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마을~영취산~우성묘원~195.8m봉~
~농공단지~백천/낙동강합수점
우성공원묘원입구에서부터 발행이 되는 오늘의 세번 째 지맥 산행의 진행은 잠시 접어두고
근처의 영취산을 먼저 오르고 난 뒤에 지맥 산행을 이을 참이다.우성공원에서 영암지맥의
최종 날머리인 합수점까지의 도상거리는 11.8km에 불과하니 3시간 남짓이면 산행은 마무리가
되는 일정이 아니던가.그러한 여유로움이 근방에 자리하고 있는 영취산 산행을 도모하게 된
이유가 된다.영취산 산행의 들머리는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이다.한개마을은 마을
전체가 2007년 12월31일 중요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된 전국에서 여섯 번째 전통민속마을
이 되었다.이 마을은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600여년 전 목사공 이우가 개척하였으며 크고 작은
집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반촌이다(10시).
한개마을 동구에 이르니 경비초소 같은 관광안내소가 방문객들을 기다린다.'한개마을 먹거리
촌'이라고 써있는 입간판이 눈에 띠고, 6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소중한 문화유산과 미풍양속
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마을주민 스스로가 함께 준수할 여섯 가지의 구체적 실천방안이 담겨
있는 갈색바탕의 마을헌장 입간판도 세워져 있다. 영취산에서 스며나와 흐르는 마을 서편의
개울을 따라 난 마을 진입로를 따르면 마을 길 우측으로 크고 작은 돌과 황토를 개어 쌓은 뒤
기와를 얹은 토석담을 두른 농가들이 동구에서 마을로 들어갈수록 차차 지대가 높아져가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자세로 아늑하면서도, 어느 집에서나 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200미터쯤 그러한 행색의 마을 길을 따르면 길 좌측으로 비각(碑閣)
한 채가 세워져 있다.돈재 이공(李公)의 신도비(神道碑)를 모시고 있는 비각이다.이 비석은
영조 때 천륜이 무너진 왕실에 비분과 통한을 안고 낙향을 하였으나 사도세자에 대한 사모의
정과 사직의 안녕을 기원하여 북녘으로 문을 내어 북비공(北扉公)으로 더 잘 알려진 돈재
이석문(1713~1773)의 신도비다.
응와종택
돈재비각을 뒤로하면 '凝窩世家(응와세가)'라고 써있는 현판이 걸려있는 솟을대문의 고가가
기다린다.한개마을 성산이씨의 발상지나 다름없는 응와종택이다.돈재 신도비의 주인공 돈재
이석문이 북쪽으로 문을 내어 북비고택으로도 불리우는 그 집이다.응와종택 토석담을 우측
으로 끼고도는 완만한 비탈길은 이내 숲으로 꼬리를 드리운다.산길은 수렛길처럼 널찍하다.
이 수렛길은 점차 경사각을 높여나가더니 가파른 산비탈에 마치 제비집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절집으로 산객을 안내한다.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감응사이다.2층
형태의 콘크리트 당우가 가파른 비탈에 비스듬히 절반의 몸통만 드러낸 체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있는 당우 옆의,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른 돌계단을 기신거리며 올라서면 대웅전 앞
마당이다.
절마당은 비교적 협소하지만 본존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이 아담하고, 대웅전 우측으로는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응진전과 대웅전 마당 건너 편에는 범종각도 세워져 있다.그리고 대웅
전 좌측의 뒤편 쪽 벼랑에는 삼성각까지 자리하고 있다.절마당에서 좌측으로 난 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비탈을 올려치면 곧바로 주능선의 잔등에 붙게 된다.막상 주능선 잔등으로 붙으니
산길은 비교적 완만한 오름세를 보인다.그러한 산길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울멍줄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둥긋한 멧부리를 하나 내놓는다. 비교적 작으마한 헬기장이 닦여있는
이 멧부리가 해발331.7m의 영취산 정상이다.정상에서의 볼거리인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다.
사방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울창한 수목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취산에 얽혀 있는 전설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나 한토막 살펴봐야 겠다.
감응사 대웅전으로의 길.
감응사 대웅전
영취산에 얽혀 있는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감응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신라 애장왕3년(802년)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창건한 감응사의 창건설화에 따르면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얻었
는데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고.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왕비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그러던 어느 날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 말하
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니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는 곳에
이른다.그 약수로 눈을 씻고 약수를 마시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도인의
말대로 독수리를 따라가니 과연 약수가 있었고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
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애장왕은 이를 부처의 은덕으로 여겨 약수 앞에 감응사를 세우고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란 뜻에서 영취산(靈鷲山)이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신령스러운 독수리산 영취산 정상에 오르면 산길은 두 곳으로 나 있다.맞은 편 북쪽 방향의
산길로 십릿쯤 발걸음을 하면 영암지맥의 다람쥐재에 닿을 수 있는 산길이며 우측으로 난
산길은 한개마을 동편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우측으로 난 한개마을 동편으로의 산길도 뚜렷
하고 비교적 널찍하다.다갈색의 가랑잎이 수북한 가파른 비탈을 구르듯이 내려서면 부드럽고
밋밋한 숲길이 기다린다.숲을 빠져나오면 잡풀더미나 다를 게 없는 묵정밭 곁을 따르게 되고
이윽고 한개마을로 들어서면 얼마 전에 완공이 된듯한 기역자 모양의 팔작지붕의 한옥 한 채를
만나게 된다.마을회관 용도의 한옥인 게다.각각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부드럽고 적당한 곡선의
기와를 얹은 토석담 고샅은 주변 환경과 곧잘 어우러져 마을의 운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해발331.7m의 영취산을 축으로 한 두 줄기(백호등과 청룡등)의 산줄기는 한개마을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이천(伊川)과 백천(白川)이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남으로 흘러
가는 전형적인 남향받이의 배산임수(背山臨水)형으로 전국 최고의 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의 이름인 '한개'는 순수 우리말로서 '한'은 크고 넓다(大)는 뜻이고, '개'는 큰 물
이 드나드는 곳(浦)을 나타낸 방언으로,백천에 제방을 쌓기 이전에 큰물이 졌다가 빠져 나가
면서 생겨난 큰 개울로 인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11시10분).
* * * * *
한 시간가량의 짧은 시간에 한개민속마을을 수박 겉핥기처럼 둘러보고 감응사를 거쳐
영취산을 한바퀴도는 원점회귀산행을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이 마치고 본연의 지맥산행의
들머리인 우성공원묘원의 입구로 이동을 서두른다.한개마을 앞을 지나는 4번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시오릿쯤 발걸음을 하면 선남면 소재지인 관화리에 이르고 면소가 있는 관화리
에서 북쪽 편에 자리하고 있는 오도리 우성공원묘원까지는 이십릿길이다.30여분 남짓이
걸려 공원묘원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를 불과 15분쯤 남겨둔 시간이다.묘원 입구를
들어서면 우측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영암의 지맥인데 산줄기 절반인 좌측의 산사면
이나 골짜기는 다랑이 논처럼 계단식의 묘지가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다.주능선 절반의
좌측의 묘원과 또 다른 절반인 우측의 숲 사이로 난 양회임도가 지맥을 따라 이어진다.
우성공원묘원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양회임도에서는 찌는 듯한 열기가 풀풀 솟아오른다.여름의 한
복판이라는 하지를 이틀 지났다고는 하지만 무더위는 기실 지금부터가 아니던가.참따랗게
쏟아져내리는 오뉴월의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그늘은 주변에 남아있지 않다.고스란히 그 몫은
산객들이 짊어져야만 할 몫이다.한개민속마을과 영취산 산행을 주마간산식으로 얼렁뚱땅
해치웠다고는 하지만 무더위바람에 팥죽땀으로 온몸은 그때 이미 반쯤은 젖은 상태가 아니던가.
기신기신 땀을 연신 훔쳐가며 비탈을 올려치면 송전철탑이 우뚝 서있는 양회임도에서 우측의
숲으로 드는 산길이 나있다.어귀에는 산행안내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화살표 방향으로'도성
리(박구효자비)3.87km'라고 써있다.도성리 쪽은 지맥의 방향과 궤적을 같이하니 이 길을 따르
면 지맥의 방향과 차이는 거의 없다.산길은 널찍하고 잡목들의 저항도 거의 없으며 부드럽고
밋밋하게 꼬리를 잇는다.
언덕 같은 멧부리 한곳을 넘어서 한 차례 더 어상반한 비탈을 오르면 산불초소가 세워져 있는
해발207.1m봉에 오르게 된다.산불초소봉 주변에도 뙤약볕을 막아줄 만한 그늘은 별로 없다.
산불초소를 지나서 숲 그늘로 들어서면 쉼터용의 긴 의자가 잠시 쉬어감을 권면한다.다갈색
의 솔가리가 마춤맞게 내려앉아 있는 꺽다리 소나무 숲길이 한동안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소 밋밋하고 부드러운 솔가리의 꺽다리 소나무 숲길은 머지않아 벌목현장처럼 나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민둥 벌거숭이 산줄기로 산객을 안내한다.산불피해지역인 것이다.피해를
당한 지역은 비교적 광범위하다.산줄기 주변에는 앞을 막아서는 수목들이 없는 탓에 산객들
이 좋아하는 조망은 시원스레 툭 터져 있다.주능선 좌우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참외단지로
가늠이 되는 낙동강 변(좌측)과 백천(우측) 변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재배단지가
바다를 이루고 있다.
산불피해지대
민둥 벌거숭이의 해발195.8m봉,정수리 한복판에는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는 삼각점봉이다.
오뉴월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산불피해지역의 민둥 벌거숭이의 지맥의 산길은
한동안 꼬리를 잇는다.다행스러운 것은 그러한 무더위와 뙤약볕의 고충을 시원스런 조망이
메꿔주고 있다는 사실이다.민둥 벌거숭이의 끄트머리 어름에서 지맥은 좌측의 9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다.내리받잇길은 작으마한 그루터기와 뒹구는 돌들로 다소 조심스럽다.풀풀
흙먼지가 피어오른다.그러한 행색의 비탈을 내려서면 자선대부 최가의 묘를 비롯한 서넛의
묵묘가 반쯤은 돌담을 두르고 있는 묘역을 가로지르게 된다.그 묘역을 뒤로하면 꺽다리
소나무들의 고즈넉한 숲길이다.
꺽다리 소나무 숲길은 골리앗 덩치의 송전철탑이 서있는 붕긋한 멧부리로 이어지고 철탑봉
을 넘어서면 봉분 절반쯤의 아랫부분을 토석으로 두른 성주이가의 묘지도 만날 수 있다.
그런 뒤에 언덕 같은 봉우리에 이르게 되는데 사각의 지붕을 얹은 정자가 산객을 맞이한다.
이 정자는 금새라도 새 것처럼 나무향이 솟아날 것만 같은 최근에 세워놓은 정자로 보인다.
사각정자를 뒤로하는 소나무 숲길을 10여 분쯤 발걸음을 더하면 산행안내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오도리의 우성공원을 2.5km지난 지점이고 도성리(박구효자비)를 1.3km쯤 남겨둔 지점
이라고 알려준다.그런 뒤에 산길은 곧바로 지맥을 가로지르는 양회임도로 꼬리를 드리운다.
백천 변의 선남면 도성리 쪽과 낙동강 변의 도흥리 사이를 잇는 임도이다.
지맥은 이 양회임도를 곧장 가로지르며 이어진다.다갈색의 솔가리가 내려앉아 있는 소나무
숲길은 붕긋한 멧부리로 산객을 안내하는데 붕긋한 봉우리에는 입산객들을 기다리는 쉼터
용의 긴 의자가 마련이 되어있고 그 뒤쪽으로는 엄장한 허우대의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는
봉우리다.송전철탑봉을 뒤로하면 성산이가의 묘지를 가로지르게 되고 그 묘지를 지나면 숲길
은 수렛길의 행색이다.수렛길처럼 널찍한 산길은 머지않아 지맥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만나게
된다.광영고개다. 낙동강변의 소학리 쪽과 백천변의 도성리 사이를 잇는 임도가 넘나드는
고개인 것이다.광영고개를 막바로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서면 금새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맨 땅이 고스란히 드러난 봉분의 밀양박가의 묘지와 성산이가의 묘지들을 차례로 지나가게
된다.
지맥은 한결 낮아졌으며 낮아진 만큼 산줄기는 좌우로 펑퍼짐하게 주저앉아 있는 모양새다.
그렇게 기세는 눈에 띠게 수그러졌으며 기력은 쇠잔해 약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영암의 지맥
이다.그러한 허약의 틈새를 비집고 지맥의 등성이까지 차오른 푸른 그물망으로 울타리까지
두른 자드락 밭이 버젖하고 밀양박가의 허름한 묵묘를 지나고 나면 지맥은 아스콘 포장도로
로 꼬리를 드리운다.도로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다.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발걸음을 하려하니 길섶에 세워진 입간판 하나가 산객의 눈길을 끈다. '성주 도성리 지석묘,
고분군'이라는 제목과 함께 "이 유적은 청동기 및 가야와 삼국시대 문화유적인 성주 도성리
지석묘,고분군으로서 매장문화재 보호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4조의 규정에 의거 발굴,훼손
등의 행위를 금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내용의 성주군 문화재 담당자 명의의 입간판이다.
선남농공단지
도로를 따르다가 도로 좌측의 건축부지를 닦아놓은 곳이 있는데 그 부지 뒷편의 숲을 겨냥하여
발걸음을 한다.굴삭기 한 대가 휴식을 취하고 있고 그 뒤 저만치에는 붉은 지붕의 창고건물도
자리하고 있다.빤히 바라다보이는 숲의 구릉을 넘어서면 아스콘 포장도로를 또 만나게 된다.
나지막한 지맥의 약세를 틈타서 터전을 구축한 크고 작은 공장들의 이동과 진출입로의 역할을
하는 도로인 것이다.공장터로 닦아놓은 것으로 여겨지는 공터를 가로질러 다시 마주 바라다
보이는 흑록의 숲 속으로 물 만 보면 뛰어들고보는 개구리처럼 하나 둘 숲 속으로 기어든다.
그러나 이러한 숲은 이내 다시 공장들 사이를 잇거나 그들의 진출입로가 되는 도로로 으레 내려
서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러한 길도 없고 어느 공장 건물 안을 거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류기기를 생산하는 '영종테크'라는 이름의 공장이다.주말이라서 공장 안은 썰렁하고 인적은
느껴지지 않는다.그럼에도 주뼛거리며 공장건물을 가로지르면 비포장의 임도가 기다린다.
'나우테크'공장 옆을 지나서 개망초를 비롯한 잡초의 묵정밭을 지나면 꺼먼 차광망으로 울타리
를 두른 들깨밭의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간다.그런 뒤에 온갖 잡목들의 붕긋한 멧부리를 넘어
가면 지맥의 산길은 다시 공장 건물 뒤편으로 들어서게 된다.이 공장도 주말이라선지 인적은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두리번거리며 정문을 빠져 나오다 문패를 보니 '(주)대경금속'이라고
써있다.대경금속 정문에서 우측으로 조금 발걸음을 했다가 좌측의 숲 쪽으로 다시 개구리처럼
기어든다.
물을 만난 개구리 같은 산객들이 기어든 숲은 약세를 보이는 지맥을 야금야금 집어 삼키고
있는 공장이나 자드락 그리고 죽은 자들의 무덤이 아니던가.기실 물을 벗어난 천하의 용(龍)도
개미 같은 미물 등의 등쌀에 몸서리를 치는 법이다.그런데 미상불 만물의 영장의 도전이라면
입을 굳게 다물어야지 별 수가 있겠는가.그러한 인간들의 도전 등이 남겨놓은 지스러기 지맥의
줄기를 아등바등 잇는 지맥의 산꾼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장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이어지는 허섭한 꼴의 지맥은 정선김가의 묘지와 정선전가 그리고 광산이가의 묘지를 차례로
가로지르게 된다.그런 뒤에 다갈색의 가랑잎이 수북한 완만한 비탈을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공장건물의 담을 끼고 꼬리를 잇더니 슬그머니 왕복2차선의 널찍한 차도로 꼬리를 드리운다.
성주군 선남면 방면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북진을 해서 구미와 김천 쪽으로 이동이 가능한
7번 차도이다.
백천 건너의 후포평야
7번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50미터쯤 이동을 하면 광영삼거리인데 30번 구(舊)도로가 동서를
가로 지르고 있는 삼거리다.이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20여미터쯤 발걸음을 하면 길 건너편으
로 새롭게 건설된 왕복4차선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도를 만나게 된다.이
지하도를 빠져나가면 만나게 되는 차도에서 우측 방향으로 발걸음을 해야 한다.우측 방향의
도로를 100여 미터쯤 따르다가 도로 좌측으로 '등나무식당'을 만나게 되는데 그 등나무식당을
좌측으로 끼고도는 도로를 따르면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으로 접어들어 발걸음을 하면 머지
않아 '(주)세영'이라는 이름의 공장 정문 앞에 이르게 된다.
'(주)세영'의 정문 앞 좌측으로 아스콘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완만한 오르막의 그 도로를 따르
면 여러 중장비들이 여럿 주차하고 있는 채석장 같은 공장(정진기업)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채석장 같은 공장은 좌측이고 중장비들의 주차장 같은 터는 임도 우측의 공터이다.그 사이의
임도를 30여 미터쯤 발걸음을 더하면 임도 오른 쪽으로 잡풀더미 같은 수렛길을 만나게 되는
데, 지맥의 산길은 그 잡풀더미 같은 수렛길을 따라야 한다.그러한 행색의 산길은 이내 절개지
나 다를 게 없는 가파른 바위비탈이다.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오르면 닿게 되는 봉우리가
해발106.7m봉이다.정수리에서의 조망은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수목들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정수리 한복판에는 작으마한 높이의 돌담이 활처럼 쌓여 있다.오랜 전의 돌성의 잔해
로는 여겨지지 않지만 궁금한 구석이 감도는 돌담의 잔해다.
해발61m의 마지막봉의 육각정
106.7m봉을 넘어서 온갖 잡목들의 붕긋한 해발94.7m봉을 한 차례 더 넘어서면 지맥의 산길은
다시 공장 건물을 거치게 된다.이 공장은 '(주)한양에코텍'이다.그 공장 앞을 지나는 아스콘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발걸음을 하다가 길 좌측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줄기 등성이를
향하는 임도로 접어들어야 한다.비포장의 임도는 지금 한창 양회임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다.그러한 행색의 임도는 산꼭대기를 넘어서까지 이어진다.백천너머 후포평야를 온통
뒤덮고 있는 참외단지로 여겨지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바다처럼 넓기만 하다.벌거숭이 봉분의
묵묘를 지나고 잡풀더미 같은 묵밭의 곁을 지나면 오색단청의 육각정자가 산객을 기다린다.
해발61m의 영암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자인 것이다.정자 서쪽 편 바로
아래의 산기슭에는 대흥사라는 절집이 자리하고 있으며 절 밑으로는 낙동강변의 선원리 마을
이 한눈에 들어온다.
61m봉의 육각정을 뒤로하는 산길은 대나무 숲길이다.무성한 대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는
숲길은 한 농가의 뒤란으로 이어지고 농가의 안 마당을 거쳐 대문을 벗어나게 된다.농가의
마루에 앉아있던 한 아낙이 흔히 겪어오던 상황이었는지 그저 물끄러미 바라다만 본다.
"죄송 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 만을 남긴 체 주뼛거리며 그 농가를 벗어나면 낙동강변의
선원리의 고샅이고,고샅은 이내 백천을 가로질러 성주군 용암면과 고령군 다산면 방면을
오고 갈 수 있는 선원교 앞에 이르게 된다.오늘의 날머리에 드디어 득달한 것이다(2시25분).
선원교에서 낙동강과 백천의 합수점은 100여 미터쯤 좌측으로 강둑을 따라 발걸음을 하면
만나게 된다.낙동강 하구둑으로부터 189.8km의 지점이다.백천의 가세로 한층 몸집을 불린
낙동강이 지금쯤이면 바람이라도 한 차례 끌어들일 만 한데 아직은 요지부동이다.
낙동강과 백천의 합수점
한낮의 햇살은 뜨겁기만 하다.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선원교 다리 밑은 어떨까.
아뿔싸! 다리 밑은 이미 터를 잡은 행락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다행히 둑길 저만치
커다란 플라다나스 거목이 하나 눈에 띤다.그 허우대로 보면 상당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을
게다.잠시 후,멍석에 널어놓은 나락에 참새 떼 날아앉듯이 입성을 바꾼 산객들이 마치 참새
떼처럼 그늘 속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2018,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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