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꿈을 깨다-도리천에서 내려오다
황금13층탑 안이 밝아진다. 도리천녀 잘란다리가 이별을 고할 때가 왔음을 알린다. 황금까마귀가 날아온다.
거대한 날개짓 소리가 울려오자 잘란다리는 휘익 연기처럼 사라진다. 난간에 척 걸터앉은 황금까마귀는 우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두 사람의 몸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처음 그 자리 하늘 호수, 천지(天池)로 데려다 준다. 우리는 천년이 지난 세상에 돌아온 것이다. 천상계에서 한바탕 놀다가 하계로 떨어진 것이다. 환영받을 귀환인가, 불명예스런 추락인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무의미한 이야기 꺼리인가?
시간여행자(Time-traveller)의 불안과 비애랄까? 갑자기 밀려오는 불편한 감정과 생각의 흐름.
지금 부터는 어떻게 해야지. 천년이나 지나버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살아가야지?
마치 모르는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네. 칼라무드라는 이런 생각에 잠겨 잠깐 우울한 안색을 나타낸다. 칼라다나는 속으로 아무래도 우리를 도와 줄 사람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는 감이 온다. 바로 이때 두 사람 곁으로 청수하게 생긴 학생들이 다가온다. 학생들이 입고 있는 옷과 행색을 자기네들과 비교해보니 천년이 찰나런가, 찰나에 천년을 건너 뛰어버렸다는 사실이 몸에 전기가 흐르듯 깨달아진다.
‘말이 통할까?’ 헌데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어머, 이 사람들 좀 봐.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애. 어디서 오셨어요? 오늘 여기서 영화촬영 있나요?’
‘영화촬영’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나 어쨌든,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도와 달라고 해야지.
‘우리는 천 년 전에서 방금 나온 사람들인데요, 이 세상에 할 일이 아직 남아서요. 저희들을 좀 도와줘요. 천년이 순식간에 지나버려 우리가 살던 세상과 판이하게 달라져 딴 세상이 되었어요. 저희가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세요.’
학생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
‘좋아요. 저희들이 도와드릴께요. 우리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유학 온 대학생들이예요. 저희들을 따라 오세요.’
한국 학생 세 사람은 장샛별, 신단아, 박한솔. 장과 박은 연인관계, 샛별과 단아는 친구사이.
베이징 청화대학에 유학 온 학생들이다. 지금은 여름방학 기간 중 백두산에 유람 온 것이다.
이때쯤 이면 장백산 구역은 관광시즌이라 밀려드는 인파와 관광버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룬다.
지금은 서기1998년. 우리가 백두산에 올라올 때는 서기998년 여름이었는데 내려갈 때는 1998년 여름이다, 천년이 지났구나. 잃어버린 천년의 공백은 어디에서 찾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지, 이젠 어쩌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도리천에서 보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문득 마야부인의 기도가 떠오른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 자신으로 느껴지어다.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나에게 고통이 없기를.
나에게 불안과 근심이 없고, 미움과 원한이 없기를.
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둘이는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마음을 닦으니 만사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마음이 놓인다.
41. 베이징으로
학생들이 올라올 때 렌터한 차를 같이 타고 악화 빈관(岳樺賓館)으로 돌아와 투숙하기로 했다.
카운터의 아가씨가 두 사람을 보더니 어리둥절한다.
<용문객잔>같은 무협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인물이 눈앞에 실제로 나탔으니 놀랄 수밖에.
복색이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주인과 사람들이 나와서 유심히 살펴본다.
유학생이 이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 말하기를,
‘이 두 분은 홍콩에서 온 영화배우인데 백두산으로 영화촬영 왔다가 일행을 놓쳐서 뒤에 처진 상황입니다.
주인장, 오늘 이 두 분을 위해 방을 준비해주세요.’
‘그런데, 중국영화에서 못 보던 얼굴인데...’
‘아, 예. 최근에 등용된 신인이라서... 곧 스타가 되실 분들이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알아놔야 영화 볼 때 알아보지요. 귀하신 두 분이 우리 빈관을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하면서 연신 절을 한다.
‘설룡(雪龍,Snow Dragon)과 서린(瑞麟,Auspicious Giraffe)'라고 합니다.’
‘편하게 룽(Lung)과 린(Lynn)이라고 불러 주세요.’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겠어. 근처 수퍼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사서 갈아입는다. 머리는 장발이라 뒤로 묶어서 남자는 말총머리 스타일, 여자는 포니테일(Pony-tale)로 하고 야구 모자를 썼다. 눈빛이 너무 강렬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불편하니까 썬글래스도 사서 꼈다.
이제 거동하는데 편해졌다.
‘어머나, 이렇게 스타일을 바꾸고 보니 훈남과 얼짱이시네.’
‘어머, 아가씨. 이 우윳빛 피부 좀 봐. 광이 나네.’ 세 학생이 이들의 미모에 반하여 감탄한다.
방값과 수고비를 주려고 가죽주머니에서 금을 꺼내 보이니 학생들이 놀라면서
‘여기서는 금을 현금을 바꿀 수 없어요. 시골 이라 바꿔줄만한 보석상도 전당포가 없을뿐더러, 잘못하면 금괴밀수로 의심받을 수 있으니 베이징에 가면 거기서 현금으로 바꾸세요.’
‘우리하고 같이 가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신라방에 아파트를 하나 얻어서 살아요. 우리가 적응하도록 도와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