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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012년 8월 공연총평
필자가 8월에 관람한 공연은 극단 서울무대의 애가서 크리스티 작, 박영희 역, 김성노 연출의 <쥐덫>(SH아트홀)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유리피데스 작,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게릴라극장), (주) 이다. 엔터테인먼트의 츠카코우헤이 작, 김태희 역, 고선웅 연출의 <뜨거운 바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청우의 고연옥 작 김광보 연출의 <내 이름은 강> (선돌극장), 극단 휴먼 컴퍼니의 코난 도일 작 한재혁 연출의 <셜록>(노을소극장), 제12회 포항바다국제공연예술제 개막공연 (포항북해수욕장), 극단 초인의 박정의 작/연출 <기찻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일본극단 분카자 하치야료의 세톡구치 가오루 극본 니시카와 노부히로 연출의 <오타루의 여인들>(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공동각색 양정웅 연출의 <십이야>(명동예술극장), 이든프로덕션&극단 죽도록달린다의 한아름 대본/작사, 황호준 작곡/편곡 서재형 연출의 <왕세자 실종사건>(아트원씨어터1관), 고인돌 연극농장 창단공연 <노무현 3 story>(설치극장 정미소), 제2회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발 공식참가작 최원종 작/연출 <에어로빅 보이즈>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공식참가작, 극단 수레무대의 몰리에르 작, 김익진 역, 김태용 연출의 <위선자 따르뛰프>(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극단 신시컴퍼니의 홍정은 홍미란 원작, 이희준 극본 장성호 한소영 작곡, 김운기 연출의 뮤지컬 <미남이시네요> (세종M씨어터), 두산아트센터 마틴 맥도어 작, 변정주 연출, <필로우 맨>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제2회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발 자유참가작 극단 조은컴퍼니의 최우근 작, 김제훈 연출의 <이웃집 발명가>(한양레파토리 씨어터), 서호아트홀 개관기념공연 박리디아 예술감독 한윤섭 작/연출의 <수상한 궁녀>(서호아트홀), 제2회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발 공식참가작 극단 맨 씨어터의 천명관 작, 김한길 연출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두 번째프로젝트의 안네 프랑크 원작 이현빈 각색/연출의 <숨은 집> (예술공간 서울), 관악극단 창단공연 막스 프리쉬 원작, 김혜영 역, 최종률 신영선 각색, 최종률 연출의 <하얀 중립국>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PMC프로덕션의 장유정 작/작사/연출, 장소영 작곡/음악감독의 <형제는 용감했다>(삼성동 코엑스 아티움), 제2회 대학로코미디페스티발 공식참가작
극단 창작집단 혼의 에드몽 로스탕 작 박병수 연출의 <시라노>(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역시 코미디페스티발 공식참가작인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공동창작 임도완 연출의 <휴먼 코메디>(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그리고 2012 대학로 소극장축제 모스크바 루벤 시모노프 극단의 라지온 벨레츠키 작, 세르게이 테레츄쿠 연출의 <없었던 이야기> 등이다.
제2회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발은 별도로 평을 하기로 하고, 위의 공연작 중에서 특기할만한 작품을 선별해 평하겠다.
1 극단 서울무대의 애가서 크리스티 작, 박영희 역, 김성노 연출의 <쥐덫>
애가서 크리스티의 <쥐덫>은 1952년 초연이 이루어진 이래 2012년 그 60주년을 맞게 되었고, 영국 웨스트엔드의 공연을 SH아트홀에 옮겨 재현시킨 공연이다.
무대는 Monkswell 여관의 로비다. 정면에 커다란 창이 벽좌우로 나있고, 기둥에는 사실화인지 사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울창한 가로수와 난간이 달린 시멘트 길이 길게 펼쳐진 풍경화가 걸려있다. 풍경화 아래는 벽난로가 있고 장작불이 타오르는 게 보인다. 벽난로 옆에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창밖으로 호텔 진입로가 있어 내방객이 객석에서 보인다. 현관이 정면 왼쪽에 있고, 문 입구 머리 부분에 Monkswell 간판이 가로 달려있고, 정면 오른쪽에는 2층 객실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왼쪽 벽 가운데에는 책이 잔뜩 꽂힌 책장과 그 양쪽으로 주방과 휴게실로 통하는 문이 나있다. 오른쪽 벽에는 낮은 장식장과 그 위에 전화를 올려놓았고,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와 객석 가까이 있는 방에는 피아노가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무대중앙에 소파와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고, 창에는 한겨울이라 성애가 끼어있는 게 보인다. 천정은 여러 개의 굵은 나무가 석가래 모양으로 차례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앙에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정면 벽과 좌우의 벽 위쪽에 장식등이 부착되어 있고 입구 오른쪽에 스위치가 있어, 로비 전체의 불과 샹들리에와 장식등을 따로 켜거나 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무대 오른쪽 벽에 Monkswell이라는 간판이 s자가 빠진 채 Monkwell로 쓰여 세워져 있다.
연극은 도입에 암전상태에서 라디오에서 세 마리의 생쥐 노래가 흘러나오고, 폭설과 한파가 계속된다는 소리와 함께 살인사건의 뉴스가 관객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무대가 밝아지면 몰리와 가일즈 내외가 물려받은 저택을 여관으로 개조해서 막 영업을 시작하는 날, 폭설과 한파로 이 여관으로 진입하는 길이 막힌 것으로 전해지고, 곧이어 전화가 걸려오면, 범인이 이 여관이 있는 방향으로 도피를 해서 경찰서에서 경위 한 사람을 파견하겠다는 내용이 전달된다.
첫 번째 손님으로 비대한 몸집의 보일 부인이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곧이어 밝고 명랑한 성격의 청년 크리스토퍼 렌이 들어와 여관의 분위기를 한껏 상승시킨다. 이어서 품위 있어 뵈는 노신사 메드카프 소령이 여관을 찾아오고, 미모의 젊은 여인 케이스도 여관을 찾아든다. 그리고 훤칠한 중년남성 파라비니치는 우연한 사고로 이 여관에 들게 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마지막으로 핸섬한 청년 트로터 경위가 스키를 타고 이 여관에 도착한다.
트로터 경위는 런던에서 살해당한 라이언 부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왔다며, 라이언 부인을 살해한 사람이 몽크스웰 여관에 와서 또 누군가를 또 살해하려 한다고 전하면서 투숙객의 신상을 파악하는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명세서(明細書)가 객석에 전달된다. 향후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경위의 스키가 사라지는가 하면, 여관의 전화선이 절단되는 등 몽크스웰 여관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첫 번째 희생자로 보일부인이 살해된다. 향후 주인과 투숙객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심지어는 몰리와 가이즈 내외까지도 서로를 불신하기에 이르는 장면이 추리 극답게 펼쳐진다.
대단원에서 반전(反轉)과 절묘한 귀결(歸結)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여관의 투숙객인양 연극에 몰입(沒入)하게 되고, 이 8월의 무더위를 오싹 떨게 만들고, 시종일관 긴장감과 공포 속에 관극을 하게 되는 납량특집물(納凉特輯物) 같은 공연이었다.
윤국로가 트로터 경위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으로 연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한덕호와 유하나는 실제 부부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랄스톤 내외 역을 아름답고 지고지순(地高至純)하게 연기해 냈다. 정상철은 메드카프 소령으로 이 연극의 품격과 품위를 지키는 대들보가 되었고, 조한희는 일상어가 아닌 번역극 조의 대사로 원숙미와 개성을 부각시켰는가 하면, 장우진은 낙천적이고 느물거리는 성격으로 작중인물의 성격을 탁월하게 표현해 냈다. 최광희는 이지적인 면모와 미모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집중시켰으며, 지성우는 쾌활하고 밝고 정감어린 매너로 여성관객의 입가에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도록 만들었다. 서지유와 조은수, 그리고 이정성이 더블캐스트로 출연한다.
제작 권순명, 예술감독 김용현, 미술 이학순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애가서 크리스티 원작 박영희 역 김성노 연출의 <쥐덫>을 영국 웨스트엔드의 공연을 능가할만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2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유리피데스 작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인간의 정념과 억제할 수 없는 폭력에 내재한 비극을 깊이 있게 그려 낸 비극작가다.
<메디아>는 동방의 나라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다. 태양의 신인 헤리오스의 손녀이자 키르케의 질녀다. 이아손이 황금의 양모(羊毛)를 찾아서 콜키스에 왔을 때, 그를 사랑한 <메디아>가 양털을 찾아 주고 함께 콜키스를 탈출한다. 아버지와 함께 그녀를 뒤쫓는 동생을 잡아 죽인 후 갈가리 찢어 길에 뿌리고 아버지의 추적을 벗어난다. 이아손과 결혼하여 그의 고향인 이올코스에 갔을 때, 이아손과 그의 아버지 아이손의 적인 펠리아스를 살해하기 위해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재생의 마법을 보여준다. <메디아>의 마법을 믿은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칼로 썰어서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살아나기를 기대했으나 펠리아스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 뒤 <메디아>는 이아손과 함께 코린트로 도망한다. 코린트에서 이아손이 국왕 크레온의 딸을 아내로 삼으려고 하자, 메디아는 마법을 써서 왕녀와 국왕을 죽이고 자기 자식까지 죽임으로써 남편에게 보복한 후, 아티카의 왕 아이게우스 곁으로 갔다가 다시 아이게우스와 함께 아테네로 떠난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디아>의 비극적 운명을 희곡으로 썼고, 세네카도<메데아>라는 작품을 썼다
오페라 <메디아 Médée>는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60~1842)가 1797년 작곡해 성공을 거두었고, 미술작품으로는 들라크루아( 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1798 ~ 1863)의 <격노하는 메디아>가 걸작이다.
알폰스 마리아 무하 (Alfons Maria Mucha 1860- 1939)는 체코의 화가이며 장식 예술가로,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그의 <메디아> 역시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로는 피에로 파올로 파조리니 (Pier Paolo Passolini)의 <메디아 1970>가 명작이다. 이 영화에는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가 <메디아>로 등장한다.
게릴라극장에서 공연한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메디아>는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겨오고, 무대장치 없이 텅 빈 무대공간에 마이크 몇 개와 의자 대여섯 개를 연기자들이 직접 이동하고, 무대 좌우에 옷걸이를 비치해 출연자들이 의상을 갈아입는 모습을 객석에서 볼 수 있도록 설정했다. 다양한 총기 종류나 칼, 그리고 미소라 히바리(みそらひばり 1937- 1989)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이라는 일본가요에 이르기까지 연출가 김현탁의 발군의 기량이 연기자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실험적이고 상징성이 높은 문제극으로 만들어 냈다. 특히 TV나 광고,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의 범람을 그대로 반영한 <메디아>의 기자회견 장면이나, 중동을 비롯한 세계 전 지역에서의 끊임없이 발발하는 전쟁뉴스를 직접 대하는 듯싶은 전투장면은 인상적이기도 하다. 특히 인터넷 매체를 통해 포르노 영상물이 범람하듯, 이 연극에서의 정사 장면은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면까지 갖추었다. 대단원에서 일본가요 <흐르는 강물처럼>을 <메디아>가 열창하는 장면은 비록 립싱크이기는 하지만,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메디아>로 김미옥이 출연해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그녀의 멋진 선글라스와 함께 기억에 남는다. 이진성, 최수빈, 염순식, 홍기용, 연해성, 정해용, 박경남 등 극단 성북동 비둘기 단원들의 호연과 이 연극에서의 호흡의 일치가 돋보인 공연이었다.
조연출 김민엽, 기술감독 서지원, 무대감독 김동규, 무대진행 성석주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유리피데스 작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를 기억에 오래 남을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 (주)[이다.]엔터테인먼트 제작, 츠카 코우헤이(つかこうへい)작, 김태희 역, 고선웅 연출의 <뜨거운 바다>
일본 청년 문화의 선두주자이며 신화적인 존재인 츠카 코우헤이는 최연소로 나오키 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문학상과 훈장을 석권한 그는 일본현대 문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김봉웅(金峰雄), 재일 한국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두 개의 조국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일본에서는 ‘츠카 이전’과 ‘츠카 이후’로 연극 연대를 구분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며, 그의 여러 작품들이 연극은 물론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져 지난 35년여 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유작《딸에게 들려주는 조국》은 1985년 한국 방문을 배경삼아 태어나 처음 찾은 조국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삶과 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자전 에세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일본 사회에 자신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 책은 그의 연극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3월 18일 문화방송 에서는 ‘츠카 코헤이와 김봉웅’이라는 제목으로 츠카 코우헤이를 다뤘다. 경계인으로 살아온 한 천재 연출가의 삶, 그리고 뜨거운 사랑을.
츠카 코우헤이(김봉웅)는 1985년, 자신의 연극 <아타미(熱海) 살인사건>을 <뜨거운 바다>로 제목을 바꾸고, 명배우 전무송, 강태기, 최주봉, 김지숙 등과 함께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을 해 성공을 거둔다. 향후 이 작품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각색, 연출되어 공연되고 있다.
그의 필명, 츠카 코우헤이는 ‘언젠가 공평해지기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2007년 일본정부는 츠카 코우헤이에게 학문·예술·스포츠 분야에서 공적이 큰 사람에게 주는 자수포장(紫綬褒章)을 수여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 <뜨거운 바다>는 일본 경시청의 이름난 형사 기무라 부장형사와 나고야 경찰서에서 전임 온 젊은 구마다 형사, 그리고 여경 미즈노 등 3인이, 아타미 바닷가에서 어릴 적 여자 친구를 목 졸라 죽인 혐의로 체포된 오야마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기상천외의 행동과 완전자백으로 이끌어내기까지 사건의 전말을 형사 자신들의 가족사와 연관시키고, 시종일관 노래와 춤, 그리고 뮤지컬이나, 쇼에서처럼 연극을 이끌어간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형사들이 보이는 열정은, 사건 그 자체의 진실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정황과 형사들의 일상이나 개인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그려내어,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대단원에서의 절묘한 반전은 관객에게 감탄과 함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연극의 도입에 차이코프스키의 “Swan Lake” 음악에 맞춰 무용가 모습의 허수아비가 천정으로의 퇴장하는 장면이라든가, 여형사 미즈노가 무용복차림으로 “Swan Lake”에 맞춰 추는 춤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했고, 샹송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나, 앤디 윌리암스(Andy Williams)의 “토셀리의 세레나데” 번안 곡, 영화 대부(The Godfather) 주제가 “Speak Softly Love”, 베토벤의 운명 “Schicksal”과 그 외에 귀에 익은 영화 주제가 등이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고, 부장형사와 남녀형사가 열창하는 존 레논(John Lennon)의 “Let it Be”는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멋진 장면이었다.
대단원에서 무대 천정에서 쏟아져 내려온 조명기구나 극중에 사용된 미러볼(mirrorball), 그리고 별빛 찬란한 밤하늘 등은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명행...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배우가 있었다니....! 이명행이 부장형사로, 마광현이 범인으로, 김동원이 신출내기 형사로, 이경미가 여형사와 범인의 애인으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발군의 기량으로 열연을 해, 연극의 수준을 100% 상승시켰다,
조연출 김성현, 무대디자인 김충신, 조명디자인 최형오, 음악 김태규, 움직임연출 김재리, 의상디자인 오수현, 소품디자인 김수진, 분장디자인 김숙희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여, 츠카 코우헤이 작, 김태희 역, 비범한 연출가 고선웅 연출의 <뜨거운 바다>를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4 극단 휴먼 컴퍼니의 코난 도일 작 한재혁 연출의 <셜록>
노을소극장에서 공연한 <셜록>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 중 <벌스톤의 비극>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1859~1930)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 1849)와 에밀 가보리오(Emile Gaboriau1832~?)에게서 영향을 받아 창조한 인물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는 코난 도일의 장편과 단편 총 60여 편에서 활약하며 세계 각국에 소개되었다. 괴팍한 성격과 탁월한 재능으로 카리스마를 만들어 내는 셜록 홈즈의 모습에, 독자들은 그를 명탐정의 대명사로 일컫고, 심지어는 실제 인물이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셜록 홈즈 연재물은 몇 번이나 중단되었으나, 그때마다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계속 이어지기를 반복했는데, 특히 <스트랜드Strand>지에 연재되었던 <바스커빌가의 개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는 소름 끼치는 고가(古家)의 분위기와 황량한 황무지 등, 뛰어난 묘사와 숨 막히는 전개로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장편 4부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이다.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으로는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1890), <셜록 홈즈의 모험 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1892), <셜록 홈즈의 회상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1893) 등 셜록 홈즈 추리물을 비롯하여 영화 <쥐라기 공원 Jurassic Park>의 원작 격인 모험 소설 <잃어버린 세계 The Lost World>와 보어 전쟁에 관한 르포<위대한 보어 전쟁 The Great Boer War>등이 있다.
무대는 셜록 홈즈의 사무실도 되고, 벌스톤家의 거실로도 사용된다. 벽에는 책꽂이에 책이 꽂혀있고, 장면변화 따라 연극의 도입에 무대 왼쪽 벽에 있던 책꽂이가 벌스톤家에서는 무대 오른쪽 벽으로 가 장식물 구실을 한다. 배경 막은 평소에는 벽면으로 사용되다가, 흰색바탕의 스크린이 펼쳐지고 그림자 연극처럼 등장인물들의 실제 프로필이 비춰지기도 한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소파가 무대 중앙에 비치되어 있고, 정면 벽난로에는 타고 남은 장작이 보이기도 한다. 의상은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춰 고풍스럽고 품위 있게 착용했다.
<벌스톤의 비극>을 소재로 한 연극 <셜록>은 첫 장면에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등장해 동료인 왓슨과 함께 포록이라는 가명을 가진 자가 보낸 암호문을 읽고 있다. 그 암호문은 내용이 [534 C2 13 127 36 31 4 17 21 41 더글라스 109 293 5 37 벌스톤 9 47 171] 이라고 적혀 있다. 왓슨과 홈즈는 암호문을 풀려고 애쓴다. 그런데 포록이라는 가명을 가진 자가 편지를 보내어 “이제는 그 암호문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태워주세요.” 라고 홈즈에게 전한다. 하지만 홈즈는 그 편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암호문 맨 앞에 [534 c2] 라고 된 부분을 해독해 낸다. 그것은 바로 칼럼 2로 된 534쪽이나 되는 작년 연감(年鑑)이고. 바로 그 연감에서 단어를 찾아 암호문을 해독한다. [대단히 위험하다 / 아주 / 가까운 / 시일 / 내에 / 사람 <더글라스> / 부유한 / 시골 / 현재 / 거주 / 벌스톤 / 집 / 벌스톤 / 친선 / 매우 / 긴급] 이게 그 암호문의 전체내용이다. 왓슨과 홈즈는 해독한 내용으로 벌스톤에 사는 부호(富豪) 더글라스라는 사람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왓슨과 홈즈는 그 해독 문을 가지고 맥도널드 경감에게 한 달음에 달려간다. 홈즈는 왓슨이 갈겨쓴 해독 문을 보여주자, 맥도널드 경감은 그 해독 문을 보더니, 벌스톤 영주관에 사는 더글라스 씨가 지난밤에 처참히 살해되었다고 알려 준다. 홈즈와 맥도널드 경감이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맥도널드 경감의 친구에게서 편지가 오는데 홈즈 선생을 모시고 와서 더글라스 씨의 살해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 소식을 듣고 홈즈와 왓슨, 맥도널드 경감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바람같이 벌스톤을 향하여 달려간다. 벌스톤에 도착한 홈즈는 사건 현장이 사건 당시의 현장과 일치하는지를 물어본 뒤, 범인을 잡기 위하여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단서는 비교적 찾기가 쉬워 홈즈가 찾은 단서는 이러하다. <열려있는 창문, 창틀 위의 피, 괴상한 카드, 구석의 발자국, 총>.... 홈즈는 이렇게 5가지의 단서를 찾아내지만 그 중에 조작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확실한 단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홈즈는 이 살인 사건이 계획적인 살인 사건인지를 추적한다.
지방의 형사반장 맥도날드는 더글라스 씨의 죽음은 과연 자살인지 타살인지 짐작이 안 간다고 홈즈에게 이야기한다. 잠시 후, 더글라스의 친구인 세실 바커가 또, 하나의 단서를 찾아들고 온다. 그것은 현관에서 1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 범인의 자전거가 발견된 것이다. 맥도널드 경감은 홈즈에게 이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 홈즈는 이상한 단서를 발견한다. 바커 씨의 슬리퍼에 검은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바로 그때, 홈즈는 날렵하게 바커 씨의 슬리퍼를 창틀에 묻은 핏자국에 올려놓자 모두들 놀란다. 그 이유는 바커 씨의 슬리퍼에 묻은 피가 창틀에 묻어 난 피자국의 모양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왓슨은 자신의 짐작이나 바커 씨와 더글라스 부인의 행동으로 보아, 바커 씨와 더글라스 부인이 범인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홈즈에게 던진다. 그러나 홈즈는 왓슨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홈즈는 처음 수사를 할 때부터 더글라스 씨의 아령이 하나인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아령 하나라는 도구로 즉, 부자연스러운 도구로 신체를 단련하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홈즈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벌스톤家를 둘러싸고 있는 해자에서 찾아낸다.
홈즈는 해자의 물을 빼겠다는 소문을 내고 한 밤에 해자 부근에 몸을 숨긴다. 과연 복면의 사나이가 등장해 해자에서 아령꾸러미를 들고 나온다. 왓슨과 홈즈는 그리고 맥도날드는 복면인을 체포한다. 그는 더글라스의 친구 바커씨다. 그가 들고 나온 꾸러미에서는 아령 뿐 아니라, 미국제 구두, 무시무시한 긴 칼, 속옷 한 벌, 양말 한 켤레, 회색 트위드 정장, 기다란 총을 숨길 수 있는 안주머니가 있는 반코트가 나온다. 홈즈는 이 단서로 이 사건은 더글라스 씨와 더글라스 부인, 그리고 세실 바커가 공모한 연극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더 이상 밝힐 수는 없지만 여하튼 대단원에서 멋진 추리극적인 반전과 함께 범인이 밝혀지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종현이 셜록 홈즈, 김선호가 왓슨, 이상일이 더글라스, 이현웅이 맥도날드,김기영이 세실 바커, 장누리가 애슐리, 윤지오가 야메스로 출연해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과 긴장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긴장을 이완시키는 코믹한 연기와 열연으로 시종일관 관객을 극에 몰입시켰으며, 조연출 박혜영, 기획 이지혜 정종영 박혜영, 안무 황찬용, 의상 정현정, 음악 이원조, 조명 이 진, 그림자극 김양희 이 진, 디자인 이한경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인 코난 도일 원작, 한재혁 연출의 <셜록>을 소극장에서 관람하기가 아까운, 대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걸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5 극단 차이무&(주)[이다.]엔터테인먼트의 민복기 작/연출 <슬픈 대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한 <슬픈 대호>의 무대는, 객석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벽에 수많은 기둥시계와 벽시계를 걸어놓았다. 시계는 대부분이 멈춰있고 그중 몇 개는 제 시간을 가리키고 있지만 시계 바늘의 위치가 다소 부정확하다. 그런데 검은 바탕에 자개문양이 들어간 기둥시계는 추가 흔들거리고, 시간이 정확한 것으로 보아 이 시계포의 그리니치 천문대(Greenwich observatory) 역할을 하는 시계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휴대폰마다 정확한 시간이 표시되기에 손목시계를 찬 사람이 드문 편이고, 집에서도 산뜻하고 아름다운 문양의 탁상시계나, 원형의 벽걸이 시계가 있어, 추가 달린 기둥시계를 보기가 힘들다. 혹 고풍스런 기둥시계가 있는 집을 방문한 경우라도 대부분 추가 움직이지 않거나, 분리되어 시계바닥에 떨어져 있다. 하기야 전 세계의 시간과 공간의 정확한 측정법이 시작된 곳인 그리니치 천문대도 이전을 했는데, 기둥시계 폐기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1420년대에 영국 왕 헨리 6세의 숙부인 글로스터 공작이 템스강변에 궁전을 짓고 그리니치 파크를 조성했는데, 언덕 꼭대기에 강물과 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와 망루를 지었고, 여기에 찰스 2세는 천문대를 세워 천체관측을 했다.
1833년에는 작은 탑 꼭대기에 '타임 볼'이 설치되었는데, 이 공은 매일 오후 13시에 정확히 아래로 떨어져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었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는 소리를 듣던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은 차츰 세계인의 시간의 표준이 되었고, 오랫동안 그 명성을 유지했으나, 런던의 연기와 안개 때문에 천체 관측이 점점 어려워져, 1948년에서 1957년에 걸쳐 천문대는 서섹스에 있는 허스트 몬슈 성으로 이전하고. 천문대의 일부는 해양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유네스코는 1997년 그리니치 해양 박물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했다.
시계 수리점이 연극의 무대라, 엉뚱하게 그리니치 천문대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는데, 여하튼 시계와 시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자니 그리 되었다.
무대는 중앙에 사각의 탁자와 의자가 있어 시계 수리기구와 고물 라디오를 올려놓았다. 등받이가 없는 원형의자도 옆에 있다. 배경 중앙에 문이 있어 내실로 통하고, 객석 중앙방향으로 점포의 출입구가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무대 좌우공간은 아나운서의 중계석이나, 여자경찰서장, 시위대, 그리고 옛사랑 여인의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폭음소리와 함께 희끗희끗한 장발머리의 남성이 무대 오른쪽 공간에 등장해 주먹을 휘저으며 무어라 부르짖는다. 장발 남은 시계포 안으로 들어가 점포주를 위협하고, 그를 포박한다. 점포주는 공포에 떨며 포박에 순순히 응한다. 곧이어 여자 아나운서가 등장해 테러범이 여성 대통령 후보의 차량을 망치로 깨뜨리고 도주했으며, 경찰대가 추적중임을 알리고, 언젠가 한 테러범이 여성선거대책본부장의 몸에 테러를 가한 것처럼 이번에는 범인이 여성대통령후보차량에 가한 테러행위라고 목청을 높인다. 헌데 여 아나운서의 미모가 보통이 아니다.
무대가 밝아지면 포승줄이 아닌 테이프로 입과 몸이 동여진 점포주를 보고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온다. 테러범과 점포주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점포주는 생리를 호소하고, 범인의 허락을 받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범인은 경상도 말씨를 쓰고, 불평불만을 연신 터뜨리며 배낭에서 술병을 꺼낸다. 점포주는 내실에서 오징어를 안주로 가져다준다. 범인은 술 푸념처럼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첫 눈에 반한 여인을 유부녀인 줄 모르고 사랑하고 통정을 하게 된 사연과 남편에게 들켜 강간범이라는 죄목으로 4년을 감옥에서 살게 되었으며, 출소해 다시 잊지 못할 그 여인을 찾으니, 이번에는 재범자로 취급되어 장기복역을 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는다. 미모의 여 아나운서가 다시 등장해, 범인의 신상명세서와 함께 점포주를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중임을
밝힌다.
점포주는 범인에게 시계포는 가업을 물려받은 것이고, 현재 이 업종은 사업이 안 됨은 물론, 자신은 막대한 금액의 빚까지 진 사실을 털어놓는다. 향후 두 사람은 함께 음주를 하며 서로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범인은 점포주에게 자폭할 심산임을 고백한다. 점포주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들어둔 상해보험금이라도 타내야 하겠다며, 범인이 자살하기 전에 점포주는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자신의 다리를 절단하거나 목숨을 끊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여자경찰서장이 등장해 정상참작을 조건으로 범인에게 인질을 풀어줄 것을 권유한다. 범인은 첫사랑의 여인을 데려와 자신과 만나도록 해 줄 것과 연료를 가득채운 차량 한 대를 점포입구에 대기시키면 인질을 풀어주겠노라 약속한다.
범인의 요구대로 여인이 등장한다. 과연 첫눈에 반할만한 미모에다 범인과 마찬가지인 경상도 말씨로 강간이 아닌 두 사람의 화간사실을 살포시 털어놓으며, 여인도 남성을 사랑했노라는 고백과 함께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퇴장한다. 범인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여인의 사랑했노라는 그 말 한마디가 십여 년의 교도소 생활이 상쇄되는 듯싶은 느낌으로 다가옴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대단원에서 점포주와 범인은 성만 다르지 이름이 똑같이 <대호>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거듭 신체절단을 요구하는 점포주에게 범인은 그만한 결심이면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하라는 충고와 함께 함께 두 사람은 점포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점포주로 문천식이 출연해 착하디착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가장으로 출연해 필자를 모델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고, 범인으로 이중옥이 출연해 막장 같은 인생의 한을 가슴 저리도록 표현하면서도 시종일관 희극적으로 묘사해 관객을 도입부터 연극에 몰입시킨다.
공상아가 아나운서, 여자경찰서장, 시위대, 그리고 첫사랑 여인으로 등장해 미모와 발군의 연기력으로 갈채를 받는다.
김용현의 무대, 이현규의 조명, 장영규의 음악, 이몽자의 의상, 최형선의 조연출, 이혜은의 프로듀싱, 송정현의 조명 오퍼레이터, 이원호 음양 오퍼레이터, 무대제작 류제승 최형선 황성현 신현용 송정현 이원호, 소품제작 이수련 권진란, 조명크루 김정목 김성호, 공연장 진행 황성현 강병구 이수련 권진란 등 스텝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민복기 작 연출의 <슬픈 대호>를 문제작이자 가슴 저린 감동을 전하는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6 극단 초인의 박정의 작/연출 <기찻길>
우리나라 기차의 역사는 1896년에 노량진과 인천 구간을 연결하는 기찻길을 놓기 시작하고,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철도가 첫 개통되면서 열렸다. 그 경인철도를 달린 최초의 기차는 미국 브룩스 사에서 제작한 ‘모가 형 탱크기관차’였다. 지금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연기를 위로 뿜어 올리며 칙칙폭폭 달리던 그 증기기관차다. 당시 최고속도는 60km로, 지금으로 치면 성능 좋은 자전거 속도 수준이다.
이후,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과 선로의 상황, 수송물자의 증가에 따라 1930년대에는 미국과 독일에서 도입해 조립·운용하거나 독창적 설계로 제작된 증기기관차가 활약하게 된다.
그리고 1946년 드디어 우리 기술로 만든 해방자호가 서울-부산 구간에 운행을 시작했다. 최고속도 70km로, 160km 이상이면 기술적인 한계로 여겨지던 당시 속도 기준으로 보면 고속열차에 해당한다.
디젤기관차는 6 25 사변에 등장했다. 미군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운행하던 디젤기관차 가운데 4량을 1955년 기증하면서 한국에 디젤기관차 시대가 열리게 됐다. 증기기관차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고, 비탈이 심하고 터널이 많아 증기기관차가 운행되지 못하는 구간까지 달릴 수 있어 효율성이 높아 디젤기관차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전기기관차는 선로 위에 전차선을 설치하고, 이 전차선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하는 기관차이다. 전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에 비해 소음이 적고 친환경적이어서 미래형 기관차로 각광받고 있다.
1973년 청량리-제천, 1974년 구로-수원, 서울-인천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전기철도의 시대가 시작됐다.
전기철도는 지하자원이 적은 나라, 산이 많은 나라에서 발전된 가장 각광받는 철도의 수송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일찍부터 전기 철도 화를 이루었다. 또한 전기철도는 철도고속화의 절대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현재 최고속도 516km(상업 최고속도 300km)의 고속철도 시대를 맞고 있다.
오는 9월 18일이면 경인철도가 개통된 지 113년이 된다. 그 사이 한국에 철도시대를 열었던 증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에 밀려 1967년 운행을 중단했고, 현재 디젤기관차와 전기기관차가 함께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석유자원 고갈 등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환경 위기를 맞아 디젤기관차 역시 빠르게 전기기관차로 대체되고 있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 극단 초인의 <기찻길>은 113년이라는 철마(鐵馬)의 역사와 함께 우리의 근현대사를 함축시켜 그려내고 있다.
무대는 배경 막 가까이 2m 높이의 대를 무대 좌우로 연결하고, 중앙에 그보다 1.5m 높은 망대를 만들어 망대 밑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오케스트라 박스 안에는 연주자가 음악은 물론 효과음까지 생생하게 냄으로써 극적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또 손수레를 사용하거나 출연자들이 기차객차처럼 나란히 연결된 동작으로 무대를 회전하게 함으로써 기차를 연상토록 연출했다.
주인공이 1896년에 태어난 것으로 설정되었으니, 그 해에는 독립협회가 창설되고 독립신문이 발간되기도 했으나, 고종은 열강의 침탈을 견디지 못하고 러시아 공관에 몸을 의탁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다. 그 후 1905년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이루어지고 사실상 일제 식민지 상태에 들어가고, 국권이 실종된 피지배국으로서의 치욕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기찻길>은 당시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초들의 삶을 형상화시켰다.
연출가 박정의는 통상극의 형태를 벗어나, 탁월하고 독특한 표현으로 <특급호텔> <게르니까>에 이은 새로운 형태의 연극 <기찻길>을 창출시켰다.
이 연극은 펀터마임과 모던발레, 아크로바틱 액션을 복합시키고, 동물적 발성과 동작, 그리고 거기에 부합되는 효과음과 음악으로 비범한 연출가 박정의가 탄생시킨 세계최초의 초인이즘이라 평하겠다.
출연자들은 개개인이 전체를 표현하고, 전체가 개인을 형상화시키는 공동 창출로 악기가 아닌 인간 오케스트라의 위용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부모와 자식, 자식과 연인, 그리고 마을이나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군상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총체극적 범주에서 일탈하지 않는다.
곱사등이의 모습처럼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땅굴 속 두더지처럼 견뎌가는 모습이라든가, 질곡의 세월 속에 꽃피우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집단학살이 자행되는 순간에서도 천우신조로 살아남고, 기차레일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과 철마처럼 칙칙폭폭 그 레일 위를 숨을 고르며 달려가는 삶의 모습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가슴에 다가오는 그러한 연극이다.
이은성, 이상희, 박재영, 최은경, 박두영, 이성재, 정아람, 고병수, 김두영, 박상이, 진미선, 김희성, 고유리, 손소라, 김자강, 황아름 등이 출연해 새로운 연기술로 무대에 그 기량을 펼쳐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이주은의 무대, 조선형의 음악, 박연용의 조명, 김지선의 연주, 김정윤의 안무, 이영호의 조연출, 정지애의 음향오퍼, 양동민의 포토그래퍼, 김종운의 공연기획 등 스텝진의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초인의 박정의 작/연출의 <기찻길>을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7 일본극단 분카자의 하치아 료 작, 세토구치 가오루 극본, 니시카와 노부히로 연출의 <오타루의 여인들>
포항바다 국제공연예술제 공식초청작으로 포항문예회관 공연에 이은 서울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의 일본극단 분카자(文化座)의 하치아 료(蜂谷涼) 작, 세토구치 가오루(瀨戶口郁) 극본, 니시카와 노부히로(西川信廣)연출의 <오타루(小樽)의 여인들>은 일본의 정극(正劇)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였다.
원작은 1994년 <분별회수>로 일본 문학계에 새롭게 떠오른 하치야 료의 소설이다.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테케레츠노파>에서 등장인물들은 한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바로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이 연극의 배경인 오타루(小樽)는 1872년 최초로 부두를 건설해 상항(商港)으로 홋카이도 개척의 가교 역할을 했다. 1880년 삿포로[札幌]와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어 삿포로의 외항 및 이시카리 탄전의 석탄 선적항으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러시아 연방의 사할린·프리모르스키(연해주)와의 교역도 활발하다. 현재도 홋카이도 서안 제1의 상항(商港)이다. 평지가 협소하여 상가·녹지대·주택지 등은 해안 언덕에 계단식으로 건설되어 이어져 있다. 부두 부근과 서부의 가쓰나이강[勝納川] 계곡은 공업지대를 이루어 제관(製罐)·목재·고무·제분·식품 등의 공장이 있다. 하코다테 본선[函館本線]이 통하고, 동쪽의 교외는 니세코·샤코탄[積丹]·오타루[小樽]해안 국정공원에 속하며 겨울은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메이지[明治] 말기의 많은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어 뛰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관광지로 인기가 높고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무대는 목조건물의 앞에 가게자리를 만들고, 중앙에 궤짝을 벌려놓고, 그 위에 판때기를 덮어 자판을 만들어 놓았다. 자판에는 반찬거리를 바구니에 담아 팔기 좋게 늘어놓았다. 왼쪽에는 벽 가까이 책상과 의자, 그리고 필통을 올려놓고, 대서소에서처럼 글씨를 쓸 준비를 해 놓았다. 벽에는 크고 작은 바구니를 걸어두었고 그 왼쪽에 가로로 널판을 댄 나무문이 닫혀있고, 오른쪽문은 개방이 되었는데, 그 문에 <기시야>라는 상호가 디자인 된 헝겊이 매달려 있다. 집 좌우에 두 세 그루의 나무가 푸른 잎을 반짝이며 서있고,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가 있다. 장면전환에 따라 다다미가 깔려있는 실내(室內)로 바뀌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망사커튼 너머로 무대 한 가운데에 인력거(人力車)가 스폿(spot)을 받으며 손님을 기다리듯 세워놓은 게 보인다. 인력거꾼(俥夫)이 등장해 인력거를 끌고 달리기 시작하고, 조명이 바뀌면 망사 앞으로 나온 인력거꾼(俥夫)이 각광을 받으며 해설자 역할을 한다. 망사커튼이 올라가면 무대가 밝아지고, 기모노차림의 집주인 아야노가 글씨를 대필해 주며 동전을 받는 모습이 보인다. 나이 지긋한 하녀 오세키가 옆에서 지켜본다. 오세키는 백발이 성성하지만 미모에다가 음성까지 맑고 또렷해, 그녀의 단정한 자태와 함께, 아야노와 오세키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친구인 듯 동기간인 듯 보이고 게다가 다정하기가 더 이를 데가 없다. 인력거꾼 긴지를 대하는 아야노의 모습이 은근하고, 긴지 또한 아야노를 대하는 모습이 정중하고, 눈빛 또한 연모의 정이 듬뿍 서려있지만 두 사람은 본분이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긴지의 처는 작달막한 체구의 남편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키에 금발염색을 해, 차림새나 모양새부터 예사롭지가 않고, 힘이 장사라, 웬만한 사람은 번쩍 들어 어깨에 걸쳐 메고 퇴장한다. 아야노의 아들도 인력거를 끌고 처와 함께 이 집에서 살고 있다. 아야노의 남편인 고위직이자 메이지유신의 실세인 벳쇼 데쓰타로가 등장하면 이 집 사람들은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지극정성으로 데쓰타로를 모시고 정중하게 떠받든다. 아야노와 데쓰타로의 대화를 통해 아야노가 그의 소실(小室)임이 밝혀진다. 개발지역의 땅값이 오르고, 투기꾼들이 몰려들면서 폭력배들이 기시야 상점에 눈독을 들인다. 어느 날 이들의 시비와 행패가 시작되자, 기시야 상점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폭력배에 대항한다. 이 때 데쓰타로의 본처인 가요가 청령도를 가지고 등장해 깡패소탕에 일익을 담당한다. 그러나 가요는 의외로 어부인 답지 않게 겸손하고 소탈하다. 이 일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오세키는 숨을 거둔다. 오세키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폭력배가 다시 무리를 지어 등장한다. 기시야 상점사람들은 일치단결해 싸우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두드려 맞고 집은 불타버린다. 기시야 상점 사람들은 불타버린 폐허에 숯 검둥이가 되어 명멸하는 별빛아래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대단원에서 기시야 상점 사람들은 새로운 개발지역을 찾아 수레에 짐과 기시야라는 간판을 싣고 떠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아베 아쓰코(阿部敦子), 사사키 아이(佐佐木愛), 아루가 히로미(有賀廣美,) 쓰다 지로(津田二朗), 오키나가 마사시(冲永正志), 고타니 요시카(小谷佳加), 나루미 히로아키(鳴海宏明), 다카무라 히사에(高村尙枝), 이가라시 마사코(五十嵐雅子), 사토 데쓰야(佐藤哲也), 시라하타 다이스케(白幡大介), 하루키 다카히로(春稀貴裕), 이케우치 사토시(池內志士), 후지와라 아키히로(藤原章寬) 등이 출연해 호연으로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아사쿠라 세츠(朝倉攝)의 미술/의상, 사쿠라이 미스미(攖井眞澄)의 조명, 사아토 미사오(霽藤美佐男)의 음향, 모리 마사오(森正夫)의 무대감독, 아쓰미 히로시(渥美博)의 무술, 모리시타 히로코(森下廣子)의 사쓰마 방언지도, 나카야마 히로미(中算博寶) 구니히로 겐이치(國廣健一) 박은미의 제작 등 스텝 모두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하치아료(蜂谷涼) 원작, 세토구치 가오루(瀨戶口郁) 극본 니시카와 노부히로(西川信廣) 연출의 <오타루의 여인들>을 잊지 못할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 두산아트센터 Space111의 마틴 맥도너 작 변정주 번역/연출의 <필로우맨>
마틴 맥도너는 1970년 태어난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영화감독이다.
1996년 그가 첫 작품 ‘The Beauty Queen of Leenane’를 발표하자마자 토니상 ‘Best New Play’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1997년에는 이 작품을 포함해 그의 작품 4개가 동시에 런던에서 공연되는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최근 자신이 쓰고 직접 연출한 단편영화 ‘Six Shooter’로 아카데미 어워드(Academy Award 2006 / Best Live Action short Film)를 수상하기도 했다
<필로우맨>은 2003년 런던에서 초연되어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Olivier Award 2004 / Best New Play)를 수상했다. 그 다음 해,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여 토니 어워드(Tony Award 2005)의 무대디자인, 조명 2개 부문을 수상하였고 ‘Best Play’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마틴 맥도너는 스스로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와 <엘리펀트 맨>을 감독한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1946~), <택시 드라이버>와 <비열한 거리>의 작가 겸 영화감독인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1942~),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1963~), 그리고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1930~2008)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무대는 경찰서 취조실 겸 작가의 집필실이다. 정면에 창이 있어 말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커튼이 달려있고, 커튼을 올리면 커다란 거울이 나타나고, 취조실 구석구석까지 거울에 비춘다. 거울에는 백묵으로 쓴 낙서가 잔뜩 보인다. 이 거울은 마지막 장면에 거울 뒤쪽 조명이 들어오면, 작가의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둔 창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면 오른쪽으로 세 개의 문이 있어 중앙의 문을 빼놓고 좌우의 문을 열면 창고의 비좁은 공간이 들어난다. 중앙문은 작가의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다.
무대왼쪽에는 철제 서랍장과 서류철에 서류가 빽빽이 꽂혀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무대중앙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장면이 바뀌면 테이블 옆으로 침대가 놓이기도 한다. 취조실 창고에 전기고문기구가 비치된 것으로 보아 분쟁지역이나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라는 느낌이다. 작품설명을 보니, 런던에서 멀리 떨어져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이라고 되어있어, 번안극으로 만들기 전에는, 런던 외곽 사투리를 우리가 사용하고 구사하기는 불가능하다.
극은 경찰서 취조실에서 작가가 심문을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작가의 작품과 동일한 수법의 엽기적인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이 발생했기에 혐의자로 연행되어 취조를 받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장면은 배경에 실루엣으로 그림자극을 연출하여 극적효과를 높이고, 예수라고 자처하는 소녀의 이야기라든가, 피리 부는 소년(Pied Piper)의 동화를 인용하기도 해 흥미 있게 연극을 이끌어 간다.
취조과정에서 형사는 작가를 어린이를 죽음으로 이끌어 간 장본인이라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부모를 목 졸라 죽인 범인으로 몰아간다. 형사과장은 느긋하게 심문을 하고, 젊은 형사는 성질을 한껏 부리며, 말끝마다 비속어와 상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심문을 하고 폭력까지 휘두른다. 이때마다 형사과장은 젊은 형사의 자제를 명한다.
작가는 단정한 외모와 순진무구한 성격, 그리고 공손한 태도로 심문에 응한다. 가끔 형사과장도 심문을 하는데, 작가를 범인으로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정 짓고 퍼 붇는 듯싶은 질문에, 저 착하디착한 작가에게 왜 저토록 가혹하게 대하는가 하고, 관객은 내심 형사들을 비난하게 되고, 증오감이 생기기도 한다. 젊은 형사가 작가를 발로 걷어차는 장면에서는 여기 저기 관객의 불끈 쥔 주먹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작가도 모르게 다른 취조실에는 지능이 모자라는 작가의 형까지 연행되어 취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작가는 범행과 자신의 소설과의 연관성을 강력히 부인하고 정박아인 형까지 데려온 것의 항의하니, 관객의 분노와 작가에 대한 동정심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향후 작가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작가형제의 충격적인 어린 시절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가 쓴 <필로우맨(Pillow man)>을 통해 동화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서술되어 있으면서도 잔혹하기 그지없는 살인사건의 전모가 하나하나 들어난다.
김준원이 작가로 등장해 <쿠킹 위드 엘비스> <리 회장 시해사건>에 이은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형역으로 이현철이 등장해 독특한 성격창출로 정박아 역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노련한 형사 역으로 손종학이 출연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목란언니> 이후 또 한 번 성격배우로써의 그의 면모를 과시한다. 조 운이 젊은 형사로 등장해 훤칠한 용모와 박진감 넘치는 연기로<뷰티풀 번아웃> <김이박의 고백> <들소의 달>에서의 호연을 다시 한 번 이번 연극에서 확인시킨다.
예술감독 박용호, 제작 한해영, 조연출 송여진, 무대디자인 여신동, 장치 정승준, 김상엽, 영상감독 심세훈, 작화 김완진, 성우 태국희, 박민정, 조명디자인 임재덕, 보조 김혜진, 김희관, 박송원, 전일광, 음향디자인 이인정, 음악 김아람, 이아람, 이다미, 무대감독 조은진, 장면구성 이윤중, 기획 이수민, 보조 최자연, 홍보 이주경, 보조 강민지 등 스텝 진의 열정이 마틴 맥도너 작 변정주 번역/연출의 <필로우 맨>을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9 극단 관악극회 창단공연 막스 프리쉬 원작, 김혜영 역, 최종률 신영선 각색, 최종률 연출의 <하얀 중립국>
관악극회는 서울대 출신 연극인들이 만든 극단이다. 1947년에 공연된 <해연> 이후 2012년 까지 가정대, 간호대, 경영대, 공대, 교양과정부, 농대, 미대, 법대, 사범대, 사회대, 상대, 수의대, 약대, 음대, 의대, 의예과, 인문대, 자연대, 치대, 치의예과와, 그리고 총연극회 출신이 공연한 작품이 1000편에 이른다. 이번에 관악극회 창단공연으로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를 <하얀 중립국>이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첫 막을 올렸다.
<안도라>는 유럽 서남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작은 내륙국이다. 1278년 부터 에스파냐의 우르헬 주교와 프랑스국왕과의 공동 주권 아래 봉건적 자치가 허용된 이후, 1992년 국민투표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승인되어 1993년 공식 독립했다. 정식명칭은 안도라공국(Principality of Andorra)이다. 이베리아반도 피레네산맥의 동쪽 남사면에 위치하여 프랑스와 에스파냐 양국과 국경을 접한다. 프랑스 대통령과 에스파냐의 우르헬 교구 주교가 형식적인 국가원수로 있다. 오랫동안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뛰어난 자연경관과 스키장을 바탕으로 관광업이 크게 발달하였고,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유럽의 슈퍼마켓'으로 불린다. 행정구역은 7개 본당(parroquia)으로 되어 있다
연극 <안도라>는 1965년에 극단 실험극장에서 강두식 역, 허 규 연출로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안도라로 사미자, 안드리로 김동훈, 나영세와 이낙훈이 신부, 여운계가 부인, 최선자가 어머니로 출연했고, 김성원, 박규채, 김순철, 피세영, 함현진 등이 출연해 경연을 펴고, 이낙훈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막스 프리쉬는〈전쟁이 끝났을 때 Als der Krieg zu Ende war〉(1945) 이제 다시 노래를 부른다, 레퀴엠의 시도 Nun singen sie wieder, Versuch eines Requiems〉(1946),〈만리장성 Die Chinesische Mauer〉(1947),〈돈 후안 — 기하학에 대한 사랑 Don Juan oder Die Liebe zur Geometrie〉(1953)〈외더란트 백작 Graf Öderland〉(1951), 비더만과 방화범들 Biedermann und die Brandstifter〉(1958)〈안도라 Andorra〉(1962) 등의 작품을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 공연이 되었다.
막스 프리쉬의 대표작인 <안도라>는 표면적으로 독일의 과거사와 반유대주의 문제를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한 개인을 파멸시킬 수 있는 집단의 편견을 주제로 다룬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이런 편견이 작품 속에서 증폭되어 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정체감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파멸을 긴박감 있게 그려냈다.
서울대학교 김정용 교수의 정확하고 정밀한 번역서 <안도라>의 일독을 권한다.
무대 좌우에 시멘 벽돌로 쌓은 두꺼운 담장이 있고, 오른편 담장 뒤로 2m 높이의 망대가 있다. 배경 막에는 영상으로 구름 낀 하늘이 투사된다.
연극은 도입에 여주인공인 아미가 발판을 딛고, 왼쪽담장에 흰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부근에 하얀 중립국의 시민들이 여기저기 서있거나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군인 하사 한 명이 계속 아미의 넓적다리를 쳐다보며, 퍼붓는 질문으로, 아미는 처녀의 몸이고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다. 하사는 검은 군대의 습격이 있을 거라는 의미심중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자전거를 탄 신부가 등장하고 신부는 흰 페인트칠이 좋아 보인다며, 아미의 검은 군대 침략 설을 터무니없는 말이라 일축하고, 아미의 아버지도 같은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퇴장한다. 오른쪽 담장 앞에는 노천카페가 있어, 간단한 술과 음료를 판매한다. 종업원 노릇을 하는 시로가 등장해 손님이 준 팁을 뮤직 박스에 넣고 음악을 듣는다. 교사와 목수가 등장해 교사가 양아들인 시로를 목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목수는 터무니없이 비싼 강습료를 원한다. 그들의 대화에서 시로가 노란 족 출신이기에 그런 부당한 값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로가 점포를 떠나 작업을 하고 있는 아미에게 다가간다. 아미에게 치근거리는 군인과 시로와의 감정적인 대화에서도 노란 족에 대한 편견이 들어난다. 이후 마을 사람 전체가 노란 족에 대한 편견으로 일관되어 있음이 객석에 전해진다. 목수 역시 시로가 정성들여 만든 의자를 잘못 만들었다고 트집을 잡고, 시로에게 노란 족 운운하며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나가라며 내쫒는다. 향후 아미와 시로는 서로 사랑하고 약혼을 할 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군인은 아미를 능욕하는 일이 발생하고, 거세게 항의하는 시로에게 군인들은 노란 족 운운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피투성이가 된 시로를 치료하는 병원의 여의사 역시 시로를 박대하기는 마찬가지다. 신부는 시로를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노란 족에 대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지만 신부의 설득은 소귀에 찬송가 부르기다.
마을에 검은 족의 여인 한 사람이 등장한다. 마을사람들은 검은 족 여인을 적개심을 갖고 바라본다. 여인은 교사를 찾아온 것이고, 우연히 시로를 만나 다정하게 대한다. 교사를 만난 검은 족 여인은, 시로가 검은 족 여인과 교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사실이 객석에 전해진다. 시로 역시 자신의 출생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검은 족 여인은 돌아가는 길에 돌팔매를 맞고 사망한다. 곧이어 검은 군대가 총을 겨누고 등장한다. 검은 군대는 검은 족 여인을 살해한 범인을 색출하겠다는 명목으로 하얀 족 거주지로 진입을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엉뚱하게 시로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시로는 검은 군대의 총에 사살된다. 교사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사랑이 비극적이고 참혹한 결실을 맺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대단원에서 홀로 남은 아미의 실성한 모습과 신부가 하얀 족 사람들을 질타하는 광경에서 연극은 막을 내린다.
공연이 시종일관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고, 일부 연기자의 부정확한 발음과 감정이 격했을 때 대사전달의 불확실함, 그리고 산만한 손동작과 시선처리 등은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지만 공연전체가 한 폭의 수묵담채(水墨淡彩)를 감상하는 듯싶은 느낌이 들고, 또한 관악극회가 아니면 어려운, 수준급 공연이었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신영균, 이순재, 심양홍, 박원근, 박찬빈, 김도원, 이태식, 나호숙, 박경일, 김일호, 박현섭, 이수현, 태 영, 문혜인, 김인수, 박혜성, 윤금서, 신영선, 김선애, 류근욱, 김동범, 김현태, 김종우, 김창근, 설경수, 심 온, 박예헌, 김주영, 최유미, 윤종훈, 박혜연, 이재현, 강서영, 조도희, 박예헌, 아노, 유혜진, 손성진 등 출연자의 열정과 노력이 관객을 시종일관 극에 몰입시켰다.
제작총괄 윤완석, 제작책임 이태식, 김은상, 조인경, 기획총괄 박병회, 기획 이현숙, 박헌영, 홍보 김은자, 기획진행 안태진, 김민수, 김혜진, 무대감독 문원섭, 무대조감독 김승주, 화술지도 김선애, 움직임 지도 최은화, 무대미술 윤정섭, 무대디자인 박상봉, 무대제작 심광영, 조명디자인 박원근, 조명감독 이현지, 음악감독 권병준, 의상감독 조우현, 분장감독 조성환, 포스터디자인 김건호, 프로그램디자인 사진 홍성기, 조연출 김진아, 이진숙, 등 스텝 모두의 힘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막스 프리쉬 작 김혜영 역 신영선 각색 최종률 연출의 <하얀 중립국>을 성공적인 창단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0 극단 성좌의 몰리에르 작 안영선 번역/각색 권은아 연출의 <허풍>
이랑씨어터에서 공연한 극단 성좌의 <허풍>은 몰리에르(Moliere)의 <억지의사(Le Médecin malgré lui)>를 한국판으로 번안과 각색을 해 마당극으로 만들었다.
몰리에르(1622~1673)는 당대의 사회 귀족층과 성직자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서슴지 않았다. 또한 그의 작품 중에는 의사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몰리에르가 의사를 자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가, 의사의 반복되는 진료에도 차도가 없자, 의사에 대한 반감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당시 보수적인 그들의 권위의식과 융통성 없는 태도에 대한 불신을 작품에 그려냈다.
몰리에르의 <억지의사>는 도박과 술로 모든 재산을 날린 남편을 아내인 마르띤느가 유능한 의사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해, 억지로 의사행세를 하게 된 스가나렐의 이야기다. 스가나렐은 사람들을 속이고 교묘히 의사 행세를 하며 돈과 명예를 얻는다. 남편 스가나렐의 아내에 대한 폭행에 아내인 마르띤느의 복수가, 오히려 스가나렐의 거짓 의사행각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스가나렐은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주절거리고, 라틴어를 모르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가슴의 오른편에서 심장을 찾는 등 <억지의사>인 가짜 의사 스가나렐의 모습을 통해 지식인의 허식과 자기과시, 그리고 그러한 가짜 지성에게 속는 세태를 조롱하듯 작품에 그려 넣었다.
극단 성좌는 <억지의사> 대신 <허풍>이라는 가짜 무당으로 변신을 시켜 등장시킨다. 땅꾼 노릇을 하며, 뱀을 만병통치약인양 선전을 해 팔아먹고, 술과 도박으로 소일하는가 하면, 부부싸움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어느 부자 집 여식이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벙어리 귀신을 퇴치할 수 있는 초능력자 무당이라 속여, 소문을 듣고 부잣집 사람들이 찾아와 <허풍>을 강제로 끌어다 주인 앞에 대령시킨다.
부잣집 딸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강제로 결혼을 시키려 하자, 딸이 벙어리 행세를 하는 것임을 <허풍>이 우연히 알게 되고, <허풍>의 작전이 벌어져, 딸은 자신의 의도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허풍>이 가짜무당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허풍>은 죽음의 면전에 놓인다. 그 때 부인이 등장해 자신이 짓궂게 남편이 봉변을 당하도록 거짓 소문을 퍼뜨린 사실을 고백하고, 찾아와 용서를 구하니, 부자는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돌린다는 행복한 귀결의 희극이다.
연극은 도입에서부터 흥겨운 장단과 노래, 그리고 춤으로 시작해, 객석과 일체가 되어 놀이마당으로 펼쳐지다가 대단원에 이르러 감동적인 마무리를 하는 걸작 마당극 <허풍>이 되었다.
주원성, 김정균, 최재현, 전민지, 이창규, 박선정, 김 건, 김미라, 양승환, 남현주 등이 출연해 호연을 펼쳐 갈채를 받았다.
미술감독 서인석, 조명 이상근, 음악감독 황태승, 앙무 주원성, 의상 김정향, 분장 김은희 고혜진, 사진 이도희, 조연출 지재혁, 무대 김성실, 소품 한승엽 이인하 최설휘 유수지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성좌의 몰리에르 작, 안영선 번역/각색, 권은아 연출의 <허풍>을 독특하고 탁월한 마당놀이로 창출해 냈다.
8월 공연은 무더위와 태풍을 극복해 낸 작품들이다. 연극인들의 의지와 열정이 더위를 비켜서게 하고, 무대 위에 결정체가 되어 그 청명한 빛을 발산했다. 외국에서 온 극단도 우리 연극인들의 분위기에 함몰되고, 또는 동화되어 열과 성을 다해 공연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젠 세계시장에 내보일 우리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 내야 하겠다. 자랑스레 내보일 수 있는 걸작이 쏟아져 나와야만 한다. 반드시 나오리라는 기대는 필자만의 생각일까?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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