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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들어가는 말
인도차이나 지역에는 아직도 복음의 빚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있다. 국가와 종족별로 살펴볼 때, 태국의 타이족, 캄보디아의 크메르족, 라오스의 라오족, 미얀마의 버마족 등이 모두 복음을 필요로 하는 국가와 종족이며, 거의 공통적으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본인이 6년째 거주하며 사역 중인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주 종족인 비엣족(viet, 낀(kinh)족이라고도 함)도 여러 종교 중에서 불교를 가장 많이 신봉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전체의 인구로 볼 때, 2억 중 3/4인 1.5억 정도가 불교 신자인 것이다.
베트남(越南)은 역사적, 문화적인 면에서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비록 두 나라의 자연조건이나 건국신화는 다를지라도, 역사과정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우리가 동쪽에 위치하였고, 베트남은 남쪽에 위치하여, 중국인들은 우리 한국사람을 동쪽 오랑케(東夷,동이)라고 불렀고, 베트남사람을 남쪽 오랑케(南蠻,남만)이라고 불렀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가 이토록 성장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참전 용사들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인적, 물적으로 많은 희생을 통하여 달러를 벌어들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연이은 경제개발계획이 뜻대로 잘 이루어졌던 것이다. 우리 참전용사들의 공을 치하하면서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대로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실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면서,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즉 복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온 힘을 다해서 베트남에게 복음에 빚진 자로서 부담을 가지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Ⅱ. 베트남에 대한 일반적인 개관
1. 지리적 상황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에 해안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S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중국, 라오스와, 서쪽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동쪽과 남쪽은 바다이다. 면적은 약 33만 Km2로 한반도의 2배 정도이며, 3/4이 산지와 구릉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기후가 다양하다. 북부는 아열대 기후로 사계절이 있는데, 여름이 길고, 겨울은 짧은 편이며, 봄에는 비가 자주 와서 습도가 아주 높고, 가을은 우리나라보다는 온도가 높지만 가장 견디기 쉬운 계절이다.
남부는 열대기후로 일년 내내 덥고,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며, 스콜이 있다.
2. 인구와 인종
베트남의 인구는 약 8천400만 명이며 (2020년에는 약 1억이 넘을 것으로 추산됨), 54개의 서로 인종이 있는데, 그 중에서 비dpt족이 90% 정도를 차지하고, 크메르족, 따이족, 흐몽족 등의 53개 소수민족이 약 10%를 차지한다. 그 중 몬-크메르족은 약 5% 정도로 100만이 넘으며 메콩 강의 삼각주에서 거주한다. 그 다음은 므엉족으로 북부의 산지와 구릉에 살고 있는데, 이들이 비엣족의 조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정부는 소수민족들이 가능하다면, 따로 독립하여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에 선생들을 파견하여 베트남어와 다른 과목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대학시험에 응시하면, 일정한 비율을 정하여 합격점을 그들에게는 다른 기준으로 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수민족에 대한 처리에 아주 민감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베트남의 소수민족에게 접근할 때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역 사
역사적으로 중국 중심으로 우리를 동쪽오랑캐(東夷), 베트남을 남쪽오랑캐(南蠻)라고 불렀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역사와 베트남의 역사는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역사에 있어서 두 나라는 중국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공물을 바치고, 사신을 보내기도 하며, 두 나라 사신이 수도에서 만나 한문으로 필담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초창기의 불교, 그 후의 유교, 그리고 기독교도 중국을 통해서, 아니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물론 이런 종교들이 각국에 들어가서는 현지의 상황에 따라 변화되었는데, 우리보다는 베트남이 인문 지리적으로 더 달랐기 때문에, 베트남은 좀 적게 받기는 했어도, 그 영향은 컸다. 이런 모습은 현대사에까지 계속되어 양국이 모두 남북으로 분단되었는데, 베트남은 1975년 무력으로 통일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베트남과 한국은 시작은 토양이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역사과정이 아주 비슷하다고 불 수 있다.
4. 정치/경제
베트남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과 서를 잇는 관문으로서, 많은 교류도 있었지만 그에 다른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으며, 정치는 자연히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현대를 거치면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하여, 지금도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하에 있다. 공산당이 영도한다는 구호아래 공산당원이 아니면 높은 관직에 임명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러나 다수의 학자나 지식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입당을 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의 경제는 국가 주도하의 사회주의경제이다.
5. 우리 나라와의 관계
베트남과 우리 나라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두 나라사신이 만나 필담을 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최근에 베트남 왕조의 후손 중, 이용상씨가 우리 나라로 망명하여,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가들의 의견으로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런 연유로 양국 간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사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통해 일어난 이념논쟁의 희생으로, 동양에서는 중국, 베트남, 우리 나라가 둘로 나누어졌는데, 지금까지는 베트남만이 무력 적화통일을 했다. 그래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원수지간이었는데, 베트남의 개방정책으로 두 나라는 경제적인 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우리가 설비와 기술을 투자하고, 베트남 측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투자하여, 좋은 파트너로 합작을 많이 하고 있다.
6.베트남 (Vietnam) 선교정보
1) 선교 역사
최초의 기독교 선교는 16세기 중엽(1533년)으로 알려지고 있고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와 예수회 선교사가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889년 세계복음주의 협회에서 개신교 사역자들이 이 땅에 처음 발을 딛게 되었고 1911년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에 의해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베트남 복음성회는 이들 CMA에 의해 1927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하나의 교단으로 존재하고 있다.
1975년 공산화가 될 무렵에는 약 10만명의 성도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월남전쟁 당시 선교사 및 군목들이 선교활동을 했다.
1859년부터 100여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프랑스 출신의 선교사의 사역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나 프랑스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한 평가는 순수기독교적 사역이 아니라 "기독교와 식민지"라는 함수로 정의되었다.
2) 현재 기독교 상황
개신교 :약 2%(성장율 12.5%) 호치민의 베트남 사이공교회는 정부의 인정을 받아 약 1,700 여명의 성도가 모여 평균 3시간의 예배를 드리며 매월 첫째주에는 성찬식을 한다. 공식 허가를 받은 한인교회는 사이공한인연합교회등으로서 현지인 교회의 주일과 주중 하루를 임대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밖에도 소수종교인 힌두교는 베트남 남부 해안지대의 참족들 사이에 성행하고 있으며 무신론자들과 함께 기타 종교로 29.8%를 차지한다.
베트남의 개신교 선교는 천주교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19세기에 영국 성서공회가 성경을 보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후로 서서히 프랑스의 식민지가 시작되면서 프랑스인 개신교 목사가 프랑스 어로된 성경을 보급하는 동시에 선교를 하지만, 교회설립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 이후 1911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ence(C.M.A)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현재까지도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베트남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l Church of Vietnam)"를 창립하여 지금까지도 거의 한 교단으로 유지되고 있다. C.M.A.가 베트남에서 선교를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한 로버트 제르리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 나라의 소식을 듣고, 1911년 다른 두 선교사와 함께 다낭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기하여 선교활동을 극히 제한한다. 이리하여 선교는 성경을 비롯한 문서보급과 사역자 훈련에 역점을 둔다.
C.M.A는 1922년에서 1940년까지 선교가 비교적 본격화되어 많은 베트남인들이 개종하여 교회가 설립된다.
베트남 선교는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을 세워서 해야한다.
7.선교전략
현재 베트남 정부는 1975년이래 교회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교상의 많은 제약사항들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종교활동에 대하여 정부에 보고해야하며, 철저하게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가운데서도, 기독신자들의 숫자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약 백만 명의 신자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증가는 바로 이렇게 급증하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선교하며 전도하는 데에 지대한 기여를 할 것이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며, 영적으로 갈급해 하는 베트남인들을 인도할 교회의 지도자가 절실한 형편이다.
최근 한국교회는 베트남 선교에 관심을 가지며 많은 선교단체가 조직되었는데 NGO단체가 활동을 많이하고 있다
주요 미전도 종족은 회교도의 참족과 불교의 크메르 종족이 있으며 정령숭배자들이 다이오, 미아오, 야오족들도 복음이 전혀 전하여 지지 않는 미전도 족속이다. 특히 카오다이교와 호아하오교는 그들의 고유한 혼합종교에 기초하여 공산주의에 완강하게 저항한 자들로 특수한 선교전략이 필요하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선교전략은 먼저 베트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요구된다. 앞으로 베트남에 대한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연구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복구를 경제적으로 잘 지원하고 신학교를 후원하여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 선교가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 온 산업연수생들이나 그 외의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전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한국인 2세 베트남 청년들을 적극 개종시키고 도울 필요가 있다. 이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잘 양육하여 베트남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나, 목회자로 양성하는 것은 베트남 선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또한 베트남 청년들 가운데 신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외국에서 교육시켜 본국으로 돌아와 베트남 교회를 이끌어가며, 베트남 전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전도와 선교의 야전사령관이 될 것이다. 한국 신학교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유수한 신학교가 베트남 젊은 일꾼들에게 신학연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효과적으로 실행해 가기 위해서, 많은 선교본부들을 베트남 내에 은밀하게 운영하는 것이 베트남 교회 지도자들이 고려하는 바이다.
또한 베트남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지성인들을 보다 확실하게 전도하기 위해서 학원선교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이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소그룹 활동 등을 통하여 양육하면 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가는 곳마다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으며, 목회자의 활동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다. 그들이 각 분야의 전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전하는 복음은 심각한 통제를 받지 않고 선교사 (secret missionaries)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는 이들이 점증하는 가운데 교계 지도자들의 양성은 상당히 부진한 사실을 감안할 때에 ACTS에서 실시하고 있는 외국 신학생들을 복음적인 신학으로 잘 양육하여 각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 보내는 사역이야말로 베트남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베트남 내에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이평신도들과 차세대 교계 지도자들을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지면, 베트남 교회의 기반도 상당히 다져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 안에 활발한 소그룹 모임을 통해 은밀하게 기독교 신앙으로 베트남 지성인들을 양육하는 것, 현재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우 필요한 사역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베트남선교는 봉사와 전도의 종합적인 선교가 잘 개발되어야 한다.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베트남에 적절한 선교전략을 통하여 노력하면 한국교회가 베트남 선교의 전진 기지가 될 수 있다. 하루속히 이런 베트남 선교를 확실하게 해 나갈 지도자 양성을 위한 성경학교와 신학교의 개설을 위해, 많은 젊은 일꾼들이 해외에 나가 복음적인 신학을 잘 배워 본국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베트남 정부가 기독교회를 인정하도록, 기도해야할것이다
(1)개척교회(치유센타) 활동
-현지 환경에 따라 영 육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회복하여 교회를 섬기며 지역을 섬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2) 학원(대학생)을 통한 선교
- 선교를 위해 입국하게 되면 우선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한국어 교육도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깊은 사귐을 가지며 특히 학원과 학교를 통해 접촉점을 삼고 교회로 인도한다
베트남은 복음이 들어 온 지 100년이나 되었습니다 베트남 개신교 역사 100년은 억압과 핍박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식민통치와 공산화 정권 치하에
서 온갖 억압과 핍박가운데서 자라온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베트남 교회는 자존심과 정신적인 자립심이 강합니다. 복음성회 교단은 한국의 어느 중, 소 교단보다 많은 성도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회가 조직되어 있고 신학교가 있고.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베트남 복음화의 주도세력인 복음성회와의 강한 파트너쉽을 형성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베트남 복음성회가 민족 복음화의 열정을 가지고 이 민족을 책임지는 교회로 든든히 서 가도록, 선교사들은 공인교회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섬기는 가운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선교의 자유는 점점. 조금씩 그 틈새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 자유가 곧 주어질 것을 가정하며 준비하고자합니다.
베트남어 설교에 묻어나는 베트남 민족을 향한 사랑과 복음에 대한 열정이 이 민족의 청년들과 성도들을 깨워 민족복음화에 눈을 뜨도록 하고자합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만남이고 치유와 회복이라고생각됩니다.
저희는 치유센타를 개척하고 매일 예배와 기도시간을 가지며 현지사역을 진행합니다
사역내용은 치유사역을 중심으로 구제와 교육사역입니다.
♣ 치유사역은 한국인과 현지인 상대로 영적 육적인 회복에 목적을 두고 있으며 특히 주님이 주신 치유은사를 통해 어려운 농촌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외부로 갈때가 많습니다.
또한 소외되고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내면적인 상처를 입고 있는 성도들에게 성령님의 기름부음속에서 치유하고 있습니다.
♣ 구제와 교육사역은 개척교회 월세등 유지비로 인해 운영하던 성경학교사역은 잠시 쉬고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현지 지하교회 협력사역과 성경학교 교육 운영을 위해 기도중입니다.
♣ 학원사역
박은혜선교사는 호치민 공업대학교 한국어강의에 출강합니다
강의시간은 일주일에 6시간씩 강의로 한반에 약15명씩 강의를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1. 갈멜산 영성치유센타통해서 주님의 나라와 영광이 그리고 치유와 교육 구제의 역사를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2.사역비의 충당으로 말씀학교를 통해 현지사역자를 양성하기를 기도중입니다.
3.개인적으로 치유의 은사가 있습니다. 현지 사역자와 협력하에 현지 순회사역을 통해 치유사역을 더 활발히 진행할려합니다.
4.박은혜선교사는 호치민공업대학교 한국어사역을 통해 학생들이 주님을 알고 그 사랑을 발견할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5) 베트남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 쁨을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라(시편126:5-6)
베트남 김기수 박필숙 선교사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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