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신을 두려워하기로 마음먹던 때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가 지옥에 가게 될 거라고 신이 말했을 때였다.
아,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말한 건 신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서 그렇게 말했다.
당시 나는 여섯 살쯤 되었다. 자신에게 약간의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던 우리 어머니는 부엌 식탁에서 당신의 친구분에게 “카드를 읽어주고”계셨다. 그 당시 어머니에게는 소위 말하는 점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흔히 쓰는 카드패를 읽어서 그렇게 해주곤 하셨다. “그녀는 잘 맞춰.”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고, 그 소문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그래서 그날도 어머니는 찾아온 사람에게 카드를 읽어주고 있었는데, 그때 이모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우리집에 들렀다. 내가 기억하기로 일단 노크는 했지만 주저 없이 집 뒷문을 열고 들어서던 이모는 자기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대단히 불쾌한 듯했다. 어머니는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일을 하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힌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색한 몸짓으로 친구분에게 이모를 소개시켜주고 난 어머니는 서둘러 카드를 긁어모아 앞치마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모도 어머니도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이모는 뒷마당에서 놀 요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뒷문으로 나가는 자신을 따라나서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너네 엄마는 카드패를 가지고 저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미래의 운명을 말해줘선 안 돼. 하나님한테 벌받아.”
내게는 이모의 이야기가 전혀 뜻밖이었다.
“왜요?”
“그렇게 하는 건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거든” -내 귀에 전해져온 그 특별한 어감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무시무시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너네 엄마를 곧장 지옥으로 보내실 거야” 이모는 마치 내일은 비가 오겠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이모의 차가 차도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하나님을 그토록 화나게 했다는 사실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 순간 신에 대한 두려움은 내 마음속 깊이 심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창조주라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엄마를, 내 삶에서 가장 자애로운 피조물인 우리 엄마를 영원한 저주로 벌할 수가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 점이 알고 싶었던 여섯 살짜리 어린 마음은 여섯 살짜리다운 결론에 이르렀다. 만일 하나님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성인(聖人)이라고 여기는 우리 엄마에게 그런 짓을 할 만큼 잔인하다면,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기는 아주 쉬운 -우리 아버지를 화나게 만들기보다- 일인 게 틀림없으니, 그의 앞에서는 언행을 삼가는 게 좋겠다는 식의 결론에.
나는 꽤 오랜 세월 신을 두려워했다. 세상이 계속해서 내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교리문답에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아기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이 교리는 2학년짜리 애들에게조차 워낙 불합리하게 여겨졌기에, 우리는“수녀님, 그러면 부모가 아기에게 세례를 받게 하려고 차를 타고 가다가 가족 모두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으면요? 그래도 그 아기는 자기 부모와 함께 천국으로 갈 수 없는 건가요?"같이 수녀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우리 수녀님은 틀림없이‘구식학교’출신이었을 게다. 그녀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무겁게 한숨을 내쉬곤 했지만, 어김없이“그래, 그러지 못할 거야”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녀에게 교리는 말 그대로 교리였다. 예외는 없었다.
“그럼 아기는 어디로 가게 되나요? 지옥에 가나요? 아니면 연옥에 가나요?" 같은 반 아이 한 명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으로 아홉 살이면“지옥”이 뭔지 충분히 알 나이다.)
“아기는 지옥에도 연옥에도 가지 않아. 그 아기는 고성소limbo에 가게 될 거야”
고성소(古聖所)?
수녀의 설명에 따르면, 고성소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없지만, 세례를 받아 참된 유일 신앙을 갖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과 아기들이 보내지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신을 만날 수는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것이 내가 자라면서 함께한 신이다. 이 모든 것을 내가 꾸며내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많은 종교들이 신에 대한 두려움을 일궈내고 있으며, 나아가 그것을 고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고무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겠다. 만일 내가 고성소 정도로 겁먹었다고 여긴다면, 세상의 종말에 대한 다음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 기다려주기 바란다.
50년대 초반의 어느 시점에선가 나는‘파티마Fatima의 아이들’이야기를 들었다. 파티마는 포르투칼 중부 리스본 북쪽에 위치한 마을인데, 이 마을에 사는 어린 여자애 한 명과 그애의 두 사촌들 앞에 성모 마리아가 몇번 나타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아이들은 성모 마리아가 세상에 보내는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그 편지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 교황에게 전해졌다. 그 편지를 개봉하여 읽고 난 교황은 필요하다면 후세에 그 메시지를 공개하겠노라고 하면서 편지를 다시 밀봉해 버렸다.
교황은 이 편지를 읽고 나서 사흘 내내 울었다고 하는데, 그 편지에는 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게 실망했는지와, 만일 우리가 이 마지막 경고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우리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벌할지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끝장날 것이고, 통곡과 저주와 끔찍한 고통이 온 세상을 뒤덮게 될 터였다.
우리는 교리문답 시간에 신은 너무나 화가 나서 당장 그 자리에서 벌을 내리려 했지만, 성모의 간청으로 마지막으로 이번 한번만 더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로 자비를 베풀었다고 들었다.
이‘파티마의 아이들’이야기는 내 가슴을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그게 사실인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신부와 수녀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틀림없이 사실일 거라고 대꾸했다. 초조하고 불안해진 우리 반 아이들은 수녀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지 너도나도 물어댔다.
“미사에 날마다 꼬박꼬박 참석하고, 밤에도 기도문 외는 것을 잊지 말고, 가능하면 자주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드리렴. 그리고 매주 한번씩 고해를 하고 속죄를 해서, 너희가 죄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로 너희의 고통을 신에게 바치도록 해. 그리고 성체를 받고,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통회의 기도를 하렴. 자는 동안에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천국에서 성인들과 함께할 수 있게 말이야.”
사실 다음날 아침까지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게 들기 시작한 것은, 어렸을 때 잠자리 기도문을 배우고 나서였다…
이제 내 몸을 잠자리에 뉘이려 하니
주께서 내 영혼을 지켜주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자는 동안에 죽더라도
주께서 내 영혼을 데려가주시기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2, 3주 동안 나는 잠자는 것이 겁났다. 나는 밤마다 울었지만, 아무도 뭐가 잘못돼서 그런지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내게는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거나 할 때면 -이따금은 식료품 가게에 갈 때조차도- 아내 낸시에게 말하곤 한다. “만일 내가 못 돌아오더라도‘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만은 남겨두고 싶소" 이제는 이 말이 우리 사이의 우스갯소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남아 있다.
내가 그 다음으로 신에 대한 두려움과 만난 것은 열세 살 때였다. 길 건너편 집에 살면서 내 베이비시터 역할을 해주던 프랭키 슐츠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자기 결혼식에서 들러리로 서 달라고 나를 -이 나를!- 초대한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수녀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결혼식은 어디서 하지? 수녀가 미심쩍어하면서 물었다.
“성 피터 교회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알려주었다.
“성 피터 교회라고? 거긴 루터파 교회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차갑게 바뀌었다.
“음, 난 잘 몰라요. 안 물어봤거든요. 내 생각엔"
“거긴 루터파 교회야. 그러니 너는 거기 가선 안 돼"
“왜요?"
“그건 금지되어 있어.”
그녀가 최종 결론을 내리는 듯한 말투로 선언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요?”
그녀는 내가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감춰두었던 무한한 인내라는 내면 자원을 끌어내는 것이 분명한 얼굴로 눈을 두어 번 깜박거리더니, 미소까지 지으면서 설명했다.
“얘야, 하나님은 네가 이교도 교회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단다. 그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믿음이 달라. 그래서 가톨릭 교회가 아닌 교회에 가는 것은 죄란다. 네 친구 프랭키가 그런 곳에서 결혼하다니 유감이구나. 하나님은 그 결혼을 축성하지 않으실 거야.”
“그래도 어쨌든 제가 그 결혼식 들러리를 선다면요?" 나는 그녀를 인내의 한계점 너머로 몰아부치고 있었다.
“글쎄, 그러면 네게 화(禍)가 닥칠 거야.”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말했다.
휘유, 어떻게 해볼 수가 없군. 하나님은 정말 엄하신 분이야. 한 걸움도 선 밖으로 나가선 안 되는군.
그런데 나는 선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런 식의 저항행동이 고상한 도덕적 근거에서 나온 건 전혀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야 나로서도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고 내 하얀 스포츠 코트를(팻분이 노래할 때처럼 분홍 카네이션까지 꽂아서) 입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수녀가 말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들러리로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얼마나 겁이 났던지! 내가 과장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나는 그날 하루종일 하나님이 나를 쳐서 넘어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미리 경고 받았던 개신교식 거짓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목사의 설교는 교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울음을 터트릴 만큼 따뜻하고 멋진 내용이어서, 결국에 가서는 나도 훌쩍거리며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하나님에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그때까지 들어본 적이 있는 반성의 기도란 기도는 모두 암송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잠자기가 무서웠던 나는“그리하여 내가 잠든 동안에 죽더라도, 주께서 내 영혼을 데려가주시기를”이라는 기도문을 끝없이 되뇌면서 여러 시간 동안 뜬눈으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하는 건 -사실 이것 말고도 훨씬 더 많지만- 한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나는 여러분에게 신에 대한 내 두려움이 얼마나 실제적이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그것이 내 경우에만 특별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말했듯이, 비단 로마 가톨릭만이 주님 앞에 겁먹은 자세로 서 있는 종교는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 절반이, 자신들이 선하지 않으면“자신들에게 화(禍)를 내릴”신을 믿고 있다. 많은 종교들의 경우, 신도들의 가슴에 두려움을 심어넣는 건 대체로 근본주의자들이다. 이건 할 수 없어, 저건 해선 안 돼, 그만둬, 그러지 않으면 신이 널 벌하실 거야. 여기서 말 하는 건‘너희는 살인하지 말라’같은 주요 계명들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금요일에 고기를 먹거나(하지만 신은 이 문제에 대해 마음을 바꾸셨다), 일주일 중 어떤 날이라도 돼지고기를 먹거나, 이혼을 하거나 하면 화를 내는 신이다. 자기 여자의 얼굴을 가리개로 가리지 않거나, 평생 한번도 성지에 찾아가지 않거나, 날마다 5분씩 하던 일을 멈추고 깔개를 펴서 그 위에 꿇어 엎드리지 않거나, 사원에서 결혼하지 않거나, 고해하러 가지 않거나,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는 신 말이다.
우리는 신에게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딱 하나 문제는 워낙 많다 보니 규칙을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고, 따라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모든 사람의 규칙이 다 옳다는 것이다. 혹은 사람들은 그들이 다 옳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선택하고 알아볼 수 있을까? 거의 어떤 잘못도 용납하는 일이 없는 신의 측면을 생각하면, 이건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도 이건 신을 믿는 사람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