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파키스탄 여정을 마무리하고, 귀로에 오른다. 룸메 교장선생님이 며칠 전 내게 이번 여행의 개인적인 목적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잊었지만, 하나는 기억한다. 간다라 미술의 걸작 ‘고행하는 부처’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술교사 출신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곧 인간의 시각을 가지고 고난의 길을 자초한 한 인간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의미로 바꿔 받아들였다. 나는 석가모니의 갈비뼈 앙상한 가부좌 자세에는 이미 익숙하다. 그래서 나 역시 더욱 만나고 싶은 것이다. 9시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나는 여러 개의 전시실을 건성으로 지나치며 오직 마음속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마지막 방에 들어섰다. 석가모니 고행상은 오른쪽 벽 중간에 모셔져 있다. 인간의 실물 크기일까? 그 보다는 조금 작아 보이는 석가모니를 뵙는다. 작가는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얼마나 애를 태웠으면 저렇게 검은 몸이 되었을까? 나는 작가의 의도에 공감한다. 광배는 완벽한 구형을 유지하며 머리 살짝 위에서부터 어깨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선정인 수인의 자세로 깊은 명상에 들어있다. 얇은 가사는 양 팔꿈치 바로 위에서 시작하여 가부좌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다. 상반신은 복부까지 맨 살을 드러내고 냈으나 하반신은 완벽한 형태의 바지를 입고 있다. 배꼽 주위에 드러나는 상하 의복의 주름선이 깊고 뚜렷한 것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머리 모양은 이마를 드러낸 올림머리 위에 머리카락 끝을 다시 동그랗게 말아 올려 2층으로 얹었다. 소라 머리가 아닌 것은 부처 이전의 아직 고행 정진 중이기 때문이다. 눈은 그 속이 해골의 깊고 어두운 동굴처럼 형체가 없고, 구레나룻은 콧수염과 함께 더부룩하게 자랐다. 코는 미간에서 뻗어 날렵하게 인중을 향해 있고, 코 아래 바짝 붙은 입은 작은 편이다. 양 귀는 위쪽 끝이 눈의 중간쯤에서 시작하여 입 훨씬 아래까지 내려와 대단히 크고, 귓불이 넓어 비스듬한 각도로 전방으로 향한다. 이마에 곧 터질 듯한 실핏줄이 엉겨있고, 미간의 백호는 좁쌀보다 작아 쓱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확연히 돌출한 쇄골 아래 마른 어깨와 10개의 갈비뼈들이 양쪽 맞대어 나란히 앙상하다. 피부는 번들거리는 비닐처럼 얇아서 만지면 곧 바스락 소리 내며 부서질 것만 같다. 상체에 두루 퍼져있는 실핏줄은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되어 내 마른 가슴에서 돋아난다. 양 발끝은 무릎 위에 보일락 말락 올려져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조각상을 마주 대하고 서면 석가모니는 머리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석가모니는 고행이 깨달음의 수단이 아님을 뒤늦게 알고 나서, 우유죽을 먹고 보리수나무 아래로 가서 어느 신새벽 홀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고행하는 부처상’이 아닌 ‘고행하는 수행자’를 만나는 중이다. 일행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는 슬쩍 자리를 비켜주고,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금방 이곳을 떠나기는 싫었다. 나는 맞은편 진열장으로 가서 힌두교의 부조물들을 살폈다. 세밀한 묘사가 재미있어 더 깊은 곳으로 더 깊이 내려가며 들여다본다. 바드샤히 모스크는 라호르 성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모두 무굴제국의 유산들이다. 나는 먼저 성으로 갔다. 정문을 통과해서 휘어지는 오르막을 다 올라야 비로소 성의 중심부가 나온다. 오르막길은 서양의 성 축조의 공식대로 양쪽 벽이 높게 끝까지 이어진다. 길 양쪽 벽은 정문을 돌파 당했을 때 제2의 방어선이 된다. 외적의 진격 속도를 늦추면서 활과 돌을 쏟아 부으며 방어를 하기 위한 방어선이다. 성에서 바라보았던 모스크는 붉은 색이었다. 모스크로 갔다. 입구에서 신발을 맡기고 양말만 신고 입장했다. 햇볕에 달구어진 판석이 뜨겁다. 사원의 마당이 광야처럼 넓다. 사원의 모든 건축재가 붉은 사암이어서 붉은 광장에 서있는 느낌이다. 모스크는 외부와 내부할 것 없이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되어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타지마할의 기하학적이고 모던한 문양에 결코 뒤짐이 없다. 꽃과 풀과 나무줄기를 응용한 문양은 어느 현대 디자이너가 이토록 섬세하게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싶다. 일행 모두 감탄사를 쏟아낸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신발 찾는 곳은 따로 있다. 보관료로 루피를 요구하니 루피를 가진 이성문이 일괄 계산했다. 우리는 나중에 대충 계산해서 1달러씩 보관료를 갚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4시다.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는 6시간이나 남았지만 공항으로 이동했다. 귀국 비행 스케줄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루트로 광저우에서 환승한다. 라호르 2145분 출발, 광저우 0615분 도착, 시차 3시간을 감안하면 비행시간은 5시간 반, 광저우 0935분 출발, 인천 1355분 도착, 시차 1시간을 감안하면 3시간 20분 소요된다. 라호르 공항에는 다음의 특별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라호르 공항에서 커피를 마시려거든 호주머니에 루피를 남겨두어야 한다. 둘, 스모커들은 2층 커피점에 가서 커피를 사면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어수선한 티케팅과 출국절차를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한 건장한 사내가 호들갑스럽게 길을 안내한다. 알고 보니 입장하는 여행객들을 본인의 가게 앞으로 유도했던 것이다. 공항이 협소한 것은 비행편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출국장의 가게도 다양하지 못했고, 특별히 사고 싶은 상품도 없었다. 모기들의 공격도 피할 겸해서 2층 커피점으로 몰려갔다. 2층에 하나밖에 없는 “Coffee Planet"이다. 손님이라곤 우리 일행이 전부일 정도로 한산하다. 일행과 함께 음료와 샌드위치를 시키고 시간 죽이기에 들어갔다. 스모커들이 커피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운다.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 눈감아줄 일이지만 가게는 커피를 팔기 위해 규정을 깨는 행위를 하고 있다. 시간이 되어 내가 계산을 하려니 자꾸 루피를 고집한다. 수중에 달러밖에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카드를 냈다. 그러자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순식간에 나는 지불 불능이 되고 말았다.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김경희가 눈치를 채고 다가온다. “괜찮은 거죠?” “문제가 있긴 있는데, 해결해 볼게요.” 내가 끝내 카드를 주장하자 카드 절반, 달러 절반으로 하자고 한다. 이건 순전히 응원군의 힘 덕분이다. 내가 동의했더니 이번에는 또 환율로 애를 먹인다. 루피가 없는 약점을 물고 늘어지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싸가지 없는 녀석이 얄미워 그 당시의 지불내용을 메모해 두었다. 내가 내야할 전체 비용은 10,400루피이고, 당시 1달러에 270루피였으므로 40불 미만이다. 그런데 환율을 200루피로 적용해서 현금 26불에 카드 결재 26불을 하겠다고 한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 속에서 불끈하고 올라왔으나 일단 참는다. “나도 오늘 환율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200루피.” “250이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225루피.” “알았다.” 나는 현금 23불을 내고, 23불 카드결재를 마쳤다. 6불이 억울해서가 아니다. 돈은 선한 파키스탄 인에게도 가혹하다. 누구나 돈이 재앙인 줄 알면서도 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돈은 욕망을 채워주기도 하고, 욕망을 깨뜨려버리기도 한다. 광저우 공항에서 과자 한 상자를 샀다. 귀국 신고할 때 어머니께 쓸 뇌물이다. 여행 출발 전에 어머니께 미리 신고를 했었는데, 1주일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한 며칠 다녀올 줄 알았는데 일주일 넘도록 소식이 없으니 자식걱정을 한 것이다. 막내에게 카톡을 보내 상황 설명을 부탁했다. 나는 기억이 증발하기 전에 여행기를 써야한다는 생각에 다른 열일을 뒤로 물리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 지리적 오류가 있을 것이다. 차분한 검토가 부족해서 비문(非文)이나 오탈자도 많을 것이다. 양해를 바라는 바이다. 나는 여행을 발로 하지만 눈으로 하는 여행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신경을 곤두세워야할 때도 있다. 이 여행기는 그 결과물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팀워크를 위해 애쓴 일행들에게 감사한다. 나를 전주 식사자리에 초대한 교장 선생님은 내 반응이 신통찮다고 생각했는지, 헤어질 때 또 한 번 다짐을 받더니, 이튿날 카톡으로 전화를 걸어 목포에 오면 연락하겠다고 한다. 예. 오세요. 오시면 제가 목포밥상 한 상 대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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