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
박 완 규
숲이 우거진 나의 사무실 앞은 새들의 아지트다. 어디서 한마리가 날아오는가 하면 잠시 후 또 다른 새들이 우루루 몰려온다. 여름에는 비교적 드물게 오지만 가을부터 겨울로 접어들면 자주 다녀간다.
비둘기, 까치 등 비교적 큰 새들도 수시로 날아들지만, 주로 진박새, 쇠박새, 직박구리, 곤줄박이 등 텃새종류들이다. 가끔씩은 이름 모를 희귀조가 나타나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할 때도 있다.
새들은 나름대로 특유의 소리를 낸다. 숲과 산 여울의 기(氣)가 가득차서 오염된 나의 귀를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가운데서도 “곤줄박이”란 놈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 손바닥에 모이를 얹어놓으면, 앉기도 하고, 사무실 안까지 날아들기도 한다. 때문에 나를 가만히 있게 두지를 않는다. 다른 새와는 달리 베란다 앞 나뭇가지에 옮겨 다니며 마치 자기존재를 알리듯 요란스레 “삐줄,∼삐줄∼삐이익,”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금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곱고 예쁜 화려한 패션에 눈길이 간다.
다른 새들은 모이를 주며 유인해도 경계를 하며 가까이 오지 않지만 이놈들은 먹이를 내놓으라고 사무실창문에 매달려 부리로 창문을 콕콕 찧기도 한다. 창문을 열면 스스럼없이 사무실에 날아들어 내 손바닥에 앉는다.
곤줄박이는 몸길이가 14cm 정도로 머리는 흰색이며 넓은 검은색 띠가 이마를 가로질러 눈 위로부터 목 주위까지 줄을 잇고 있다. 목은 검은색이다. 등 쪽은 회색이며 몇 개의 밤색 깃이 가로질러 나 있는 참으로 귀엽고 아담한 새다. 잠시도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고 가지를 옮겨 다니며 부지런을 뜨는 박새 종류다.
부부의 정도 유달리 도탑다. 꼭 한 쌍이 붙어 다닌다. 수컷은 약간 크고, 적극적인데 비해 암컷은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손바닥에 놓인 잣을 물고 가 암컷 입에다 넣어준다. 또, 내가 보는 앞에서도 아랑곳없이 짝 짖기 행위를 하고, 쉴 틈 없이 사랑의 표시를 해댄다. 얼마나 정다운 모습인지 샘이 날 정도다. 사람들도 새처럼 티 없이 맑게 부부의 정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바닥위에 앉은 새 발톱의 짜릿한 감촉은 나를 더욱 곤줄박이 사랑에 깊이 빠지게 했다.
5년 전, 나는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보람된 일을 해보고자 이곳 산속마을에 위치한 노인요양원을 직장으로 정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올 때 이웃사찰 비구니스님께서 조그맣고 예쁜 새를 손바닥에 불러 앉히기에 하도 신기하여 스님께 “세상에 이런 일이” TV프로에 나와야겠다고 농담했었다. 새 이름을 여쭤보았더니 “곤줄박이”라고 했다. 사람을 잘 따른다고 했다. 언젠가 내 손바닥에도 앉혀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마침 내사무실 앞에는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텃새들의 놀이터였다. 가지사이를 분주하게 다니는 새들이 새로 살러 온 나를 환영해 주는 것만 같았고, 또 그들은 내가 새들을 너무도 좋아한다는 것을 딱 알아차리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나는 얼른 시 한수를 머릿속에 떠 올리며, “새들아, 나를 환영해주어 고맙다/ 앞으로 너희들과 사이좋게 지내보자꾸나/ 가슴이 답답할 때면, 숲속에 나가 네 노래 소리를 들어줄게” 라며 마음속으로 새들에게 다짐을 했다. 그렇게 새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곳에 정착했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스님의 손바닥에 놀던 고 귀엽던 곤줄박이 란 놈이 내 앞을 얼씬거리기 시작했다. 잣으로 유인해 손바닥에 앉게 하는데 성공했다. 잣 한 톨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노라면 기웃 기웃 눈치를 보다 잽싸게 먹이를 물고 간다. 잣을 손가락으로 꼭 잡고 있으면 빼가려고 부리로 비틀고 날개를 퍼덕이며 안간힘을 다 쓰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이렇게 곤줄박이와 정이 깊어가는 어느 날, 환기를 시키기 위해 사무실창문을 배꼼이 열어두고 잠깐 자리를 비웠던 사이, 사무실 유리창아래 새한마리가 떨어져 죽어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곤줄박이 수컷 이었다. 열린 문사이로 날아들었다가 나가면서 유리창에 부디 친 것 같았다. 놀란 듯, 두 눈은 동그랗게 열려 있었다. 내 손바닥을 간질이든 두발, 보드랍고 신비로운 밤색 빛 날개, 금방 포르르 날개 짓하며 손바닥에 앉던 놈이 이렇게 주검이 되어 내 앞에 쓰러져 있다니! 죽는 순간, 얼마나 인간을 원망했을까? 따스한 체온이 남아있기에 살려보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남은 암컷 한 마리는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사라진 수컷을 찾느라 나뭇가지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울고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광경이다. 나는 죽어있는 곤줄박이 수컷을 암컷이 보지 못하도록 비닐봉지에 넣어 숲속 나무아래 몰래 묻고,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 두 손을 모으고 참회를 하면서 명복을 빌고 빌었다. 그는 이제 한 마리 벌레가 되고, 한포기 풀로 몸 바꿔 또 다른 생을 살리라.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가슴깊이 느끼면서...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사고가 흔 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서 이 순간에도 뭇 생명들이 자연 속에서 죽어가고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쉽게 겪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 충격이 컷 든 것 같다.
이 끔직한 사건이후 남은 암컷은 내 사무실 앞 나무 가지를 떠나지 않았다. 슬픈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수컷을 애타게 기다리며 울부짖는 모습은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외로운 탓 일까? 그동안 수컷이 물어다준 먹이를 받아먹기만 했던 암컷이 나에게 접근하는 회 수가 점차 늘어났다. 내 손바닥의 잣을 콕 물고는 나뭇가지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삐줄 삐줄 삐이익” 짝을 찾느라 울어댄다. 내가 출근하면 용케 알고 사무실 창문에 매달려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나 역시 그놈이 보이지 않으면 베란다에 나가 “휘리릭” 휘파람을 분다. 숲속에서 포르르 날아온다. 곤줄박이와 나는 몇 억겁의 인연인지 모르겠다.
어느 날 곤줄박이가 보이지 않았었다. 같은 종류의 짝을 만나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후 여러 종류의 박새 무리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나 무리 속에 곤줄박이는 한 마리 뿐 이었다. 일편단심 부부사랑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인간은 자연에 기대 살아야한다. 자연을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배려해야할 것이다. 새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한 나의 실수에 가슴을 칠뿐이다. 짧게 살다간 곤줄박이 영혼이 풀잎마다 이슬로 맺혀서 내마음속에 살고 있다.
창문을 여니 또 다시 앞산 풀숲에서 외톨이 곤줄박이 울음소리가 애절하게 들린다. 피를 토하듯 울어대는 저 소리에 애간장이 녹는다.
첫댓글 정이 들었던 곤줄박이가 애석하게도 목숨을 잃었군요. 정이 많은 님께서 많이 애석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되어 죄송합니다. 부족한글 꼭 읽어주시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옆 좌석에서 일어난 일 처럼 생동감 1급였습니다. 요즘 저도 냉이를 캐러 문전 옥답으로 가서 안기만 해도 꼭 초대장이라도 받은 듯이 따러드군요.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그새가 곤줄박이군요.감사합니다.귀한 책을 선물 받은듯 합니다.좋은 시간 되셔요.
좋은 평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책읽고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듯함이 인간미가 마음이 포근해지고 애잔해져요
따뜻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