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송년 산악회"..................프롤로그
♣ 2009년 1월 기축년(己丑年) 새해 첫 산행이라면서 오대산에 등산을 갔던일이 바로 엊그제같고,
3월에는 팔봉산에서 시산제를 올렸던 게 어제 일만 같은데, 벌써 12월 마지막 산행을 선자령에서 하게되었군요.
♣ 무엇보다도 목일산악회 회원님들이 2009년 1년동안 힘든 산행에서 큰 사고없이 산행을 해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또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장옥선 산악대장님,방선옥 산악부대장님,안명옥 산악총무님,
신선주총무님 그리고 목일산악회 운영진 여러분께 그동안 수고에 대하여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리고,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막히면 국도로 달리고 뚫리면 다시 고속도로로 안전하게 운전하여주신 동백관광 정요섭기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 2010년 새해 경인년(庚寅)에도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하 운영진그리고 목일산악회 회원님들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과 행운이 함께하시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마지막 산행
♣ 벌써 2009년도 마지막 산행이라내요.
마지막이라는 말만 들어도 전 언제나 우울해져요.
마지막 술잔도 그렇고,
마지막 사랑도 그렇고,
거기다가 마지막 산행도 그렇고.....
마지막이란 언제나 슬프고 우울하고 괜히 감정도 센티해지드라구요.
나만 50이라서 그런가요?ㅋ
♣ 그러나 어쩌겠어요.
싫어도 세월은 가고 넘기기 싫어도 달력은 넘어가니 말이에요.
# 산행 출발전
♣ 저는 이번주 놀토라서 하루종일 TV보면서 일부러 낮잠을 청할려고 했지만 괜히 설쳐서 밤에 잠만 안오드라구요.
그러나 선자령은 산행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다녀오신분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편해졌지요.
♣ 밤새 뒤척이면 잠을 못자고 그냥 눈만 감고 있자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핸드폰 알람이 울려서 일어나보니 새벽 5시 였지요.
♣ 옆지기도 같이 등산을 갔으면 좋으련만 힘들고 피곤하다면서 등산을 안한지가 몇달 되었내요.
내가 일어나자 옆지기도 일어나서 커피용 더운물을 끓이고,당근을 깍고,새로 김장한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를 담아주었지요.
♣ 지난번 남덕유산등산에서 가방이 적어서 옷을 넣치못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큰 등산베낭에다가 선자령 등산에 필요한
물건들을 낮에 혼자서 모두 넣었지요.
그런데 혼자 등산가면서 무슨 큰 등산베낭을 가지고 가느냐면서 한소리를 하더군요.
그러자 내가 지난번에 베낭이 적어서 옷을 넣지못해서 불편했다고 했드니 "아니! 지금은 한겨울인데 옷을 입고가야지
등산베낭에 넣고 갈일이 있겠냐면서" 한소리를 하였다.
내생각에는 큰 등산베낭에다가 더우면 넣었다가 추우면 다시 꺼내 입을려고 했는데 한편으로는 옆지기 생각도
맞는것 같고 아침부터 옆지기 기분 나쁘게 하고싶지않아서 순순히 작은 베낭을 꺼내서 어제부터 담아놓았던 등산용
비품들을 부랴부랴 옮겨서 담았다.
♣ 그런데 일이 하나 터졌다.
큰 베낭에 넣어두었던 카메라용 밧데리 2개중 1개와 예비용 카메라 디스켓이 없어져 버린것이다.
아무리 큰 베낭과 작은 베낭을 번갈아가면서 찾아봐도 없는것이였다.
처음부터 책상속과 큰 베낭과 작은베낭을 샅샅이 뒤져도 분명히 어제 내가 사진찍다가 잘못될까봐서 예비용으로
분명히 넣어둔 기억이 나는데 도무지 없는 것이였다.
정말 기가 막힐노릇이었다.
아무리 5시에 일찍 일어났다지만 세수도 해야하고 목동아파트 14단지A상가앞까지 차를 타고 가야하기도하니
많은 여유는 없는데.....
정말 큰일이 났다.
그래서 할수없이 그대로 출발할려고 하다가 밧데리와 디스켓을 같이 넣어둔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보니
글쎄 휴대용 휴지속에 들어있는게 아니겠어요?
옆지기가 어이없어하는것도 모른체하며 얼른 세수를 하고 베낭을 메고 차를 타고 목동14단지 A상가앞에 왔으나
6시 30분인데도 아직도 밖은 어둑어둑하고 동백관광은 오지 않았다.
♣ 어제 비와 눈발이 날리기는 했지만 아침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래서 목동아파트 A상가 경비실에 들어가서 아저씨와 같이 TV를 보고있는데 신정산에서 아침마다 만나든 김영선사장님이
오셔서 같이 TV를 봤다.
아침 6시40분경이 되자 동백관광이 도착하여 우리는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장옥선 산악대장님과 신선주총무님과
운영진및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에 탔다.
#동백관광 버스안
♣ 옆지기가 피곤하다면서 등산을 같이 안다닌후부터 언제나 나 혼자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그날 하루의 짝을 기다리니
이 노릇도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오늘은 어느 분이 나와 같이 동행을 할것인가?
전에는 구청과장,회장님사모님,파주사시는 사모님등이 내옆자리에 앉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권사장님일명 미스터후사장님이 내옆자리에 앉으셨다.
처음에는 미스터후라고 부르셔서 배구선수중 후인정이라고하는 선수가 있는데 같은 후씨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여성회원들에게 들은 얘기인즉,얼굴이 크셔서 마치 후라이판 만큼크다고하여 미스터후라고 불렀다는 전설입니다.
어제 약주를 많이 드셨는지 옆에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술에 취할것 같았다.
♣ 동백관광버스에 산악회 회원들이 다 자리를 잡고 앉으시고 이윽고 우리 버스는 서부간선도로를 거쳐 88도로를 따라 달렸다.
♣ 목일산악회 운영진들이 계란과 사과그리고 생수를 나누어주었다.
다른때 같으면 김밥도 나누어주셨는데 오늘은 안주자 앞뒤에서 오늘은 김밥을 안주는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 목일산악회 신선주 총무님의 사회로 박순주산악회장님이 인사에 이어 다음싸이트에서 서울목일산악회를 치면 목일산악회가
다녀온 산들의 산행사진이며 산행후기를 읽으면 그 당시의 산행 기억들이 떠올라서 참 좋다면서 서울목일산악회의 카페를
칭찬하셨다.
이럴때마다 카페지기지만 한달에 한번 산행에 다녀오면 등산사진을 올리고 산행후기를 쓰고나면 별로 한일이 없는 나는
항상 부끄럽다.
이어서 장옥선 산악대장님의 산행소개후에 박순주 회장님께서 오늘은 김밥의 배달사고가 나서 휴게소가서 아침식사를
회원들께 대접한다고하셨다.
지난번 남덕유산 등산갈때는 밥을 버스에 싣지않고 출발한후 여의도 국회의사당근처에서 뒤늦게 생각하는 바람에
전화를 해서 밥을 오토바이로 싣고 버스까지 왔었는데 오늘은 김밥이 배달사고가 났다고하니 오나가나 밥이 문제였다.
그 밥을 안먹고 살수있는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여주 휴게소에서
♣ 이윽고 여주 휴게소에 버스가 도착했다.
화장실에 다녀온후 모두들 식당으로 갔다.
일부는 아침식사를 안하시는 분도 더러 계셨으나 많은 회원들이 식당으로 가서 단체로 주문을 하여 식사를 하였다.
김밥은 한줄에 1,500원정도인데 식당에서는 가장싼 것이 5,000원부터 시작하였다.
회원들이 주문한 메뉴도 다양하여 카레덧밥,짜장면,짬뽕,우동등........
♣ 사실 나도 살이 많이쪄서 소식을 선호하는 사람중에 들어가나 마음일뿐 별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식하는 사람들은 김밥을 많이 즐겨하고 예찬하는 사람을 보았다.
김밥에는 김과 시금치,우엉,단무지,햄,계맛살,계란,오이,깨등이 들어 간다.
간단한 식사 치고는 영양도 만점이고 간편하다.
김밥 한줄이면 그런대로 든든하기도 하다.
♣ 나도 짬뽕을 한그릇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서쪽하늘에는 햐얀 반달이 떠있었다.
#대관령 도착
♣ 평상시엔 대관령하면 가까운 거리로 인식해 왔었는데 오늘따라 어제 잠을 못자서 피곤한지 멀고 먼 길이 었다.
서울에서는 첫눈이 왓다고는 했지만 내리면서 녹아버리고 다시 지난 토요일에도 눈이 내렸지만 바로 녹아버려서
아직 겨울을 실감하지 못한 감도 있다.
그러나 서울을 떠나 여주를 지나고 횡성에 접어드니 먼산 너머에 산봉우리에는 하이얀 눈을 머리에 있고
버스가 달리면 달리수록 점점더 깊은 겨울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 횡성을 지나 평창으로 들어서니 길가 양옆 산속의 나무들은 어제 내린 눈을 업보인양 머리에 이고 나무가지를 축 늘인체로
슬프게 서있었다.
산속에 있는 집들도 처마끝에 세상의 업보를 대신 진 것처럼 많은 눈에 힘겨운듯이 묵묵이 서있었다.
♣ 어느덧 버스는 겨울 깊은속을 달려서 대관령에 도착했다.
목일산악회 장옥선대장님은 선자령의 기온이 체감20도정도로 아주 추우니 점심을 산에서 먹지말고 내려와서 먹게
점심밥을 가지고 가지말라고 하셨다.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은 버스에서 회원들이 내리자마자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에 올릴 메인사진을 찍자면서 모이라고
하셨다.
우리 산악회는 어느산에 가나 거의 도착시간이 오전 10시에서 11시경이다.
이른 시간이고 도착지가 산아래가 대부분이니 항상 멋진 배경을 잡을 수없음이 아쉽다.
전에 카페메인에 올릴 사진을 찍었는데 아침이라서 역광을 무릅쓰고 멋진배경을 찍었으나 역광의 검은색 사진으로
부랴부랴 다른 사진으로 교체한 적이 있어서 이제는 역광을 신경쓰면서 찍다보니 어느회원은 체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셔터를 누른 사진도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준비과정부터 사진을 여러장 찍지만 그래도 항상 집에 돌아와 편집하여보면 실수하여 아쉬운 부분이 많다.
아직도 나는 초보이고 서투른 카메라맨인 셈이다.
#선자령의 유래
♣ 선자령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간데서 선자령이란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선자령은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우뚝 솟아 있다.
산 이름을 '산'이나 '봉'이 아닌 "령"으로 부르게 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옛날 기록에 의하면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다.
〈산경표(山經表)〉에는 '대관산(大關山)'이라 하고.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 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그 아래 보현사의 이름에 따라 '보현산(普賢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보현사에 관한 기록을 전하는 〈태고사법(太古寺法)〉에는 '만월산(滿月山)'으로 적혀 있다.
보현사에서 보면 선자령이 떠오르는 달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
선자령은 해발 840m인 대관령의 북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대관령에서 약 6km밖에 되지 않아 산행이 힘들지 않고
겨울철 적설 등반지로 적합하다.
대관령 고갯길은 옛날에는 오솔길이었으나, 이 고갯길을 조선조 중종때 이 지방 사람인 고형산이 사재를 털어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았다.
그 후 수십 년이 흐른 후,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대가 확장해 놓은 길로 쉽게 한양까지 침범하게 되자 인조 왕은 크게 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헤치게 하였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옆에는 대관사란 사찰과 산신각, 강릉 서낭신을 모신 서낭당이 있다.
#선자령 등산 시작
♣ 대관령에 내려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자마자 강원도 대관령의 촌바람들이 서울에서 온 선량들에게 모지고 세찬 바람을
안겨주어 서울사람들이 혼비백산하였다.
정말 군대 혹한기 훈련에서나 느낄수있는 정말 너무나 추워서 모자를 쓰고 귀마게를 하고 마스크를 하고 그위에
바람막이 모자를 썼지만 귀는 시럽고 얼굴도 시럽고 손도 곱고 정말 지독히도 추운 겨울속으로 갑자기 뛰어든것 같았다.
♣ 아침10시경부터 선자령으로의 등산이 시작되었다.
해발1,157m라고는 하나 해발840m인 대관령까지 거의 다 올라와서인지 그리 어렵지는 않은 산행이었다.
곳곳에 세찬 바람을 이용할려는 풍력발전기가 여기저기에 세워져서 세찬바람에 육중한 바람개비가 쓩쓩쑹 소라를 내며
돌아갔다.
자연의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려는 풍력발전기!
자연을 오염시키지않는 녹색의 혁명 풍력발전기!
회전자를 포함해서 높이가 100m라니 실로 대단하였다.
멋진 산 등성이마다 여기저기 풍력발전기가 50여개 쯤 서있어서 왠지 자연을 오염시키지않는다는 풍력발전기가
오히려 자연을 많이 훼손 시켰다는 생각이 드는건 나만의 좁은 소견탓이리라!
♣ 대관령휴게소에서 선자령까지의 거리는 5.8km였다.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은 선자령은 힘들지 않으니까 A,B조구분없이 등산을 하자고 하셨다.
등산코스는 대관령 휴게소 - 새봉 - 선자령 - 동쪽능선 - 860봉 - 초막골 - 도로의 4시간 코스였다.
♣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라가니 대관령국사 성황당이 나왔고 바닥은 얼음이 얼어있고 산속에는 군데군데 하얀눈이 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선자령으로 가는 등산로입구가 있었다.
♣ 등산을 처음 시작할때는 그리 사진 찍을 일도 없었다.
산에 올라가면 갈수록 사진을 찍다보면 자연스레 나는 맨 꼴찌로 등산을 하게된다.
그래서 처음 산행에서는 앞지를수 있으면 계속 앞을 지른다.
하긴 처음 산을 오를때는 체력도 비축되어있으니 앞으로 잘 갈수있지만 나중에 체력이 고갈되면 지구력으로 가야하는데
그때를 대비하여 등산도 잘 못하면서 처음에는 계속 앞질러 간다.
사실 등산을 하다보면 앞질러 가는 사람을 보면 짜증도 나고 경쟁심도 유발되어 안 비켜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가야하므로 업무상으로 앞지르는 것이니까 이해해주세요!ㅋ
♣ 언덕을 따라 올라가자 예전에 1950년대 군 대대급병력이 주둔하던 대형지하벙커와 지하 유류탱크와 탄약고등
32개의 군부대의 시설물이 은폐.엄폐되었던 지역이 나타났다.
그런데 지난 2007년 노무현대통령시절에 철거되어 산림으로 복구되었다.
아! 노무현 전대통령!
세상의 힘든 짐을 내려놓고 어딘가에서 편히 쉬시리라!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옛 벙커터를 지나 올라가자 KT의 대형안테나 기지국이 있었고 그 너머엔 산 등성이마다 풍력발전기가 서있었다.
동쪽을 보니 멀리 강릉시가지와 검푸른 동해바다가 바다인지 하늘인지 바다로 보면 바다같고 하늘로 보면 하늘같이
구별없이 생각대로 보였다.
♣ 선자령을 향하여 올라가면 갈수록 바람은 더욱더 거세지고 귀와 얼굴이 시러웠다.
♣ 먼 산쪽을 바라보니 육중한 풍력발전기의 회전자가 세찬 바람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한시도 쉬지않고 하루 온종일 계속 불었다.
바람이 부는 천혜의 요새이니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게 이해가 되었다.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면 갈수록 눈이 쌓여있었으나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혹시 사진을 찍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봐서 나는 아이젠을 꺼내 신었다.
♣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가고 있는데 앞에서 가던 김성규 사장님이 뒤돌아서 내려오고 계셨다.
앞을 쳐다보니 삼거리 길인데 똑 같이 선자령이 나오는 길이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선자령길과 우회해서 가는 선자령길이였다.
두 길은 언덕을 올라가는 2.7km의 길과 2.6km의 우회의 길을 앞에서 합류한다고 씌여있었다.
우회하는 길이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보다 짧았다.
통상적으로 우회하는 길이 완만하면서 더 길텐데..... 이상하게 선자령은 짧았다.
김성규 사장님은 역시 등산의 달인으로서 많은 걸 아셔서 짧은 우회길을 선택하여 내려오시는 것 같았다.
♣ 이윽고 합류지점에 도착하여 우리는 쉬면서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이하 앞선 회원들도 거리가 길면서 언덕길로 산행을 하시니까 거리가 짧으면서 우회하는
우리보다 한참뒤에 오셨다.
마치 개선 장군들처럼 오시는 그 분들을 사진에 담았다.
♣ 너무 추우니 완전무장을 해서 눈만 빼꼼히 나와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장옥선대장님하고 같이 오니 우리 목일산악회 회원인지 구분하지 우리 일행인지 여부마져 구별이 안되는
마치 어둠의 세계와도 같았다.
이렇게 완전 무장을 하니 남자,여자만 구분될뿐 젊은지,날씬한지,이쁜지,미운지,잘생겼는지,못생겼는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된 듯 싶었다.
♣ 날씨가 너무나 추운탓에 장옥선 산악대장님은 물 마실틈도 안주고 산행을 이끄시는 바람에 베낭에 계란과 사과, 생수와
당근을 손도 못대고 계속 전진만 했다.
2007년부터 목일산악회 산행을 한번 결석하고 따라다녔는데 오늘만큼 장옥선 산악대장님이 거의 쉬지않고 회원들을
이끄는 것은 처음 본것 같았다.
♣ 합류하기전에만 잠시 선두에 섰던 나는 또다시 맨꼴등이 되어서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아이젠을 해서 미끄럽지는 않았으나 올라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서 신발속으로 눈이 들어와 시원했다.
일기예보에서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다고해서 스페치를 샀으나 베낭속에서 꺼내서 신을려면 더욱더 뒤떨어질까봐
그냥 열심히 맨꼴찌로 계속 걸었다.
♣ 그러나 선자령은 마치 동네 뒷산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워서 그렇지 산행치고는 손가락에 꼽을만치 쉬운 산행이었다.
♣ 이젠 서울에서 보지못한 눈이 많이 쌓여있어도 새롭지가 않았다.
아니 눈를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추워서 얼굴과 귀를 감싸기에 여넘이 없기때문이었다.
♣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거의 민둥산이었고 갈대는 아주 땅에 누버리고 소나무는 모양이 옆으로 쏠려서 마치 바람에
날리는 형상으로 계속 부는 바람에 맞추어 억지 춤을 추고 있었다.
♣ 멀리 선자령 정상이 보였다.
선자령 정상밑에는 풍력발전기가 서있고 그 아래에는 눈이 많지않아서 그렇치 일부러 만들어놓은 눈썰매장처럼 보였다.
회전자를 포함해서 100m가 된다는 풍력발전기와 눈썰매장을 멋지게 담아볼려고했지만 추워서 그냥 세워서 찍고
정상에 먼저 올라간 장옥선대장님과 일행들을 찍기위해서 언덕길을 마구 뛰어 올라갔다.
나중에 보니 사진이 삐딱하게 찍혀 있었고 배경도 잘못 잡았다.
♣ 선자령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눈이 많아 쌓여있었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사람들이 기다려주어야지 그렇지않으면 1m쯤되는 눈속에 빠져야 갈수있었다.
선자령정상에서 추워서 사진도 안찍고 일행들이 내려올까봐 조마조마하면서 갈길은 먼데 앞에서는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빨리 안가서 애가 타면서 자의가아닌 타의로 천천히 올라갔다.
♣ 다행히도 늦게 올라갔으나 장옥선산악대장님과 일행들이 계셔서 백구대간 선자령이라는 바위펴지판아래로 목일산악회
회원들을 모이라고 하였다.
사실 나는 회원들에게 일부러 사진찍자고 모이라는 소리를 잘은 못한다.
그러나 이제 1년넘게 카페지기를 하고 많은 회원들이 내가 사진을 찍어도 "저넘은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볼상 사나운
사진은 안찍고 혹여 찍히드라도 편집을 한다"는 걸 아시는지 순순히 백두대간 선자령 표지바위앞에 모이셨다.
어떤 이쁜 회원은 사진을 안찍는다고하여 "이렇게 완전히 변장을 하셨는데 누가 알아본다고 그래요?"하면서
이제는 사진 찍기를 권유까지 하였다.
#선자령 정상에서 하산
♣ 선자령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초막골방향으로 하산을 해야하는데 입산금지 줄이 쳐져서 그쪽으로는 못 내려가게 되었다.
우리 산악회가 아닌 어떤 재치있는 회원이 "입산금지"지 "하산금지"가 아니니까 그쪽으로 내려가도 된다고
하여 여러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는 대관령방향으로 원점산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옛날 중국 당나라 때에 관리를 선출하던 네가지 표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즉 체모(體貌)의 풍위(豊緯), 언사(言辭)의
변정(辨正) ,해법(楷法)의 준미(遵美),문리(文理)의 우장(優長)을 이르는 말이 생각이 났다.
♣ 우리 목일산악회 신선주총무님도 말도 잘하고 사회를 잘보시지만 어느 산악회에 가나 말 잘하고 우스게 소리 잘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씩은 있다.
이것 또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이 있고 본인들이 후천적인 노력도 할것이다.
♣ 세상사람들 누구나 신언서판중 한가지는 있다고 한다.
나는 궂이 끼어넣자면 신도 아니고 언도 아니고 서도 아니고 판도 아니고......
어라! 나는 사람도 아닌가비내요!ㅋ
그러나 누구나 넷중하나를 찾아야한다면 나는 서에 가까운 가보다.
어릴적부터 글을 쓰는 일이라면 누구에게 빠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고요.
전에 구청에 다닐적에도 각 과에서 행사를 할때에 구청장님 연설문도 쓴적이 있거든요.
쓸데없는 제자랑을 하였나요?
저 역시 가끔은 푼수가 되고 싶기도 하내요.
오늘은 대관령 선자령의 모질고 세찬 바람맞고 살짝 푼수가 되었답니다.ㅋ
♣ 선자령 정상에서보니 멀리 강릉시와 동해바다가 손에 잡힐듯이 가깝게 보였다.
정말 바다가 색깔이 조금 짙을뿐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안갔다.
♣ 얼마전에 전투기가 바다로 추락한 사건이 있었는데 전투기의 빠른속도로 그리고 몇번의 회전을 하다보면 어지러워서
바다를 하늘로 알고 착각하여 바닷물속으로 전투기를 조종했을것이란 분석이 이해 갈 만도 하다.
♣ 선자령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저런생각을 하다보니 나혼자만 남았다.
얼른 생각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니 이제는 세찬 바람에 눈도 귀도 손도 시러웠다.
백두대간 선자령이란 바위표지판이 선자령 정상에서 혼자 우뚝서서 모지고 세찬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랴!
추워도 너를 데리고 내려갈수도 없으니....
그럼 내가 백두대간 표지판 너랑 같이 여기서 살까?
그 넘을 홀로 남겨두고 나 혼자 하산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내가 집에 가서 옆지기랑 같이 살아야지
강원도 선자령 정상에서 바위랑 같이 살수는 없지않은가?ㅋ
아쉽지만 이제는 나도 하산할시간이 되어서 다시 대관령 방향으로 하산하기시작하였다.
♣ 선자령에서 하산 하는 길은 눈이 많이 쌓여서 올라오는 사람이 올라오면 다음 내려갈 사람이 내려가는 체증의 연속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뒤에서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는 짓을 보면 그 사람을 조금 알듯 싶어진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먼저 갈려고하는 걸보면 우스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빨리가야 5분인데 저렇게 빨리 갈려고 안달을 하다니!
마치 인생살이에서도 그러리라!
♣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위험하기는 하지만 조심만 하면 훨씬 쉽고 올라올때보다 빨리 내려간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많이 불어서인지 소나무가 아예 길에 눞다시피하였다.
말못하는 나무이지만 얼마나 춥고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돌뻔 했다.
♣ 길가 눈위에 지팡이를 꼽아보니 거의 반틈이나 들어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우리 목일산악회는 한번 올라간 산에는 여러해가 지나야 다시간다.
우리나라 전국토의 75%가 산이고 그많은 산들중에 연속해서 지명되는 경우는 여름에 물놀이겸하여 가는 백운산정도
밖에 없다.
♣ 멀리서있는 풍력발전기가 회전자를 힘차게 돌리면서 다음에 또 와!하는듯이 돌아간다.
그래!널 잊지않고 다음에 또 올께!하며 산길을 내려갔다.
♣ 산중턱 쯤 내려오니 누군가 하나둘씩 조심스럽게 돌탑을 쌓아놓았다.
오며가며 하나씩 공든여 탑을 쌓은것이다.
나도 돌하나를 올려놓을려고해도 온통 눈밭이라 돌이 안보인다.
그래서 사진에 담았다.
#짱가의 유래
♣ 짱가하면 어릴적에 본 영화가 생각난다.
1988년에 '정수용'감독이 만든 아동용 특촬물.
그 당시 유행하던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작품이다.
고인이 된 개그맨 김형곤이 주인공을 한 작품이다.
내용은 풍선껌을 좋아하는 지구 어린이 둥둥이가 외계에서 온 사라 공주와 만난 뒤, 자신의 정체가 기억과 힘을 잃은
스타 짱가란 걸 알아낸 다음 본격적으로 각성을 해서 악당들을 쳐부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김형곤이 맡은 배역인 둥둥이는 별로 매력도 없고 특징은 단지 식탐이 많다는 것뿐이다.
둥둥이를 비롯한 인간 배우들은 사실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일본 로봇 애니인 가라트에 나오는 로봇을 그대로 베껴 만든
로보 콩이 그래도 꽤 비중이 높게 나온다.
김형곤의 인상은 아동 영화에도 먹힐 만큼 친숙하지만, 둥둥이와 스타 짱가란 캐릭터의 각본이 그걸 망쳐 버린거나 다름이
없다.
초반부의 셋트장은 서울랜드.
노골적으로 서울 랜드를 홍보하며 별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했다.
영화가 시작된 뒤 40분 후에야 사라 공주에게 진실을 듣고 파워칩을 벨트에 넣은 뒤 그녀의 힘을 전수 받아 스타 짱가로
각성을 하게 된다.
각성을 한 뒤에는 말과 행동이 180도 달라진다.
일부러 멋있어 보이는 척을 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래도 40분 내내 무슨 활약을 하기는커녕 웃기지도 않았던 둥둥이가 갑자기 고릴라 외계인에게 배치기를 하고
빅 스플래쉬를 날려 쓰러트리며 선전을 한다.
끝나기 24분전에는 실사가 완전 사라지고 애니메이션으로 완전 대체.
캡틴 퓨처의 전투복을 베낀 스타 짱가의 몸에 김형곤이 성우를 맡으니 뭔가 굉장히 어색하다.
독창적인 디자인은 악당 여왕 뿐이다.
아주 쉽고 간단히 외계로 슝하고 가서 여왕과 싸우는 그 진행은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사실 스타 짱가는 주인공인 것치고는 거의 활약이 없다.
스타 짱가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왕의 본거지에 잠입해 조금 싸우다가, 세 명의 악당 로봇이 튀어나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싸우다가 오른 손을 대포로 변화시켜 레이져를 슝 쏴서 로봇 하나를 격퇴시키는 게 전부다.
나머지 두 로봇을 물리치고 악의 여왕을 물리친 건 짱가가 아니라 사라 공주와 왕이 타고 온 우주 전함이다.
이 우주 전함의 경우, 일본 로봇 애니 자붕굴에서 나오는 아이언 기어라는 로봇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끼고 얼굴에 눈 코
입을 단 디자인을 하고 있다.
금세 로봇 형태로 변해 악당 로봇을 툭툭 차고 치고, 빔 라이플로 악당 여왕의 탈출선을 격파하면서 상황을 종료시킨다.
요약을 하자면 스타 짱가란 이름이 무색한 전개다.
아니, 대체 그 정도로 강한 함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스타 짱가가 올 때까지 적을 치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 그런데 목일산악회에도 짱가가 있다.
처음에는 짱가라고 부르는 뜻을 몰라서 왜그런가 궁금하기도 했다.
짱가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의 사모님이다.
♣ 그럼 왜 사모님을 짱가라 불렀는가하는 설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어떤이는 이름이 장미경이라서 짱가라는 설도 있고,다른 하나는 학교나 모임에서 항상 짱을 먹고있어서 짱가라는 설도
있다고하나 학자들간의 의견이 분분하다.
♣ 사진을 찍으면서 한참을 내려오니 목일산악회 사모님인 짱가와 이총무님그리고 운영위원한분이 천천히 내려가고 계셨다.
내가 앞서서 세분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니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의 사모님은 폼또한 짱가 폼이었고 그 옆 빨간옷을 입은
운영위원은 마치 독수리 모습이었다.(사진참조)
이제 거의 대관령고개가 가까워져 눈도 거의 없어진 터라 나도 아이젠을 벗고 같이 동행하여 산을 내려갔다.
♣ 대관령마을휴게소에 거의 다 내려오다가 하늘을 보니 비행기가 꼬리에 하얀줄을 그으면서 날아간다.
난 궁금한것은 못 참아서 전직 기장님께 어쭈어 보니 비행기가 일정한 높이 이상의 괘도를 비행할때 나타나는 선이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실제로 비행할때 무서운가를 물어봤더니 높은 하늘에서 보면 경치만 아름다울뿐 무섭지는
않다고 하셨다.
#대관령 마을휴게소에 도착
♣ 우리는 아침10시에 선자령으로 등산갔다가 오후 1시경에 대관령휴게소로 내려왔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바람에 조금도 쉬지않고 걸었다.
또한 산행시간도 선자령 정상에서 초막길로 하산길이 입산금지되는 바람에 1시간정도 단축되어 약3시간정도의 산행을
하였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시간과 거리가 단축되어 발은 덜 힘들었으나 얼굴과 귀에게는 추워서 아주 힘든 산행이었다.
선자령에서 하산하여 대관령마을휴게소에 있는 동백관광으로 갔드니 정요섭기사님은 목장식당으로 가라고하여
찾아봤으나 목장식당이란 상호는 없어서 혹씨나하고 양떼목장으로 가봤으나 박순주회장님이하 우리팀은 없어서
다시 내려와서 대관령마을휴게소안으로 들어가니 모두들 거기에 계셨다.
♣ 원래는 대관령마을휴게소 마당 추운데서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김치찌게와 점심식사를 할수밖에 없었으나
동행하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 초등학교 선배님이시고 전 의원을 역임하신 분께서 식당주인과 안면이 잇는 사이여서
식당 한켠에 자리를 주선하여 따뜻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해주셨다.
물론 회원각자가 가지고 온 반찬에다 목일산악회에서 제공한 점심밥과 김치찌게에다가 점심식사를 하니 얼었던 온몸이
다 녹는것 같았다.
♣ 선자령으로 등산갔던 목일산악회 전회원들이 무사히 도착하자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은 건배제의를 하셨다.
그래서 맛잇는 점심과 소주 맥주등을 마셨다.
♣ 건배제의 용어중 새로운 것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년말 송년회 술자리에 갔드니 미국 대통령 "오바마"라고 외치시대요.ㅋ
오........오늘
바........바라는 것을
마........마음껏!
#서울로 귀경
♣ 대관령마을휴게소에서 따뜻한 김치찌게에 맛있게 점심과 술을 마시고 나니 오후2시반이였다.
강원도길은 겨울철에는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일찍 서울로 귀경하자고 하여 오후2시반에 서울로 출발하였다.
♣ 우리는 버스에 타고 1시간정도를 편안히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영동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하자 동백관광버스의
정요섭기사님은 문박IC에서나와서 국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 동백관광버스는 신나게 달리고 버스안은 등산에 지친 회원들이 여기저기서 코를 골면서 잠을 자고 있는데 나는 잠에서 껬다.
그래서 창밖의 경치를 보며 있는데.....
갑자기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 수화를 하기 시작했다.
산악회 회장을 할려면 수화도 하고 별걸 다하는가보다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은 수화를 계속하였다.
그러자 뒤에 있는 남자회원 몇분이 버스앞에 있는 박순주회장쪽으로 가고 버스가 소리없이 멈추어 섰다.
버스를 둘러보니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어떤분은 많이 피곤하셨는지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주무시고 계셨다.
버스가 소리없이 멈추자 앞으로 간 남자회원들이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회장님이 수화를 한 것은 물 버리고 싶은 분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고 그 수화를 알아들은 분들은
버스가 멈추자 조용히 내려서 물을 버리고 오시는 것이였다.
♣ 급한 남자회원들을 배려한 버스는 한참을 달려서 무내기휴게소라는 곳에 정차하여 여성회원들을 배려하고 또 다시 버스는
달리고 달려서 다시 영동고속도로 여주IC에 들어섰다.
♣ 조금 막히기는 했지만 휴일 귀경치고는 그런대로 버스는 잘 달렸다.
♣ 등산후 1시간이상 잠을 잤던 회원들이 잠에서 깨자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목일산악회 신선주총무님은 사회를 보시면서 선착순으로 12분에게는 선물을 주셨다.
겨울철에 운전할때 무릅에 덮는 담요,핸드폰용 순금돼지,가계부적는 볼펜등을 노래를 부른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 나는 많은 사람들앞에 나서면 울렁증이 있어서 가급적 노래나 마이크 잡는 일은 기피한다.
모든것을 나는 글로써 말을하는 편이다.
글은 하루종일 써도 마치 누에가 실을 뽑듯이 술술 끊임없이 잘 나온다.
♣ 어느듯 출발한지 4시간정도가 되니 거의 서울에 도착할즈음에 목일산악회 신선주총무님이 사회를 보면서 박순주회장님의
목일산악회 년말송년회 인사말씀과 2010년 1월 9일~11일(2박3일)동안 제주도 신년산행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 제주도 신년 산행에 대하여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 등산일정은 20010년 1월 9일(토요일)~1월 11일(월요일) ......2박 3일
- 출발은 2010년 1월 9일(토요일) 오전 9시
- 출발장소는 목동아파트 14단지 A상가앞
- 인원은 목일산악회와 목동산악회 회원중 희망자 45명
- 소요비용은 1인당 194,000원
- 개인별 준비물은 등산장비,신분증,개인용품
- 목적지는 제주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
- 목적은 한라산 백록담 등산및 제주자치도 관광의 친목모임
- 세부적인 일정을 보면
. 첫째날(1월 9일 토요일)
09:00 .........목동아파트 14단지에서 동백관광을 타고 출발
15:00..........목포항 도착 유람선을 타고 출발
19:00..........유람선을 타고 제주항 도착
19:30..........버스타고 라자호텔도착
20:00..........저녁식사후 자유시간
. 둘째날(1월 10일 일요일)
06:00 .........한라산 백록담 등산(왕복 약 20km)
12:00..........한라산 백록담정상에서 하산(13:30분 이전에 반드시 하산)
17:00..........라자호텔에 도착
17:30..........저녁식사후 자유시간
. 셋째날(1월 11일 월요일)
08:00 .........제주도 시내관광
14:00..........점심식사후 자유시간
18:00..........제주공항 비행기 탑승
19:00..........김포공항도착
20:00..........목동아파트 도착
♣ 신청은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 전화를 하면 영어로 OK!또는 NO!를 하시면 되겠습니다.ㅋ
♣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의 송년인사후 장옥선 산악대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었고 우리 동백관광버스는 목동14단지아파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 끝으로 선자령 산행을 위하여 애쓰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장옥선 산악대장님그리고 사회를 재미있게 봐주신
신선주총무님그리고 목일산악회 운영진들에게 다시한번 1년동안의 노고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안전하게 운전해주신 동백관광 정요섭기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 목일산악회 회원여러분!
2009년 1년동안 산행에서 큰 사고없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등산을 해주신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남지않은 2009년 기축년을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 경인년에는 더욱더 사업이 번창하시고
가정에는 행복과 건강과 사랑이 가득하시고 보다나은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