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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러니까 한 일곱 살 때쯤에 나는 보았다.
벚꽃이 만개해서 활짝 피어오르는 것을.
그때 보았던 화사한 빛은 분명 분홍빛이 아니었다. 보통의 벚나무와는 정말이지 달랐다.
벚나무가 가득히 심어져 있던 공원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베란다에서 운치 있게 지상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산책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5분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그곳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그 순간순간을 기억에 새겨 넣듯이.
어느 순간부터 그 광경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나뭇가지는 고동빛을 띄고 있었지만 벚꽃에서는 은은한 푸른색과 그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내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시던 어머니에게 물었었다.
“엄마, 저건 왜 파란색이야?”
환상이나 꿈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분명 바람이 입술을 스쳐 지나가는 촉감과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파란색이라고 했다. 떠오르는 표현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응? 파란색이 어디에 있어?”
이상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저기 있잖아 저기, 가지에서 떨어지는 저거 말이야”
벚꽃이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벚나무를 말하는가 보구나, 화사한 분홍빛이 참 예쁘지? 꼭 엄마를 닮은 것 같구나”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 비해 검은 턱수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손을 부모님이 나란히 잡아주고 계셨다. 주변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흐린 대기층 때문에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러한 밤이었다.
“당신은 참, 그런다고 용돈을 올려주지는 않아요.”
“들켰나?”
“네”
푸른빛의 오로라가 내 시야를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글자의 분홍빛만이 보인 것이다. 분명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봐봐 파란색이잖아”
“우리 아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가 보구나.”
“그런가보네요.”
그 상황을 살짝 웃으며 넘기려 하셨던 것 같았다.
아마도 유치원생 이었던 그날, 그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직 나만이 목격하게 되었다. 은은한 푸른빛을.
유치원을 졸업하고서는 바로 옆쪽에 있는 초등학교에 당연하게 입학하게 되었다. 평소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기에 등하교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입학식이 시작했을 무렵,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켜봐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고도 길게 느껴졌던 입학식이 끝나자 나와 비슷한 키의 아이들이 앉고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우르르 이동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하던 그때 익숙한 손이 나를 잡아주었다. 서른넷의 나이가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어머니였다.
“두 시간동안 앉아 있느라 힘들었지?”
두 시간, 겨우 그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다. 어차피 평범한 초등학생의 인내심에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괜찮아, 아빠는 어디에 있어?”
“조금 전 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었단다. 꽤나 급한 모양이었어, 아빠가 미안하다는 말 전해달라고 하더라.”
어쩌지 못하는 일이었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였음에도 서운한 기분은 어떻게 감추지 못하였다.
“서운한가보구나?”
“응 조금”
학교 정문을 빠져나오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햇빛은 기분이 좋을 정도로 따스했다.
화창한 맑은 날씨였다. 노점상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며 솜사탕을 팔고 있었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에는 몽글몽글하면서도 푹신한, 그러한 것을 상상했었다.
기대와는 달리 그것은 매우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고 꼭 실을 젓가락 하나에 모두 뭉친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맛본 달달함은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선사해주었다.
그렇게 입학식이 끝나고 평범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일학년 일반 이었을 것이다. 가장 나이가 어린 학년임에도 교실은 이층에 있었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버스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던 아버지는 출근 시간에 맞춰 자동차로 태워다 주신다고 하였다.
“이십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니까”
반은 귀찮다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학교에 첫 등교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앞으로 우리아들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에 가면 같이 있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지도 모른단다, 그러니까 등굣길이라도 데려다주고 싶구나.”
그때의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할아버지 같았다. 그리고는 머리와 눈썹, 턱수염이 모두 하얗게 되어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당신도 참,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자식바보가 여기 있었네요.”
“당신보다 어련하겠어?”
“요즘 지갑에 용돈이 제법 있나 보네요, 호호”
“잘못했어. 여보”
말다툼을 하면 항상 어머니가 승리의 깃발을 뽑으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이길 수 있는 날은 아마도 월급날 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당일만, 하루가 지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월급날 바로 다음날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반항을 했으니 이번 달 지갑에 들어갈 지폐의 수를 삭감하겠어요, 라고 선언하는 그런 경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여덟 살 이라는 신체적, 정신적인 나이를 가졌던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불쌍해보였다. 나이를 먹고서야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가벼운 말다툼이 지나고 첫 등교일인 아침이 다가왔다.
“둘 다 샐러드 먹어요.”
아침부터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머니 덕분에 입안에는 풀냄새가 가득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부터 나도 그것에 동참하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지 입에서 어떠한 표현을 해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의 불쾌한 냄새가 입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참새가 짹짹거리는 시간부터 뱃속이 채소로 가득해지는 기분이 뭔가 묘했다.
자동차를 타고 있었다. 긴 회색바지에 하얀색 와이셔츠와 하늘색의 넥타이를 매고서 겉옷에는 검은색의 얇은 코트를 입고 계셨던 수염이 덥수룩한 아버지의 모습은 햇빛에 비춰져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멋져보였다. 나를 신경 쓰고 계셨는지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는 불을 피우지 않으셨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의 자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너무 일찍 왔다. 교실의 문은 잠겨 있었고 등교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첫날부터 교무실에 들어섰다. 각 책상마다 컴퓨터가 있었고 가로로 된 직사각형의 넓은 벽면에는 커다란 보드마카 칠판이 걸어져 있었다. 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에서 빛이 반사되어 교무실이 밝아졌다.
“어머, 일찍 왔구나.”
풍성한 갈색머리의 어른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선생님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안녕하세요. 열쇠 가지러 왔어요.”
“그래? 몇 학년 몇 반이니”
“일학년 일반이요”
선생님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잠깐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반가워 내가 담임이란다. 녹차 마실 수 있니?”
“네”
잠깐 여기에 있다가 교실에 가지 않겠냐고 말하셨다. 교무실에는 나와 선생님 단 둘뿐이었고 선생님도 일만 하기는 너무 지루해 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교실에 가봤자 혼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깐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상대방에게 털어놓을 경험담 같은 것이 없어서 고분고분 듣기만 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올린 것이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던 빛을.
“선생님, 혹시 벚꽃이 파란색인 벚나무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 것도 있어?”
조그만 꼬맹이의 상상력에 신기해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였다.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슬슬 교실에 먼저 가 있을게요.”
“그래 그러렴.”
교실 앞에 다가가니 지루해하는지 자신의 발끝만을 바라보면서 빨간색 가방을 메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열쇠 가져왔어”
처음으로 같은 또래의 상대방에게 했던 말은 안녕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연보라색 페인트 같은 것이 칠해져 있는 자물쇠에 열쇠를 끼워 넣고 돌렸더니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 기능이 풀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과 책상 그리고 의자가 가득했다. 사물함은 맨 뒤쪽에 있어서 불편함은 없었던 것 같았다. 불평이라면 크기가 조금 작다는 정도뿐이었다. 책상과 의자는 겉 표면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인지 생각보다 반들반들했다. 어디에 앉아야 좋을지 몰라서 운동장 방향에 있는 창문 쪽 두 번 째줄 자리에 가방을 올려다 놓았다. 여자아이는 바로 앞자리에 앉더니 무슨 학습지 같은 것과 공책을 꺼내들어 연필을 손에 쥐고 뭔가 적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너 뭐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던 내게 학원숙제, 라는 짤막한 말을 빠르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이 그것도 이제 갓 입학한 자식에게 교육을 주입시킨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벌써부터 공부하는거야?”
연이어 쏟아 붇는 내 질문에 지쳤는지 그만 한숨을 쉬더니 연필을 놓았다.
“나도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엄마가 원하고 있어”
“하지만 그대로 계속하다가는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힘들게 공부하게 될 거야”
그 다음 부터는 답이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 둘씩 등교하는 모습이 창밖 너머로 보였다.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인원 수 만큼이나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첫 날부터 장난을 쳐가는 부류가 있었고 게임이라는 공통적인 부분으로 친해지는 부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어느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정확히 따지자면 못한 것이다. 장난을 치는 것도 좋아하지도 않는 게임으로 억지로 친해지는 것도 영 달갑지 않았다. 그렇게 삼십분 정도 벽에 걸어져 있는 시계의 분침이 바뀌더니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앞문에서는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다들 조용하세요.”
존댓말을 쓰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러자 구석 진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대상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왜 존댓말 써요?”
“그건 여러분을 존중하기 위함이에요.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단체 생활의 기본이랍니다.”
주저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어른의 위엄이 교실의 공기를 휘감았다. 교무실에서 느꼈던 다정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치 다른 사람인줄 알았다.
“여보 뭐하고 있어요. 멍하니 있지 말고 정신 차려요.”
“어?”
“벚꽃공원에 가자고 한 사람은 당신이잖아요.”
“아 미안해, 잠시 다른 생각 좀 했어”
정신을 차려보니 벚나무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들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어요. 그건 당신 탓이 아니라고.”
“응”
그랬다. 나의 친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다니고 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작고 거의 반투명에 가까운 하얀 점들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고 녹화방송을 하고 있던 라디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늘이 눈구름에 가려져서 살짝 어둑한 날씨였다.
그날 나는 친부모님에게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서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를 하였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진 입가에는 미소가 퍼지고 있었고 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학교 정문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아버지가 말하셨다.
짐을 다 싸놓고도 두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뉴스 라디오에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바로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입니다. 혹시 성함이 김준선 씨 맞으신가요?”
심장이 터질듯이 괴로웠다. 금방이라도 공황상태에 빠져들어 정말로 기절할 것 같았다. 호흡이 빨라지면서 손은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떨려왔다.
“네 맞습니다.”
“잠시 병원으로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차라리 경찰서에 들러주십시오, 라고 말했으면 그나마 편안했을 것이다. 손에 들고 있던 가족사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유리로 된 액자가 깨져버렸다.
“어느 병원이죠?”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시신을 확인하기 전까진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병원 앞에 도착하고 병실에 들어서자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주변에 있는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함께 따라와 주셨던 선생님은 내 손을 꽉 잡아주셨다. 그때서야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병원에 도착하는 동안에 참아왔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태까지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슬펐던 이유는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아주셨던 것처럼 더 이상 따뜻했던 부모님의 손을 그 누구보다도 내게 다정했던 그 목소리를 잡아주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어머니라고 아빠에게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했다. 부끄러우면서도 창피했고 온몸에 닭살이 돋아날 것 같았기에 미루고 미뤘다. 그 결과 이렇게 된 것이다. 살아생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게 돼서야 어머니라고, 아버지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진심으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남자라는 놈이 그렇게나 울어서야 어디 써먹겠나, 라는 눈초리를 받을 정도로 실컷 울었다. 마음이 몇 번이고 찢어져서 난도질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고개를 푹 숙이며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던 의사선생님이 말하였다. 살려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책감이 느껴져 왔다.
“손이라도 만질 수 있게 해주세요.”
새하얀 천을 살짝 걷어 올리자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피부를 보았다. 짓눌려지는 슬픔을 견디고 부모님의 손을 더듬어보고 어루만지고 또 다시 더듬어보면서 장난치지 마세요, 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럴수록 내 자신이 점점 비참해지고 있었다. 주체 없이 밀려오는 어둠이 나를 덮쳐왔다.
삼일 후쯤에 장례식을 치러도 되겠냐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창밖에 내리고 있는 눈을 멍하게 쳐다봤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 후에 기억나는 것은 부모님이 쓰셨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는 것, 또 장례식을 행하던 순간순간 뿐이었다.
사고의 원인을 간략하게 들었다.
맞은편에 있던 대형트럭이 신호를 위반하여 계속 달리던 중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부딪혔다는 것이다. 트럭 운전자는 음주 상태였다고 했다.
장례식을 치르던 날 그 운전자가 내게 찾아왔다. 미안하다며 바닥에 머리를 박고 내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의 전부였던 가족이 사라졌다. 의지하고 있던 단단한 기둥이 어이없으리만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당황 같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절망, 그 자체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고아가 되었을 때,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나를 고모께서는 흔쾌히 승낙하셨다. 고모부는 해외 출장이 잦았기에 대부분의 나날을 집안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고모에게 입양 되었다. 수능시험을 일 년 앞두고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내게 항상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입양이 되고부터 기숙사 생활을 그만두고 고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여유롭게 봐도 혼자살기에는 꽤나 넓었다.
고모네 집으로 짐을 옮기던 첫날, 벚꽃이 흩날렸다. 그날 보았던 은은한 푸른빛이 아니었다. 정말로 환상을 본 것일까.
대학생시절, 차를 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점 때문에 같은 과의 친구들과는 사이가 점점 멀어졌고 혼자 있는 나날이 길어져갔다. 그러던 중 흑요석 빛의 긴 머리에 잡티 하나 없어 보이는 고운 피부를 가진 그녀를 만났다. 유독 그녀에게서 만은 경계심이 생기질 않았다. 서로의 고민을 가볍게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을 무렵, 나는 차를 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된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내가 지켜줄 꺼야, 자동차 같은 거 못 타면 어때? 대기오염 줄이고 좋잖아”
고모와 고모부 다음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기뻤다. 나를 덮쳐왔던 어둠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수정체보다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결혼이라는 글자의 맹세를 입술로 새겼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미진이 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나는 그동안 배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정집을 오가며 과외를 다녔다. 하지만 공포증 때문에 활동 범위가 그리 넓지 못했다. 전공분야를 직업으로 살리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한 로망 같은 것이었다.
작은 커피 전문점을 차려서 섬세한 클래식 음악이 건물 내부를 가득 채우게 하고 손님이 오기 전까지 소설을 읽고 있는, 그러한 미래를 실현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집을 마련하고 난후 과외를 그만두고 학원 강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음대 졸업이라는 프로필이 눈에 띄었는지 면접을 본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피아노를 전공하여서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아이들을 대부분 가르친다. 나머지는 교양이라는 목적으로 잠시 배우거나 애인에게 클래식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단기간 동안 배우는 사람들뿐이다.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에 세 번을 쉴 수 있다. 그 중 한번은 예약해둔 손님이 없다면 평일 중에 있는 요일 중 하루를 좋을 대로 고르면 된다.
맞다. 다음 달이면 벚꽃이 피어오른다. 그래서 둘 다 시간이 비어있는 토요일이 되자 나는 아내에게 벚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는 공원에 가자고 말했고 지하철을 타러왔다. 표를 끊고 지하철을 탔더니 사람이 많은 탓에 두 사람이 한곳에 앉을 만한 자리가 없어서 그나마 편안해 보이는 자리에 앉히고 나는 손잡이를 잡으면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렸을 때 보았던 그 광경을 떠올리고서 멀고 또 멀었던 추억에 빠져든 것이다.
“도착했어, 내리자”
문이 열리자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그런 느낌의 공기가 교차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그녀는 놓칠세라 내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끝부분을 향할수록 손가락은 매우 가늘었고 무척이나 포근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초등학교 시절 느꼈던 어머니의 손을 떠올리고 말았다.
“여기 맞지?”
“아마도? 맞을 거야”
“아마도?”
“응 고마워”
이곳이 정말 공원이라고 불리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정말 벚나무를 제외한 품목들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길이 네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피어날 시기를 기다리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정말 어렸을 때 왔었던 곳 인가 싶어서 숨을 크게 들이쉬는데 공기가 젖어있다.
“비 오려나봐”
“정말?”
“응”
왠지 반가워하는 눈치다. 우산이 없으면 홀딱 젖어버리고 말텐데.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비를 좋아한다고 했다.
차가운 공기의 서늘함이 마음에 들었다.
중학교를 입학했을 때부터 자주 옥상에 올라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쉬는 시간마다 무조건.
항상 감기를 몸에 달고 살았다. 나을 만하면 다시 재발하고 다 나아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병이 났다. 덕분에 몸이 건강할 날이 없었다.
공간 안에 여러 시간동안 갇혀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거의 한 시간을 주기로 나갔다 오기를 반복한다.
“아직 만개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 미안해 괜히 고생시켜서”
“뭘 그런 것 가지고, 당신 오늘 살짝 다른 사람 같아. 무슨 일 있었어?”
“괜찮아, 난 멀쩡해”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전의 고모.
“여보세요?”
“준선이구나.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직접 전화를 걸었단다.”
공포영화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실 말씀이요?”
“그래, 아이는 언제쯤 가질거니”
순간적으로 놀란 탓에 발가락을 모서리에 찧고 말았다. 왼손으로 발가락을 감싸 쥐면서 말을 이어갔다.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말이다. 옆집 할망구가 손녀 자랑을 그렇게 하지 뭐니, 얄미워 죽겠는데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단다.”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어요?”
“별 말 안하더구나.”
아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오후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기라니,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책임감 이라는 건 그리 가벼운 게 아니니까, 절대로 가볍게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며느리는 잘 있니?”
“일정이 잡혀서 공연하러갔어요. 아마 저녁시간대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네요.”
“참, 그리고 혼자서 바둑을 두다보니 심심하다는 말 전해달라는 구나”
“외출하셨나 봐요.”
“물론”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를 양부모님께 연락한다.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일방적인 수다를 듣는다. 이야기의 주제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편안하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참새들의 지저귐을 듣는 것이 취미인 내게는 들어주고 들려주는 이런 일상이 그야말로 평화로운 오후다.
“점심은 먹었니?”
미미한 정도의 안개가 끼어있는 아침이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맞은편 벽에 걸어져 있는 시계를 보니 오전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에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올려 머리를 더듬어보았다.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를 뒤척이는데 몸속의 수분이 다 증발했는지 푸석푸석한, 건조한 촉감이 느껴졌다. 부분적으로 삐죽 튀어나온 것 하며 서로 엉켜서 손가락에 걸리는 헝클어진.
급하게 물을 마시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집안 구조는 모든 방은 거실을 지나치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게 되어있다. 오히려 평범한 것인지, 내심 방과 방 사이에 문이 달려있는 그런 집을 상상했었다. 고개를 돌리는데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미진이가 없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워서 침실을 빠져나와 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는데 탁자에서 병아리색의 노란 메모지 한 장이 보였다.
-급하게 일정이 잡혀서 먼저 나가요, 빠르면 저녁쯤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 점심은 챙겨먹어요-
정말 급했나보다. 언제나 가지런했던 글씨체가 삐뚤삐뚤하게 써져있었다.
“네, 잘 챙겨먹었죠”
여성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섬뜩했던가.
“인스턴트식품 먹은 건 아니지?”
뜨끔하다. 차마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카레라이스 먹었어요. 저도 어른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삼분 카레를 밥 위에 얹어서 먹었다. 솔직히 별 맛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허기는 채울 수 있었다. 일단 밥만큼은 인스턴트가 아니니까 반은 진실이다.
“그래, 잘 지내는가 보구나. 다음에 또 연락하마.”
“네”
몸이 흐물흐물 해질 정도로 나른하다. 하얀 폴로셔츠에 갈색스웨터를 입고서 베이커리 가게에 들러서 커다랗고 길쭉한 빵 하나와 딸기잼을 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방금 전 전화를 끊고부터 벌써 한 시간째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 혼자 있는 집에서는 고요한 적막감이 흐른다. 갓 태어난 새끼로 키우고 싶다. 복도를 뛰어다니게 해서 손발이 옆으로 쫙 벌어져 배로 쓱 미끄럼을 타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일부러 이름을 불러 거실 바닥을 뛰어다니게 하고 싶다. 혼자 지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생각났다.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그 근처에 있는 원룸 집에 살았었다. 수도꼭지가 주전자에 물을 쏟아내는 소리가 불안했지만 가릴 처지가 되지 못했다.
비오는 일요일 이었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공기를 꿰뚫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아름다운 날이었다. 칠월 이라는 여름이었고 십년 만에 찾아온 끓는 더위가 극성인 시기였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나는 반 쓰러지듯 누워있었다. 틈틈이 있었던 주말 강의가 그날만은 없었다. 오후 한시쯤 이였을 거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태양이 가장 높은 위치에 떠올라 있는 시간이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들려왔던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자, 보통 더위가 아니라는 것을 예감했다. 의식마저 흐릿해져 버리는 이상기후 때문에 황급히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입고 도서관에 가려 했었다. 적어도 그곳은 에어컨 하나는 제대로 틀어주었기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모자를 짓눌러 쓰고 문을 열었던 그때 흐린 하늘에 비가 내려온 것이다.
운이 좋았다. 이글거리던 도시는 그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나이 먹은 아저씨처럼 누워있는데 휴대폰에서 고전적인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선생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
“무슨 일이시죠”
살짝 냉정한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할 때는 하고 안 할 때는 안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예전에 가정집에서도 음악을 가르치셨다고 들어서요. 저희 집에 따로 와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다른 사람의 시간대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은 딱 질색이다. 설령 외롭거나 심심해도 말이다.
“곤란할 듯싶네요. 저도 쉴 때는 쉬어야 해서 말이죠.”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지만 거절했다.
슬슬 저녁때다.
아마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밥은 어떻게 먹었냐는 심문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다음 주면 벚나무의 고동색 나뭇가지에서 분홍빛의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다들 조금씩 들떠있다. 뉴스나 신문, 텔레비전 프로그램 에서도 관광명소 소개로 시끄럽다. 아내역시 평소보다 조금 들떠 있다.
“당신도 꼭 좋은 자리 잡아야 해요!”
그녀가 좋아하는 색들이 하늘아래 흩날릴 것이다.
“당신 일정 없나봐?”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응, 그럴 줄 알고 스케줄을 앞당기거나 미뤘어”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디에서 무엇이 어떻게 일어나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언제나 과거가 되어 버린다. 미래라는 글자의 여유는 점점 갉아 먹히면서 어느 틈엔가 현재가 되어 버리고 그것 또한 잠깐의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가 된다.
돗자리를 좋은 자리에 펼치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를 할 것이리라. 아마 집안의 가장이거나 여자 친구의 애인 또는 친구들의 대표로서의 신분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리선정에 의한 효율성으로 한명만을 보내지만 그 한명이 겪는 피로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매년, 짧은 기간의 황홀함을 발산하기위해 감춰왔던 행복한 분홍빛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벚꽃공원,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이 없어서 반가워 진다. 변화한다는 것은 좋지만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으면 하는 것도 있다. 어렸을 때에는 적응할 틈 없이 자주자주 바뀌는 것이 그저 좋았다.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하나 둘씩 먹으며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추억이라는 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일곱 살 때 나만이 보았던 은은한 푸른빛,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한입 베어 물었던 솜사탕, 중학교 시절 처음 가졌던 구식 휴대폰,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 받았던 백점짜리 시험지등. 극히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이 어느 틈엔가 쌓여가고 있었다. 이제야 낡은 건물 철거를 막는 어르신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아버지는 국내로 돌아온다고는 하셨지만 빠른 시일 내에는 오기가 힘든 것으로 들렸다.
“그러는 어머니는 혼자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괜찮다. 얘야, 동네 여자들끼리 모임이 있단다. 남편들 쫄쫄 굶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적극적으로 찬성하더구나.”
“왠지 불쌍하네요.”
“뭐가 불쌍한 것이냐 자기 아내 소중할 줄 알아야지 진정한 남자란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걱정스러워졌다. 설마 나도 같은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해서였다.
“여보 어서 준비해요.”
“벌써 끝났어?”
“물론이죠.”
어머니에게 이만 실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는 허리선이 살아나 보이는 여성스러운 라인의 원피스를 입었다. 상의부분은 디테일한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크로스 되어 겹쳐지며 어깨에는 퍼프소매 느낌으로 셔링을 잡아주는 것이 보였다.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아 소소한 차림이 더욱 강조되었다. 끝부분에 웨이브가 살짝 섞여있는 부드러운 머릿결은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있어서 언제 봐도 아름답다.
“서둘러요!”
자꾸만 재촉한 탓에 하얀 폴로셔츠에 갈색스웨터를 입는 평소 입는 옷으로 골라 입었다. 넥타이를 급하게 맸더니 금세 꾸깃꾸깃 해졌다.
“너무 덤벙대지 말아요. 당신은 점잖은 모습이 매력이에요.”
이마에서 열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두근거림이다. 넥타이를 고쳐주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예뻤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덤벙거린 게 누구 때문인데 그래”
“어머, 지금 투덜대는 거죠?”
“내가 무슨 말 했어?”
아무리 맹수가 사납고 위험하더라도 사랑하는 주인이나 가족에게는 순하듯이 나 역시 그녀 앞에서 만큼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드러내는 엄한 모습을 싹 지워버린다.
예전의 아버지처럼 나도 어쩌지 못한다. 옛날 생각을 하니 드물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만개한 벚꽃은 밤이 되어서도 흩날려지고 있었다. 오후 두시쯤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볐다. 돗자리를 펼칠 만한 곳은 전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낡은 벤치에 앉았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러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밤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줄지가 않네요.”
“그러게”
“도시락은 다 먹었죠?”
“응”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진심으로 기쁜 것인지 그녀는 다리를 쭉 뻗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공원은 달빛과 벚꽃의 화사함으로 빛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십 오년 전 느꼈던 싸늘함이 등을 관통했다.
벤치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낮에는 없었던 커다란 벚나무가 있었다.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었다. 일곱 살 때 보았던 은은한 푸른색의 벚꽃이 눈앞에서 활짝 피어오른 것이다. 비로소 그동안 부족했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뒤를 돌아봐달라고 말했다.
“와, 요즘 벚꽃은 푸른색도 있나보네요”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로소 그날 이후로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던 고독감이 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귀에 속삭이고서 양팔로 등을 감싸 안으며 입맞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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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떠한 댓글을 보게 될지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한편 한편씩 올려보려합니다. 실컷 멍투성이가 되고서 붕대를 감고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마음도 가득하네요.
몇번을 되풀이해서 읽었는데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미안합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시는 게 보통일거에요. 꽤나 급하게 썼던 거라..
소설에는 크라이막스가 있어야 돼요. 갈등을 빚는 사건 말이에요. 하지만 문장력이 참 안정돼 있네요. 소설을 천천히 공부하면 좋은 소설을 기대할 수 있겠네요.
부모님과의 마지막 아름다운 기억과 빈 자리의 아쉬움 등이 벗꽃의 파란색으로 젊은 시절의 남다른 체험을 잘 복선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 사랑하는 아내의 눈에도 벗꽃의 파란색을 보게 됨이 지난 날의 모든 우울함과 상처를 관통하는 심상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의 전개가 서사적이라서 조금 단조로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순간 순간의 감정이 잘 묻어 있겠지만 독자에게는 공감가는 극적 요소가 없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벗꽃의 파란색을 아내가 보게 됨으로 주인공은 상처가 사랑으로 잘 채워질 듯 합니다. 내용의 폭을 조금 줄이고 심화하면 어떨까요? 주제넘었다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