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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큰 별 별나라로
-문덕수 선생님 이사 가신 후
문단의 큰 별 별나라로
아주 훌쩍 이사 가신 후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
존경하는 마음에서 따르던
후배 문우와 제자 그리고 지인들
별빛 반짝이는 별 밭을 바라보니
심산 이야기꽃도 활짝 피웠네요
문덕수 선생님은 생시에
문학적 업적을 많이 남겨 놓으신
유명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석학 명교수와
우리의 모지인 시문학지 발행인
문예 단체의 존경받은 수장으로
온갖 활약을 다 하시었습니다
후학들의 교과서이시었습니다
선생님을 맨 처음 뵈운 후
마음속 존경의 표징으로 간직하고
시의 문을 두드린 지 어언 반백 년
좋은 인연으로 시문학 식구가 되어
변산반도 ,대청호수, 계룡산, 통영행사 등
지방에서 시문학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어른을 뵈울 수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손을 잡고 반갑게 웃으시며 격려해주시던
인자하신 모습이 촉촉하게 젖어 듭니다
별빛이 반짝이는 별나라를 안식처로
전우들 곁으로 오신 6.25 참전용사
선생님이 떠나신 문단 그 후에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온 후배 문인들은
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오신 후
더 큰 별로 부활하신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선생님을 사랑했습니다
남겨주신 업적은 위대 하였습니다
새벽 큰 별은 영원히 더 빛납니다
2020 3;16 대전현충원
심산 문덕수 선생님 추도사
전 민 (시인 . 전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문단의 큰 별 문덕수 선생님
별나라로 아주 이사 가셨네요
왼쪽발 15mm 짧아도 절뚝절뚝 걷지 말자
이마 귀 눈 목 망가져도 더욱 부끄럽다
이 아픔 나눈 님들 저 골에 누워 신음하네
-시집<아라의 목걸이> 중에서 / 이 아픔 시
선생님은 6.25 참전 용사 이십니다 시조 ‘이 아픔’을 통해 당시 심정을 “그 때 전사한 동료 장병들과 함께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에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라고 하시었습니다
전시에 혹여 전사하셨다면 인연을 맺은 후학들과 문인들,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고 지금까지 쌓아놓으신 업적은 역사에 남지도 못하였겠지요
현세로 이어진 삶을 복되게 마무리하시고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나라로 영원한 삶을 떠나시기 위하여 동료 장병들 곁으로 오신 의리의 참전용사
선생님이 떠나신 문단에는 전국의 많은 지인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온 후배 문인들이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이사 가신 후 더 큰 별로 부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명복을 빌어 드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생시에 많은 일 하시면서 문학적 업적을 많이 남겨 놓으셨습니다 시 창작과 문학평론가로 명성을 떨치시며 문학교수와 시문학지 발행, 문예단체의 수장으로 온갖 활약을 다하시었습니다 시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모습은 후학들의 교과서이시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뵙고 존경의 대상으로 머릿속에 두고 시를 쓰기 시작한지도 어언 50년이 넘었네요 1971년 어느 날 인 것 같습니다 제가 20대 초반 문학도일 때 시문학 출신인 전 제주대 윤석산 시인,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나태주 시인과 같이 새여울이라는 문학동인지를 창간했을 때 조연현, 박재삼, 선생님과 문덕수 선생님이 공주까지 오시어 격려해주신지가 어언 반 백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그 후 한 10여년 시공부 더하고 시문학 식구에 편입하여 문학행사가 있을 때마다 선생님과 함께 김규화 선생님을 뵈울 수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변산반도 ,대청호수, 계룡산, 통영행사 등에서 반갑게 뵈울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뵈울 수가 없어 쓸쓸했습니다 , 손을 잡고 반갑게 웃으시며 격려해주시던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게 아른거리는데 코레아 전쟁 속에 몰아친 가슴 아픈 소식이 마음속 깊이 골을 파고 있으니 이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 뿐이네요
어려운 시대에 한국현대시인협회를 다져오심은 물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예술원 회원 등 책임 높은 자리를 역임하시며 우리 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하시었습니다 이승에서 한국 문단을 걱정하시며 한국문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시고 당신의 일인 것처럼 문인들을 챙겨 도와주시다가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고 병마와 대적해 싸우다가 너무 지처서 편안한 곳에 이사 가시기로 결정하셨으니 이젠 아무 고통 없는 안온한 영혼 속 생전에 못다 핀 꿈은 하늘나라에 가서 마음껏 펼치시며 편안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가족은 물론 후학의 제자 ,많은 문인들은 선생님을 사랑했습니다, 남겨주신 업적은 위대하였습니다 ,영원히 존경 합니다
202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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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단의 거목 중 대들보
-시인 장관 정한모
전 민
얼마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가?
충절과 충효의 고장인 충남 부여
석성면 석성리에서 1923년 출생하신
참교육자 , 석학, 문단의 대들보로
문화예술원장과 문공부장관도 하시며
순수문학인 최초로 시를 쓰신 관료
신문 잡지 등에 좋은 작품 보이셨고
구드래조각공원에 정한모 시비가 있지
문화의 꽃이 피는 아름다운 한국
앞으로도 훌륭한 시인 정치가들이
거친 세상, 어려운 나라를 가꾸며
시 쓰듯 깨끗하게 다독여만 준다면
우리 순박한 민초들은 작은 비바람에도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존심 곧게 세우며 성실하게 살 턴데
희망이 소원에만 머물까 걱정도 되네
교과서에서 ⸲나비의 여행⸴ 이란 시를
배우며 시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80년대 초반 30대에 월평동의 예식장
최원규 시인 여혼의 축하 연회장에서
처음 인사드렸더니 손을 꼭 잡으시며
나의 졸 시 한 구절을 줄줄 외우시며
칭찬으로 사이다 한 잔을 따라 주셨어
선배 문인들도 놀라며 박수를 쳐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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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는
― 박희선 시인이 사시던
백제 땅,계룡산 중턱에서
바람 타고 훌훌히 내려와
뿌리 뻗어 자리 내린
고집스런 한국소나무 한 그루
맨땅에 우뚝 홀로 서 있었지
모진 눈 비 바람막이로
온갖 세파 다 겪고도
세상사 허구 많은 풍경
듣도,보도 못한 듯이
나이테 속에만 그리고서
줄기는 오직 태양으로
가지는 오로지 달빛으로
잎은 마음밭 별빛으로
뿌리는 고향의 품속으로
덩굴처럼 뻗어만 가던 세월
팔월 그믐,어느 날 새벽
잠자리에서 깨어보니
소나무가 학처럼 날아간 자리엔
실비단 물안개만 자욱하고
잔뿌리만 앙상하고.
계룡산,장군봉 위에서
해가 지면 무시로 불어대는
저,밤파도, 솔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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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노시인 박용래
계룡산 가을 갑사의 저녁 정취는
젊은 노시인 박용래의 울음바다다
토박이 윤석산 시인이 자리를 펴자
반포 이장희 시인이 흥을 돋우고
한성기 시인이 펼친 민화투 판으로
젊은 시인들이 대부분 모여들지만
막걸리 잔에 시를 탄 박용래 시인은
깊어가는 밤을 시로 부등켜 안고
유성 터미날에서 천안 쪽으로 가는
금남 여객 버스 뒷좌석에서 졸다가
딸이 짜서 만들어준 털모자를 쓰고
앞문 쪽으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버스로 오르고 있는 늙은 젊은이를
끌어 안고 마구 흐느끼며 울었지
이렇게 너를 여기서 만나 반갑다고
승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조치원역 앞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현지인 강금종 소설가와 장시종 시인을
불러내 주어라 마셔라 어깨동무하고
막걸리 사발에 눈, 콧물이 다 빠저도
몇 번이고 부딪고 또 부딪치며
볼과 볼을 비벼대며 부등켜 안고
젊은 노시인은 춤도 추며 울었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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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천 연꽃으로 피어나셨나
― 소제동의 움직이는 돌부처 雲藏 金大炫 詩仙
우리가 살아온 이 세상과
수많은 사람들의 색깔이
바람 따라 수시로 변한다 해도
대전문단의 어르신으로
魂에 불타는 샛별
호서문학회의 상징으로
佛心으로 활짝 핀 불꽃
불교계의 法師님으로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 뵈어도
청자빛 姿態 한결같으셨어요.
꽁지모자 살며시 올려놓으신
한밭골 소제동의 움직이는 돌부처
하시는 말씀 잔잔한 파도처럼
파문져 두드리는 마음의 문
만나는 사람마다 밝은 미소
언제 어디서나 옆에만 계시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하던 어른
세상 살아가는 길 서두름 없이
팔십 평생 자비를 베푸신 후
도솔천의 연꽃으로 피어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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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강 빈
「冬木」의 큰 그늘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는
지나던 바람도 발을 멈춰
귓속말을 건네주고 갑니다.
「당신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을 때
우리는 환자가 되어
詩의 동굴로 실려왔지요
「등나무 아래에서」
다시 당신을 만났습니다.
보름달로 높히 떠
높고 낮은 산
질고 마른 들
한 색깔로 「매듭을 풀며」
그윽한 향내음을
쎈 빛으로 뿜어내고 있는
오늘은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
내일도 조금 쓸쓸하고 싶다.
「쉽게 詩가 쓰여진 날은 不安하다」
* 「 」부분은 선생님의 시집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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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님은 감성을 움직이는 대백과사전
-문단의 산 증인 송백헌 박사님 영전에
전 민 ( 시인.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
하늘나라에서 큰일 맡긴다 부르시면
이승에 할 일 남아 못 간다 하셨어야죠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
서로 의지하며 동행 하자시던 믿음
지키지 못하시고 왜 벌써 떠나셨나요
이승을 떠나가는 인생은 순서는 없고
정해놓은 별도 시간 일정도 없다지만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갑자기 듣고도
믿기지 않아 박사님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노년에도 그 총명하신 기억력과 판단력
거침없이 실꾸리 풀듯 풀어 놓는 입담
백 세 까지도 들려주시리라 생각했지요
여러 성 씨들의 족보와 가족사의 내력
우리 지역의 강과 산이며 마을의 유래
명 고전 사미인곡 상춘곡 관동별곡까지
줄줄이 외우시며 곁들여 하시던 추억담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어 매우 아쉽네요
송 박사님은 감성을 움직이는 백과사전
양주동 박사에 이어 인간 국보 2호이죠
대전 충청의 산증인이며 기인이셨어요
송 박사님은 대전 문단의 큰 어른으로
문단에 업적도 많이 남겨 놓으셨지요
힘든 시대에 대전문인총연합회를 창립
초대 회장부터 여러 해 이끌어 오시며
향토문학 발전에 터전을 닦아 놓으셨고
작품 활동하며 문단을 살펴보시던 일
후배나 제자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당신의 일인 것처럼 챙겨 도와주시며
학문적인 궁금증이 있을 때도 거침없이
당차게 궁금증을 술술 풀어내 주셨지요
이제 후배 문인들이 일아야 할 문제를
어느 백과사전을 찾아 터득 해야하나요
어느 선배 문인 찾아가 문단 야사 듣고
앞으로 나가야 할 길 등 밀어주실까요
세월과 맞장 떠 힘 겨루시다가 힘부쳐
편안한 곳에 이사가 쉬시기로 하셨으니
이제부터는 아무 고통 없는 안온한 영혼
생전에 못다 핀 꿈은 별나라에 가시어
마음껏 비취시며 편안히 영면하십시오
송백헌 박사님! 위대한 일생,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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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구상회 시인 또 떠나 가셨네요
전 민
구상회 시인 또 떠나 가셨다구요
대전에 원로 문인 임강빈 시인 뒤에
세종대왕격 유동삼 시인에 이어
구상회 시인까지 큰 느티나무들이
곁을 떠나시고 나니 그늘이 없어지네요
땡볕에 어린 나무들만 자라네요
만나 뵈면 그저 마음 포근해지고
시 한 구절과 말씀 한마디를 들으며
항상 존경하던 선배 문인 이시었는데
참으로 허무하고 쓸쓸하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툭하면 걸려오던
보험 권유나 여론 조사인 줄 알고
집 전화 벨 소리를 잘 받지 않고
망설이고 주춤하다가 가끔 받으면
요양원에 계시어 답답하시다며
별 하실 말씀은 없는듯한데 길게
우리 지역 문인들 안부도 물으시며
문단 돌아가는 이야기 궁금해하셨는대
언제부터는 전화 벨 소리도 안 울리고
정 끊고 안착하실 곳 찾아 이사하셨군요
구상회 시인은 조금 젊으셨을 때까지는
시를 쓰시면서 시조창에 구수한 말씀을
아주 건강하시고 활달하신 멋쟁이 신사
우리 고장에서 가장 오래된 호서문학의
역사적 산 증인이자 향토문학 발간을 위해
온갖 헌신과 열정을 바치셨던 분인데
죄송합니다 이승 떠나신 것도 몰랐네요
구상회 선생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셨어도
후배들 마음엔 생생하게 살아 계신 듯해요
하늘나라에 가셔서 편안하게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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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 하느님 곁으로 이사 가셨나요
- 故 변재열 시인 영전에
田 玟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하느님이 부르셔서 일찍 서둘러
하늘나라로 훌쩍 이사 가셨나요
100세 인생을 노래 부른 가수가
70세에 저 세상에서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했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그리고 친지들
믿고 따르며 동행하던 문우와 지인들과
할 일 아직 남아 못가신다 하셨어야죠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 갈 일
육신이 다할 때까지 서로가 의지하며
힘든 길이라도 같이 가자시던 약속
지키지 못하시고 왜 앞서 떠나셨나요
떠나가는 인생은 순서가 없고
정해놓은 별도 시간 일정도 없지만
시인님이 떠나시긴 아쉬움 뿐이네요
불과 열흘 전, 시인님 댁을 찾아가
후배 문우들 몇 명과 담소 나눌 때
의자에 앉아 눈감고 듣기만 하시다가
간간이 해맑은 웃음으로 답하시다가
문 앞까지 나와 배웅 해주시던 모습
갑자기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직도 눈에 생생하게 아른거리는데
태풍 링링과 함께 몰아친 아픈 소식이
마음을 후려치니 이제 그리움 뿐이네요
시인님은 문단에서 힘든 일 하시면서
문학적 업적도 많이 남겨 놓으셨지요
어려운 시대에 대전 시협을 다져오며
작품 활동하며 문단을 걱정하시는 일
향토문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시고
당신의 일인 것처럼 챙겨 도와주시다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 너무 힘들어
병마와 대적해 싸우다가 너무 지처서
편안한 곳에 이사가기로 결정하셨으니
이젠 아무 고통 없는 안온한 영혼 속
생전에 못다 핀 꿈은 하늘나라에 가서
마음껏 펼치시며 편안히 영면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