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夫 이자익과 주인 조덕삼 (탐방기) 김제시 금산면에 위치한 금산 교회는 한국 유일의 초기 기독교 문화재로
지정된 ㄱ자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닌 예배당이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초대교인 가운데 조덕삼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그 지방 지주(地主)로서 마방을 운영하였으며, 금광을 갖고 있는 그 지방의 제일 부자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온 ‘레위스 B 테이트’ 선교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조덕삼씨 집에서 하룻밤씩 묵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조덕삼씨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 사랑채에서 시작된 예배가 오늘의 금산교회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금산 ㄱ자교회 (작은 사진은 금산교회 전경)
금산교회에서는 한가지 아름다운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조덕삼 댁에는 마부(馬夫)로 일하고 있던 경상도 출신 한 청년이 있었는데 주인 조덕삼씨의 권고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장로교단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신 그 유명한 이자익이라는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금산교회 교인수가 70명,
200명으로 늘어나자 장로 한 명을 피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인 조덕삼 집사와 마부 이자익 집사가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결과는 이자익집사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술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조덕삼 집사가 앞으로 나가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는 이자익 장로님을 모시고 금산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술렁이던 교인들은 평정을 찾았습니다.
그 후 집에서는 조덕삼 집사가 주인이고 이자익 장로가 머슴이었지만 교회에서는 엄격하게 장로와 집사의 직분대로 한결 같이 두 분이 충성을 다 했으며후에 교회가 부흥되어 조덕삼 집사도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자익 장로를 곁에서 지켜보아 그의 총명함을 익히 알고 있던
조덕삼 장로는 이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보냅니다.
물론 모든 뒷바라지를 다했습니다.
이 장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자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를 다시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서로를 섬기며
충성스럽게 봉사를 했습니다.
이자익목사는 장로교회가 분립하기 전 1924년에 13회 총회장이 되었고 이어 1947년과 1948년 연이어 총회장에 추대되었습니다.
조덕삼장로의 장남 조영호 장로가 2대 장로로 그리고 손자 조세형 장로가 3대 장로로 지금도 금산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조세형 장로는 언론인 출신으로서 국회의원, 주일대사를 역임했으며 3대째 장로로 금산교회를 섬기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겸손과 섬김 못지않게 현재 담임목사를 지극히 섬기며 충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 4월 19일, 대전신학대학교 설립자이신 이자익목사 기념현판식과 이자익목사 전기 출판식이 있었습니다. 이 날 행사에 조세형 장로가 축사를 하게 되었고 인사말은 이자익 목사의 손자인 이규완 장로가 하게 되었습니다. 이규완장로는 대전 제일교회 장로로 한국 고분자화학(카이스트대학) 1인자라고 합니다.
인사말을 하러 나온 이규완 장로가 갑자기 조세형 장로 앞으로 나아가 허리를 굽혀 큰 절을 하면서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났습니다. 만약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나지 못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