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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밝음이 마음을 지배했다. 어둠도 밝음도 산으로부터 왔다. 구름을 뚫고 떨어진 빗방울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했다. 바다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마을 앞, 구불구불 작은 들판을 지나 냇물이 흘렀다. 사람 몇 길 깊이의 소(沼)가 있는 와룡동천(臥龍東川)은 가끔 흙탕물이 퉁탕거리며 강이 되었다. 강의 끝에 바다가 있을 것이라는 어른들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깥마당의 작은 하늘 위로 흐르듯 떠있는 은하수가 별의 강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리내는 마을 숲 냇가 웅덩이의 윤슬 같았다. 신작로에 나서서 바라보아야 하늘은 제대로 흐르는 별빛 강을 보여주었다. 하늘은 빛났고 강은 찬란했다.
아이에게 가르침은 많지 않았으며 깨우침은 느렸다. 어둠과 밝음이 지속적으로 바뀌면 세상으로 나가야 함을 몰랐다. 시간의 흐름이 지혜의 강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기에는 어렸다.
어둠과 밝음은 스스로 매일 찾아왔다.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는 햇살은 어스름을 천천히 지웠다. 어떤 날은 배고픈 늙은 소가 긴 한숨으로 어둠을 밀어내기도 했다.
산 초입 비탈진 밭을 서성이던 장끼 울음소리와 푸드덕 날갯짓으로 순식간에 어둠은 사라졌다. 일찍 눈을 뜬 닭들은 넓은 마당을 쏘다녔다. 그런 날은 뒷집 대밭에서 하얀 바탕에 검은 반점이 윤나게 찍힌 닭 알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다.
소나무 진이 가끔씩 솟는 마루는 칙칙하게 빛을 맞았다. 새벽잠 없는 할머니는 빛보다 일찍 일어났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에 쓸리는 어둠은 쉽게 밝음이 되었다.
밀려난 어둠은 새벽하늘에 뜬 달 곁에 몰렸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창백한 낮달은 가여웠다.
밤마다 어둠은 수많은 생각을 던지고 갔다. 지붕과 지붕 사이에 빛나는 별들은 검은 감나무 가지를 밀어내며 침묵과 사유(思惟)를 날랐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밤이 되면 별빛과 달빛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우는 날이든 웃는 날이든 밤의 빛은 평화이기도 하고 칼날이기도 했다.
겨울밤 방문을 흔드는 바람은 날카로웠다. 침묵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빛을 찾았다. 졸 듯 가물대는 등잔불은 어둠보다 가녀렸지만 빛이 밤을 지키고 있음은 다행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 잠이 들면 꿈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흔드는 문풍지는 감나무 가지에 걸린 연처럼 낮게 울었다.
어린 시절 밤은 길었다. 잠자리에 들어도 눈앞에서 수많은 별들이 흔들리며 떠올랐다. 고샅을 헤집던 바람은 다시 햇살이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 돌담 사이에 머물며 웅얼댔다. 미처 불쏘시개나 염소 먹이가 되지 못한 감나무 마른 낙엽들은 막다른 골목 끝에서 모여 서로 부딪히며 울었다.
가스랑대는 잎들을 하나하나 집어다 아궁이 곁에 쌓아두지 않음을 뉘우쳤다. 대밭 언저리에서 긴 세월 버티고 선 높다란 돌감나무 가지 끝에는 대소쿠리만 한 솔부엉이가 어둠처럼 앉아 있었다. 무서웠다.
산협에 갇힌 작은 마을의 아침 해는 붉은 노을을 헤집거나 듬성듬성 시늉뿐인 작은 소나무들을 밟고 떠올랐다. 달은 나무들을 밀어내며 오는데 해는 많은 것들을 밟고 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산속에 터 잡고 사는 노루나 꿩도 이슬 젖은 풀잎을 뒤집어쓰고 고즈넉하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무들 사이 가풀막에서 만나는 그들은 늘 도망쳤다. 햇살에 밟힌 잎들은 진저리를 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햇살에 매달려 사는 것들은 대체로 그랬다.
마당을 기어다니는 개미는 해가 뜨자마자 흙더미를 쌓으며 집을 지었다. 개미집 사이로 지나가는 지렁이는 몸부림을 쳤다. 해가 떠올라야 생명의 시간이 흐르고 삶이 이어지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온 세상을 밝히는 햇빛은 산을 밟고 구름을 헤치며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림자 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눈부셨다. 눈부심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위대한 것을 보는 경외심과 하찮은 것을 대하는 존중심이 같아진다는 의미다.
천천히 떠오른 해는 나뭇잎에 걸려 마을을 맴돌았다. 나뭇가지보다 더 여리고 작은 잎에 햇살이 걸려있는 것은 신기하고 측은했다. 강렬한 햇살 아래서 시들고 파멸되는 잎이 있음은 아이러니였다.
작은 웅덩이만 한 하늘을 가진 산골마을의 밤하늘은 고적(孤寂)하면서도 풍요롭다. 어제의 별은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너머 가지마다 달린 돌감 홍시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별들은 나타나고 모습을 감춘다. 달빛은 매일 다른 발걸음으로 찾는다.
하늘이 맑은 날 저녁이면 감나무 가지에 달빛이 서린다. 달빛에 하늘 가장자리로 밀려난 어둠은 별을 데리고 온다. 뒷산은 낮게 다가오고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는 또랑또랑하다.
멀리서 소쩍새 울음소리 가난하며 달빛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차갑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감나무 가지에 걸려 흔들리는 달빛으로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어둠이 만들어준 빛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혜의 강물을 흘려보낸 후 상흔의 강바닥을 서성임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그 많았던 생명 그 눈부시던 달빛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당최 알 수 없다.
지나간 시간을 회억하며 홀로 어릴 적 고향집 바깥마당에 서 있다.<끝>
월간지 <한국수필> 2023년 "올해의 좋은 수필10" 선정 작품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서평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이며 문학비평가인 서태수님이 <한국수필> 2023. 1월호에 실린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를 읽고 쓴 평론입니다. 1월호에는 총 48편의 수필이 게재되었고 그중 4편을 선정, 평론을 썼으며 아래 내용은 [감달자] 관련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의 실력과 정성
서태수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노인의 퉁명스러운 대응은 실력과 정성을 겸비한 자존감의 발현이다. 그러나 현대는 방망이가 아니라 다양한 세탁 제품의 홍보 시대. 실력과 정성을 갖추되 먼저 관심부터 유도해야 한다.
낯선 사람 만남에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예를 갖추어 명함을 주고받고 눈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한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사전 교감하는 인간관계와 달리 독자는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이들에게 ‘문학성’이라는 선물로 최상의 예의를 갖추어야 독자가 감응한다.
작품에서 명함으로 내보이는 제목, 눈인사로 이루어지는 첫 문장, 내용 소개를 담은 도입 문단은 독자 관심의 성패를 좌우한다.
안 읽으면 당신 손해라는 자존감은 50년 전 소수 선민의식(選民意識) 시대의 낡은 사고다. 지금의 독자는 문학 인식도 작가보다 수준이 못하지 않다. 더구나 출판물 홍수의 시대, 어떻게 교감할 것인가.
본고는 《한국수필》 2022. 12월호 수록 작품 48편을 독자 입장에서 읽기 여부를 가름할 수 있는 미학적 자질을 기준 삼아 세 층위로 분류해 톺아보았다.
접근법은 일차적으로 ‘제목 - 첫 문장 - 첫 문단’을 한눈에 살펴보고, 이차적으로는 ‘내용 전개상의 유인 효과’를 일별하면서 ‘마지막 문단’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논설문 같은 제목, 신변잡기적 제목,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목 등의 식상한 명함으로는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도입부도 마찬가지다.
과거사 고백, 신변기적 사건, 교조적 진술, 상식적 문장으로 시작하면 독자는 즉시 책장을 넘겨버린다. 도입의 기능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주제 암시 즉, 앞으로 전개될 본문 내용의 흐름을 비춰주는 것이다. 이 기법을 단편소설에서 복선(伏線)이라 한다. 이로써 시종일관 주제의식이 팽팽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글의 통일성이다.
둘째는 독자 관심 유도이다. 그러나 독자 관심 유도만을 위해 엉뚱하거나 주제의식과 거리가 먼 도발적 표현이라면 독자는 의구심을 가지고 다음 진행을 눈여겨보다가 사기당한 기분으로 외면을 하게 된다.
대체로 이런 유의 글은 후반부에서 생뚱맞게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여 내용 전개상 필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구성이 산만해진다.
두 과정의 절차를 모두 만족시킨 최상위 작품은 네 편이었다.
송미정의 「불꺼진 창」을 비롯하여, 「능선」(허규철),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이덕대), 「나무에 길을 묻다」(전용희)는 독자 시선을 확실하게 사로잡았다.
동시에 수필 미학의 필요충분 자질인 ‘① 제재 변주 ② 구성적 미감 ③ 언어 조탁 ④ 서정적 감성 ⑤ 지성적 교감’도 잘 용해한 수작들이었다.
이덕대의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는 서정적 제목에 이어 도입은 대조를 통한 사색, 상식을 넘어선 궁금증으로 독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도입) 어둠과 밝음은 마음을 지배했다. 어둠도 밝음도 산으로부터 왔다. 구름을 뚫고 떨어진 빗방울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했다. 바다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마무리) 작은 웅덩이만 한 하늘을 가진 산골 마을의 밤하늘은 고적(孤寂)하면서도 풍요롭다. 어제의 별은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너머 가지마다 달린 돌감 홍시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별들은 나타나고 모습을 감춘다. 달빛은 매일 다른 발걸음으로 찾아온다.
하늘이 맑은 날 저녁이면 감나무 가지에 달빛이 서린다. 뒷산은 낮게 다가오고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는 또랑또랑하다. 멀리서 소쩍새 울음소리 가난하며 달빛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차갑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감나무 가지에 걸려 흔들리는 달빛으로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 많았던 생명 그 눈부시던 달빛이 다 어디로 갔는지 당최 알 수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혜의 강물을 흘려보낸 후 상흔의 강바닥을 서성임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지나간 시간을 회억하며 홀로 어릴 적 고향집 바깥마당에 서 있다.
깊은 사색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마무리가 깊은 울림이다. 마무리의 서정과 사색적 내용이 서두와 긴밀하게 이어져 글 전체에 대한 작가의 통제력이 탄탄하다.
모든 글의 기본은 구조 문제이다. 문학작품에서 구성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체는 처음 중간 끝이 있기에 잘 짜인 작품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한다. 아름다움이란 크기와 질서에 의존하므로 부분들의 질서 있는 배열과 일정한 크기의 조화가 필요하다.” 라는 견해는 곧 구조론을 설파한 것이다.
이 논리의 핵심은 <질서 – 크기 – 조화>이다. 이를 문학작품에 원용하면 <1. 내용 전개의 질서 2. 전개 요소의 양적 균형 3. 표현의 효율성> 세 요소로 대응할 수 있다. 결국 수필 구성의 핵심은 효과적 화소 배치의 기술이다.
수필가의 자존감은 항아리 속 메아리의 자기애(自己愛)가 아니라 독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상승효과가 일어난다.
예를 갖춘 명함과 눈인사와 자기소개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함으로써 자기 작품의 존재 이유를 설득할 수 있다.
본격문학으로서의 수필 위상을 위한 문학미감 창출 기본은 윤오영 선생이 수필로 보여준 「방망이 깎던 노인」의 실력과 정성이다.
첫댓글 아침 눈이번쩍 코가 실룩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세상에.ㅣ진심으로 감사합니다.~~이선생님.
읽고 또 읽었습니다. 카피하여 세번 읽었습니다.//
오선생님
오늘 좀 한가하신가 봅니다
그렇게 읽어주셨다니 황감할 따름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