쪽에 침대가 3층까지 있고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6인실이었다. 표 값이 층마다 달랐다. 1층은 가장 비싸고 3층은 가장 저렴했다. 우리 맞은편에는 30대 중반의 중국여자가 애들 2명을 데리고 탔다. 이틀 동안이나 같은 차속에서 마주보고 가야 하는데 말없이 갈 수도 없어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 인사를 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지앤다오 닌 헌 까오싱! 워먼스 한궈런) 그랬더니 ‘그렇습니까 우리도 반갑습니다’(스더, 워예 헌 까오싱!)한다. 말문이 터지니까 자기애들한테 우리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킨다. 예의도 바르고 자녀교육도 잘 시키는 여자처럼 보여서 친근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쪽에서 영어 할 줄 아십니까? 하고 우리에게 물어 온다.‘Can you speak English?’ ‘Yes, I can’ 했더니 이제부터는 줄곧 영어로만 물어 오는데 발음도 좋았다. 어디를 다녀왔느냐? 느낌이 어떠했느냐? ‘왜 동부인하지 않았느냐? 등등
자기는 쿤밍에 사는데 上海 친척집에 행사가 있어 가는 중이라고 했다. 과일 등 먹거리를 나눠먹으면서 서먹서먹한 기분이 사라지자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남편이 黨간부요원이냐?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중국에서 漢族은 1가정 1자녀 아니냐? 그런데 왜 애들을 2명이나 낳았느냐? 고 물으니 겸연쩍게 웃으면서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한다.
漢族은 1가정 1명 이상은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고(지금은 2명까지 허용)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학교도 갈 수 없고 외국 여행도 갈 수 없으니 소수민족 자손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루한 줄 모르고 샹하이에 왔다. 차속에서 귀중한 시간 2일을 보냈다.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옛날 묵었던 숙소에 돌아오니 주인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목욕물까지 욕조에 담아 놓았다. 이렇게 까지 신경을 써주니 숙박업이 잘 되는 것 같다.
이튿날 푸동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타자마자 융지청지! (用計程機 미터기 사용해 주세요)했는데 못들은 척 하고 운전만 한다. 공항에 내려서 문제가 생겼다. 올 때는 택시비를 140元을 준 것 같은데 오늘 택시 기사는 300元을 달라고 한다. 올 때 보다 두 배 이상을 요구 한다. 올 때 140元 주었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공항에 근무하는 경찰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경찰이 운전사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는데 두 사람 이야기가 길다. 기사가 자기주장만 하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경찰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우리가 탑승했던 지점을 정확히 말하고 미터기를 사용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이 다시 가서 기사를 설득하니까 그때서야 기사가 못 이기는 척하고 140元을 달라고 한다. 즐거운 여행이었는데 마지막에 언짢은 일이 생긴 것이다. 택시 기사 때문에 중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우리에게 생길 뻔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 無脫하게 다녀왔으니 가족은 물론 모든 분 들게 감사해야지 --
長江유역을 두 달 동안이나 돌아보았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만족을 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좀 아쉬운 듯할 때 그만두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滿足이란 ‘발(足)’에 물이 차면된다. 그 이상 바라서는 안 된다 는 뜻이란다.
나는 여행은 ‘현장 체험학습’이라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 이번 여행을 통해서 느낀 점은 여행을 하려면 사전에 해당 지역의 거리와 교통 정보는 물론 그 지역 歷史까지도 알고 가야 하겠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특히 자유여행일 경우 ---
중국에 오기 전에 중국어 공부를 좀 해두었지만 외래어라 잘 사용하지 않으니까 점점 잊혀지고 있다. 어느 나라를 가나 地名이나 人名 등은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써주어야 한다. 쓰촨(四川)을 사천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마오쪄둥‘을 毛澤東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또 中國語는 글자는 漢字로 표시하지만 발음은 영어 알파벳을 응용한다. 그리고 발음은 音의 長短과 高低를 구분해서 4가지 聲調로 나타낸다. 우리는 光州와 廣州를 똑 같이 발음하므로 구별이 안 되는데 중국어에서는 光州는 ’광저우‘라고 발음하고 廣州는 ’구앙저우‘라고 발음하므로 두 도시가 구별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배우기 어렵게 느껴지지만 배우려면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중국어 공부를 더해야겠다는 것을 느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 地名을 보고 우리나라나 중국 先人들의 先見之明이 대단함도 다시 느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일행 중 한 친구가 자기 부인에게 ‘쥬자이거우(九寨溝)’경치 자랑을 했던가 보다. 또 다른 친구 부인하고 우리 집 사람하고 셋이서 우리 안 식구들도 九寨溝 구경 한 번 시켜달라고 한다. 우리 집 사람 말이 ‘당신이 中國 여행 많이 다녔으니 앞장서고 세 쌍 부부가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 동안 나 혼자만 다녔기 때문에 아내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하자고 하고 내가 앞장서서 航空券도 예약하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내 아내가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 못 가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당신은 함께 다녀오라고 한다. 내가 안가면 이 여행 취소해야 함으로 --- 이럴 때 進退兩難이라 하는가 보다.
결국 두 친구 부부동반 여행을 내가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된 셈이 되었다. 나로서는 두 번째 九寨溝 여행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항공편으로 떠났다. 仁川空港을 출발한지 3시간 정도 지나서 청두(成都)空港에 도착했다. 청두(成都)에서 황룽(黃龍)까지는 460㎞로 버스로는 10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비행기로는 40분 걸렸다.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 본 黃龍 주변 산은 풀, 나무는 거의 없고 하얀 석회암으로 된 산들이 겹겹이 어깨 동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쥬황공항(九黃空港 - 구채구와 황룡 부근의 국내공항)에 내렸다. 공항이 해발 3,500m에 있다고 하니 높은 산꼭대기에 비행장이 있는 셈이다. 공항에서 2일간 봉고차를 대절했다. 황룽(黃龍)과 쥬자이거우(九寨溝)를 구경하고 돌아오려면 2일간이 필요하고 인원이 5명이라 택시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황룽(黃龍)까지 가는데 산을 몇 차례 오르내렸는데 굽은 도로가 많아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차가 내리막길에서 브리이크를 많이 밟은 탓인지 오는 도중 2~3차례 타이어에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공항을 떠난 지 1시간 30분 만에 황룽(黃龍)에 도착했는데 우리 일행 중 고산증으로 멀미하는 사람이 없어 무척 다행스러웠다.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황룽(黃龍)에서 五彩池를 보고 야!하는 탄성이 이어졌다. 나는 두 번째 보지만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황룽 관광을 마치고 바로 쥬자이거우(九寨溝)로 향했다. 쥬자이거우(九寨溝)도 두 번째 오는 곳이라 안내하는 데는 큰 어려움 없었다.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물 빛깔을 보고 탄성이 오갔고 폭포(특히 진주탄 폭포)를 볼 때는 박수 소리도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관광을 예정대로 무사히 마쳐가고 있었는데 잠을 자고나니 문제가 생겼다. 관광을 마쳤으니 쥬황(九黃)공항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어야 할 봉고차 기사가 갑자기 자기 대신 다른 기사 2명(택시 2대)을 보내와 당황했고, 구황공항에서 기사의 안내로 티벳족 식당을 갔는데 메뉴판이 티벳어로 되어 내가 읽을 수가 없어 음식을 주문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또 청두(成都)공항에서 仁川으로 오는 비행기가 예정된 시간보다 40여 분 늦게 오는 바람에 몇 차례 사무실을 오가기도 해야 했다. 결국 인천 공항을 통해 무사히 광주까지 도착했지만---.
無脫하게 다녀온 것에 대해서 하느님, 천주님, 부처님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렸다. 내 생애에 처음이고 마지막이 될 해외 자유여행 안내는 이렇게 해서 마무리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3박 4일 동안 案內者의 책임 때문에 한 시도 마음 편할 때가 없었다. 우리 자유여행 때 안내 역할을 해 주었던 친구가 참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안내자 겸 리더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느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매끄럽게 안내를 못해주어서 미안한데 두 친구 부부가 참 즐거웠다고,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인사를 해주니 좀 멋쩍었지만 사실 ‘패키지여행’에 비하면 정말 편안하고 자유스럽고 여행경비도 훨씬 저렴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 같다.
다음에 長江유역에 다시 왔을 때는 이번에 보았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
이번 여행은 ‘中國地圖’와 한국어판 ‘中國’이라는 Guide book이 네비게이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어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다음에는 ‘중국 文明의 어머니 江’ 이라 불리 우는 黃河를 下流에서 上流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江주변에서 보았던 風光과 落穗를 적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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