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월 상순(10수)
하루시조 152
06 01
뉘라서 나 자는 창밖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뉘라서 나 자는 창(窓)밖에 벽오동(碧梧桐)을 심의돗던고
월명정반(月明庭畔)에 영파사(影婆裟)는 좋거니와
밤중만 굵은 빗소리에 애 끊는 듯하여라
벽오동(碧梧桐) - 벽오동과의 낙엽 활엽 교목. 오동나무 중에서 줄기가 푸른 기운이 있어 청동(靑桐)이라고도 한다. 봉황(鳳凰)이 깃든다고 하여 ‘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시적 이미지로 자주 등장합니다.
월명정반(月明庭畔) - 밝은 달이 뜬 뜨락 주변.
영파사(影婆裟) - 너울거리는 그림자. 파사(婆娑)는 할미 파, 춤출 사.
※ 파사하다 - 춤추는 소매의 날림이 가볍다. 몸이 가냘프다. 세력이나 형세 따위가 쇠하여 약하다. 거문고 따위의 소리가 꺾임이 많다. 걸음이 힘없고 늘쩡늘쩡하다. 앉아 있는 자세가 편안하다.
밤중만 – 한밤중 쯤 되었다는 말.
벽오동에 비 듣는 소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밤에 듣는 그 소리가 애를 끊어낸다고 하였군요. 처음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야 귀빈이 들어오기를 염원했겠으나, 지금 이 아래 집에 들어 사는 사람은 적적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3
06 02
님 이별하던 날 밤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님 이별(離別)하던 날 밤에 나는 어이 못 죽었노
한강수 깊은 물에 풍덩실 빠지련만
지금에 살아 있기는 님 보려고
이별과 그에 따르는 기다림의 괴로움을 아주 격정적(激情的)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물에 빠져 죽지 왜 살고 있냐. 님 없는 삶은 죽은 목숨만 못하다며, 결코 못 죽을 것도 없었노라 노래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종장에 차마 못 죽은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님을 만나고자 함이라는 적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별리(別離)도 하나의 사건이라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들 합니다. 잊혀지는 게 아니라 잊은 척 표정을 감추고 혼자서 추억하며 살아간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종장 끄트머리의 생략은 시조창법의 생략인 바, ‘함이다’ 정도로 읽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4
06 03
다만 한 칸 초당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다만 한 간 초당(草堂)에 전통(箭筒) 걸고 책상(冊床) 놓고
나 앉고 님 앉으니 거문고란 어디 둘고
두어라 강산풍월(江山風月)이니 한 데 둔들 어떠리
간(間) - 칸.
전통(箭筒) - 화살을 넣는 통으로 원형의 긴 통이다. 활집을 함께 이르기도 하는 말이다.
강산풍월(江山風月) -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전원에서 즐기는 자연친화적인 넉넉함을 노래했습니다.
종장이 ‘강산을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로 맺은 비슷한 작품도 있습니다. 초장은 한 사나이가 문무를 겸비하려는 의지도 보입니다. 전통과 책상이 그 방 안에 있으니까요. 중장은 한 간 초당에 좁장하니 살지언정 나와 님 한자리에 앉으니 족하다고 했고, 종장에서는 거문고는 강산풍월과 함께 즉 바깥에 두어도 무방하다며 느긋한 마음을 읊었습니다.
한 칸 공간에 나와 님이라,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5
06 04
달 밝고 때 좋은 밤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달 밝고 때 좋은 밤에 남대천(南大川) 너른 뜰에
잎 없는 보리수 남게 앉아 설리화(雪裏花)야 우는 저 감수리새야
아무리 설리화(雪裏花)야 운들 낸들 어이 하리오
남대천(南大川)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의 대화실산(大花實山)에서 시작하여 동해로 흐르는 강. 길이는 32.86km. 이 곳 외에도 북한에 두 군데 강이 같은 이름으로, 모두 동해로 흐른다.
남게 – 나무에.
설리화(雪裏花) - 눈처럼 흰 배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데, 수리새의 입장에서는 배꽃을 부르는 듯한 의성어(擬聲語)이겠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한 지은이에게는 ‘님’을 부르는 특정 인물의 이름일 수도 있겠습니다.
감수리새 – 수리새의 깃 색깔이 검정인 듯합니다. 수리 - 수릿과의 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이 크고 힘이 세며, 크고 끝이 굽은 부리와 굵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 들쥐, 토끼 따위를 잡아먹는다.
수리새의 울음소리에 자신의 서러움을 이입(移入)시켜 노래했습니다. 때는 좋고, 달 또한 밝습니디만, 보리수나무는 잎이 없고, 앞은 툭 터진 남대천 너른 뜰에서 들리나니 독수리의 울음소리입니다. 수리새는 남성이고, 그가 부르짖는 울음소리는 ‘설리화야, 설리화야’ 애상적입니다. 여자의 이름이라고 풀어집니다.
종장 뒷구 ‘낸들 어이’는 포기(抛棄)라기보다는 공감(共感)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6
06 05
맑고 맑은 강남수야
무명씨(無名氏) 지음
맑고 맑은 강남수(江南水)야 임진(壬辰) 일을 네 알리라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몇몇이나 빠졌는고
아마도 여중장부(女中丈夫)는 논낭자(論娘子)인가 하노라
강남수(江南水 - 남강수(南江水). 진주 촉석루(矗石樓) 앞을 흐르는 강은 남강(南江)이으로 이리 읽음이 옳을 듯하다.
임진(壬辰) -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7 일본과의 7년 전쟁. 실제 의기 논개의 일은 1593년 계사(癸巳)년이다.
여중장부(女中丈夫) - 여장부(女丈夫). 대장부(大丈夫) 같은 여자.
논낭자(論娘子) - 논개(論介). 의기(義妓)로, 임진왜란 전란 중에 진주 남강에서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동반 투신하였다. 성(姓)은 주(朱)씨.
논개(論介)의 일을 들어 의기(義妓)의 일을 현창(顯彰)하는 작품입니다. 첫구가 의인법으로 읽으면, 남강의 물 마음은 맑고 또 맑아 정화수 같다네요. 사심이 없다는 말이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충신과 의사와 또한 일반 백성들이 죽어나갔을까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일, 이건 분명 정치의 영역입니다. 진주 촉석루 바로 곁에 의기사(義妓祠)가 있습니다. 진주 사람들의 자긍심이 된 의기 논개는 얼마든지 추앙되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7
06 06
버드나무 개야지 피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버드나무 개야지 피니 그 개야지 여름이 되랴
만조(萬條) 천록(千綠)의 끝이 맺혔으니
아마도 일총만지(一叢萬枝)는 너뿐인가 하노라
개야지 – 버들개지. 버드나무의 꽃. 개지, 버들강아지, 유서(柳絮).
여름 - 열매.
일총만지(一叢萬枝) - 하나로 모인 만 개의 가지.
버들개지를 읊었습니다. 버드나무에 개지가 피었으나 그것이 전부 열매가 되랴마는. 초장이 풀어지고 나면 중장과 종장은 단어 해석으로 설명이 끝납니다. 그러나 더 들여다보면 초장은 개지를 씨앗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가 중장을 거쳐 종장에서는 가지 하나에 만 개의 씨가 달렸음을 발견하고는 그 대단한 번식력(繁殖力)을 감탄하는 억양(抑揚)의 기법(技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물화(靜物畵)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8
06 07
버들은 실이 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복이 되어
구십춘광(九十春光)에 짜내나니 나의 시름
누구셔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던고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빛 내리는 90일(석 달)간.
봄날의 시름을 노래했습니다. 종장의 녹음방초와 승화시는 한시(漢詩)의 명구(名句) 한 구절입니다. 푸르른 신록(新祿)이 꽃철보다 아름답다. 초장의 복은 베틀 등속의 ‘북’의 잘못인데, 버들과 꾀꼬리의 조화에 자주 등장하는 조합이기도 합니다. 중장의 ‘나의 시름을 짜내노라’를 도치(倒置)로 운율을 살렸네요.
봄이 되니 낮이 길어져서 남들의 꽃철이니 신록이니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알고 눈도 즐겁고 하겠다마는 나는 그저 시름을 짜내고만 있다는 시쳇말로 ‘봄날은 간다’고 아련한 슬픔을 단조(短調)로 노래하였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59
06 08
벙어리 너를 보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벙어리 너를 보니 내 시름이 새로와라
속엣말 다 못하니 네오 내오 다를소냐
두어라 님 오시는 날 굽이굽이 이르라
말 못하는 심정을 벙어리를 데려와 하소연하듯 노래했습니다. 벙어리, 장애우의 한 형태인데 요즘은 벙어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농아(聾啞),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한자어입니다. 농과 아는 같이 온다고도 합니다. 듣고서 말을 못하면 더욱 답답할 것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은, 지금은 벙어리와 같은 처지이지만 곧 님이 오시면 속속들이 속엣말을 할 수 있으니 전혀 다른 형편이기도 합니다.
모처럼 음수율이 맞아 떨어진 무명씨의 작품이거늘 한자어도 없이 순 우리말 어휘로만 지어져 귀히 여겨야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60
06 09
벽공 넓은 판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벽공(碧空) 널븐 판에 성신(星辰)으로 바둑 삼아
인간(人間)에 벗이 없어 태극공(太極公)과 마주 두어
백년(百年)에 한 수씩 두어 결승부(決勝負)를 하리라
태극공(太極公) - 조물주(造物主). 태극(太極) - 중국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실체.
과대망상(誇大妄想) 같은 바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바둑을 두긴 두는데, 창공이 바둑판이요 뭇별들이 바둑돌이며, 인간세상에 적수(敵手)가 없어 태극공(太極公)을 상대한답니다. 거기에 점입가경(漸入佳境)은 백 년에 한 수씩 두고, 승부를 가릴 때까지 끝까지 둔다고 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현실 속에서 이런 허무맹랑(虛無孟浪)함이 조금은 간단한 처방전 노릇을 할 수도 있으려나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61
06 10
시내 흐르는 골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시내 흐르는 골에 바위 지혀 초당(草堂) 짓고
달 아래 밭을 갈고 구름 속에 누웠으니
건곤(乾坤)이 날더러 이르기를 함께 늙자 하더라
지혀 – 기대어.
건곤(乾坤) - 하늘과 땅. 주재자(主宰者). 자연(自然).
자연에 묻혀 사는 태평(太平)함을 노래했습니다. 달과 구름, 밭을 갈고 누워 즐김이 더할 바가 없습니다. 달 아래 밭일이요, 구름 속의 휴식이니 신선(神仙)이 따로 없습니다.
건곤을 의인화했습니다. 자연과 비교하면 티끌만도 못한 인간일진대 ‘함께 늙자’했다니 까마득한 세월을 편안하게 누린다는 ‘설명(說明)’이면서 ‘희망(希望)인 셈입니다. 자족(自足)을 넘어 자긍(自矜)에 이르렀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무명씨 작품 중에서 장형시조는 ㅌ,ㄱ히 눈길을 끕니다. 사설시조와 엇시조를 '장형시조'라고 하는데, 음수율 경계를 넘어가면서 하고픈 이야기를 해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