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케이트 칼럼
왜 등단 장사인가?
수필가 /이승훈 월간문학저널 편집장
얼마 전 유명 원로시인을 취재하러 갔을 때였다.
시인은 우리가 건네준 문예지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신인 시인을 몇 명이나 뽑느냐고 물었다.
월간이라 매월 평균 2명 정도는 될 것이라며 얼버무리자 ‘그러면 1년 동안 20명이 넘는 시인을 등단시키네요’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인들을 너무 많이 뽑는다는 의중이다. 각 언론사의 신춘문예나 이름 있는 문예지가 서너 명의 신인당선자를 내는 것에 비해서 20명은 상당히 많은 수다. 이번 10월처럼 당선작이 없어 당선자를 내지 않은 경우가 그 원로시인을 만났을 때 있었더라면 조금은 더 당당했을까.
수필가인 지인이 사무실에 들러 창간 10년이 넘은 모 문예지 9월호를 건네주었다.
나는 우선 신인당선자를 몇 명이나 뽑았는지가 궁금해 찾아보았다. 시 9명, 수필 4명해서 13명이다.
오늘 인터넷을 통해 또 다른 문예지 10월 신인당선자를 보게 되었는데 시 부문 12명, 수필 부문 1명이다.
이들 종합문예지 역시 월간이며 매월 비슷한 수의 당선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신인당선자를 많이 내면 마치 권위 있고 인기 있는 문예지라도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노릇이고, 문단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지도급 인사들이 이런 문예지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예지를 월간으로 이끌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어찌 이해하지 못하랴.
문예지를 월간으로 발행하면 비용이 얼마나 될까하여 셈을 해보았다. 그런데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있었다.
부수를 정하는 일과 페이지 수 그리고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문예지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산출하기 편리하게 1천부와 300쪽을 기준으로 하고 인건비는 월 1백만 원(발행인 포함 최소 4명), 임대료는 필자의 사무실에 준하여 전체를 뽑아보니 대략 1천2백만 원 정도가 나왔다. 물론 2천부 이상 발행하면 이를 훨씬 웃돈다.
이 비용의 구성요소는 편집비, 필름출력비와 종이값, 표지 및 컬러 화보 인쇄비(컬러화보가 없으면 그 비용은 절감된다)와 내지 인쇄비, 제본비, 서점과 정기구독자 배송비, 사무실임대료 및 운영비와 인건비 등등이다.
매월 1천부의 문예지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행하면 1천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허리띠를 바싹 졸라매야 한다.
그러면 문예지는 무엇으로 운영되는가 하는, 조심스럽고 민감한 문제가 떠오른다. 어차피 관행처럼 굳어져 왔으니 드러내도 흠될 것은 없다.
모든 문예지가 그런 것은 아니나 가장 먼저 문예지 수입으로 들어오는 부분은 신인당선자의 문예지 구입이다. 문예지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고 그 발전을 위해 신인당선자가 1백부씩을 획일적으로 구입해준다면 그처럼 고마운 일은 없다.
문예지 입장이 위의 견적과 유사하다면 솔직히 1백부 구입은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가. 그러나 당선자 전부가 1백부 구입이란 단언컨대 없다.
문예지 구입을 부탁할 수 없는 특수상황을 지닌 경우도 있고, 선정을 해놓고 보면 개개인의 사정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문예지 사정을 모르는 예비문인들이 등단하면서 겪는 혼란이며 필자 역시 등단하면서 한동안 부정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문예지의 질과 이미지 그리고 기존 회원들의 명예를 고려, 출중한 신인 두 서너 명만 받아들였을 때 그 괴리의 고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신인당선자의 문예지 구입에 의존하여 문예지를 이끈다면 한 달 새 몇 백만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직원들의 봉급이야 제대로 챙길 수 있겠는가.
이런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매월 작품집을 최소한 너더댓 권쯤은 내어야 자금융통이라도 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문예지가 10년 이상 되고 그 등단 회원들이 수백 명에 이르러, 회원 거의가 자비로 등단매체를 통해 작품집을 내게 되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싶다.
정기구독료나 문예지 판매대금이 수익으로 책정되지만 정기구독료가 총액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독자들이 서점에서 문예지를 사보는 것도 미미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종 행사를 치르면서 들어가는 비용까지 겹쳐 문예지는 늘 허덕이게 마련이고 신인당선자를 많이 내야 하는 필요악이 존재한다.
비용을 대폭 줄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계간으로 발간하면서 사무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집을 문예지 주소로 쓰기 뭐하면 사무실 주소만 빌려쓰면서 발행인 혼자 꾸려나가면 된다. 편집 역시 매킨토시 대신 아이비엠을 사용하고 인쇄도 필름대신 마스터나 디지털 인쇄방식으로 전환, 발행부수를 줄이고 서점에도 배포를 안 하면 비용은 훨씬 줄어든다.
그러나 아무리 적은 수일지라도 일반 독자가 배제된 채 등단회원들만의 문예지라면 문예지의 의미와 목적은 퇴색할 수밖에 없고 문인들의 작품발표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명예를 지키자니 허리가 휘고 신인당선자를 많이 내자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문예지 사정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매월 한 장르에서 10 여명에 가까운 신인을 뽑는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결코 아니다. 등단장사라는 비난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고 당선자 또한 어딘지 꺼림칙할 것이다.
실력이 출중하다면야 매월 10명을 뽑든 20명을 뽑든 무슨 문제가 있으랴.
신인당선자를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로 문예지의 질을 재단하는 현실이 우리나라 문단이고 보면 신인당선자 수를 조절하는 일은 고뇌에 가깝다.
출처: 뉴스와이어 신디케이트
(이글은 2007년에 작성된 것임 - 편집자 주)
첫댓글 개동님!
허허허허... 그렇군요... 저는 이승훈씨의 근본적 취지의 내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헛웃음만 짓습니다.
요는, "관행처럼 굳어져 왔으니 드러내도 흠될 것은 없다."는 대목에서 담배 한 대 꼬나뭅니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입니다. 정녕 남들은 그리해도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맙시다! 명절 잘 보내십시오... ^^*
우리는 이제까지 두 자릿수 신인을 뽑은 적이 없네. 이번(27회)에 역대 최대인 7명을 선정했는데 이것 때문에 편집회의에서 논쟁이 있었다네. 앞으로도 두 자릿수 신인을 뽑지는 않을걸세. 그러나 "관행처럼 굳어져 왔으니..."에 대해서는 나는 공감한다네. 대체로 쉬쉬하고 있는데 너무 솔직하지 않은가? 우리도 인건비까지 나가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걸세. 그래서 우리는 인건비를 한푼도 지출하지 않네. 그냥 봉사인거지. 운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니 내부의 고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지.당선자들에게 조금 받기는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니 나로서는 떳떳하다는 생각도 든다네. 오해 없기를.
개동님!
오해야 있을리 만무하지요... 염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우리는 당선자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네. 장사는 이윤이 있어야 하는데 최근엔 신인을 뽑는 과정에서 적자가 많이 발생했네. 누구 하나 이를 심각히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자네처럼 선비같은 이야기나 하고 있지.
한푼의 수당도 받지 않고 밤을 새는 편집진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기 바라네.
책을 하나 만들어 내는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심신의 고통이 따르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화가 나는군.
개동님!
화도 푸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