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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암동고개~국지산~태화산~각동리
애초의 영춘지맥 첫구간 운행계획은 각동리 마을이 들머리라고
고시가 되어왔다.각동리 노인회관옆으로 난 마을 고샅을 빠져나와
숲으로 난 산길을 따르면 옛 태화산성터로 향하는 산길과 태화산
정상으로의 산길이 교차하는 주능선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진행방향을
뒤엎은 이유는 들머리에서 이곳 태화산 주능선 삼거리까지의 된비알
구간이 그 원인이다.
편하고 용이한 것만을 추구하는 인간내면에 도사린 이기심의 발로가
틀림없는데,각동리에서 시작되는 엄청난(?) 된비알이 체력을 초반에
전소시켜버릴 우려를 배려한 집행부의 고뇌의 결과로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그러나 스타트라인에서 부터 규율을 위반하는 실격의 휘슬을
유발하게 된다면,종전의 규율은 두번째까지를 마지노선으로 삼았지만
현재의 율은 단 한번으로 위반결정이 내려진다.
변명의 여지는 물론이고 경기출전 자체를 검토해야 하는 굴욕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결국, 오늘의 날머리인 관암당 고개가 졸지에
들머리가 되어 오늘산행의 스타트 구간이 되었다.윤삼월의 꽃다운 계절에
하늘의 배려가 아쉽다.찌푸린 날씨도 아닌 것이,그렇다고 만화방창의
햇살이 만방한 날씨는 더욱 아니다.천지사방 시야조망을 견제할만한
연무 가득한 음울한 날씨도 아니다.
그저 엷은 구름만이 드넓은 궁창(穹蒼)을 가리우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다운 윤삼월을 시샘하고 있는 모습만이 역력하다.
낙엽사이를 밀어 올리고 얼굴을 불쑥 내미는 연푸른 기화요초의
이파리가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산길.윤삼월 꽃대궐의 계절에 분위기가
가라앉을 기미를 느꼈음인가,
진보라빛 각시붓꽃이 분위기를 띄운다,평소보다 기온이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겨드랑이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9시15분에 시작된
산행은 1시간 가량의 시간을 소비한 끝에 국지산 정상으로 산객을 이끈다.
해발625,6m,오벨리스크를 닮은 미니 정상석이 오롯하다.
강원의 뭇 산군치고는 작은 키에 속하지만 조망은 그지없이 시원하다.
그 누가 외모를 가지고 명산이니 진산이니 언덕이니 라고 계급을
조장하였는가.국지산 정수리를 내려서는 길이 매섭게 산객을 몰아 세운다.
외모로 모든 사물을 대했는가,내면의 그릇으로 보듬었는가, 정수리에서
맞은 편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향하는 로프에 몸을 의탁하며 돌아
내려서는 산객의 귓전에 울림으로 전한다.
멀리 해가 뜨는 쪽으로 거뭇한 실루엣을 그리는 태화산의 둔중한 몸매가
산객의 등심(登心)을 자극한다. 소나무에서 내뿜는 상큼한 솔향,이제
막 연분홍 꽃잎을 떨구고 연록색 이파리를 내밀며 춘풍에 몸을 맡긴
진달래가 엷은 녹향을 내뿜는다.
작은 돌무더기가 이곳이 조전고개임을 알린다.조전리 국자골과
흥월리 장선개를 넘나들던 고개. 걸출한 덩치를 자랑하는 노송들이
자뭇 범강장달의 위용을 자랑하며 산길을 호위한다.
신갈나무,굴참나무 등 숫적으로 우세한 참나무 군속들이 감히 범접을
하기가 망설여지는 모양이다.짙푸른 이파리에 잔뜩 기를 곧추 세운
노송의 기세, 마른 가지에 슬그머니 내민 연두색 빛깔 잔이파리가
주늑이 잔뜩들어 파르르 춘풍에 몸을 떨고있다.
자네도 별 수없이 춘풍에 몸을 떨고 있는가,이 산객도 지금 몸을 떨고 있네!
왜냐하면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가 산길 주변 이곳 저곳에서
산객의 발길을 불안하게 만든다네. 근방이 모두 석회암 지역인 모양이다.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현상인데 이곳말고도 정선의 민둥산의 밭구덕
마을에서 산행 중에 만난 적이 몇차례 있긴하다.
시나브로 자세를 낮추어 가던 산길이 고도를 갑자기 높이기 시작한다.
삼각점이 심어져 있다.해발606,8m, 이곳에서 산길은 직각을 이루며
좌측으로 이어진다.험한 몰골의 구덩이가 이곳저곳에서 또다시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재수없는 산짐승들이 별안간 횡액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팔자 사나운 산꾼들도 예외는 없는 법이니 방심은 금물인 요주의 구간이다.
갑자기 임도가 앞을 막아선다.산길은 맞은편숲으로 이어지고,
거대한 송전철탑을 지나가면 노송들 사이로 산불초소가 산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우측너머 흥교마을이 조망되는 초소를 내려서면
비포장임도가 재차 산객을 기다린다.
조금 전 지나온 임도와 연결이 되는 도로인 모양이다.
별 수 없이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다 보면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잇달아
만난다. 이 도로는흥월리에서 조전리 흥교마을 을 잇는 길이다.
산새소리와 춘풍에 몸을 흔드는 나뭇가지들의 몸짓만이 이곳에서는
산객에게 유일한 길동무이자 즐거움이다.5분여를 우측의 도로를
따르다보면 좌측 조그만 절개면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을 찾을 수 있다.
작은 구릉같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산간오지의 흥교마을이 조망이 된다.
그리고 주변을 장방형으로 줄을 쳐놓은 성황당을 내려서면 산자락
비탈에 따비밭을 만난다.
국지산을 내려선지 한 시간가량이 흐른 시각이다.
곧이어 파종이 이루어질 모양인 따비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 우측
산비탈 농가로 이어지는 마을 길이 나타난다.
마을이라고 해야 뜨문 뜨문 여기저기 한두채의 농가,꼬끼오! 꼬끼오!
대낮의 조용하기만 하던 오지의 산간마을에 별안간 비상신호가 발령이
되었다.낯선 이방인의 출현을 마을 곳곳에 알려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장닭이 선포하는 비상시국인 셈이다. 적막강산의 산간마을에 인간이
거주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가축(家畜)! 우리와 함께 대대로 이어져온 전통이 아직도 이곳에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우리들에게 가축이란, 한 식구와 다를 게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소 돼지,닭,개 등이 주요 식구 중에 포함이 된다.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옥은 물론 우리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었고 먹이로는 우리들이 주로 먹고 마시는 곡식과
채소위주의 식단이 주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들이 공짜로 자고 먹고 한 것은 아니다.소는 농사를 책임졌고 돼지는
농사에 소용되는 거름을 보탰고 먹고남은 음식쓰레기 문제의 해결사로
역할을 다했고,주인 자녀들의 학비보조에 제 한몸을 바쳤다.
닭은 비상사태 조기경보에 목청을 가다듬었고 알을 낳아 곡류 채소 위주의
부실한 식단에 단백질을 보충하여 불균형 식단을 해소시켰음은 물론이다.
가족들의 안전과 방위와 건강을 위하여 몸을 바친 그들의 노고와 희생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가히 살신성인의 자세로 우리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그 뉘라서 부인하겠는가.
이름 모를 절집 입구를 지나면 서너마리의 그들이 앞다퉈 짖어댄다.
무심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이 산객이 너희들 마음 진작주터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쯤이면 되었네.꼬리를 아래 위로 심하게 흔드는 놈은
적개심이 가득한 것이고,좌우로 흔들어 가며 악을 쓰는 놈은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놈들이 그래도 외롭고 적적한 곳에서 경계를
서느라 울적하고 심심했던 모양인데 그래도 적개심은 적어보이고
어느정도는 우호적이네!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드는 꼴을 보니.....
우정 심심풀이로 짖어대는 견공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친절하게 산길
안내를 맡은 다람쥐의 수신호(산길안내 이정표)를 등대삼아 비탈길로
발길을 재촉한다. 산불초소를 내려서고 부터 이곳까지는 태화산을
오르기 위한 숨고르기의 몸풀기 구간이라면 적당할 것이다.
곧바로 비지땀을 요구하는 된비알의 태화산 진영이 팔을 벌리고
어서오라 손짓하기 때문이다.
초입 부터 샛노랗게 물이 든 노랑나비꽃이 산객을 반긴다.
태화산 진중으로 몸을 들이밀고 얻은 선물,노랗고 노란 노랑나비꽃이다.
시야가 훤하다.넓은 골짜기 전지역이 시원하게 벌목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수종(樹種)변경을 할 참인가? 수많은 수목들이 참변(?)을 당한 와중에
살아남은 덩치 큰 노송 예닐곱 그루가 외로이 골짜기를 지키고 있다.
허위단심 올라 선 주능선 삼거리,우측의 능선으로 보이는 산길은
태화산 남쪽의 산자락에 있는 영춘면 상리와 산중턱에 자리한 고찰
화장암으로 이어지는 산길,태화산 정상은 10분 남았다고 지친 산객에게
친절을 베푸는 다람쥐 이정표가 반갑다.
커다란 참나무 두어 그루가 범강장달 무색하게 버티고 있는 1031봉,
태화산 정수리가 코앞이다.정수리를 지근에 둔 발걸음이 가볍다.
잰걸음으로 올라선 태화의 정수리에는 영월군과 단양군이
각자의 정상표시석을 정답게 나란히 세워놓았다.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으려 하는가,
에메랄드 빛으로 가득한 남한강의 물줄기가 아나콘다의 기다랗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산객의 시선을 빼앗으려 한다.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
과일 두어 쪽을 베어무니 달디 단 과즙이 마른 목을 적셔준다.
연거푸 출출한 식탐을 채워주는 요기를 마친 후 이제 태화산 정수리를
뒤로할 시간이다.흥교마을 성황당을 떠나온지 1시간이 지난 무렵이다.
인천 모(某)산악회에서 산행을 온 모양이다. 여러 인원이 한곳에 모여
한창 산중 오찬을 즐기고 있다.갖은 음식 냄새사이로 왁자시끌
산중 만찬이 어느 화려한 성찬 부러울리가 없어보인다. 연보라 제비꽃을
비롯한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 피어있는 헬기장을 지나니
B팀 동료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속삭이며 산길을 이어가고 있다.
급할게 뭐있겠나,계획된 시간 안에 도착지점에 닿으면 될 일인데.....!
눈을 찡긋 윙크하는 다람쥐의 손길따라 전망대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바위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터를 잡은 육중한 덩치의 노송들이 즐비한
사이로 에메랄드 몸매의 남한강이 아름답다. 그동안 후덕한 마음씨를
내보이지 않던 춘풍거사의 자비로운 손길이 땀에 찌든 산객의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아직도 넘고 내려 설 산길은 여전히 산객을 시험하려한다.
잘 생기고 육중한 노송사이로 아직도 춘삼월의 미모를 자랑하는
진달래가 농염짖은 애교와 몸짓으로 산객의 눈을 유혹한다.거뭇한
돌무더기가 놓여있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는 태화산성터,
맞은편으로는 가파른 벼랑과 다를 바 없는 절벽 능선이 남한강으로
꼬리를 살며시 적시고 있다.
여기,이 지점까지 왔다가 발길을 되돌린 모양이구만,절묘한 장소에
일급 조망처가 눈을 부시게 한다.여전히 남한강과 주변의 산세는
청풍명월이 따로 없는 절경이다.10여분의 발품을 들여 되돌아온
삼거리길에서 좌측의 급경사로 구르 듯 내려선다.
수북히 쌓여있는 묵은 낙엽들이 산객의 자세를 무너뜨리고,절벽을
무색하게 가파른 산길이 산객의 무릅을 괴롭힌다.만만한 언덕 같아
보이는 봉우리 두어 개를 정신없이 넘다보면 끝나가는 듯하던 봉우리가
또 한번 삐죽하게 봉우리를 곧추 세우며 산객을 시험에 들게한다.
삼각점이 심어져있는 해발620,8m의 봉우리다.
구르지 말고 자빠지지도 말아야지, 도착지점이 지근거리인데 여기서
자빠지면 체면이 구겨지니, 제발 이 산객을 시험에 빠뜨리지 말아다오.
구르듯 자빠질듯 도망치듯 내려선 곳,정성스럽게 관리가 잘 된 묘1기가
있는곳,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그 앞에 우뚝하다.
이 묘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모양이다.
흔히 들, 잘 난 나무는 대처(大處)로 뽑혀가고 못생긴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킨다고 하던데 이 곳 노송은 생기기도 번듯하고 육덕이 멀쩡한 걸 보면
인간세상 이치를 두고 한 말일게다.
숲을 빠져나오면 넓게 갈아업고 고랑까지 파놓은 따비밭을 만난다.
인근에 배추을 심어놓은 곳을 여러 번 본 까닭에 배추를 심으려느냐,
미소와 함게 하얀 이를 드러낸 중년의 촌 아낙이 고개를 흔들며 무우를
심으려 한다고. 마을 고샅을 지나려니 농가의 안보 책임을 맡은 견공의
위험신호 사이렌이 고샅에 울려퍼진다.
행락철에나 오픈을 하나보다.길가 휴게소 넓은 마당에 산객을 기다리는
버스가 전세(?)를 냈다.금강산 식후경을 정수리에서 치루고 그 곳을
떠난지 2시간이 지났을 무렵에야 애면글면 각동리 날머리에 닿는다.
아직도 드넓은 궁창을 가리운 엷은 구름은 거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산객의 그러한 아쉬운 기미를 엿보았는가, 에메랄드 수면을 타고
춘풍거사의 손길이 부드럽게 산객의 마음을 쓰다듬는다.그로부터
허기와 갈증을 해결하고 귀경을 서두른 시간은 그로부터 3시간이 훌쩍지난
시간에 이루어졌다.
(2012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