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칠자병
황인칠자병은 맹해차공장칠자병의 생산의 시대를 시작하였다. 칠자병은 그 후 20년간
보이차의 대표제품으로 맹해차공장의 지명도를 홍콩, 마카오, 대만, 동남아 각지에
펼쳤다.
소위 [황인]은 홍콩과 대만의 차인들이 준 명칭이다. 초기는 병차의 포장지 중앙에 황색
[차]자를 의미하였는데 시중에서 맹해공장에서 제조한 포장지에 황색[차]자를 인쇄한
병차를 [황인칠자병]으로 통칭하였다. 원인은 맹해차공장의 병차 포장은 홍색으로 인쇄
된 [홍인], [녹인](또는 [남인])이 있었기에 황인 칠자병은 차 제품 생산에서 연속성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중 차 제품 현황에 의하면 황인칠자병은 이미 [가족계열]의 통칭으로 되였다.
이 계열에는 [8중황인칠자병], [소황인칠자병], [임진배방한 녹자황인칠자병], [녹자황
인칠자병] [사과녹황인칠자병], [대황인칠자병] 등 틀린 칭호를 포함되어 각각 틀린
시기에 생산 된 [황인칠자병]을 대표하였다.
문화대혁명 후기 차엽의 생산도 점차 회복되어 1974년부터 맹해차공장은 정식으로 외주
병차를 생산했는데 황인칠자병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처음에는 수량이 적었는데 성차엽공사의 자료에 의하면 [1974년 광주교역전에서
홍콩, 마카오 및 싱가포르와 거래를 이루 어 칠자병 12.37톤을 수출했다.] 다시 말하면
3만여편의 생산량 중 [곤명간체자칠자병] 과 [중차패간체 자칠자병]도 포함 되었을 것으
로 판단된다.
오랜 시간동안 소모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수량은 적을 것이다. 1985년 맹해차공장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맹해공장의 연간산량은 150톤인데 황인, 녹인 모두 생산했지만
이익이 적어 많은 생산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획경제 년대여서 각 차공장은 생산만 하고 판매를 책임지지 않기에 내수나
수출 모두 성차엽공사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였다. 매년 성차엽공사는 곤명에서 생산
계획회의를 모집하여 각 차공장에 당해에 생산할 종류와 생산량을 정하고 각 차공장은
또 계획에 따라 생산을 하였다.
각 차공장은 차 제품을 생산하여 성차엽공사에 운반
납품하여 판매위탁을 처리한 후 공장은 더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 성차엽공
장의 주문이 없으면 그 당 시 차 제품의 판로가 없는것이다.
현재는 습관적으로 차호를 (상표, mark)로 각 종류의 맹해차공차공장 칠자병을 구분하지
만 1978년 정식으로 차호를 사용하기 전 칠자병이 맹해차공장에서 출하하기 전에는 차호
가 없었다. 현재 나무박스로 포장된 칠자병도 차호가 편제되었는데 가능하게 성차엽공사
에서 수출 전 포장 시 찍었을 것이다.
조기 황인칠자병은 차호가 없었으나 일부 황인칠자병은 배합방법이나 맛으로 판단하면
후기7542칠자병계열에 접근하기에 1978년 이후 생산된 일부 황인칠자병은7542차호를
사용했 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90년대 중기에 생산된 소위 [후기 황인7542칠자병] 은 애매한 것이다.
실제적으로 차 제품을 관찰해 보면 황인칠자병계열 배합방법은 다원화적이다.
일부는 단일 차청을 사용하고 일부는 저차와 면차로 구분되고 일부는 차청 비교적 부드
러운 것을 사용하고 일부는 비교적 거칠은 차엽을 사용하며 생산공정도 서청모차 직접
쩌서 압축 하거나 약간의 물을 뿌려 옥퇴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다원화 차 제품
을 왜 [황인칠자병]에 소속시켰는지 필자가 아래 세개 면에서 관찰할수 있다:
제1류는 포장지의 [차]자를 황색으로 인쇄한데로부터 보는것인데 이로써 황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명실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 종류의 차 제품은 다시 금형의 크기에 따라
[소황인], [대황인]으로 구분할수 있다.
소황인 칠자병은 생차 생산공정에 속하는것으로서 저장이 양호하면 상당 우질의 칠자병
이다.
제2류는 배합과 맛으로 볼수 있다. 제1류의 황인칠자병차 외에 어떤 차 제품 포장지의
[중차]자가 녹색 또는 약간 옅은 사과녹색이지만 배합과 맛에서 생차 생산공정인 소황인
칠자병과 근사한데 저장만 양호하면 인급차의 여풍을 갖고 또한 차호가 확실치 않아
황인칠자병 의 가족으로 귀속된것이다. 당시 이런 차를 취급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70
년대에 이런 차들을 수입할 때 대부분 나무박스로 포장하고 여러가지 종류의 차들이
한 박스에 포장되거나 심지어 동일한 종이통에도 두가지 차가 들어있었다. 만약 자신의
가격관을 조정하여 판단표준을 계획경제의 년대로 돌아가서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체험할수 있고 심지어 이해할수도 있을것이다.
이런 종류의 황인칠자병 중 두 종류의 차를 쉽게 인식할 수 있는데 첫 종류는 [8중황인
칠자병]인데 이 종류 차 제품의 명칭은 내비에서 인급차의 8중 내비를 사용하고 일반칠
자병 내비하단에 표기된 두줄의 글자가 없다. 그 당시 인급차의 내비를 다 사용하지
못해서 계속 사용하였다는 설도 있는데 그렇다면 명확히 맹해차공장의 칠자병일 것이다.
그러나 이 종류 차 제품이 홍콩에서 출하시기가 일부 황인칠자병보다 늦어서 상기
설법은 아직까지 보류의 태도를 갖는 것이 좋을것 싶다.
제2종류는 소위 [자세한 비법황인칠자병]인데 [자세한 비법]이라 하는 원인은 원래와
일반 칠자병의 내표와 비교해 볼 때 이 종류 차 제품의 내표의 설명문에 그림과 같이
[자세한 비법]이란 글자가 더 있어 자연히 식별방법으로 되었다. 그 외 만약 외포장지
뒤면을 살펴 볼때 차 제품의 포장이 아주 특별하고 그림과 같이 포장지를 병차 뒤면중
간에 있는 구멍에 접어넣지 않았다.
이 종류 차 제품의 출하년도에 관하여 홍콩 모 판매상 말에 의하면 70년대 중기에
나무박스로 수입했고 종이통에 포장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보류의 태도를 갖는
데 원인은 70년 대 중기 마침 문화대혁명 말기 시대환경과 의식면에서 볼 때 차엽에
[자세한 비법]이란 글을 쓸수 있겠는가?
년대문제에 관하여 진일보 자료검토를 해야 하지만 필자가 실제로 맛본결과 저장만
양호하면 차 제품의 표현은 확실히 [자세한 비법]이란 글자에 부합된다.
제3종류는 시장상업 차원에서 본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황인칠자병의 가족계열은 이미
공식적으로 조기 칠자병에 소속되어 만약 이 가족계열에만 소속되면 연도 면에서 많은
여유가 있어 다수 황인칠자병의 차품을 모두 [70년대조기] 제품으로 인정하는데
아무도 자기의 [황인가족]을 [80년대 조기]라 인정하고 10년의 가격차이 손실을 보는것
을 원치 않을것이다. 그러므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70년대 중기부터1984년 계획
경제가 끝나면서 맹해차 공장의 황인칠자병이 갑자기 사라진듯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려
웠기에 다 마셔버린것은 아니겠죠?
당신도 황인칠자병가족들의 서열을 맞추고 싶죠. 만약 모든 차품이 한 창고에 보관되고
습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경력이 있는 사부는 혹시 차품의 연도를 추측할 수 있지만
문헌자료가 아직 부족한 오늘에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상당한 난도가 있을 것이다.
그럼 차품의 품질판정은 년도로 결정해야 할것인지 아니면 차청, 생산공정, 창고저장,
개인의 경제능력과 애호를 봐야 하는가? 현재 보편적으로 년도에 따라 차품의 가격을
결정하는데 사실 검토할 가치가 있는 문제점이다.
여기서 글을 마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심사숙고 해볼것을 부탁한다.
자료 : 칠자철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