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디옹(통용: 셀린 디온, 프랑스어: Céline Dion, CC, OQ, 1968년 3월 30일~)은 캐나다 퀘벡 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사업가이다.
캐나다 퀘벡 주 사를마뉴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시 매니저이자 가수였던 르네 안젤릴의 도움으로 프랑스어 음반을 녹음하게 되고, 곧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1990년, 그녀는 프랑스를 벗어나 북미, 나아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어했으며 그에 따라 영어 앨범 《Unison》을 발매한다.[2] 이후 1997년작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디온은 가수로서 성공을 거두기 전인 1982년 야마하 월드 송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받았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도 우승을 하며 1980년대에도 이미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었다.[3] 1980년대 초 프랑스어 앨범의 발매에 이어 1986년 CBS 레코드 캐나다(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1990년대 안젤릴의 도움으로 그녀는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고, 에픽 레코드와 계약한 후 프랑스어 앨범과 영어 앨범을 발매하며 세계적인 여성 가수가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매니저로 함께한 26세 연상의 르네 안젤릴과 1994년에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때 르네 안젤릴이 후두암 진단을 받아 가족과 함께하는 휴식기를 가졌다. 2002년부터 활동을 재개하였다.
디온은 뛰어난 가창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미국에서는 '3대 디바'로도 불린다. 영국에서 싱글을 200만 장 이상 판매한 기록을 보유한 유일한 여성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2004년 이후 그녀의 앨범 판매량은 1억 7천만장이 넘었으며, 2004년 월드 뮤직 어워드에서 초파드 다이아몬드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디온은 세계적으로 2억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1970년 3월 27일 ~ )는 미국의 팝/알앤비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및 배우이다. 캐리는 콜롬비아 레코드의 경영진 토미 모톨라에 의해 1990년 데뷔하였으며, 데뷔 음반의 싱글 4개가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하는 기록을 남긴다. 1993년에는 모톨라와 사랑에빠져 결혼식을 올리고 콜롬비아 레코드 소속으로 미국내에서 15개의 1위 히트를 기록하였다.
1997년 캐리는 성공을 위해 힙합 장르를 시도하였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에따라 2001년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나오게된다. 이후 레이블사를 찾았고 버진 레코드와 8천만 달러의 계약을 했다. 이후 영화 사운드트랙 Glitter를 발매하였지만, 민망할정도로 성적이 안좋았다. 2002년에는 아일랜드 레코드와 새 계약을 체결하고 이후 큰 성과는 없었지만, 2005년 발매되는 새 정규 음반 The Emancipation of Mimi는 머라이어 캐리의 명성을 다시 찾아준 음반이기도하다.[1][2] 특히 리드 싱글이였던 "We Belong Together"는 캐리의 경력 중 가장 성공적인 싱글 중 하나로 기록되며, 그 해 전 세계 차트를 휩쓸었다. 또한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뿐만아니라 빌보드 10년 결산차트에서도 1위를 했다.
캐리는 데뷔한지 20년에 이르며, 아일랜드 레코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총 2억장의 음반, 싱글, 비디오 판매고를 올리고있다.[3][4] 2000년에는 월드 뮤직 어워드 에서 1990년대 사상 최다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여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5][6]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에 따르며면 캐리는 6천 3백만 장의 출하량으로 세 번째로 많이 판 여자 가수이다. 2008년을 기준으로 캐리는 지금까지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18개나 보유해 솔로 가수로는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있다.[7][8] 또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50년간 성공적인 차트 기록을 올린 아티스트들의 기록을 분석해 순위를 발표했고, 머라이어 캐리는 6위에 올랐다. [9] 상업적인 성과 이외에도 그래미 상에서 총 5번의 수상을 하였으며, Whistle Register같은 특이한 창법을 보유하고 있는 캐리는 다섯 옥타브의 성역을 갖고 있으며 멜리스마 및 다른 성법 치레를 많이 사용한다.
휘트니 휴스턴 [Whitney Houston]1963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났다. 소울·가스펠 가수인 어머니 시시 휴스턴(Cissy Houston)과 알앤비 가수인 숙모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0대 시절에는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알앤비·디스코 그룹 마이클 제이거 밴드(The Michael Zager Band)의 <라이프즈 어 파티(Life's A Party)>(1978)에 백 보컬로 참여하며 음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팝 밴드 머티리얼(Material)의 <메모리스(Memories)>(1982), 미국 싱어송라이터 폴 자바라(Paul Jabara)의 <이터널 러브(Eternal Love)>(1983) 등에 보컬로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1984년 미국 시트콤 《김미 어 브레이크!(Gimme A Break!)》의 ‘케이티스 칼리지(Katie's College)’ 편에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드라마와 시트콤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1985년 데뷔앨범 《휘트니 휴스턴》을 발표했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1985),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1986),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후 러브스 미)(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1987),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Didn't We Almost Have It All)>(1987)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에는 가수 활동과 연기 활동을 병행했다. 믹 잭슨(Mick Jackson) 감독의 1992년 영화 《보디가드》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포레스트 휘테커(Forest Whitaker) 감독의 1995년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 페니 마셜(Penny Marshall) 감독의 1996년 영화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 경력을 쌓았다. 《보디가드》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1992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와 <아임 에브리 우먼(I'm Every Woman)>(1993년 4위), 《사랑을 기다리며》의 <엑스헤일 (슙 슙)(Exhale (Shoop Shoop))>(1995년 1위), 《프리처스 와이프》의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1997년 15위) 등 사운드트랙의 음악으로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92년 미국 알앤비 가수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결혼했다.
2000년대 들어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으며 마약에 중독됐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나왔다. 2002년 앨범 《저스트 휘트니…(Just Whitney...)》로 활동을 지속했지만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저조했다. 2007년 바비 브라운과 이혼했고 비슷한 시기 그동안 부인해 왔던 마약 복용에 대해 시인했다. 2009년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를 발표하며 재기했으나 2012년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휘트니 휴스턴은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수많은 후배 가수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 알앤비 가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Celine Dion)과 함께 ‘1990년대 최고의 여성 보컬 3인’으로 여겨진다. 알앤비, 어덜트 컨템퍼러리, 댄스음악, 가스펠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함으로써 팝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다. 매체로부터 ‘퍼스트레이디 오브 알앤비(First Lady Of R&B)’, ‘퀸 오브 팝 뮤직(Queen Of Pop Music)’ 등의 칭호를 들었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회 연속 1위 기록을 보유한 최초의 가수이기도 하다.
대표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1985)과 《휘트니》(1987) 등이 있다. 대표곡으로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 미국 재즈·알앤비 가수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 미국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미국 싱어송라이터 샤카 칸(Chaka Kha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임 에브리 우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