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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162-
마블리 Gabriel Bonnot de Mably 1709-178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2.(P.304).
프랑스 철학자, 역사학자.
바블리는 1709년 론 알프(Rhône-Alpes)지방의 이제르(Isère 38)주의 그르노불(Grenoble)에서 태어나서, 1785년(76살)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감각론자인] 꽁디약(Etienne Bonnot de Condillac, 1715-1780)의 형이다. 그는 조약에 기초한 유럽 공법(Le droit public de l'Europe fondé sur les traités conclus jusqu'en l'année 1740, 1746), 프랑스 역사에 과한 관찰(Observations sur l'histoire de France, 1765)(4권) 등을 썼다. 그는 공동체 사회주의의 선구자이다. 도덕론자의 영감을 가득 지닌 그는 생산의 축소와 욕구의 축소를 권했다. (43ULD)
마키아벨리(Nicola Machiavel, it Niccolo Machiavelli, 1469-1527)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2.(P.304).
이탈리아에서 주요직을 맡은 정치가, 작가, 정치이론가이다.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Toscane) 지방의 피렌체(Firenze, Florence)에서 태어나, 1527년(58살)에 같은 곳에서 죽었다.
마키아벨리는 재산이 거의 없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의 30살에는[1498] 피렌체의 행정 제2서기관직에 올랐다. 그 후 1512년까지 수많은 외교적 임무들을 수행했는데, 그 중에 세자르 보르지아(César Borgia, dit Le Valentinois, it. Il Valentino, 1475-1507)가 지배하던 교황청에서, 루이 12세(Louis XII, 1462-1515, 재위 1498-1515)가 통치하던 프랑스 궁정에서, 막시밀리안 1세(Maximilien 1er 1459-1519)가 통치하던 신성제국 궁정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이 임무들로 그는 궁정의 풍습들과 정부관료들의 정책 실행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이로서 그는 정치사상을 조금씩 형성하게 되었다. 그의 기본 작품으로 군주론(Le Prince, 1513; Il Principe)에서 그는 세자르 보르지아(César Borgia, it. Il Valentino, 1475-1507)를 명철하고 의지적이며 조심성 없는 지도자의 모델로서, 또한 자기의 계획에 요청되는 수단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 계획에 과감하게 실현하는 모델로서 묘사한다. 마키아벨리의 이 문헌은 사람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혼동을 겪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냉혹한 영웅, 세자르 보르지아와 동일시하고,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에게 생바르테르미 학살(Saint-Barthélemy 1572)을 조언하기에 이르렀다고 그를 고발하기도 한다. - 이 후자로부터 마키아벨리즘(권모술수주의)이란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사실상 그는 악마의 하인(le majordome du diable)이기는커녕, 무엇보다 그의 조국의 안전을, 공화정이든 아니든 간에, 근심했었다. 그에게 있어서 최고 법은 국가 이성(raison d'Etat)의 법이다. 1513-1519에 쓰여진 작품 티투스 시대 초기의 10년에 관한 서설(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3권); Discours sur la première décade de Tite-Live, 사후 출판 1531)에서 그는 공화정이며 민주정인 정부를 선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의 일반 이론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위정자의 이중성을 찬양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시대의 위정자들의 정치적 풍습[도덕관]들을 매우 가까이에서 묘사했다던 관찰자이며 작가이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 발디치아나의 인민들 봉기를 다루는 방식(Del modo di trattare i popoli della Valdichiana ribellati, 1502; De la manière de traiter les populations revoltées du Val de Chiana), 독일 사정에 관한 보고서(Ritratti delle cose dell'Alemagna 1508 출판 1532; Rapports sur les choses de L'Allemagne), 피렌체의 역사(Istorie fiorentine, 8권, 1521-1525; Histoire de Florence) 등도 있다. 그리고 편지와 문학적 작품들도 있다.
[희곡 만드라골라(Mandragola 1513; La Mandragore, 전쟁론(Dell'arte della guerra, 1519-1520; L'Art de la guerre)도 첨가할 수 있다] (43ULD)
(그림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3.(P.304).
* 마키아벨리, 국가 이성의 이론가. 티토(Santi di Tito 1536-1603)의 마키아벨리 「초상화」(16세기 후반, 팔라찌오 베찌히오 소장, 플로랑스) [16세기 후반에 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44MKB)
기계주의 (le) machi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2-163.(P.304).
기계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계주의는 인간의 수작업 대신에 기계로 대체하면서, 노동분업을 조직화하고 또 노동자의 실행방식을 규범화 하는 것이다. 이 기계주의는 작업능률을 상당히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계주의는 사회적이고 교육적인(social et pédagogique)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각 기술의 진보가 있을 때마다, 노동자들이 새로운 작업으로 또 새로운 기계로 끊임없이 전환(reconversion)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적응 교육에 의해서 그리고 끊임없는 전환을 허용할 수 있기에 충분한 일반적 교육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를 넘어서 공장환경의 적응에서 심리학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프리드만(Georges Philippe Friedmann, 1902-1977)은 이 문제를 인간노동은 어디로 가는가? (Où va le travail humain?)와 산업적 기계주의에서 인간 문제(Problèmes humains du machinisme industriel)에서 다루었다. 기계 작업에 의한 익명적이고 가끔은 사기저하를 일으키는 특성, 기계 작업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음, 실행에서 요구되는 속도 등은 하나의 우주를 구성한다. 인간은 오로지 여가를 통하여 이 우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기계주의의 발전은 오늘날 여가들, 스포츠,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등을 필수적이게 만들고, 현대인간의 심리학적 균형을 깊숙이 변형시킨다. 현대인은 [맑스가 말하듯이]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 이외에 여가들의 전념에서 완성할 수 있다. (참조: 자동화, 노동분업, 여가)
[맑스의 노동을 통한 인간의 완성은 경철 수고(1844)에 나온다.] (43ULE)
(그림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3.(P.304).
* 기계주의의 시대. 자동차공장에서 로봇 작업화된 자동조립체계. (44MKB)
주술 (la) mag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3.(P.304).
어떤 기술들(technique)에, 즉 몸짓이나 주문 등에 의해, 자연법칙에 반대되는 효과들을 생산한다고 주장하는 기술(l'art)
모방(imitative) 주술은 현상을 모방하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이 스스로 생산되는 것을 보고자 원한다. 말하자면 천둥의 소리를 흉내내면서 비를 오게 하려 한다. 전파(par contagion) 주술이 있다. 만일 한 존재가 특별한 덕성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가 그 덕성을 감지하는 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 주술이다. [이 설명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1890-1915).]
꽁트(Auguste Comte, 1798-1857)에 따르면 주술적 설명(l'explication magique)은 과학적 설명의 첫째 단계를 대변한다. 이 설명은 의지 또는 초자연적 힘에 속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확정한 효과들에 관련한 것이다.
주술적 설명은 실증적 설명(l'explication positive)에 대립된다. 실증적 설명은 법칙들을, 다시 말하면 현상들 사이에 항상적 연관들을 찾는데 있다. (43ULE)
(그림 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4.(P.304).
*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종족의 주술 장면(Scène de magie), 즉 불을 통한 주문행위(l'incantation) (44MKB)
산파술 (la) maïeutiqu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4.(P.304).
그리스어 마이에우티케(μαιευτικὴ)에서 나온 말로서 조산술(l'art de l'accouchement)을 뜻한다. 여기서는 정신을 낳은 기술 즉 대화자에게 자신 속에 지니고 있는 진리를 발견하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헤 마이유티케 테크네(ἡ μαιευτικὴ τέχνη)란 소크라테스에 붙여진 개념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과의 대화자들에게 질문들을 알맞은 순간에 제기하면서, 그리고 그들에게 수학적 요소들 또는 도덕의 보편적인 진리들의 자료들을 상기하게(se rappeler, réminiscence)하면서, 이 기술을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학은 이런 의미에서 산파술이다. (44MKB)
멘느 드 비랑(Maine de Biran,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de Biran, 1766-182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4.(P.304).
멘느 드 비랑은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1766년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Dordogne dép. 24)주의 도르노뉴 강가에 있는 베르쥬락(Bergrac)에서 태어나서, 1824년(58살)에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도르도뉴 주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상원, 국가의 의원을 지냈다. 그의 정신주의는 주체의 심리학적 분석의 방법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 분석의 수단은 오직 무매개적 내적 통각(aperception)이다. 내적 통각은 우리에게 우리의 “자아”를 한 경향성, 한 자유로운 자발성, 하나이자 분해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게 한다. 의지적 노력에 대한 그의 분석은 의지의 철학 전반에 무한정한 기여를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습관이 사유능력에 미친 영향에 관한 명상(Mémoire sur l'influence de l'habitude sur la faculté, 1802), 사유의 분해에 관한 회상록(Mémoire sur la décomposition de la pensée, 1805), 무매개적 통각에 관한 회상록(Mémoire l'aperception immédiate, 1807), 인간의 신체와 도덕의 연관에 대한 회상록(Mémoire sur les rapports du physique et du moral de l'homme, 1814)이 있다.
(41WLE)
[참조:그의 주요 작업은 신체와 영혼의 이원성에 대한 비판에 있다. 그 방법으로 물리학적 분할(division)의 방법보다 화학적 분해(décomposition)의 방법으로 경도되었다. 그리고 나서 습관과 자아의 탐구에서,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분해할 수 없는 원초적 사실이 있음을 밝혔다. (41WLE)]
메스트르 Joseph de Maistre 1753-182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4-165.(P.304).
프랑스 정치가, 작가, 철학자이다. 메스트르는 1753년 사브와 지방의 사브와(Savoie, 73)주의 주도인 샹베리(Chambéry)에서 태어나서 1821년(68살)에 북부 이탈리아 삐에몽(Piémont)의 주도인 토리노(Torino, fr. Turin)에서 죽었다.
그는 토리노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1774년(21살)에 사브와의 상원의 일원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사르데뉴(Sardaigne)의 외교사절로서 성 페테스부르그에서 지내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Alexandre 1er)와 가까이 지냈다. 또 거기서 주요 작품들 정치적 조직들의 생성 원리에 관한 시론(Essai sur le principe générateur des constitutions politiques, 1809)과 사후에 출판된 베이컨 철학의 검토(Examen de la philosophie de Bacon, 1836)를 썼다. 그는 보날(Louis Bonald 1754-1840)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대혁명과 18세기에 [사상에] 대한 열성적 반대자이다. 철학자와 이데올로그들에 소중한 이성에 대해, 그는 지적 의식의 상식, 신앙, 직관을 대립의 시켰다. 그의 역사철학은 신적 의지인 섭리(Providence)에 기반하는 것으로 보쉬에(Jacques-Bénigne Bossuet 1627-1704)의 사상에 가깝다. 게다가 1858년에서 1886년에 출판된 소중하고 정신적인 편지(Correspondance)가 있다. (44MKB)
잘못, 악 (le) mal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5.(P.304).
그것은 선(le bien)에 반대되는 것이다.
잘못(le mal, 악)의 문제는 고통, 질병, 죽음과 같은 “신체적 잘못”(le mal physique)에 의해 제기된다. 그 잘못을 인간이 감내하면 즉 그것은 불행(le malheur)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그 불행은 “도덕적 잘못”(le mal morale)이다. 도덕적 잘못은 보편적 방식에서 보면, 폭력으로 또는 거짓말(mensonge, 환상)로 환원된다. 잘못들의 기원은 인간의 일반적 불완전에서 발견되고, 또한 그 기원은 인간이 자기의 불완전한 본성으로부터, 즉 단순한 피조물이라는 인간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한 형이상학적 잘못(mal métaphysique, 악)에 있다. [원죄도 형이상학적 잘못의 기원과 같다]
칸트는 단순 이성의 한계에서 내적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1793 La Religion dans les limites de la simple raison)에서 우발적으로 잘못을 행하는 행위로서 “짓궂음”(méchanceté)과 악[장난]을 위한 악[장난]을 행하는 행위로서 “도깨비 심술궂음[장난]”(malignité diabolique)을 구별한다. 비관주의(le pessimisme)은 모든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과 불완전을 보는 태도이며, 세계의 모든 사건들에서 선보다 악이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태도이며, 역사의 진보(퇴폐)에서도 잘못[악]의 우선성의 영향을 주장하는 태도이다. (44MKB) [낙관주의는 들뢰즈처럼 짓궂음, 어리석음, 광기 등이 새로운 생성을 유발하는 “차이”의 자기 발생으로 본다. 이점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잘못”의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44MKB)]
질병 (la) malad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5.(P.304).
기관들의 기능에서 또는 구조에서 변질(altération)을 의미한다.
모든 질병은 심리적인 측면을 갖는다. 개인이 스스로 환자로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의 여분으로서 느낀다. 질병의 이 심리학적 특성은 모든 심리학적 질병과 마찬가지로 부적응에서 오는 질병이다.
심리학적 혼란들에서 이 부적응은 신경증(névrose)과 같은 것처럼 단순히 느껴질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이 부적응이 정신병(psychose)처럼 실재적이며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심리학적 질병”들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심리학적 혼란들” 즉 “병리학적 현상들”(le phénomène pathologique)에 대해 말한다.
질병이란 건강(la santé)에 대립된다. 건강은 르리쉬(René Leriche, 1879-1955)가 말하듯이 “기관들의 침묵 속에서 삶이다”. 그리고 건강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세계와 삶에 개인의 총체적 참여(la participation)로서 행복(le bonheur)에도 대립된다. 참조: 병리학(pathologique) (44MKB)
말브랑쉬 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5.(P.304).
프랑스의 데카르트주의 철학자이다. 말브랑쉬는 163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715년(77살)에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소르본의 학생이었다가, 1664년(26살)에 신부가 되었다. 그는 데카르트의 세계론(Traité du monde)의 「인간론(Traité de l'homme)」을 우연히 읽고서, 늦게서야 철학적 소명을 발견했다. 그는 1674년(36살)에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진리탐구: 해명(De la recherche de la verité -Eclaircissement 1674)의 첫 권을 출판했다. 그리고 나서 특히 기독교의 대화(Conversations chretiennes, 1677)와 자연과 은총에 대한 개론(Traité de la nature et de la grâce 1680), 형이상학과 종교에 관한 대담(Entretiens sur la métaphysique, sur la religion, 1688을 썼으며, 이 후자는 죽음에 관한 대담(Entretiens sur la mort, 1696)을 씀으로서 완성되었다.
종교에 대한 그의 철학, 그리고 신학에 관한 관점에 대한 그의 토론 등은 말씀 이론과 인식 토대에 대한 보편적 관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지성의 확장(l'étendue)이란 면에서 그 인식은 가장 통찰력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그의 학설이 데카르트 이론과 스피노자 이론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중심은 인간의 자유의지 즉 인본주의인데 비해, 후자의 중심은 신에 참여(la participation), 즉 범신론이었다. 그의 학설의 본질적인 것은 이점에 관해서 메랑과 편지교환(Corresponance avec Dortous de Mairan)의 서문에서 모로(Joseph Moreau 1900-1988)가 설 풀어놓았다.
17세기와 18세기에 말브랑쉬의 중요 제자들은, 우선은 그 철학자의 친구들이었다. 신부 토마생(le P. Thomassin, 생몰미상), 신부 라미(Bernard Lamy, 1640-1715), 신부 로쉬(le P. Roche), 르르벨(Henri Lelevel, 1665-???), 피데(Fidé 생몰미상) 등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오는 경험적 조류들에 반대하여 말브랑쉬의 학설을 옹호했다. (44MKB)
말로 André Malraux 1901-197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5-166.(P.304).
프랑스 작가, 사상가, 정치가이다. 말로는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나, 1976년(76살)에 파리교외의 발드마른(Val-de-Marne 94)주의 크레퇴이(Créteil)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애국심, 자유에 대한 이상, 사회적 정의에 대한 열정은 그를 많은 일에 참여하게 했다. 1926년부터 중국혁명에 참여했으며(이를 토대로 쓴 인간조건(La Condition humaine, 1933)이 증거이며), 스페인 전쟁에 참여하여 스페인 공화정부에 봉사하며 외국 비행을 몰았으며(희망(L'Espoir, 1937)을 썼고), 1940년에서 1944년에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였고,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장군의 정부에 두 차례(1945-4946, 1958년이후)에 참여하였다.
그는 예술의 심리학(Psychologie de l'art)으로 세 권(Le Musée imaginaire, 1947, La Création artistique, 1948), (La Monnaie de l'absolu, 1949))을 썼으며, 이것을 다시 침묵의 목소리(Les Voix du silence, 1951) 통합 증보하였고, 그리고 세계 조각의 상상 박물관(Musée imaginaire de la sculpture mondiale, 1952-1954)을 뒤이어 냈으며, 신(神)들의 변모(La Metamorphose des dieux, 1957)를 썼는데, 일련의 작업이 위대한 예술적 창조들을 통하여 [나타난] 그 인간[말로]과 그 숙달의 길고 정열적인 탐구를 구성하였다. 이 작품들은 헤겔의 미학이래로 미상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대표하는 것이다. (44MKD)
[1996년 사후 20주기에, 메스메르(Pierre Messmer 1916-2007)가 주창하여 시락 대통령과 대담하여, 앙드레 말로의 유골들(cendres)을 만신전(Panthéon)에 옮겼다.] - [미테랑 대통령은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던 망데스 프랑스(Pierre Mendès-France 1907-1982)의 사후 10주기인 1992년에 망데스의 5프랑 기념주화를 만들었다.(44MKD)]
마나 mana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6.(P.304).
마나는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규정하는 내재적이고 비인격적인 힘을 의미한다.
폴리네시아의 몇몇 전통 사회에서 이 용어는 활동의 원인이라는 의미에서 “운수”(destin)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즉 사건들의 비인격적이고 무차별적인 운수와 동의어이다. (44MKE)
[(fr.Wiki) 1881년에 영국의 선교사였던 코드링턴(Robert Henry Codrington 1830-1922)이 “마나”를 “어떤 대상과 인격이 거주할 것이고 가정한, 정신적이거나 또는 기호적 효과가 있는, 힘이 퍼지는 운동력(vecteur)”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마나를 “죽은 영혼이나 정령들이 순회하면서 사람들이나 사물들에 미치는 영향력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 나중에 뒤르껭 학파의 모스(Marcel Mauss, 1872-1950)가 다시 이 개념을 취할 것이다. (44MKE)]
만하임 Manheim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304). 항목없음. (44LMH)
마니교 maniché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6.(P.304).
우주의 활동적 두 원리, 즉 선과 악의 두 원리를 인정하는 철학적 학설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3세기경에 페르샤 철학자 마니(Mani, Manicheus, Manès 216년경-276/7)에서 온 것이며, 그는 고대의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과 크리스트교를 조화시키고자 시도했다. 마니교는 보편적 종교가 되고자 했다. 그 종교는 중동에, 페르샤에, 인도에, 티벳트에, 중국에, 그리고 투르케스탄에 11세기까지 성행하였다. 유럽에서 특히 스페인에서 6세기부터 표출되었다. (44MKE)
조증 (la) man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6.(P.304).
주기적인 동요(agitation)와 망상(délire)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과도한 자극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의 엄격한 의미에 수용하는 경우에, 이 용어가 유행처럼 사용되는 “낯선 습관”과 같은 의미로 볼 필요가 없다. 조증은 매우 정확한 의미에서, 조-울 정신병(psychose maniaco-dépressive)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하는 기분(l'humeur, 분위기)의 고양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 조증의 “혼란”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특징지운다. 1. 기분좋은 의식(conscience euphorique)을 통하여. 이것은 병적인 환희, 연속적인 우스개(plaisantries), 농담(jeux de mots), 횡설수설(coq-a-l'âne)과 더불어 일어난다. 2. 팽창성(une expansivité, 과장성)에 의해. 이것은 어떤 유보도 없이 일어난다. 3. 기분의 변덕(versatilité)에 의해, 이 변덕은 단 몇 분의 상황에서 기분 좋음에서 분노(la colère 화)나 낙담으로 이행 할 수 있다. (44MKE)
마르부르크 학파 l'école de Marburg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6.(P.304).
19세기 후반부에 서부 독일 헤센(Hessen)의 마르부르크에서 전개되었던 철학 사상의 운동이다. 이 학파는 칸트 인식이론의 학설을 수학적 논리와 사유의 상징적 형식에 관한 반성으로 굴절시켰다. 이 학파의 대표자로서 코헨(Hermann Cohen 1842-1918)과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가 있다. (44LLI)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 Aurèle 121-18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6-167.(P.304).
아우렐리우스(Marc Aurèle, Marcus Annius Verus) 는 로마의 황제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121년 로마에 태어나서 180년(59살) [현 오스트레일리아 비엔나] 빈도보나(Vindobona)에서 죽었다. [황제 재위 161년에서 180년이었다.]
그는 프론토(Fronton, en latin Marcus Cornelius Fronto, 100년경?-170년경)에게서 그리스와 라틴어 수사학을 배웠다. 133년(12살)에 철학자의 외투를 입었다. 138년(17살)에 그는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 76-138; 황제 재위117-138)의 명령에 따라, 안토니누스(Antonin, Titius Aurellius Fulvius Antoninus Pius, 86-161: 재위 138-161)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161년(40살)에 황제가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황제로서 나는 로마에서 첫째 이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나는 세상에서 각각으로 동등하다.” 그는 자신에게(A soi-même)라는 저술을 썼는데 명상록(Pensées de Marc Aurèle)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작품은 스토아 학파의 도덕적 측면을 유지하고 있다. 즉 절제(la tempérance)의 실천, 부드러움(la douceur), 선성(la bonté), 완전을 향한 노력들이 들어있다. (44MKE) [그는 앞의 황제들과 달리 황제의 직위를 양자로 하지 않고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마르셀 Gabriel Marcel 1889-197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7.(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마르셀은 1889년 파리에서 태어나 1973년(84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마르셀은 실존주의 흐름에, 즉 인간적 상황과 감정의 묘사에 기초한 철학에 밀접하게 관련 있다. 그는 이 실존주의에 키에르케고르과 야스퍼스에 근접하는 크리스트교적 특성을 각인시켰다. 마르셀의 반성은 무엇보다도 인간적 연관들과 타인의 연관들에 근거한다. 전자의 연관에서 근본적인 개념은 충실성(fidélité)이고, 후자의 연관은 신과 연관을 이어가는 것이다. 철학적 작품으로서는 실존과 객관성(Existence et objectivité 1914), 형이상학적 일기(Journal métaphysique 1914-1923), 존재와 소유(Etre et avoir, 1918-1933), 호소의 거부(Du refus à l'invocation, 1940) 여행인(Homo viator, 1945), La Métaphysique de Royce, 1945) [로이스(Josiah Royce 1855-1916) 미국 관념론 철학, (카톨릭)] 등을 썼고, 연극작품으로는 신적 인간(Un Homme de Dieu, 1925), 능선의 길(Le Chemin de crête, 1936), 로마는 로마 속에 더 이상 있지 않다(Rome n'est plus dans Rome, 1951), 탐욕스런 심성(Coeurs avides 1953) 등이 있다. (44MKE)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 철인0706마르쿠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7.(P.304).
독일 출신의 아메리카 철학자이다. 그는 1898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태인 가정] 태어나 1979년(81살) 뮌헨 가까이 있는 슈타른베르크(Starnberg)에서 죽었다.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제자로서 그는 1932년(34살)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 헤겔의 존재론과 역사성의 이론(Ontologie de Helgel et la théorie de l'historicité, 1932)을 제출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조직하다가] 1933년(35살) 독일에서 달아났고, 합중국으로 갔다.
1954에(56살) 보스턴에서 가르쳤고, 그리고 1965년(67살)에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에서 가르쳤다.
그는 산업사회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관료정치(bureaucartie)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비판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소비사회는 대중(masses)의 소비와 교육에 알맞은 조건을 만듦으로서 의식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분석은 (소외된 의식이라는)대상의 측면에서 맑스(Karl Marx, 1818-1883)에 영향을 받았으며, 비판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프로이트 의미에서 억압(répression)을 단지 개인의 비밀로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문명의 비밀로서 간주하였다. 억압이란 심리적 간청(sollicitation, 하소연, 소원)의 의식적 거부이다. 이것은 무의식에 속하는 억제(refoulement)에 대립되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무의식의 억제를 다루기 보다 의식의 억압에 대한 심리 해방을 다루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에서 대중을 조직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져서 혁명적 정신이 중성화한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면서, 그래도 의식의 해방을 호소했다.
그 덕분에 이성과 혁명(Raison et Révolution, 1941), 에로스과 문명(Eros et civilisation, 1955), 소련 맑스주의(Le Marxisme soviétique, 1958), 반혁명과 반항(Contre-révolution et révolte, 1973)를 읽을 수 있다. (40QMA)
마리땅 Jacques Maritain 1882-197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7.(P.304).
프랑스 철학자. 마리땅은 1882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1973년(85살) 오뜨 가론(Haute-Garonne 31)주의 툴루즈(Toulouse)에서 죽었다.
그는 네오토미즘의 옹호자이며, 베르그송주의(bergsonisme)의 반대자이다. 그는 양차 대전 사이에서 프랑스 카톨릭의 새로운 정신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정신적인 것의 우선성(Primauté du spirituel, 1927), 총체적 인본주의(Humanisme intégral 1947) 등이 있다. [-로마 교황청대사를 지내면서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을 비난한다. 마치 제자였던 버그(Albert Burgh, 연대미상)가 로마를 갔다와서 스피노자를 비난한 것처럼. (44MKB)] 쟈끄 마리땅 부인 라이사(Raissa Oumançoff 1883-1960)러시아 태생 유태인인데, 그녀는 1904년 결혼하고 1906년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베르그송의 철학(La Philosophie bergsonienne, 1914, 1948), De Bergson à Thomas d'Aquin, Essais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New York 1944, Paris 1947) (44MKE)]
맑스 Karl Heinrich Marx 1818-188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7-168.(P.304).
독일 정치가, 철학자, 경제학자이다. 맑스는 1818년 독일 라인란트 팔쯔(Rheinland-Pfalz)의 트리에(Trier, fr. Trèves)에서 태어나, 1883년(65살) 영국 런던에서 죽었다.
맑스의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이다. 그는 아버지가 독일 변호사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본(Bonn)에서 고전 공부를 했으며, 그리고 베를린에서 헤겔의 영향을 입었고,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와 교류하였다. 1841년(23살)에 에피큐로스에 철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데모크리토스와 에피큐로스의 자연 철학의 차이(Differenz der demokritischen und epikureischen Naturphilosophie)]을 제출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언론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1842년(24살)에 정부에 급진 반대입장으로 세워진 라인신문(Rheinische Zeitung, fr. Gazette rhénane) 편집장을 맡았다. 독일정부는 이것을 폐간시켰다. 그래서 그는[1843(25살)] 파리로 갔다. 거기서 그는 독일-프랑스 연보(Deutsch-Französischen Jahrbücher, fr. Annales franco-allemandes)를 편집했다. 이 연보 속에 두 개의 중요한 논문을 출판했다. 유태인문제(Zur Judenfrage 1843; Question juive)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1843; Introdution à la critique de la philosophie du droit de Hegel)이다. 이 잡지 또한 폐간 당했다. 1845년(27살)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여 벨기에 브뤽셀로 가서, 거기서 공산중의 동맹의 요청으로 1947년(29살)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1848); |Manifeste du parti communiste)을 작성한다. 정치와 역사의 사건들에 의해 그는 1848년(30살)에 파리로, 그리고 쾰른으로 그리고 1849년(31살) 다시 파리로 피신하게 되었다가, 결국에는 런던에 결정적으로 정착하게 될 것이다. 런던에서 그는 “국제 노동자 연합(제1인터네셔날)”(Internationalen Arbeiter-Assoziation, kurz Erste Internationale; 1er Internationale ouvrière)(1864-1876)의 주장자가 된다. 그의 주요 작품은 자본론 1권(Das Kapital, Band I, 1867; Le Capital: Critique de l'économie politique)이며, 나머지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의 철학적 이론의 중요점들은 (26살에 쓴) 필사본인 1844년 경제철학 수고, 일칭 경철수고(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1844; Manuscrits de 1844)에 요약되어 있는데 이 책자는 1928년-1932년에 출판되었다.
맑스의 학문형성과정, 여행[추방, 귀국, 망명], [여러 나라와 관련자들의] 만남들은 그를 세 가지 사상의 흐름을 종합하는 위치에 있게 했다. 독일 철학, 프랑스 사회주의, 영국 정치경제학이 그것이다. 맑스 철학의 원리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활동하는 존재(l'être agissant)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 활동적 존재의 시각은 스피노자, 맑스, 베르그송에 공연적인 사상으로, 유태의 도덕적 전통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맑스의 학설은 다음과 같은 인식 이론(la théorie de la connaissance)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우선, 변증법적 유물론(le matérialisme dialectique)이다. 이것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을 잘 간직하지만, 그것을 [전복]뒤엎어서 “절대”의 용어 대신에 “인간”의 용어로, “신적 의식”의 용어 대신에 “인간의 의식”의 용어 대체했다. 다음은 역사 철학(la philosophie de l'histoire)이다. 이에 따르면, 사회적 정치적을 포함하여 역사 발전은 경제적 법칙들 즉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지배되며, 특히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사이의 투쟁에 의해 지배된다. 마지막으로 경제 이론(la théorie économique)이다. 이 이론은 “잉여가치”를 제시하며 자본주의 경제의 정의롭지 못함(l'injustice)을 설명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과잉생산의 대공황과 총파업 과정을 거쳐서, 그 자체로 붕괴될 것이고, 그리고 노동자의 국가가 도래할 것이라는 원리들을 진술한다. 만일 맑스의 작품이 몇 가지에서 넘어서지 못한 것이 있다하더라도, 그 작품은 경적학적 이론 도식에서뿐만 아니라 국가들의 역사의 도식에서도 특히 소비에트 체제에 요청된 맑스의 후원역할을 보면, 그래도 우리 시대에도 주목받을 만하다. 인민의 의식에서는, 맑스가 역사의 예언자적 인물로 형성되었다. 참조: 맑시즘, 변증법적 유물론, 잉여가치. (44LNA)
맑스주의 (le) marx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8-169.(P.304).
맑스와 엥겔스의 학설 즉 이들 둘이서 주창했던 변증법적 유물론을 말한다. 정치적 실재로서 맑시즘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역사와 동일하게 진행한다. 즉 1917년 이래로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1945년 얄타 협정이래 동유럽에서, 1949년 이래로 마오[毛, 모택동]이래로 중국과 제3세계 몇몇 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맑시즘을 학설로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 역사의 현상에 적용이라 이해 한다. 즉 맑시즘을 역사적 유물론으로 이해한다. 맑시즘은 역사의 운동을, 또 경제적 실재성으로부터 사회들의 진화를 설명한다. 이 이론은 맑스의 기본 작품인 자본론 1권(Das Kapital, Band I, 1867; Le Capital)에 제시되어 있으며, 매우 발달된 산업국가들의 진화, 즉 우선 영국, 그리고 독일, 다음에 프랑스의 진화에 대해 예언했다. 그런데 노동자 혁명은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처음에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이 현상이 레닌(Lenin, 1870-1924)을 생생하게 놀라게 했다. 레닌은 이런 점에서 다른 전망을 - 농업 우선적인 후진 개발의 나라들에서 전망을 - 제시하고 예견하면서 맑스주의를 완성하려했다. 이런 레닌의 작업들은 농업 위주의 소위 저개발국가들(러시아, 중국, 유고슬라비아, 다른 인민민주주의 국가들 등)에서 사회적 혁명과 변형을 주도하였다.
철학적 관점에서 맑스주의는 전적으로 “실천적”(engagée, 참여적) 사유의 태도이며, 맑스의 다음과 같은 공리(l'axiom)에서 나왔다. [(포이에르바흐 테제 11번)]“철학자는 세상을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세상을 변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이 태도는 역사가 공산주의 방향으로 간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19세기 말에 현존했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계급 투쟁이 점진적 사라짐, 현대 사회에서 중간 계급의 일반화, 실천적으로 모든 시민들이 자신들의 노동 생산으로 살아간다는 사실, 공산주의 체제의 진화, 그리고 소위 “자본주의” 체제도 진화, 이것들은 역사 철학으로서 맑시즘이 오늘날 역사의 실재적 법칙이라기보다 훨씬 더 신앙의 조항으로써 표현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거꾸로 사회학적 분석에서처럼, 맑스주의는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소외”(l'aliénation)의 형태들을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더욱더 르페브르(Henri Lefèbvre 1901-1991)가 말하는 “일상적 삶의 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맑스주의와 자본주의, 유물론과 관념론라는 두 진영의 요약적인 이론은 크게 보아 모든 억압의 형태들의 탐구에 의해 넘어서게 될 것이다. 맑스주의 분석은 모든 가능한 혁명적 의식의 효소[불씨]를 찾아서 자극하기 위하여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와 더불어 정신분석학을 빌어온다. 참조: 공산주의, 역사철학, 레닌주의, 맑스, 사회주의. (44MKC)
마조키즘 (le) masoch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9.(P.304).
고통 속에서 쾌락을 찾게 하는 성적 퇴폐. 마조키즘이란 명칭은 오스트리아 작가 자헤르-마조흐(Leopold von Sscher-Masich 1836-1895)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정념적인 단편들과 소설들은 병약한 강박관념을 폭로한다.
피학대 음란증 환자(le masochiste)는 째찍질, 고문, 치욕 등과 같은 고통을 추구하고, 이 성향은 공격적 경향의 내재화에 기인하며, 또 과도하게 엄격하고 강력한 사회적 의식이 우리 속에 출현하여 죄의식의 감정에 매이게 하는 데 기인한다. 주체(un sujet 환자) 속에 이런 출현, 즉 강력하게 내재화된 사회적 명령의 출현은 그 환자에게 스스로를 벌받게 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기 생각 또는 의도에 대해 벌받고, 그 벌받음으로써 행복을 찾는데 이른다. (44MKF)
(그림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9.(P.304).
릴리아나 카바니(Liliana Cavani, 1933-)의 작품 Portier de nuit (원제: Il Portiere di notte, 1974, 야간 관리인). 사형집행인과 그 희생자.... [나는 이 영화를 보았고, 이 한 장면의 그림으로 이 영화를 떠올릴 정도로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44MKF)
유물론 (le) matérial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9.(P.304).
유물론은 물질이외에 다른 실체는 현존하지 않는다는 학설이다. 우선 이 학설은 유심론(le spiritualisme)에 대립된다. 유심론에서는 정신이 모든 실재성의 실체를 구성한다. 유물론과 유심론은 “존재”(l'être) 또는 실재성의 본성에 관한 “존재론의”(ontologiques) 학설들이다. 그리고 나서, 이들의 대립은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 논의는 인식의 토대에 관한 “인식형이상학의”(la gnoséologiques) 학설들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유물론은 영혼, 저세상, 신 등의 현존(존재)에 대해 거부한다. 그 사유에 관하여 말하자면, 유물론은 사유를 “이차적 자료”(donnée seconde)라 하는데,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기원전460경-370경)에서처럼 사유를 순수하게 물질적 사실들로부터 이끌어 내거나 또는 부대현상론에서처럼 실재성이란 측면에서 사유를 부정하고, 사유를 일종의 착각(l'illusion)으로 보거나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물질[물체 생산물]로부터 사유[의식 구조]의 생성을 설명한다. 유물론은 심리적 특수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유물론은 관념이라는 정신적 발견물을 두뇌의 물리-화학적 반작용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을 단순히 자연의 인식의 연장(prolongement)으로 간주한다. 이리하여 유물론은 정신적이고 인간적인 이해의 모든 접근을 금지한다. 참조: 부대현상론, 맑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44MKF)
변증법적 유물론 matérialisme dialectiqu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69-170.(P.304).
물질적 현상들로부터 정신의 발생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독단적 유물론이 행하는 것처럼 정신을 단순히 자연의 반영으로 간주하지 않고, 정신과 자연이 서로서로 설명된다는 의미에서 “변증법적”이고, 감각적 인상으로부터, 운동감각(운동의 유기체적 감각) 반사작용, 동물지능 등등을 거쳐서, 그리고 나서 또한 의식, 언어, 지성, 개념을 통한 사유가 아직 태어나기 이전의 억눌린 반작용도 거쳐서, 가장 높은 의식으로 가는, 원초적 총체의 구체적 형태들을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레닌(Lenin, 1870-1924)은 “개념들이란 두ㅚ의 가장 고양된 생산물이며, 두뇌는 그 자체 물질의 가장 고양된 생산물이다”라고 썼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진화론의 폭넓은 이론이다. 이 진화론은 감각의 기원에 있는 물질의 운동으로부터 인간과 (인식과 종교현상과 같은) 정신적 현상을 설명한다. 다른 말로하면 변증법은 어떻게 생명이 물질로부터 태어나서 어떻게 생명으로부터 정신이 솟아나는 지를 알게 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소개된다. 카마리(M. D. Kammari) 등과 같은 소비에트 맑스주의자들의 견해에서 루딘(Loudine)과 로젠탈(Rosenthal)의 철학사전(Dictionnaire philosophique)에서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감각에서 사유로 발전의 각 계기들 사이에 “여러 질적인 비약들”(bonds qualitatifs)이 있다. 말하자면, 감각과 반성, 반성과 사유 사이에 유물론이 설명하기에 불가능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본성상 차이가 존재한다. 다른 말로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한편으로 물질과 생명사이에, 다른 한편으로 생명과 정신 사이에 본성상 차이가 있다는 사실(le fait)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설적으로 발전의 연속성을 가정한다. 그것은 과학적 법칙이라기보다 철학적 가설이다. 이런 철학적 가설은 그 자체로 어떤 유용성도 없으며 오히려 과학의 이상을 표현한다. 유물론적 변증법은 유물론을 증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유물론의 진리를 사전에 믿는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44MKF)
수학의 철학 (philosophie des) mathématique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0.(P.304).
인간정신의 기능작용의 일반이론을 수학적 추론으로부터 분간해내기 위하여 그 추론의 분석으로부터 출발하는 반성을 의미한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방법을 철학적 성찰에 적용하기를 원했다. 그 방법은 명석판명한 진술들을 연쇄적으로 이어가는 수학적 진행을 이루는 것이었다. 라이프니츠(Gottfrid Leibniz, 1646-1716)는 미분계산의 반성으로부터 세계의 개념작업을 발전시켰다고 불 수 있다. 마르부르크 학파의 신칸트학파는 뉴턴의 물리학에 영감을 받아서 수학논리로 향한 인식론에 대한 칸트의 이론을 반성하였다. 수학논리에서 정신의 가장 높은 기능들이 드러날 것으로 보았다.
수학의 철학은 통상적으로 수학적 구축에서 정신의 작용들에 대한 분석을 또는 수학적 인식론을 지칭한다. 이런 인식론은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에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전개할 것이고, 프랑스에서는 카바이에스(Jean Cavaillès 1903-1944)의 전통에 서서 특히 드장띠(Jean Toussaint Desanti, 1914-2002)에 의해 표현되었다. (44MKF)
물질 (la) matiè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0.(P.304).
너비를 지니고, 분할가능하며, 무게 있는 실체이며 또한 모든 종류의 형태를 허용할 수 있는 실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는 물질을 잠재적(potentielle) 실재성이라 정의하였다.
물질의 본성의 문제는 과학 특히 물리학의 문제이다. 이에 비해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의 문제이다. (베르그송의 사유와 운동자(La pensée et le mouvant)(1934)의 제목은 형이상학과 과학의 대구對句이다.) [우리는 쥘리아와 달리 운동자(le mouvant)와 운동(le mouvement)을 구별하고자 하며, 운동자는 의식(생명)이며 운동은 물체의 과학에 해당한다고 본다.]
과학과 철학의 영역은 구별되어 정해져 있으며, 따라서 섞는 것은 불가능하다. [베르그송은 형이상학을 경험과학의 일부로 만들려고 했다.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은 근대 과학과는 구별되지만 현대과학(생물학과 심리학)위에 서 있다. - 이런 해석을 보건데 쥘리아는 유심론 또는 크리스트교 관습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있다.] (39WKJ)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189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0.(P.304).
1896년에 나온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 철학자는 심리학적 이론들을, 특히 유명한 기억의 이론과 추억들의 고깔(le cône, 원추)이론을 전개했다. 고깔이론은 본성상 신체적인 기계적 기억과 뇌수에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순수기억 사이를 구별하였다. 이 후자는 무의식(l'inconscience) 속에 있다. 무의식 속에서 추억들은 현재의 행위의 필요들에 따라서 솟아난다. 이 작품은 정신의 실재성과 물질의 실재성을 주장하고, 기억의 정확한 실례에 근거하여 이 양자 사이의 연관을 규정한다. 베르그송은 여기서 세계의 진화 일반이론을 묘사하고 나중에 창조적 진화(L'Evolusion créatrice 1907)에서 발전시킬 것이다. (44MKF)
모스 Marcel Mauss 1872-195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1.(P.304).
프랑스 사회학자 인종학자이다. 모스는 1872년 로렌(Lorraine)지방의 보쥬(Vosges 88)주의 에피날(Epinal)에서 태어나, 1950년(78살) 파리에서 죽었다.
우선 “실천과학 고등연구원”(E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에서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들의 종교들에 대한 역사의 교수였다가, 꼴레쥬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로 지냈다. 그는 1901년부터 1950년까지 프랑스 인종학 학파를 형성하였다. 그의 고민은 사회적 사실을 문화적 문맥에서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며, 이런 입장은 “문화적 총체로서 사회적 사실들”에 대한 전반적 이론을 유도하는 것이다. 1928년에 그는 리베(Paul Rivet 1876-1958)와 함께 인종학연구소(l'Institut d'ethnologie)를 설립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증여론(Essai sur le don: Forme et raison de l'échange dans les sociétés archaïques, 1925), Fragment d'un plan de sociologie générale descriptive, 1934)이 있다. (44MKF)
[모스의 아버지는 뒤르껭의 맏 누나와 결혼했다. 그의 아버지가 유태인이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뒤르껭은 8대를 거친 랍비의 가정 출신이다. 물론 뒤르껭은 랍비가 되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모스는 뒤르껭의 고종질이다. 모스는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을 기회로 조레스(Jean Jaurès)와 가까워지고, 조레스와 함께 위마니테(L'Humanité) 신문을 창간하였다.(44MKF)]
규범 (la) maxi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1.(P.304).
품행의 규칙, 논리적 당위적 원리, 일반 심리학의 관찰 등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문구이다.
칸트(Kant, 1724-1804)는 도덕의 일반 “원칙”(le principe)와 일상적 행위의 수준에서 이 원리를 구체적으로 정식화하는 “규범”(la maxime) 사이를 구별했다. [수학과 추상에서 원리(le principe)와 그를 적용하는 물리학에서 법칙(la loi)의 구별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도덕의 원칙은 순수 의무에 의해 행해지며, 특별한 규범은 개인이 자기의 의지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맡긴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행위 등과 같다. 참조: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Fondement de la métaphisique des moeurs) [칸트는 이것을 확대하여 나중에 실천이성비판, 1788으로 낼 것이다] (44MLC)
마야 (la) maya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1.(P.304).
이 단어는 힌디어(hindoustani)에서 나온 것으로 착각(l'illusion)을 의미한다.
베단타(Vedanta)에서 그리고 힌두교 철학 일반에서, 욕망의 일체, 즉 우리에게 진실한 운명을 가리는 개인적 경향들의 일체를 의미한다. 마야란 “착각의 너울”(voile de l'illusion)이며, 이것을 사람들은 사막의 신기루와 유사한 것으로 여긴다. 힌두교의 철학에서 마야는 인식의 가장 낮은 단계의 정도를 지칭한다. 흰두교의 명상에서 영감을 받았던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는 그의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식의 가장 낮은 정도를 지칭한다. (44MLC)
메카니즘 le méchanisme 기제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1.(P.304).
정해진 결과를 생산하기 위한 기관과 기능의 결합[기제방식]을 말한다.
이 기제 방식의 이론은 생명을 기계의 톱니장치처럼 기능하는 기관들의 총체로 귀착시킨다.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는 자신의 동물기계론(animaux-machines)에서 동물들의 행동(conduite)을 마치 단순한 기계의 반작용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다.
물리학에서 매카니즘은 변화[운동]를 물체들의 서로서로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데카르트) [물리학에서 데카르트의 정력학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디나미즘(dynamisme, 역동론)은 변화[운동]를 물체의 내적 힘에 의해 설명한다(라이프니츠). [물리학에서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의 동력학이라 한다. (39WKJ) (44MLC)
매개 (la) médi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1.(P.304).
상호매개(intermédiaire)이다.
매개의 문제는 헤겔(Hegel, 1770-1831) 이래로 역사의 문제 또는 변증법의 문제와 동일시된다. 헤겔에 있어서 이 변증법은 우리 사유(pensée)의 생성의 이론을 이루며, 또 직관의 이론이다. 정신은 자신의 활동성으로부터 이 직관이론을, 즉 “지적 직관”(l'intuition intellectuelle)을 지니고 있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맑스에 따르면 매개는 노동이다. 노동의 변증법만이 인간 행동의 본성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매개의 개념은 “생성”(devenir)의 의미(sens)를 취한다. (44MLC)
성찰 (la) médit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1.(P.304).
성찰이란 깊은 반성이다.
성찰은 단지 인식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인격의 정신적 역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찰은 우선 자기에 관한 반성이다. 이 성찰은 우리의 진리인식의 진보를 인간 정신의 역사에 연합시킨다.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형이상학적 성찰(Méditations métaphysiques 1941), 후설(Husserl, 1859-1938)의 데카르트덕 성찰(Méditations cartésiennes 1929)은 모든 엄격한 반성은 자기에로 내재적 반성이라는 원리 위에 기초하고 있다. (44MLC)
형이상학적 성찰(Méditations métaphysiques)
원명 제일철학의 성찰(Méditations,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2.(P.304).
이 작품은 1641년(45살)에 나온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작품이다. 작품의 완전한 제목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간의 영혼과 신체 사이의 실재적 구별을 증명하는, 제일철학의 성찰(Méditations touchant la philosophie première, où l'on démontre l'existence de Dieu et la distinction réelle entre l'âme et le corps de l'homme)이다. 이 철학자는 있는 대로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만이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첫째 확신은 사유의 작용인 것으로서 의심하는 작용에 근거한다. 이리하여 사유[생각한다]는 진실한 인식의 첫째 대상이다. 그래서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 cogito ergo sum) 그리고 나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정신 속에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관념들을 검토한다. 그는 특별히 무한의 관념을 부각시킨다. 이 관념은 인간 주체가 그 주인일 수 없다. 사실상 이 관념은 우리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그 실재성에 접촉할 수 있는 기호(signe)이다. 또 이실재성 자체는 우리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신에 접촉할 수 있는 기호이다. 따라서 신의 확실성은 진실한 우리 인식의 둘째[대상]이다. 신의 관념 자체로부터, 또 신의 전지전능과 그 선함으로부터 이 철학자는 우리의 자연적 인식들 모두들의, 즉 감성적인(세계의 지각들) 것들과 감각적인(우리 신체의 지각들) 것들의 진실성(véracité)을 연역할 것이다. 따라서 성찰은 진리의 인식에 근거하여 물리학의 원리들과 의학의 원리들을 부여한다. (44MLC)
과대망상 (la) mégaloman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2.(P.304).
위인들의 광기. 즉 과장증(la mythomanie)의 형식이다. 이 형식은 개인이 무지하게 부자, 황제, 신이라고 스스로 믿는 데 기인한다. 이 형식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신체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능력과 자신의 사회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신체적 가치란 신체의 크기, 신체의 물리적 힘, 성적 능력 등을 말하며, 사회적 중요성이란 명예를 받을 만한 일을 식별하여 탐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대망상[증]은 관대한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개인을 단순한 과장으로 치장할 수도 있다. 과대망상은 또한 체계적으로 생성될 수 있고, 또 개인을 변질하게하는 망상(délire)의 방향으로 또는 자신에게만 주어진다고 여기는 고차원의 견해를 정당화하는 사실들을 발견했다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대망상증은 좌초(l'échec)의 반작용이다. r과대 망상증인 사람은 자신이 꿈에서나 될 수 있었을 그리고 현재에는 될 수 없는 인격을 이야기하고 묘사한다. 그 인격은 신체적 혼란(일반적 마비, 노화성 치매) 또는 심리적 혼란(편집증, 급성 조증)과 연결되어서 비판될 방향이 약화되는 점에서 나올 수 있다. (44MLC)
(그림 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2.(P.304).
과대망상: “독일에 관해서 히틀러”(Hitler über Deutschland)”그리고 “... 관해서 독일” [히틀러는 독일은 히틀러를 위하여(pour), 히틀러는 독일을 위하여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44MLC)
메가라 학파(Ecole de Még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73.(P.304)
유클리트(Euclide de Mégare v.400 av J.-C.)에 의해 설립된 그리스의 한 철학학파이다. 이 학파는 변증법학파로 알려졌고, 논쟁(eristique, = disputante)[학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학파의 이론은 선의 동일성(l'identité du Bien)에 관한 소크라테스(Socrate, 기원전 469-399)의 생각과 존재의 단일성(l'unité de l'être)에 관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515경-450경)의 생각을 조합하였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은 소피스트(Les Sophistes) 편에서 이 이론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전개한다. (39PLH)
[마이농(Alexius Meinong 1853-192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73.(P.304) 항목 없음
멜랑콜리 (la) mélancol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73.(P.304)
막연한 슬픔(triste vague)
셸링(Schelling, 1775-1854) 슈레겔(Schlegel, 1767-1845) 등과 같은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들에서는, 멜랑꼴리는 우수(憂愁) 속에 지니고 있는 모든 열망과 더불어, 무한 욕망(désir d'infini; Sehnsucht 그리움, 열망)과 같은 인간 존재의 진지한 감정을 지칭한다. 심리학적으로 멜랑꼴리는 슬픔과 의기소침의 병든 상태이며, 조울증의(cyclothymique) 특징들에 적합하기도 하다. 이런 증상은 매우 자주 빈도가 일어나는 경우로서는 인구 100중 약 1명에게 나타난다. 이 증상는 30대에서 40대 사이의 개인들을 건드리며, 두뇌 중심영역의 교란에 연결되어 있다. 그것의 기원은 매우 자주 유전에 기인한다. 그 때 환자는 분개하게 되며, 모든 잘못의 책임을 느끼게 되고, 엄함 벌받기를 요구한다. 이 질병의 진화는 4개월에서 8개월사이에 확장된다. 자살로 치닫는 위험은 응급 치료가 요구되며, 심리학적 분석에서, 화학적 자극제의 사용을 거친 후에, 정신외과 수술 치료의 개입으로까지 갈 수 있다. 신경외과 수술이란 시신경과 전두엽 피질을 연결하는 신경섬유의 절단으로 또는 전두엽 백질 절제로 이루어진다. (44MLD)
기억(la mémoire) 개념0705기억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73.(P.304)
기억은 과거의 영속(persistence)이다. 과거는 단순한 습관의 형식으로 영속될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말하자면 과거의 표상[재현]을 지칭하다.
기억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1o 추억들을 고정화하는 것(fixation)
2o 추억들을 보존하는 것(conservation)
3o [추억의] 상기 [떠올림] (rappel) [회상하는 것과 다르다.]
4o [추억의] 재인식 (reconnaissance)
5o [추억의] 위치화(localisation) [두뇌 속에 위치화와 달리 사회 속에 저장을 의미한다]
기억의 혼동(troubles)은 다음과 같은 장애들(troubles)로 생길 수 있다
a) 고정화의 장애: 선행성 기억상실(amnésie antérograde), 격렬한 흥분으로. [추억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조금 전에 행한 과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사례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색스(Olivier Sacks), 조석현, 이마고, 2006(원 1985)에서 「길 잃은 뱃사람」(53-92) 역행성 기억상실증의 예로 되어 있다. 환자 지미는 1945년까지 기억이 있고 현재까지(1975)의 다른 기억은 상실. 그에게 ‘전날’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일기를 쓸 수 없다.]
[위의 기억 상실환자와 달리, 기억 항진과 인식력 항진 환자가 있다. 윌리엄 톰슨, 전에 식료품을 운영했고, 심한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아내를 모자로... 의 「정체성의 문제」에서, 그것은 그가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속사포처럼 불을 뿜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매번 급조해내는 세계였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와도 같은 세계, 환상의 세계, 꿈같은 세계였다. 항상 새로운 인물들과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는, 매순간 변화와 변형이 일어나는 만화경 같은 세계였다. (211)]
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우리 기억 속에 어떤 사물(chose)이 고정되기 위해서, 사물을 이해(comprise)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분명하게 이해된 것만을 잘 추억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지각은 분명하지 않은 추억들도 사물의 인식을 위하여 투여된다]
b) 보존의 장애 : 두뇌의 피질 세포가 타격을 입은 경우이다. [심할 경우에 식물인간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기억의 총제적 상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우뇌와 연관있다. 아내를 모자로... 의 「살아있는 사전」에서, 61세의 마틴 A.가 우리 의료원에 들어온 것은 1983년이 저물어가던 무렵이다. ..어렸을 때 수막염에 걸려 사경을 헤맸고 그로 인해 저능아가 되고...(345) .. 그는 오페라만 해도 2000곡 이상을 알고 있다고... 그는 오페라든 오라토리오든 한번만 들으면 잊지 않고 기억했다. (346)]
c) 상기[떠올림]의 상실: 노인들의 퇴행성 기억 상실(amnésie rétrograde). 이에 대해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가 잘 서술하고 있다. [치매의 문제이다.]
d) 재인식의 장애: 기억착오(paramnésie) 또는 사람들이 결코 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미 보았다(déjà vu)는 감정. [베르그송은 이 문제를 일반관념의 문제로 풀려고 했다. 우리는 익숙한 느낌에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e) [문화적 사회적] 위치화의 장애 [사회 코드화의 장애] : 여행이나 사회적 변화에서 부적응의 경우를 말한다. 알바쉬(Maurice Halbwachs 1887-1945)의 기억의 사회적 틀(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를 참조할 수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망각된 추억들과 망각된 사건들이 우리가 무의식 속에 억제한(refouler) 것들이라 한다. 억제된 추억들은 우리의 사회적 의식에 충격을 주는 것이든지, 우리에게 인간들과 사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든지 이다.
참조: 기억상실(amnésie), 기억착오(paramnésie) (40PMF)
멘델스존 Moses Mendelssohn 1729-178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3.(P.304)
멘델스존은 독일 철학자이다. 그는 1729년 자흐젠 안할트(Sachsen-Anhalt) 주의 데사우(Dessau)에서 태어나, [유태인으로] 1786년(57살)에 베를린에서 죽었다.
멘델스존은, 이성을 진리를 감각적 경험에서 나온 사실의 진리와 결합하는데 토대를 두고서, 계몽기의 고전적 합리주의 전통에서 사유의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는 라바터(Johann Caspar Lavater 1741-1801)와 대립되는 유명한 논쟁을 벌였다. 왜냐하면 그는 크리스트교 국가에서 유태인의 신앙과 실천의 특수성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태교를 변형시키면서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철학적 대화(Philosophischen Gesprächen, 1755; Entretiens philosophique), 감각에 관한 편지(Briefe über die Empfindungen, 1755; Lettres sur les sensations), 파이돈, 영혼의 불멸(Phädon oder über die Unsterblichkeit der Seele, 1767; Phédon ou l'Immoralité de l'âme) 예루살렘, 종교적 힘과 유태교(Jerusalem oder über religiöse Macht und Judenthum, 1783; Jerusalem ou De al force religieuse et du judaïsme) 친구 레싱에게(An die Freunde Lessings 1786; A mon ami Lessing)등이 있다. (44MLD) [fr.Wiki 은 인류가 존재하지 않고 개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는 칸트가 인류의 직선적 진보를 주장한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44MLD)]
심정 mental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3.(P.304)
개인이나 집단의 근본적인 신앙의 일체로서 정신의 성향을 의미한다.
사회 속에는 여러 다른 심정들(mentalités)이 존재하며, 그러나 이들 모두는 또한 유효하고 논리적이다. “원시 심정”(une mentalité primitive)라는 개념은 이성의 원리들로서 느껴질 수 없는 것이며, 허구(une fiction)일 뿐이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추어서 본 편견(un préjugé)이며, 사실상으로 인종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써 표현된다. 참조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의 야생의 사유(La pensée sauvage, 1962) (44MLD)
공로 (le) mérite 찬양 장점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3-174.(P.304)
한 인격이 존경과 보상을 받을 만한 도덕적 가치를 의미한다.
칸트(Kant, 1724-1804)에 따르면, 도덕의 목적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게 지낼 만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엄숙한 태도는 “찬양”(le mérite)의 모든 도덕을 기초로 한다. 여기서 “덕목”(la vertu)은 노력에 의해, 즉 선한 의도에 의해 정의된다. 스토아학파와 칸트철학에서, 찬양의 도덕들은 행복 속에서 도덕성의 증명을 보려는 (에피큐로스 학파의)도덕론들과는 대립된다. (44MLD)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4.(P.304)
메를로-퐁티는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1908년 샤랑뜨 마리띰(Charente-Maritime 17)주의 로슈포르(Rochefort-sur-Mer)에서 태어나, 1961(53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들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1945년(37살)에서 1949년에 리용 대학에서, 1949년(41살)에서 1952년까지 소르본에서, 1952년(44살)부터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가르쳤다.
그는 행실의 구조(La Structure du comportement, 1942)에서 “형태의 이론”을 행실의 연구에 적용했고, 심리[현상]와 생리[현상]가 인간의 모든 품행 속에 스며들어 있음(compénétration 상호침투)을 제시했다. 그리고 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1945)에서 형태의 이론을 “지각의 이론”에 적용하면서 지각은 배경과 형태의 법칙에 의해 지배한다고 하였다.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특히 그의 후기 작품들의 영향은 그의 사유에 깊이 스며들어(imprégner) 있다
1945년(37살)부터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 잡지 현대시대(Les Temps modernes)에서 일했다. 정치적 문제에 대한 그의 반성에서, 특히 맑시즘에 대한 반성에서 그가 좌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나 공산주의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었다. 1953년(45살)에 그 당시 그는 사르트르와 결별했다. 그는 세계와 역사에 참여하는 인간에 대한 개념작업에서, 휴머니즘과 테러(Humanisme et terreur: Essai sur le problème communiste, 1947), 변증법의 모험들(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1955), 기호들(Signes, 1960) 등을 통하여, 참여(l'engagement)로부터 반성하였다.
행동과 사유 사이에서, 즉 무의미(non-sens)와 절대(l'absolu)사이에서 걸터앉아서 절뚝거리는(boiteuse) 철학이라는 그는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그의 학설을 완성하게 될 것인데, 그의 학설은 정신과 신체를, 이성과 살(chair)을, 동시에 갖는 인간의 구체적 현존에서 인간에 관한 성찰로서 특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모호성의 철학”(philosophie de l'ambiguïté)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는 문제를 딱 잘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파고드는 것이며, 또 일반적인 방식으로 분리했던 경계들을 파고드는 것이며,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는 죽기에 앞서서 자신의 철학을 확장시킬 것을 내다보았다. 그의 철학은 체험된 경험을 사유된 진리와 통합하는 관계에 관한 성찰의 방향으로 확장하는 것이며, 이에 관한 작품은 진리의 기원(Origine de la vérité)[fr.Wiki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관해서도 성찰의 방향을 확장할 것인데, 언어는 우리를 세상과 분리하게 하고 세계를 표상하게 한다. 이것은 세상의 산문(La Prose du monde, 1969)에 나타날 것이다. 결국 그의 철학은 인식의 형이상학에서 정점에 오르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것은 선험적 인간(Homme transcendantal)과 더불어 펼칠 것이다. (44MLH)
[참조: 「진리를 위하여(Pour la vérité)」 논문은 현대시대(Les Temps modernes)(1946년 1월호)에 실렸는데, 1945년 11월에 썼다고 한다. 이것은 의미와 무의미(Sens et non-sens, 1966)(나겔 출판사)에 실렸다가, 의미와 무의미(Sens et non-sens)(1996, 갈리마르)(pp. 186-208)에서 새로운 페이지 매김으로 나왔다고 한다. / 쥘리아의 글에서 진리의 기원(Origine de la vérité)은 이 논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44MLH)]
[참조: 의미와 무의미(Sens et non-sens, 1948)는 1948년에 출판한 것이라기보다, 1945년에서 1948년 사이에 쓰여진 글들을 1966년에 나겔 출판사가 다시 모아서 이 제목으로 나온 것이다. 즉 작품은 메를로퐁티가 이미 발표한 논문을 모아서 다시 낸 것이다. (44MLH)]
[쥘리아가 말한 선험적 인간(Homme transcendantal)이란 작품도 fr.Wiki 속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보기에 “인간”에 관한 자료로서는 인간과학과 현상학(Les sciences de l'homme et la phénoménologie, 1975)으로 제작된 자료집에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잡지Action(1946, 74호)에 실린 「Le culte du heros」(1946)에서 영웅과 인간을 다룬 글이거나, 학술지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1947, 52호)에 실린 「La métaphysique dans l'homme」일 수 있다. 또 제네바 국제학술회의 논문인 「La connaissance de l'homme」(1951)는 기호들(Signes 1960속에 「L'Homme et l'adversité」로 다시 실려있는데, 이 글과 연관일 수도 있다. (44MLH)]
은유 métapho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4.(P.304)
그리스어 동사 메타페로(μετα-φέρω)는 나르다, 운반한다는 뜻이다. 메타포라(μετα-φορά) 운반함, 운반(transport)란 명사에서, 은유(메타포 métaphore)라는 말이 나왔다.
어떤 사물의 의미를 이미지를 통해서 표현하는 상징적 표현을 의미한다.
베르그송은 모든 정신적[영혼적]이고 생명적 실재성에 대한 이해는 본성상 직관적이며, 이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은유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철학의 형식을 정당화했다. (44MLH) [베르그송이 은유에 속지 말라고 한 것은 실재성의 표면 또는 상징 또는 기호(signe)로 나타나는 측면은 실재성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데카르트가 무한의 경계에 이른다고 하는 그 경계로 기호의 일종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실재성의 한 겉면밖에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 실재성은 직관에 의해서 공감에 의해서, 그리로 타자의 실재성은 들뢰즈가 말하는 공명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44MLH)]
형이상학 (la) métaphysique 자연배후학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4-175.(P.304)
그리스어 메타 타 피지카(μετά τὰ φύσικα)는 자연학(physique 물리학) 뒤에 라는 의미이다. [기원전 1세기경에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두루마리들[저술들]을 정리하면서 이 부분을 그의 자연학 다음에 배치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제일 원인에 대한 인식과 사물의 원리들에 대한 인식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리하여 플라톤 이래로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거의 20세기 동안에 형이상학의 근본문제는 신의 현존과 본성에 대한 문제였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서 형이상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소개되었다.
르네상스로부터, 물리학과 수학이라는 근대과학의 탄생과 발전이 보다 정확하게 표현되면서, 형이상학의 문제는 외적 세계(le monde extérieur)의 문제가 되었다. [고전주의 시대] 형이상학은 특히 우리 정신의 산물들, 특히 수학들이 세계에 실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를 알고자 애썼다. 이 시기는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에서 칸트(Kant, 1724-1804)에 이르는 시기였다. 결국 근대 형이상학은 피히테(Fichte, 1762-1814)와 더불어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에 의해 대표된다. 이 형이상학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로서 인간의 본성과 현존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인간을 정신과 인식으로서 다룰 뿐만 아니라, 행위 주체로서 세계와 인간의 역사 속에 참여 문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그 심층의 본성의 문제(현존과 자유의 형이상학)이며, 타인과의 관계 문제(윤리학, 상호주관의 철학, 사회학)이며, 동시에 인간이 참여하고 있는 역사의 의미의 문제(역사 형이상학)이다. (44MLH)
방법 (la) méthod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5.(P.304)
그리스어 메타(μετά), 길(la voie)와 호도스(ὁδός), 즉 향하여(vers)의 결합으로 “방법”(la méthode)에 관하여 질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탐구에 있어서 따라야 길을 묻는 것이다. 정신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가는 절차[과정]들의 일체를 의미한다. 정신의 방법들은 논리학(la logique)의 첫째 대상이었으며, 논리학은 정신의 자연적 진행방식들 중에서 사유의 일반적인 두 절차를 구별한다. 하나는 “연역”(la déduction)이고 다른 하나는 “귀납”(l'induction)이다. 연역은 일반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으로 결론을 이끄는 것이고, 귀납은 정신은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으로 이행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유의 매우 일반적인 운동들 가운데서, 마찬가지로 “종합”(la synthèse)과 “분석”(l'analyse)으로 구별할 수도 있다.
탐구 방법의 연구와 과학적 인식 방법의 연구는 “인식론”(l'épistémologie)의 대상이다. 과학적 인식방법은 처음으로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물리적 인식의 일반적 이론을 만들고 세 가지 계기를 마련했다. 즉 “사실의 관찰”, “가설의 귀납”, “실험적 검증”이다.
철학적 인식의 방법 또는 반성적 방법은 “변증법”(la dialectique)라고 정의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부터 반대 생각으로 그리고 진리의 인식으로 이끌어 가는 진행(une démarche)이라 정의한다. 참조: 변증법, 방법서설, 인식론. (44MLH)
방법론 (la) méthodolog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5.(P.304)
방법론이란 인식의 다양한 질서들의 방법을 연구하는 논리학의 한 부분이다. 이 연구는 탐구 방법을 발명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적으로 실행되었던 방법들을 서술하는데 있다. 참조 인식론(l'épistémologie) (44MLH)
메이에르손 Emile Meyerson 1859-193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5.(P.304)
폴란드 출신 프랑스 철학자. 1859년 메이에르손은 폴란드(Pologne)의 뤼브린(Lublin)에서 태어나, 1933년(74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독일에서 화학을 공부했으며, 1882년(23살)부터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아바스 통신사(L'agence Havas)의 외국 정치의 기자를 오래 했다가, 1890년(31살)부터 과학들의 철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동일성과 실재성(Identité et réalité, 1908), 과학에서 설명에 대하여(De l'explication dans les sciences, 1921), 상대주의의 연역(La Déduction relativiste, 1925), 사유의 진전(Du cheminement de la pensée, 1931)(3권) 등을 썼다. 그의 주요 생각은 과학적인 설명이 실재적 세계의 모든 자료들을 동일성으로 모으면서 진보한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이성과 실재 사이에서 긴장을 놓치지 않는 비판적 합리주의라 알려졌다. (44MLJ)
환경 (le) milieu 터전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5-176.(P.304)
물리적, 지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environnement) 있고, 또 우리가 그 속에 사는 곳이다.
개인과 환경의 관계 문제는 19세기에는 진화론의 문제 즉 유기체가 물리적 환경에 적응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환경이 유기체에서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자문하였다. 라마르크(Lamarck, 1744-1829) 이론은 환경의 작용을 강조하였고, 이 환경이 유기체를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땅이 조금씩 건조해져서 나뭇잎들이 점점 더 높이 올라갔고, 기린은 6m의 높이에 이르는 잎들을 먹을 있기 위하여 그들의 목과 다리들이 이와 평행하여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는 제시했다.
오늘날 환경은 오히려 사회학적 문제, 즉 개인의 도덕적 지적 발달에 관한 사회적 조건의 영향에 대한 문제이다. 심리학적으로 “발생적”(génétique, 생성적) 모든 이론들은, 개인의 성격의 특별함과 삶에서 그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빈곤, 결손가정 등과 같은) 환경의 역할에 관한 강조한다. 이 이론은 유전(l'hérédité)의 이론과 대립된다. 교육학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정확히 어떤 환경에서 각자가 자기의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고 또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 그 환경을 찾거나 구성하는 것에 관해서이다. (44MLJ)
군사주의 (le) militarisme [군국주의라는 번역은 옳지 않다.]」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6.(P.304)
군대의 힘이 정부를 지지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사용되는 학설과 감정을 말한다.
이 군사주의를 플라톤은 이를 “존엄정”(timarchie)이라 불렀다. 이 용어의 어원은 티메(τίμή), 즉 “두려움”(crainte)에서 나왔다. [티메(τίμή)는 그리스 사전에서는 명예, 존경, 존엄(dignité), 가치, 권위들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쥘리아는 “두려움”(crainte)이라 했다. 존경에는 두려움을 포함할 수 있지.] 다시 말하면, 스파르타의 고대 정부를 생각하면서, 군사적 명예를 존중하는 토대 위의 정체를 말한다. 이것은 “군사 평의회”(junte militaire)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를 “티모크라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중남미의 독재 정권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것들[군사 독재정]은 일반적으로 공포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런 정권들은 민주정(démocratie)에 대립된다. 민주정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시민의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합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독재정은 쿠테타에 근거하지만, 민주정은 보통선거와 인민의 의지에 근거한다. (44MLJ) .
<<참조: 정치학(la politique)(쥘리아,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1988, p.229)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부의 세 가지 유효한 형식을 구별하였다. 즉 왕정(la royauté), 귀족정(l'aristocracie: 어원적으로 최상(최선)의 사람들의 정부라는 의미이다), 민주정(la démocratie)이다. 이것들의 일탈하게 되면, 각각은 전제정(la tyranie), 선동정(la démagogie; 말투로서 인민들에게 아부하는 것으로 족한 정부), 과두정(l'oligarchie, 패거리의 정부)가 된다.(43TLC)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쿠츠만 외2, Atlas de la philosophie, 불어판 1993(독1991) pp. 38-45)에서: 이와 같이 국가의 정체는 귀족적(aristocratique)이다. 즉 최상인자들의 정부 지배 체제이다. 플라톤이 서술한 정체의 순환에서 보면, 귀족정은 [돈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명예를 과장되게 선호하는 척하는 금권정(timocratie)에 의해 전복되고, 이 정부는 잘 인정되고 지내다가, 돈의 영향력이 점점 강하게되는 과두제(oligarchie)의 형태로 전환한다. 이 과두 정체에서는 권력이 소유와 일치한다. 이처럼 이상국가로부터 매우 멀어져 타락된 정부형태에서 부가 중심적 지위를 차지한다. [아테네 몰락과정에서 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이들은 점점 더 부(재산)을 추구하게 되고, 그들이 부에 관심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덕에는 멀어진다.” 그 결과는 혁명을 불러오는데, 왜냐하면 그때까지 재산이 없어서 권력이 없었던 자들이 힘으로 민주정(démocratie)을 얻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서는 무정부 상태가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형태 중에 최악의 형태, 즉 전제정(tyranie)으로 떨어진다. (39RMB-H)>>
밀 James Mill 1773-183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6.(P.304)
스코틀랜드의 역사가, 철학자, 경제학자이다.
제임스 밀은 1773년에 스코틀랜드의 노스워터 브리지(Northwater Bridge)에 태어나서, 1836년(63살) 런던 중심서부의 켄싱턴(Kensington)에서 죽었다.
그는 인간 정신의 모든 현상을 경험과 감각으로부터 도출했던 흄(David Hume, 1711-1776)의 철학을 계승하였다. 즉 감각주의와 경험주의에 속한다. 도덕과 경제학에 있어서 그는 행복을 제공하는 것은 선하다고 하는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공리주의를 발전시켰다. 정치경제학 개요(Elements of Political Economy, 1821; Principes d'économie politique), 인간정신의 현상분석(An Analysis of the Phenomena of the Human Mind, 2 v., 1829; Analyse des phénomènes de l'esprit humain) 등을 남겼다 그는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그의 맏아들이다.] (44MLJ)
밀 John Stuart Mill, 1806-187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6.(P.304)
실험학파에 속하는 영국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이다.
스튜어트 밀은 180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73년(67살)에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Avignon, Vaucluse 84)에서 죽었다. [그가 러셀(Bertrand Russell)의 대부였다.] 그는 정치경제학 개요(Elements of Political Economy, 1821)을 쓴 중요한 경제학자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의 아들이다. 스튜어트 밀은 우선 신문언론(Journalisme)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여행자(Traveller), 웨스트민스트 지(Westminster Review, 에딘버러 지(Edimburg Review) 검토(Examier)에 글을 썼다. 1865년(59살)에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철학은 흄(David Hume, 1711-1776) 철학과 17세기 경험론에 결부되어 있다. 그는 논리학에서 아주 독창성있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추론의 이론과 실험 절차의 이론은 유명하다. 즉 실험절차의 네 가지는 존재표, 부재표, 변양표, 공변표이다. [방법으로는 일치의 방법(méthode de concordance), 차이의 방법(méthode des différences), 잉여의 방법 (méthode des résidus), 공변법(méthode des variation concomitantes) 이라 한다. 지식과 이성(프랑스 고교철학 3: 위스망과 베르제즈)(남기영 번, 215)(34PLF)] 도덕적으로 그의 경험론은 행복을 도덕의 최고 목적으로 삼는 공리주의(l'utilitarisme)를 발전시켰다. 그의 정치학은 자유주의(libéral)의 정치학이다. 이것은 개인주의 원리를 욕망하는 것인데, 약자와 특히 여성을 위하여 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
그 덕분에 귀납과 연역 논리체계(A System of Logic: Système de logique inductive et déductive, 1843; Système de logique inductive et déductive), 정치 경제학의 원리들(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1848; Principes d'économie politique), 자유론(On Liberty, 1859; La Liberté), 대의 정부(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 1961; Le Gouvernement représentif), 공리주의(Utilitarianism 1861; L'Utilitarisme), 오귀스트 꽁트와 실증주의(Auguste Comte and Positivism 1865; Auguste Comte et le positivisme), 해밀턴 철학의 검토(An Examination of Sir William Hamilton's Philosophy 1865; Examen de la philosophe de Sir William Hamilton), 자서전(Autobiography of John Stuart Mill 1873: Autobiographie) 등을 읽을 수 있다. [참조: 영국의 여성해방사상 기념비적 문헌이 된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 1869)도 있고 종교에 관한 에세이 3편(Three Essays on Religion, 1874)도 있다. (44MLJ)
(사진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존 스튜어트 밀: 한 쪽 차지. [까뮈, 데카르트, 칸트, 밀, 소크라테스 만이 한 쪽을 차지했다. - 기준이 모호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섯 명을 고른다면, 소크라테스, 스피노자, 루소, 맑스, 베르그송 일 것이다.(44MLJ)]
기적 (le) miracl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8.(P.304)
어원은 라틴어 동사 미라리(mirari)에서 나왔으며, 스스로 놀라다(s'etonner)를 의미한다. [미로르(miror, -ari)에서 형용사 미루스(mirus -a -um) 명사 미라티오(miratio -onis)]
데카르트 시대에도 무지개의 사실을 설명하지 못해서,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으로서, 즉 신적 표출로서 간주했다. 이런 의미에서 기적의 영역은 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원자 시대는 물체들의 변질(transmutation, 핵의 전환)을 설명한다.
그러나 종교적 관점에서, 진실한 기적은 외적기적이 아니라, 그것은 은총의, 참회의, 정신적 개종 등의 내적 기적이다. 종교적 엄밀한 의미에서 기적의 현존과 비현존은 과학에서 말하는 비결정의 진행과 어떤 연관도 없을 것이다. (44MLJ)
동인 (le) mobile 동기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8.(P.304)
행동하게 밀어붙이는 충동(l'impusion)을 의미한다.
이 충동은 생각, 감정, 관심 등으로부터 올 수 있다. 사람들은 동인(le mobile)과 동기(le motif)를 구별한다. 동인는 행동의 실재적 원인이며 무의식적일 수 있으나, 동기는 그 행동의 공공연하게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기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권력 추구”(recherche du pouvoir)는 정치적 행동의 동인일 수 있는데, 기원하는 동기가 “국민에게 헌신”(dévouement)일 때 그러하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동인은 감정의 질서이고, 동기는 합리적 질서이다. 진실한 도덕적 행위는, 칸트에 의하면, 합리적 동인일 수 있다. 그때 개인은 도덕법칙을 위한 의무에 의해, 즉 순수 존경에 의해 오로지 행해질 경우이다. (44MLJ)
양상 (la) modall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8.(P.304)
판단의 특별한 형식이다.
우리들의 판단이 실재적인 단순사실[현존-비현존]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진술적(Assertoriques)이며, 개연적[가능-불가능] 가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문제적(Problématique)이며, 필연적[필연-우연] 법칙을 말한다는 점에서 필증적(Apodictiques)이다. 예를 들어 “날씨가 좋다”는 진술적 판단이며, “날씨가 좋다면 나는 외출할 것이다”는 문제적 판단이며, “둘 더하기 둘은 (필연적으로) 넷이다”는 법칙을 표현하는 필증적 판단이다. 실재[현존], 개연[가능], 필연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가능한 세가지 양상이다. 참조: 브룅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의 판단의 양태(Modalié di jugement 1897) (44MLJ)
풍습 les moeur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8.(P.304)
풍습이란 한 사회적 집단에 공통인 습관, 감정, 신념(la croyance) 등을 의미한다.
풍습과 사회적 습관은 전통에 근거한 권리(le droit, 법)의 첫 형식 즉 관습법(le droit coutumeir)을 구성한다. 이에 비해 법학자(le juriste)는 오늘날 한 사회의 풍습이나 편견에 의해 실질화 되어 버린 상식적 도덕(morale commune)에 호소한다. 뒤르켕(Emile Durkheim, 1858-1917)의 표현인 “풍습들의 과학”으로서 사회학은 한 사회의 개인들에 의해 표현된 도덕적 신념들을, 그리고 사회적 관계들의 실행자체에 함축되어 있는 신념들을, 구별하는 데 있다. 이처럼 사회학은 (사회적 위상학으로서) 몇몇 문화적 전형들로 특징지울 수 있고, 또 합리적이고 방법적이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조건에서 사회적 진화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은 “합리적 도덕 기술”(l'art moral rationnel)이라 이름지었고, 이 방식은 물리적 세계의 과학들을 규제하는 실험적 방법들을 사회적 사실들에 적용하는 것이다. (44MLJ)
자아 (le) moi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8.(P.304)
자아란 개별적 주체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자아”(le moi)란 본능적 경향성들 즉 그것(ça, Id)와 우리 속에 현재하는 사회적 의식, 즉 초자아(sur-moi, Superego) 사이의 균형이라 정의한다. 개인적 욕망들과 사회적 필연성의 감정 사이의 이 균형은 한 의미(sens, 방향)에서 또는 다른 의미(방향)에서 변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자아”(le moi)의 연구는 내성(l'introspection) 또는 직접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라슐리에(Jules Lachelier, 1832-1918), 라뇨(Jules Lagneau 1851-1894), 알랑(Alain, 1868-1951) 등의 철학에서와 같이 프랑스의 반성철학은 자아의 심리학적 분석을 형이상학적 분석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애썼다. 이런 천착의 원칙은 개인의 의식적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그 사실로부터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인 의미작용(signification)을 분간해 내는데 있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에서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아(moi social)인 심리학적 자아로부터 형이상학적 자아로 즉 지속의 경험에 동일한 심층 자아(moi profond)로 이행을 생각했다.
철학에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아는 모든 명상의 원리이다. 이것은 진리들이 우리에게 상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진리들이 개방(l'ouverture)에 따라, 지적 형성에 따라, 우리 “자아”의 풍요함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일반적으로 비판적 관념론 등의 ‘자아의 철학’에서 지도 이념이다.(43ULI)
몰쇼트 Jaccobus Moleschott 1822-189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8.(P.304)
몰쇼트는 네델란드의 생리학자, 유물론 철학자이다. 그는 네델란드 브라방(Brabant-Septentrional)지방의 브와 르 뒥(Bois-le-Duc)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1893년(71살)에 로마에서 죽었다. [그는 음식과 식이요법에 대한 글이 있다] (44MLJ)
몰리나 Luis Molina 1535-160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78-179.(P.304)
스페인 제수이트 수도사이다.
몰리나(Luis de Molina)는 1535년 스페인 중부 카스틸(Castile-La Mancha)지방의 쿠엔카(Cuenca)에서 태어나, 1600년(65세)에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그는 1553년(18살)에 알칼라(Alcala)에 제수이트 교단에 들어갔다. 그는 코임브라(Coimbra)에서 그리고 에보라(Evora)에서 가르쳤다. 1587년(52살)에 쿠엔카에 은퇴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학강의를 출판했다. 이 강의록에서 그는 신의 예지(prescience)와 은총의 필연성을 인간의 자유와 화해시키려 애썼다. 은총과 신의 전지전능을 부정함이 없이, 몰리나는 우리가 내적으로 노력하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1588년에 은총과 신의 예지와 함께 하는 자유 의지(De liberi arbitrii cum gratiae donis, divina praescientia, praedestinatione et reprobatione concordia, 4 vo., 1588)의 출판되자마자, 이 체계에 대하여 옹호자와 격렬한 반대자로 나뉘었다. 전자에는 몰리나주의자로서 예수 동반회(Compagnie de Jésus)의 대부분의 신학자들이며, 후자에는 스페인 도미니크파들과 쟝세니스트들이다.) 클레멘스 8세(Clément VIII, lat. Clemens VIII, 1536-1605, 재위: 1592-1605)와 파울루스5세(Paul V, lat. Paulus V, 1550-1621, 재위 1605-1621) 교황들에 의해, 몰리나주의를 분석하고 재판하기 위해 이 주제를 때문에 조직된 “교리청”(congrégation)은 면소(免訴)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44MLJ) [그러면, 스페인 도미니크파와 프랑스 쟝세니스트가 당할 것이다. 스페인 도미니크 파에 브루노(Bruno, 1548-1600)는 1592년 체포당하고 1600년에 화형 당한다.(44MLJ)]
단자 la monad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단자란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의 체계 속에서 경향성과 지각을 부여 받은 단순한 실체를 말한다.
매우 일반적 방식으로 개별적인[개체적인] 모든 의식은 단자(모나드)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단자는 욕망들을 소유하고 또 세계에 관한 독창적 관점을 소유한다. (44MLJ)
단자론 (la) Monadologie 171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가 1714년(68살)에 프랑스어로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주의 일반적 개념화와 “예정조화”의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44MLJ)
세계 (le) mond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세계란 현존하는 모든 세계 일체를 일컫는다. [세상은 삶의 세계라 칭하자.]
세계란 개념은 18세기까지 또는 칸트(Kant, 1724-1804)에까지는 신에 대립되는 피조물 일체를 지칭하며, 오늘날에는 근본적인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내가 물질적 세계와 인간 세상으로 구분하자는 것과 같다.]
1. 물리적 우주를 구성하는 대상들 일체이다. 그것은 물질 세계이며, 과학의 대상이다.
2. 인류를 구성하는 인간 관계들 일체이다. 이것은 물리적 세계와 대립하는 “현존적”(existentiel, 실존적) 의미에서 세상이다. 즉 한다. 이것은 칸트에서 인간관계의 세상이며, 모든 [인간] 관계들이 도덕적이고 순수히 합리적인 의도를 표현한다는 가설에서 칸트는 “예지적 세계”(le monde intelligible)이라 명명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철학에서 “세상”(le monde, die Welt)이란 개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빛(계시) 일반의 의미에서(즉 물리적 빛만큼이나 정신적 빛이라는 의미에서) 주체에 열려(l'ouverture)있기 때문이고, “땅”(la terre)의 어둠(l'obscurité)에 대립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땅은 자연적이고 역사적 환경 속에서 존재의 정착(l'enracinement)을 지칭한다. (44MMA)
의지로서 세계와 표상으로서 세계 Monde comme volonté et comme représent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의지로서 세계와 표상으로서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가 1818년(30살)에 쓴 작품이다. 이 책을 1889년에 뷔르도(Auguste Burdeau, 1851-1894)가 불어로 번역하였다. 쇼펜하우어는 여기서 두 개의 생각을 전개하였다. 1. 우리 인식의 대상인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오직 우리의 표상으로서만 환원된다. 2. 실재성 자체로서 우리들의 인식을 넘어서, 세계의 실체가 있다. 이 실체는 맹목적 “삶의 의지”(vouloir-vivre)이며, 무의식적이고 보편적이다. [베르그송은 이 후자를 맹목적인 것으로 하급으로 간주하지 않고, 기억총체로서 경험적으로 쌓인 것으로 직관의 권능을 지닌 것을 권위를 부여했다.]
이 삶의 의지는 식물이 커나가는 성장 속에서 , 동물들의 삶에서 투쟁 속에서, 광물질의 항상성 자체 속에서 표현된다. 인간만은 자신이 만든 잘못을 의식하면서 또한 자기 스스로를 부정할 줄 안다는 점에서 이 삶의 의지에 승리했다. 이런 생각은 힌두교의 요가에 의해 영감을 받은 금욕적 과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44MLJ)
일원론 (le) mo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물질 또는 정신, [이들 중에 하나 만이] 유일한 실재성(réalité)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적 체계를 말한다.
사람들은 맑스(Karl Marx, 1818-1883)의 유물론적(matérialiste) 일원론과 헤겔(Hegel 1770-1831)의 유심론적(spiritualiste) 일원론을 대립시킨다.
신을 자연(nature)과 동일시하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의 체계에 대해, 사람들은 때로는 그 철학자가 신과 동일시했던 자연(Nature)의 관점에 서서, 유물론적 해석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모든 자연적 실재성에 관여하는 신의 관점에 서서, 유심론적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원론은 우리의 의식과 세계 사이에, 정신과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보이는 본성상의 차이를 제거한다. 반대개념: 이원론(dualisme), 다원론(pluralisme). (39WKJ)
단일관념편집증 (le) monoïdéisme
[이것은 최면에 관한 이론이며, 스코틀랜드 외과의사 브레이드(James Braid, 1795-1860)가 과학적 이론의 기초를 놓았다고 한다.]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79.(P.304)
정신이 지배적인 관념에 의해 몰입되는 의식의 상태이다. [우리말로 한곳에 집중하여 정신팔림이다.]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는 이것을 “정신집중 상태”라 묘사했다. 사실상 이 집중은 간단한 한 주제에 다양한 관념들의 탐구이다. [스코틀랜드 외과의사] 브레이드(James Braid, 1795-1860)와 쟈네(Pierre Janet, 1859-1947)는 단일관념편집증에서, 의식의 영역이 특별하게 축소되는, 최면(l'hypnose)의 어떤 현상을 보았다. 반대의미는 관념분산증(polyideisme)이다.
유일신앙 (le) monothé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79-180.(P.304)
유일신을 믿는 신앙.
유일신앙은 종교의 가장 정교한 상태를 표시한다. 유일신앙의 첫 종교는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 gr. Aménophis III 재위 1390-1352경, 18왕조 9대 파라오) 통치하의 이집트에서 실행되었다. [요즘은 아메노피스 4세(Amenhotep III gr. Amenophis IV) 즉 아크나톤(Akhnaton, 재위 1377-1358 av. J.-C.)왕의 부인은 네페르티티(Nefertiti)와 통치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긴다.] 아멘호탭3세는 사원들의 기둥들의 형상적 동기들을 벗겨냈다. 예를 들어 룩소르(Luxor)사원에 있는 형상들을 걷어냈다[고 한다]. [현재도 룩소르의 기둥들은 남아있고, 카르낙의 스핑크스(사자)와 룩소르의 스핑크스(파라오) 등도 남아있다.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유일신앙은 유태인민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신의 모든 형상과 종교적 상질물을 제거한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보다 더 유일신앙이다. 카톨릭은 신의 삼성(三性, trinité)을 주장하고, 교회에 성상들과 이미지들 채우고 있다. 이에 대해, [마호멧교] 무슬림(musulmanes)의 학파들은 카톨릭을 세 신들로 된 종교로 소개한다.
사람들은 다신론을 물신주의(fétichisme)와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44MMA)
몽테스키외(Charles 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ède et de Montesquieu, 1689-175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0.(P.304)
몽테스키외는 프랑스 작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1689년에 옛 기엔(La Guyenne) 지방, 현재 보르도 부근의 아끼뗀(Aquitaine)지역의 브레드(La Brède)성에서 태어나서 1755년(66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1708년(19살)에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1714년(25살)에 보르도 의회 의원이었고, 1727년(38살)에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정치과학의 기초자로서 생각한다. 그는 이 정치과학을 도덕적 신학적 검토들로부터도 또한 인간 “본성”(nature)의 형이상학적 검토로부터도 보호하고자 했다. 그의 주요 작품은 1734에서 1748년 사이에 14년에 걸쳐서 작업한 것으로 법의 정신(L'Esprit des lois, 1748)이란 제목으로 되어있다. 그는 법률을 사회적 실재성들[현실들] 사이에서 “단순 연관”(simples rapports)들로서 실증적으로 고려한 첫 학자이다. 법의 “정신”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 정신은 “종교의 분위기, 정부의 규정들(maximes), 과거 일들의 표본들, 풍습들, 방식들.. ” 등의 만남으로부터 태어난다. 그는 정부 형태의 이론을 세 가지 중요한 전형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이다. 그는 한편으로 이성에 의한 공화주의자이며, 감정으로는 군주주의자 이었다. 그의 저술로는 종교에서 로마인들의 정치(Dissertation sur la politique des Romains dans la religion, 1716), 페르샤인의 편지(Lettres persanes, 1721), 로마인의 흥망의 원인에 관한 고찰(Conside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s décadence, 1743), 법의 정신의 옹호(La défense de “L'Esprit des lois”, 1750) 등이 있다. (44MMA)
도덕론 (la) moral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80-181.(P.304)
도덕론은 인간 행위에 대한 선(착함)과 규칙들에 관한 학문이다.
도덕론은 고대에서는 (소크라테스 경우) 인간과학으로서 자연학(la physique)에 대립되고, (이오니아 학파의 경우) 자연 과학(la science de la nature)에 대립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즉 도덕론은 인간의 진실한 운명(destination)의 물음에 응답한다. 따라서 도덕론은 가장 직접적으로 개인들 각각에 관심을 갖는 철학의 일부분이다.
자유 행위든 반성 행위든 그 행위의 목적이 가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또한 그 행위는 도덕적 반성이나 결심을 가정한 것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 반성하자마자, 또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할 때, 우리는 도덕의 문제를 제기한다. 철학사 속에서는 이 문제에 두 가지 일반적 해결을 받아들인다. 첫째 해결에서 인간의 최고 목표는 행복(le bonheur)이다. 에피큐로스 주의자와 영국의 공리주의자의 경우이다. 둘째 해결에서 최종 목표는 덕성(la vertu) 또는 의무의 실천이다. 스토아학파와 칸트의 도덕론의 경우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쓰기를, 도덕적 인간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할 만한 자격(mériter)이 있는 사람이다. 모든 도덕은 이 자격(le mérite, 공로)에 있다. 결국 한 행위의 도덕성은 행위자체의 연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행하는 방식에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세상에서 선택의 지위를 사기를 바라면서, 이해관심(l'intérêt)에 의해 동냥을 줄 수 있거나 또는 동정(la pitié)이 유발하는 감정에 의해서 있을 수도 있다. [동정과 연민은 이해와 무상만큼이나 다르다. 저자는 무상이 아니라 원칙이라 하는데 그 원칙은 없다. 무상보시가 세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44MMA)] 사실상, 도덕적 인간은 계산 또는 감정에 의해 가난한 자들을 돕는 자가 아니라, 원칙에 의해 실천하는 자이다. 인간적 품행이 합리적 원칙(principe)과 의지적 실처의 표현일 경우에만 도덕적이다.
오늘날 도덕론은 보다 더 특별하게 타인(autrui)과 관계의 이론으로 즉 “소통”(communication)의 이론으로 표현된다. 이에는 부버(Martin Buber, 1878-1965)와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 1906-1995)가 있다. [이 두 유태인은 스피노자와 다르다] 인간이 도덕적 가치의 경험을 기원적으로 하는 것은 얼굴(visage)과 무매개적 관계 속에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타인의 시선을 파악하는 것은 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백인이 흑인에게 폭력을 행하거나, 기독교인이 타 종교인에게 행한 폭력은 얼굴을 안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도덕론은 존재론에서, 다시 말하면 실재성의 이론에서 기록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그 철학자[칸트??]가 기본적 의무들을 자연적으로 연역하고 나서 가치이론을 기초하는 것과 애썼던 자기 의식의 내부 분석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적 “사실들”(faits)의 서술이다. 참조: 소통, 역사적(historique) (44MMA)
참조 도표**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1.(P.304)*
도덕 la morale
(삶의 목표에 대한 과학, 행위의 원리에 대한 과학)
■선(善)의 도덕 (morale du bien): 인간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다.
∙쾌락주의(hédonisme): 신체적 행복 : 아리스티포스
∙에피쿠로스학파(épicurisme): 행복은 우리 정신 능력의 경험으로부터 결과한다.
스토아학파(stoïcisme): 행복은 선(善)의, 특히 정의와 절제의, 실천으로부터 결과한다.
■의무의 도덕 (morale du devoir): 인간의 최종목표는 덕성이다.
▪칸트: 도덕 행동은 의무의 존경에 의해 이루어진 행동이다.
∙감정의 도덕: 선한 행위는 공감을 자극하는 행위이다. - 아담 스미스
영감의 도덕(morale de l'inspiration): 선한 행위는 우리의 고유한 본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행위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임무들만이 열망을 자극한다. (피히테와 베르그송) (44MMA)
모어 Thomas More 1478-1535 [카톨릭은 1886년에 칭호 saint Morus ]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1.(P.304)
영국의 인문학자이다. 토마스 모어는 1478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535년(57살)에 같은 곳에서 죽었다. 그는 1529년(51살) 영국의 대법관이었다. 그는 왕의 권능을 재생시키기를 원하지 않아서, 처형 당했다. [그 왕은 영국왕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 재위 1509-1547)인데 6번 결혼했다.] 유토피아(Utopia 1516; Utopie)를 썼다. (44MMA)
죽음 (la) mort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81-184.(P.304)
죽음은 삶의 결정적인 단절이다.
모든 철학은 소설가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tch Pastenak 1890-1960)가 말했듯이 “죽음과 운명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거대한 노력”이다. 어떻게 죽음의 생각이 현재 나타나는가?
죽음의 감정 le sentiment de la mort
만일 자연이 인간에게 죽음의 정확한 시간과 날짜를 알릴 본능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베르그송이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말하듯이, 그 결과로 모든 의지적 행위와 모든 삶의 기본 욕망을 무화할 수 있는 완전히 의기소침한 감정을 낳았으리라. 그러므로 자연은 죽음의 정확한 순간을 알아맞히도록 우리에게 허락하는 본능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의 관념[생각]은 정확한 생각이 아니라, “고뇌”(angoisse, 번민)라는 비결정적 감정이다. 두려움(peur)이 정해진 대상(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 즉 사자(lion) 등등에 대해 두려워한다)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죽음에 대해 두렵다(avoir peur)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고뇌[번민]은 정해진 대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고 잠재적인 현전이며, 영속적 가능성이다. 질병, 외적인 위험, 유기체의 피로 등은 [번민의] 영속적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들이다. 사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죽음 관념이 우리 속에 있다는 현전방식은 지성의 훈련에 의한 신호이자 증명일 뿐이다. 죽음의 [항시(恒時)] 현전은 일반적으로 무능(inaction)의 진저리[지겨움]에 시달리게 하며, 이 지겨움 그 자체는 반성의 출발점이다. 모든 사상가들은 자연적으로 반성의 훈련과 더불어 죽음 즉 고뇌(번민)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갔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을 이어받은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하이덱거(Martin Heidegger, 1889-1976)와 같은 사상가들은, 유기체적 삶(vie organique)과 인간적 존재(existence humaine) 사이를 구별했다. 이 들은 존재를 삶 보태기 죽음 의식이라 정의했다. 동물은 안되고, 인간만이 죽음의 고뇌를 인식할 수 있다. 인격성의 발전에서, 죽음의 고뇌는 소년기 14세 경에[중등학교 입학시기] 자기에 대한 반성이 생길 때 나타난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죽음의 관념을 벗어나기(fuir)위해 행동 속에 던져져 있는데(se jetter), 반대로 이 죽음 관념은 모든 철학적 반성(Platon, Helgel, Heidegger)을 호위하고 또한 둘러싼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는 죽음을 최후의 심판의 순간으로 생각한다. 묵시록(Apocalypse)으로 몇몇 이행은 이 [최후] 심판이 인류의 마지막에만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때에, 사실상 우리를 벗어났거나 여전히 변하고 있는 행동의 귀결 즉 세상에서 행한 우리의 행동의 마지막 귀결을, 결정적 방식으로 그 정도에 따라, 심판을 할 것이다. 크리스트교에서 신체의 죽음은 정신이 신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서 해석된다. 사람들은 불멸성에 두 개의 전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개인적 영혼의 불멸성이며 (플라톤과 크리스트교 교리에서 불멸성), 다른 하나의 불멸성은 개인적 영혼이 보편적(우주적) 총체 속에 해체되면서 이루어지는 불멸성이다. (스피노자에 의해 주장된 비인격적 불멸성)
그러나 사실상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여기에 있는 한 죽음은 없고, 죽음이 도래했을때는 사람은 여기에 더 이상 있지 않다.”
[내가 이 삽화들을 번역한 것은 한 항목에 삽화 셋이 들어간 것이 아마도 이것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설명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2.(P.304)
버그만(Ingamar Bergman 1918-, 스웨덴 영화감독)의 「일곱 번째 인장(Septième Sceau)」(1956)의 영화 한 장면: 기사와 죽음 유령(spectre) 사이에 장기 한판 두는 장면이다. 죽음의 어둠은 생명을 돋보이게 한다.
그림 설명2: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3.(P.304)
그레꼬(Greco, Domenikos Theotokopoulos 1541-1614, 크레타 출신 스페인 화가)의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Enterrement du comte d'Orgaz)」(1586, 톨레드의 산토토메(Santo Tomé) 교회에 소장) 사람들은 오르가즈 백작의 죽은 유해를 보고, 또한 그 위에 하늘에서 재탄생을 본다. 죽음은 재탄생(renaissance)이다.
그림 설명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4.(P.304)
1963년 한 스님이 사이공에서 스스로를 불태웠다. [법신공양(法身供養): 베트남 우파 정치가 한 사람이 이 사건을 ‘인간 바비큐’라고 표현했다가 세계적 비난을 받았다.]
죽음 감정에 대한 반작용들
우리의 개인적 생애를 한정 지운다는 감정은 자연적인 반작용이다. 개인은 자기를 넘어서 영속하고자 원한다. 알끼에(Ferdinand Alquié, 1906-1985)는 자식을 갖고자 하는 욕구(besoin)는 “영원의 욕망”이라 한다. 이 말은 그의 작품 영원의 욕망(désir d'éternité)의 제목이기도 한다. 개인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은 종(種) 속에 영속된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Karl Marx, 1818-1883)에 따르면, “죽음은 개인에 대한 종의 힘든 승리로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영원의 욕망은 역사적 작품 즉 문화적 작품, 예술적 작품, 정치적 작품 등에서 표출된다. 작품은 개체(개인)의 영속성을 확신해 주고, 또한 역사는 영웅을 영원히 살게해 주는 최후의 심판이며, 생애동안에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자를 망각 속에서 묻어버리게 하는 최후의 심판이다. 역사의 종교는 헤겔 철학의 원리이다. “세계역사는 세계 심판이다(Weltgeschichte ist Weltgerichte)”
그러나 이러한 것을 반성해보면, 수 천만 년 전[인류 500만년전 루시 이후]에 태어났던 인류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생명의 정의(définition)이다. 인간 종과 인류 역사는 그 자체 제한되어 있다. [인간 종 이전의] 전사(une préhistoire)가 있고, 또한 [인간 종 이후] 후사(âge posthistorique)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개체의 삶처럼 죽음도 그때 절대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인간에서 현재의 삶을 넘어서 삶의 진리는 없다. 그래서 플라톤(Platon, 427-347 av. J.-C.),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라이프니츠(Gottfrid Leibniz, 1646-1716),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등은 인간의 운명이 삶에서 자기 자신의 총체적 현존에 있다고, 또한 최대한의 활동성에 있다고 판단했다. 총체적으로 삶의 의지란 죽음 정서에 대한 반작용이며, 까뮈(Albert Camus, 1913-1960)가 지적한 것처럼, 생을 향유(jouir)하는 과도한(immodéré)속에서 표현된다. 감각적 향유(jouissance)는 인간 전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대부분의 철학자가 인정하기를, 인간전체가 자기 자신에 현존은 - 신체적이고 지적인 면이든지 간에 - 지적 작업에서 완성될 수 있고, 작품의 정신적 창조는 소위 말하는 철학적 반성에서(스피노자, 피히테, 헤겔)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것은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의 의지와 상황이 우리에게 부여한 길에서 최대한 잘 행동하는 것이고, 자기 작품과 작업을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별적 현존, 현실적 결정, 효과적 행위, 정신적 창조의 계기를 넘어서, 문제제기적인 역사(이야기)가 있다 또한 죽음에 관한 한 생각할 수 없는 무(néant)가 있다. (39WKA)
[참조: 플라톤(Platon)의 대화편 파이돈(Phédon)에서, 철학한다는 것, 그것은 죽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philosopher, c'est apprendre a mourir) / 스피노자 윤리학 제4부, 명제 67. 자유인(Homo liber)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vitae meditatio)이다.(44MMA)]
동기 (le) motif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4.(P.304)
이유(raison)이다. 이런 이유를 통하여 우리가 우리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 동기는 동인(le mobile)에 반대된다. 동인은 우리 행동의 실재적 원인이다. 이 원인은 우리 행동을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동기는 의식적 이유이며, 우리가 행했던 것에 대해 사회적 정당화이며 종종 회고적 정당화이다. 반면에 동인은 무의식으로 남아있는 감정이자 애정적 상태이다. (44MMB)
생동성 la motric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4.(P.304)
살아있는 존재에게 고유한 운동 기능들의 일체를 의미한다. 생동성은 지각과 감관 기능에 대립된다. [생동성은 신체가 행위하는 방향이고 감수성은 신체가 외부로부터 감관과 표면 일체(지각)를 통해 받아들이는 방향의 활동이다. 이 두 활동은 동등하지도 동일한 길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기호는 생동성의 길에서 나온 여러 양태들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생동성을 세 가지로 구별한다. 하나, 반사적 생동성(la motricité réfléxe)은 전적으로 의지와 독립적이다. [조건반사의 신경경로를 생각할 수 있다.] 둘, 자동적 생동성(la motricité automatique)에서는 의지가 연속적 자동운동을 촉발하기 위해서만 개입한다. 즉 걷는다, 삼킨다 등이다. [통상적으로 의식이 주도하지 않는 현재의 습관적 행위를 위한 근육 또는 생리적 운동경로를 말한다.] 셋, 의지적 생동성(la motricité volontaire)에서는 각각의 몸짓이 실행되기 이전에 사유된다. [의식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신경경로이다.] 이 용어는 심리학적 언어라기보다 오히려 생리학적 언어이다. (44MMB)
무니에 Emmanuel Mounier 1905-195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5.(P.304)
프랑스 철학자 작가이다. 무니에는 1905년에 론 알프스(Rhône-Alpes)지방의 이제르(Isère 38)주의 그르노블(Grenoble)에서 태어나 1950년(45살)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지방의 오뜨 드 센(Hauts-de-Seine 92)에서 죽었다.
그는 [베르그송(Henri Bergson)과] 페기(Charles Péguy)를 읽고서 크리스트교와 사회주의를 종합하려는 생각을 했으며, 그 종합을 “인격주의”(le personnalisme)라 명명하였다. 이 원리는 “물질적 필연성보다 또 인격의 발전을 지탱해주는 집단적 장치보다 인간 인격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 철학자는 실재적인 삶과 역사 속에 참여해야 만 했다. 무니에가 그 당시에 대학을 떠났고, 1932년(27살)에는 잡지 정신(Esprit)을 창간하기 위하여 교육에 대한 약간의 추상적 임무를 거부하였다. 그에게 두 가지 격률(maximes)이 있다. 하나는 인격의 각성을 의미하는 “자기 자신이 되자”(d'être soi-meme)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는데 힘쓰자는 공동체적 삶의 교육에 과한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 인격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혁명(Révolusion personnaliste et communautaire, 1935), 크리스트교의 대립(Affrontement chrétien, 1944), 조건들 아래의 자유(Liberté sous conditions, 1946), 성격론(Traité du caratère, 1946), 인격주의란 무엇인가(Qu'est-ce que le personnalisme? 1947), 여러 실존주의들 입문(Introduction aux existentialismes, 1947), 인격주의(Le Personnalisme, 1949), 절망자들의 희망(Espoir des désespérés, 1953), 신앙의 참여(Engagement de la Foi, 1958) 등이 있다.
돌연변이 (la) mut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4.(P.304)
유기체에서 갑작스런 변이(variation)로서, 이것은 단번에 유전에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 돌연변이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개체들에서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것으로, 종종 외관적 원인 없이 일어난다. 돌연변이는 유전자들와 염색체들의 변양(modificaiton)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1894년에 “달리아”(Dahlias) 꽃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 달리아 이야기는 en,fr.Wiki에 안나온다. 왜 초파리 이야기가 아닐까?] 돌연변이의 종들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을 돌연변이설(mutationisme)이라 명명되었다. 이 학설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와 바이스만(August Weismann, 1834-1914)에 의해 토대가 마련되고,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의 법칙들에 부합하여, 드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에 의해 발전되었다. (멜델은 염섹체 돌연변이에 의해 획득된 유전형질의 유전을 제시하였고, 환경의 접촉에서 획득된 신체적 형질의 유전을 거부하였다)
돌연변이설이 실제적으로 과학적 기초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돌연변이설은 넓은 의미에서 우연에 동의하며, 종의 일반적 진화라는 “정향진화”(orthogénétique)의 형질을 설명하지 못한 체 남아있다. 다시 말하면, 종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항상 진화하는 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라마르크주의 또는 다윈주의도, 돌연변이설처럼 진화의 메카니즘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44MMB)
불가사의 (le) mystè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5.(P.304)
인간의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마르셀(Gabrel Marcel 1889-1973)은 “문제”와 “불가사의” 사이에 암시적인 구별했다. 문제(le problème)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분석되고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이에 비해 불가사의(le mystère)의 이해불가능성은 정의할 수 없는 전체적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문제를 규정하고, 불가사의를 예감한다. 이런 대립은 “설명되지 못함”(l'inexpliqué)과 “설명될 수 없음”(l'inexplicable)의 대립과 같다. (44MMB)
신비(학) 또는 신비주의 la mystique ou le mystic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85-186.(P.304)
감정과 직관에 근거한 학설과 믿음.
신비주의(le mysticisme)는 감정만이 우리를 무한의 관념에소 고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이성은 언어적 창조를[말로서 만든 것을] 통한 우리를 착각과 인위의 세계에 가둔다고 한다. 신비주의는 계시주의(l'illuminisme)와도, 또 직관주의(l'intuitionnisme의 어떤 자의적 형식과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성자 쟝 들라 크르와(Saint Jean de la Croix, 1542-1591)이래로 신학자들은 진실한 신비학이 극히 정확한 기술(technique)과 엄격한 준비를 요청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것을 감정의 아무런 것인 듯한 무질서와 혼동해서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개인을 신성 속에 무화의 경지로 이끄는 “부정적 신비”와 반대로 신적인 빛 속에 자기 자신의 충만한 성숙의 경지로 인도하는 “긍정적 신비”를 구별한다.
사람들은 신비가들 가운데 특히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와 뵈메(Jacob Böhme 1575-1624)를 주목할 수 있다. 이들은 독일 문화와 철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자연에 대한 독일 낭만주의 철학에, 즉 노발리스(Friedrich von Hardenberg, Novalis 1772-1801),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 1743-1819),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등에게 영감을 주었다.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Sainte Thérèse d'Avila, 1515-1582)와 성자 쟝 들라 크르와(Jean de la Croix, en es. Juan de la Cruz, 1542-1591)는 특별한 명성을 날렸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크리스트교의 신비주의가 베르그송에 의해 선양되어 시몬 베이유(Simon Weil 1909-1943)의 작품 속에서 주목할 만한 메아리로 발견된다. (베르그송은 크리스트 신비주의를 고대 신비주의와 힌두교 신비주의 그 위에 놓는다)[나는 이런 해석을 카톨릭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르그송은 카톨릭주의가 아니라 스피노자와 같은 자연주의에 속한다. 베르그송의 신비주의는 루소에도 신비주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인민 각자의 자기 실현 즉 민주주의에서 신비주의를 설파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베이유의 작품에서 초월의 감정은 합리성과 빛으로 스스로에게 침투하고, 그 신비는 구체적 삶의 실재성 속에서 인간 향하여 자신을 밝힌다.
윤리학과 인간 관계의 도식에서 보면, 신비주의는 불관용과 이데올로기 전쟁의 씨앗을 남겼다는 것도 있다. 신비주의는 합리주의(rationalisme)만큼이나 인간주의(humanisme)에도 대립된다. 인간주의에서 생의 최종목적은 최고의 실재성 즉 신 속에서 우리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의 조건들을 개선하고 문화의 진보에 기여하면서) 인류의 수준에서 우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신비주의를 신의 합일로 한정하게 되면 초월적 종교와 관계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신비주의를 자연과 합일로 보게 되면, 인간의 삶의 조건이나 문화의 진보를 넘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환경론적(écologique)관점을 갖게 된다. 여기서 베르그송의 해석처럼 신비주의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초월적 신앙과 일치로서 무아경(ex-tase)로 건너가는 것이고, 자연의 권능으로 되돌아가는 합일의 경지, 몰아경(en-tase)의 길이 있다. 후자를 자연주의라, 전자를 초월주의라 이름 붙일 수 있다.] (43UMC)
신화 (le) myth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6.(P.304)
그리스어 뮈토스(μύθος muthos)는 이야기(fable, 우화)을 뜻한다. 우화적이고 영웅적인 이야기이며 신화학(la mythologie)의 대상이다.
신화들과 신화학에 대한 반성은 종교의 발생을 발견하는데 사용된다. 왜냐하면 신화는 사물들과 우주의 설명에 대한 초기 형식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 설명은 감정의 질서이지 이성의 질서는 아니다. 인간과 종교의 심오한 인식의 방식으로서 신화들에 관한 반성은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바호펜(Johann Jakob Bachofen, 1815-1887),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에 의해 권장되었고 실행되었다. (43UMC)
* 그림 설명: 페르샤 신화: 페르샤[현 이란]의 루리스탄(Luristan)에서 나온 은으로 만들어진 판 위에 부각되어 있는 페르샤 신화의 판각이 있다. 이 판각에서, 남녀양성의 쥐르반(Zurvan)은 두 창조적 신들, 오르마즈드(Ohrmazd)와 아리만(Ahriman)을 태어나게 했다. 전자는 선을 만들고 이고, 후자는 악을 만든다. - 이 도판 사진을 위키 피디아에서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43UMC)
과장증 (la) mythoman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86.(P.304)
거짓말하는 병리학적 경향.
과장증은 매우 자주 성적 퇴폐와 연관이 있다. 이 과장증은 허영의 마음 속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정신박약(débilité mentale)의 깊이에서, 그리고 상상의 영속적인 고양에서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뒤프레(Ernest Dupré 1862-1921)의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1. 환자가 유명한 범죄에 연루되어 고발되었다고 알리는 [피해] 과장증이다. 이것은 주목받는 것을 걱정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기 명성이 더럽혀졌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2. 영광 과장증. 이것은 환자가 놀라운 공훈을 세웠다고 이야기하고, 또는 찬사를 받을 만한 사랑에 성공했다고 자랑하고,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군사적 사실[무공] -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소설 따르따랑(Tartarin de Tarascon, 1872) - 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3. [은폐, 은신] 과장증. 이것은 개인이 자기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또는 유용한 계산에 의하여, 질병 또는 기권을 가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신경증 환자가 무언가를 하기 싫어서 병 속으로 은신(도망 fuite)하는 것, 즉 꾀병을 부리는 경우이다. 삼천갑자 동박삭처럼 별로 중증이지도 않는 병을 마치 죽을 병에 걸린 것처럼 과장되게 하는 것이다.] (43U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