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규원
그 많은 어린 생명들이 더 이상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사랑하는 친구들도 선생님도 맹렬하게 쏟아져 들오는 바닷물 앞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250여 15~16세의 어린 영혼들이 흉맹한 맹골수도에 뒤집어져 가라앉은 여객선 세월호에 육신을 두고 떠났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상당수의 아이들이 배에서 떨어져 나와 드센 물살에 휩쓸려 깊은 먼 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이라는 점이다. 죽은 육신조차 애타게 울부짖던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한스러운 ‘실종자’로 남게 되었으니 그 아픔을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수많은 국민들과 외국 사람들조차 간절하게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지만, 이미 바다 속에 싸늘한 주검으로 산화한 그들이 살아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배가 완전히 옆으로 기울어 선실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점부터 물의 압력에 밀려 누구도 배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TV 화면에서 보았던 장면 속, 배가 완전히 전복되면서 높이 뿜어져 나오던 공기에는 어린 생명들이 마지막으로 뱉어낸 한숨과 아픔과 슬픔이 섞여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일이었다. 배가 넘어가 마지막 탈출자가 빠져나온 이후에, 22살 여승무원 박지영씨가 아이들을 구해내다가 덮치는 물살에 목숨을 잃듯, 선실에 쏟아지는 물살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다. 아이들이 믿었던 선원들은 아이들 사이를 슬금슬금 빠져나가 저희만 살겠다고 배를 버리는데, 아이들은 승무원의 방송을 믿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살에 휩쓸려 아까운 나이에 삶을 마쳤다. 아이들의 죽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른들의 욕심과 잘못된 관행, 뻔뻔한 무능이 개입되어 있었다.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선실을 늘리는 공사를 하고 몇 배의 화물을 실은 회사의 욕심. 늙어 여객선에서 퇴역한 배를 멋대로 수리해서 여객선으로 취항하도록 허가한 무서운 관행. 배가 기울어도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회사의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저희만 살겠다고 도망쳐 태연히 승객처럼 가장해 탈출한 선장이하 선원들의 비겁하고 무능함. 못된 어른들 때문에 나라의 기둥으로 자라야할 착하디착한 250여명 아이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아이들아!
배가 기울어 죽음이 밀려오는 무서운 순간에도 ‘엄마 사랑한다.’라는 말을, 그 말을 못하고 죽을까봐 문자를 보낸 착하디착한 아이들아!
아이들아! 기울어지는 선실에서 죽음이 덜미를 잡는 순간에도 승무원과 선생님의 말을 따른 너무 착한 아이들아!
아이들아! 캄캄한 선실에 갇혀 무섭게 밀려드는 차가운 바닷물에 목숨을 앗기고 너희 영혼이라도 배를 빠져 나갔느냐? 가엾은 아이들아!
아이들아! 갯가에서, 강당에서 목을 놓아 너희를 부르다 부르다가, 통곡하다 까무러치는 엄마, 아빠와 형제들을 영혼이 되어서라도 만났더냐? 아이들아!
아이들아! 너희와 함께 있다가 운이 좋아 살아나간 아이들이 너희에게 미안해 너무 괴로워하는 걸 보았느냐? 그 애들은 너희 몫까지 살아야할 무거운 짐을 진 아이들이 아니냐? 너희가 그 아이들을 달래고 용서해 주거라. 아이들아!
아이들아! 이 나라는 착한 너희가 살기에는 너무 더러운 나라인 듯하구나. 이제, 추웠던 물속을 잊고, 부끄러운 어른들의 죄도 잊고, 부디 아름다운 천상에서 너희친구들을 구하느라 자신을 희생하신 착한 선생님과 동무들과 천사가 되어 살려무나. 어여쁜 아이들아!
온 국민이 넋을 놓고 ‘구조작업’이라는 방송을 지켜보았지만 구조자는 0명이었다.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승객대피 시기를 놓친 선장과 선원들의 어이없는 판단에 300여 아까운 생명이 희생 또는 실종됐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기적은 촛불로도, 노란 리본으로도 이루어 낼 수 없다. 이제 희생자에 대한 보상은 돈 욕심에 배를 위험하게 만들고, 화물을 몇 배씩 초과 적재하게 하여 엄청난 사고를 낸 회사의 사주(社主)인 유씨네 전 재산으로 치르게 해야 옳다. 혹시라도 슬픔의 성금을 가장하여 슬그머니 뭔가를 챙기는 사이비 언론이나 단체가 있는지도 살필 일이다.
이 엄청난 사태에도 이념몰이를 즐기는 인간들은 이 일을 이념 탓으로 돌리려 했다. 정말 한심한 인간들이 연일 헛소리를 해대고, 침통한 유가족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국장, 라면을 챙겨먹는 장관, 언론이 그 일을 탓하자, ‘계란도 안 넣은 라면’이라며 두둔하던 한패거리의 말···. 금방 생존자를 찾을 것처럼 희망을 주며, 민간인 잠수부들의 접근을 막던 당국자들의 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을 끌어 유족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려 얻은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 국민들 모두가 세월호처럼 무게중심을 높여 엄청난 화물을 싣고 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이상한 선장과 선원들을 믿고 가는 것은 아닌지···.도무지 알 수 있는 일이 없고, 짐작조차 어렵다.
아이들아!
너희는 이제 영혼으로 남았으니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알아냈을 것이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밝혀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 사랑과 진실의 힘을 일러주어 제발 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주려무나. 아이들아! 내 미어지는 마음도 받아주련? 사랑스런 아이들아! (14.04.28)
첫댓글 모든 관계자가 선생님의 글을 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유가족이 보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윤동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