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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연주자
(1) 20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 (Jacques Thibaud, 1880–1953)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자크 티보’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와 결성한 ‘피아노 트리오’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1943년, 피아니스트 ‘마그리트 롱(Marguerite Long)’과 함께 창설한 ‘롱-티보 콩쿨’ 은 지금도 매년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콩쿨이며, 1953년 비행기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음악팬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요제프 시게티 (Joseph Szigeti, 1892–1973)
헝가리 출신의 요제프 시게티는 엄격한 연주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연주태도로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음악에 대한 지적인 접근 태도는 그에게 ‘학구적인 비르투오소’라는 별명을 갖게 했으며, 이자이는 시게티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를 듣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시게티는 특히 현대음악을 즐겨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전설적인 야샤 하이페츠는 완벽한 테크닉으로 20세기를 평정한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늘 세차게 몰아치듯 연주했던 하이페츠는 빠른 템포로 연주함에도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음악가였으며, 이러한 하이페츠의 연주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카티는 프랑스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인 동시에, 이탈리아인 현악 주자인 아버지에게서 이탈리아의 감성을 물려받았다. 이처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감성을 모두 소유한 프란체스카티는 특유의 아름다운 톤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으며,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기품의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나단 밀스타인 (Nathan Milstein, 1903–1992)
20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나단 밀스타인은 고귀하면서도 우아한 톤을 지닌 음악가이다. 하이페츠, 미샤 엘만, 에프렘 짐팔리스트와 같은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위대한 스승 ‘레오폴트 아우어’의 제자였던 밀스타인은 20세기 위대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의 마지막 주자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연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1908–1974)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따뜻한 음색을 지닌 온화한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야샤 하이페츠의 음색을 ‘차가움’에 비교한다면,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 음색은 ‘따뜻함’을 대표하며, 테크닉적인 면에 있어서도 흠 잡을 데 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당대 음악 청중들이 하이페츠의 연주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었으며, 작곡가 하차투리안과 쇼스타코비치는 오이스트라흐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했다.
예후디 메뉴인 (Yehudi Menuhin, 1916–1999)
미국에서 태어난 러시아 혈통의 예후디 메뉴인은 어린 시절부터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클래식 음악에 있어 탄탄한 실력을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메뉴인은 인도의 음악가, 라비 샹카르와 함께 음반 작업을 했으며,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다양한 음악세계에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던 메뉴인은 바이올린 관련 서적도 발표했다.
헨릭 쉐링 (Henryk Szeryng, 1918–1988)
폴란드에서 태어난 헨릭 쉐링은 베를린에서 칼 플레쉬를, 파리에서 자크 티보를, 그리고 10대 후반에는 전설적인 스승 나디아 블랑제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그 누구보다 탄탄한 음악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한다. 하지만 멕시코 연주 여행 중에 교수 제안을 받은 쉐링은 멕시코에서의 교육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이곳에 여행을 왔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설득으로 다시 연주 무대에 오르게 된다. 이후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은 쉐링은 특히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연주로 찬사를 받았다.
지네트 느뵈 (Ginette Neveu, 1919–1949)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지네트 느뵈는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유명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파리 음악원을 다니며 조르쥬 에네스쿠, 나디아 블랑제, 칼 플레쉬를 사사한 느뵈는 15세의 나이에 ‘비에냐프스키 바이올린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콩쿨에서 느뵈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제치고 우승했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욱 주목 받게 했다. 이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주여행을 하던 지네트 느뵈는 30세의 안타까운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비행기가 추락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를 끌어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이작 스턴 (Isaac Stern, 1920–2001)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한 이래 대단한 호평을 받은 음악가로, 1960년대 후반, 위기에 처한 카네기홀을 구한 음악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이작 스턴은 유대인 후배들의 음악활동을 지원했던, 영향력 있는 음악가였으며,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연주를 맡기도 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 (Arthur Grumiaux , 1921–1986)
벨기에에서 태어난 아르투르 그뤼미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음색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프랑코 벨기에 악파’의 후계자로 꼽히는 그뤼미오의 음악은 유려하면서도 따뜻한 음색으로 많은 청중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특히 루마니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과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 녹음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2) 현존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미국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루지에로 리치는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온 아버지에게 처음 음악을 배웠다. 화려한 테크닉의 소유자였던 리치는 고난도의 작품,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처음으로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70년이나 되는 연주 인생 동안 수많은 연주를 했던 리치는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 인디아나 대학교, 미시간 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살바토레 아카르도 (Salvatore Accardo, 1941- )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카르도는 17세의 나이에 파가니니 콩쿨에서 우승을 거둠으로써 많은 주목을 받았다. 뛰어난 기교를 소유한 아카르도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6곡 전곡을 처음으로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밝은 음색과 노래하는 선율, 빛나는 테크닉으로 수많은 레코딩을 남긴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아카르도 콰르텟을 만들어 실내악 연주에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작 펄만 (Itzhak Perlman, 1945- )
이작 펄만은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감동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자신의 불운한 운명에도 따뜻한 음색과 부드러운 소리로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게이샤의 추억>을 녹음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기념연주를 맡아 또 한 번 주목 받았다.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 1948- )
동유럽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기돈 크레머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사사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쿨 3위 입상, 파가니니 국제 콩쿨과 차이콥스키 국제 콩쿨 우승이라는 화려한 경력으로 당당히 등장했다. 오랜 침묵 끝에 등장한 소련 출신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뛰어난 테크닉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고 있으며, 1996년 이후로 ‘크레메라타 발티카 실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크레머는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 현대 음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정경화 (Kyung Wha Chung, 1948- )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12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전설적인 스승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하며 바이올린을 연마한다. 1967년 레벤스리트 콩쿨에 참가한 정경화는 갈라미언의 또 다른 제자였던 ‘핑카스 주커만’과 우승을 놓고 겨루게 되는데, 우승자를 가리기 어려웠던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두 명의 참가자에게 다시 한 번 결선을 겨루도록 한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심사위원들은 결국 두 사람에게 공동우승을 수여하는 것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유명해진 정경화는 20세기 후반을 장식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았으며, 현재는 미국 뉴욕의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나이젤 케네디 (Nigel Kennedy, 1956- )
영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는 ‘클래식 계의 이단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클래식 정통 연주 스타일에서 벗어난 듯한 그의 연주는 자유로운 해석을 들려주며, 16세의 나이에 케네디가 뉴욕 카네기 홀 무대에 섰을 때, 그는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와 함께 있었다. 그의 클래식 연주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스승의 만류에도 새로운 무대에 도전했던 나이젤 케네디는 그 후로도 다양한 작업, 새로운 컨셉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슐로모 민츠 (Shlomo Mintz, 1957-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슐로모 민츠는 2세에 이스라엘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작 스턴을 멘토로 음악을 배운 민츠는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으며, 이작 펄만이 병으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수 없었을 때,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데뷔 무대로 주목 받게 된다. 그 어떤 콩쿨 경력도 없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민츠는 요즈음 세계적인 콩쿨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안네-조피 무터 (Anne-Sophie Mutter, 1963- )
세계적인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조피 무터는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일찍이 13세의 나이에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눈에 띄어, 잘츠부르크 음악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의 무대에 올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급기야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을 발매한 무터는, 15세의 나이에 녹음한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5번으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 신동으로 주목 받은 이후에도 꾸준한 노력으로 그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무터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바이올린의 여제로 인정받고 있다.
조슈아 벨 (Joshua Bell, 1967- )
미국에서 태어난 조슈아 벨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클래식 음악,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레드 바이올린> OST 녹음에도 참가한 조슈아 벨은 수려한 외모로 많은 청중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영화 <뮤직 오브 하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의 뛰어난 기악음악 연주자에게 수여하는 애버리 피셔 상을 수상한 조슈아 벨은 요즈음 활발한 연주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바딤 레핀 (Vadim Repin, 1971- )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은 시베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에게 “내가 이제까지 들어온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최고이며 가장 완벽한 연주자”라는 극찬을 남겼다. 다니엘 호프, 막심 벤게로프 등의 스승이기도 한 ‘자카르 브론’을 사사한 바딤 레핀은 11세의 나이에 비에냐프스키 콩쿨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17세에 퀸 엘리자베스 콩쿨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러시아 레퍼토리 연주에 뛰어난 연주자이다.
길 샤함 (Gil Shaham, 1971- )
이스라엘 혈통의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2세의 나이에 이스라엘로 이주해, 예루살렘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줄리어드 음악원을 다닌 길 샤함은 도로시 딜레이와 강효를 사사하며 연주 경험을 넓혔으며,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서고 있다.
막심 벤게로프 (Maxim Vengerov, 1974- )
러시아에서 태어난 막심 벤게로프는 7세부터 ‘자카르 브론’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의 나이 13세에 스승 브론이 런던 왕립음악원에 가게 되자, 그도 스승을 따라 유럽으로 공부하러 가는 기회를 맞게 된다. 런던에서 열린 칼 플레쉬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한 벤게로프는 메이저 음반사의 타겟이 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활발한 음반 작업으로 그래미상, 에코 클래식상 등 다양한 음반상을 수상하게 된다. 러시아 레퍼토리 연주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벤게로프는 2005년부터 런던 왕립음악원 교수를 맡고 있다.
르노 카푸송 (Renaud Capuçon, 1976- )
프랑스 출신의 르노 카푸송은 파리음악원에서 공부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제안으로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한 바 있는 카푸송은 피에르 불레즈, 다니엘 바렌보임과 같은 거장 지휘자와 함께 연주하며 음악적인 경험을 넓혔다. 카푸송은 그의 동생, 고티에 카푸송과 더불어 실내악 연주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힐러리 한 (Hilary Hahn, 1979- )
미국 출신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은 요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연주자이다.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는 차가운 이미지로 ‘얼음 공주’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많은 음악팬을 확보하고 있는 힐러리 한은 꾸준한 연주활동과 음반작업으로 그 여세를 몰아가고 있다.
장영주 (Sarah Chang, 1980- )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9세의 나이에 데뷔해 세계를 놀라게 한 신동 음악가이다. 10세의 나이에 ‘데뷔’ 앨범을 발표해 클래식 음반 베스트 셀러 자리를 석권했으며, 많은 연주 요청으로 일년에 150회의 연주를 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999년에 애버리 피셔 상을 수상했다.
율리아 피셔 (Julia Fischer, 1983- )
독일 뮌헨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는 1995년 12세의 나이에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쿨에 참가해 1등상을 수상했으며, 바흐 무반주 작품으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임에도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율리아 피셔는 피아노 연주에도 뛰어나며, 2008년에는 피아니스트로 데뷔해, 피아노 데뷔 무대에서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레이첸 (Ray Chen, 1989- )
대만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첸은 어린 시절 호주에서 지내며 스즈키 메소드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8세의 나이에 호주에서 데뷔한 레이첸은 호주에서 열린 콩쿨에서 우승을 거둠으로써 젊은 음악가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8 예후디 메뉴인 콩쿨, 2009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레이첸은 요즈음 촉망 받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 커티스 음악원에서 아론 로잔드를 사사하고 있다.
(3) 원전연주 바이올리니스트
벨기에에서 태어난 쿠이켄은 1972년 바로크 음악과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라 쁘띠 방드(La Petite Bande)’를 창단하고, 고음악 연주에 헌신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플루트와 리코더를 연주하는 바르톨트 쿠이켄(Barthold Kuijken), 첼로와 다 감바를 연주하는 빌란트 쿠이켄(Wieland Kuijken)과 형제지간인 이들은 함께 앙상블을 결성해 많은 연주를 선보였으며, 청중들에게 고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려주었다. 지기스발트 쿠이켄은 현재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바로크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라인하르트 괴벨 (Reinhard Goebel, 1952- )
1973년에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Musica Antiqua Köln)을 창단한 괴벨은, 2007년 이 단체가 해체되기 전까지 리더로 활동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작품을 새롭게 발견한 괴벨은 청중에게 새로운 작곡가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왼손에 문제가 생긴 이후 오른손으로 바이올린을 쥐고 왼손으로 활을 잡는 방법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파비오 비온디 (Fabio Biondi, 1961- )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파비오 비온디는 1989년에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를 창단하고, 바로크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파비오 비온디는 2005년부터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앤드류 맨지 (Andrew Manze, 1965- )
구 소련 시절 촉망 받던 지휘자 ‘필리포프’는 오케스트라에서 유대인 연주자를 내쫓으라는 당의 지시를 어겨 지휘를 할 수 없게 된다. 음악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볼쇼이 극장에서 30년 동안 청소를 하며, 음악에 대한 열의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있던 필리포프는 파리의 극장에서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를 초청하고 싶다는 팩스를 발견한다.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한 필리포프는 오케스트라를 그만둔 유대인 동료들을 불러모아 극장 오케스트라를 대신해 파리로 연주여행을 떠나고, 그가 그토록 원하던 무대에 서게 된다. 필리포프의 꿈은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마리’와 함께 연주하는 것.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이들은 완벽한 연주 속에서 역사적인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요즈음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뮤직 오브 하트>는 뉴욕 할렘 가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준다는 이야기의 행복한 영화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로베르타’는 결혼 생활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지만, 결혼 생활 10년 만에 결혼 생활은 불화를 일으키고 로베르타는 스스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일을 구하던 로베르타는 할렘 가의 초등학교에서 음악보조교사로 일하게 되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된다.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면서 점점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될 무렵, 교육위원회는 이 수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로베르타는 카네기홀의 자선 콘서트를 통해 기금을 마련한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도 이 콘서트에 함께 참여해 기금 마련을 함께하고,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실제로 이 영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 이작 펄만, 조슈아 벨이 출연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메릴 스트립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아르몽은 부와 명성을 뒤로 한 채 속해있던 오케스트라를 그만둔다. 외롭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었던 그는 매일 지하철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아르몽의 연주는 늘 그렇게 계속되었다. 아르몽이 매일 연주하던 곳에는 그를 기다리는 여인, 리디아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절망하던 아르몽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온다. 거리의 깡패들이 난데없이 아르몽의 악기를 부순 것이다. 더 깊은 지하세계로 들어간 아르망은 병든 노인, 신음하며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며 악보를 찾는다. 그때 나타난 옛 친구… 그는 절망하는 아르망에게 바이올린을 건네고, 아르망은 15분 가까이 되는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의 5악장 ‘샤콘느’를 연주한다. 바흐의 음악과 함께 낮은 곳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진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연주를 맡아 긴 여운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장인 ‘부조티’는 완벽한 바이올린을 만드는 명장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자, 부조티는 아이를 위해 만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아내의 남은 흔적으로 완성한다. 아내의 피를 섞어 바이올린의 바니쉬 염료를 만들고, 그것을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칠한 것이다. 아내의 영혼이 담긴 바이올린은 알프스 수도원에서 지내는 천재 소년의 손에 쥐어지는가 하면, 집시의 손에서 슬픔의 음악을 들려주며,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포프의 손에 들어가 파손될 위험을 겪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멀리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레드 바이올린은 중국 문화혁명기의 위기 속에서도 가까스로 살아남아, 캐나다 몬트리올의 경매장에 도착한다. 이로써 레드 바이올린은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연주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글 정홍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음악에 관한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