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우는 별밤에 내가 있다
강동규 님 ( 함안문인협회 회원, 문학21 등단, 삼칠농협 근무)
여름 별밤 하늘을 쳐다보다가 정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임을 누구나 쉽게 알고 있다. 그 소리에 익숙하여 쉽게 무관심하지만 그 속에는 귀뚜라미의 우는 멋이 사는 멋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가을이 오기도 전에 요즈음 부쩍 우는 소리가 긴요하게 들린다. 물론 그 소리가 달갑지 않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보름달 풍요로울적 우는 소리보다 초승달 때 우는 소리가 더 애절함을 느끼게하는 것이 아마도 귀뚜라미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또한 낮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없는 것을 보면 제 나름대로 귀뚜라미는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 같다.
나뭇가지에 붙어 울어대는 알뜰한 매미소리도 소리로서는 좋을까 싶어도 귀뚜라미 소리 보다는 못할 것 같다. 밤새껏 은은한 향기나는 소리로 님 그리워 우는 구슬픈 소리로 울어대는 귀뚜라미소리가 여름밤의 멋쟁이다. 그래서 귀뚜라미 합창들이 아우성하는 소리로 좋을 수 밖에 없다. 사람마다 개성적인 목소리가 있듯이 귀뚜라미들도 소리가 각양각색이다. 재잘거리는 새소리와도 화음이 다르고 음정이 달라도 새로운 번식을 위한 그들만의 소리인 것이다.
얼마 전 여름 보내는 매미우는 소리가 소음이 되어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었다고 적어 놓은 한 일간지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정말 그럴까 싶다. 나 자신을 스스로 의심해하는 자책을 가져야하나 싶다. 목석한 사람들 속에 나만은 진정 자연의 청아함을 인공적인 소음소리에 덧붙여서는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내심 내세우고 싶다.
어느새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나는 시간이다. 계절 앞에는 늘 선두에 피는 꽃이 있고, 노래가 있고, 눈보라, 얼음이 어는 시기가 있는 것이 자연이 보내어 온 선물임을 안다. 귀뚜라미처럼 울음소리를 선사하는 보배로움도 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계절의 변화 앞에 늘 새롭고 참신함을 아는 삶을 기대해 보는 묘미가 재미가 있다. 그 작은 기다림이 오고 가고 하는 연속적인 되풀이 속에 사는 인생이 있기에 늘 변화하고 싶고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새 옷도 한 벌 사 입고 예전에 입어 온 옷도 다시 입어보고 싫으면 버리고 하는 그 모든 변화들이 계절이 가져다주는 새로움의 흔적일 것이다.
창밖에서 바람결을 따라 실렁거리며 불어오는 가을바람 속에 가을 냄새가 난다. 불어오는 한 여름밤의 눅눅한 기온이 차가워진다. 더 높이 청아하게 청순하게 지어내는 소리들이 더 유랑하다. 창가에서 애매하게 들어보는 귀뚜라미의 연주소리보다 마당가 나서서 듣는 소리가 구애하고 유혹하는 참다운 울음소리가 더 좋은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덩달아 이름모를 풀벌레들은 날갯짓을 돋보이며 불빛을 산란시키며 여운이 깃든 목소리로 내 작은 기다림까지 애써서 배웅하는지 정겨울 뿐이다.
여름밤 하늘은 유난히 맑고 깊다. 저 먼 산맥 경계선이 더 뚜렷이 감싸고 있는 것이 여름밤이다. 저 멀리 발아래 여울에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밀려와 눈과 귀를 호흡한다. 이 밤이 별 밤이다. 때때로 반딧불은 반짝이며 더 어두운 야경 속으로 야간 비행을 한다.
어릴 적 그리운 시절이 있었다면 순수하고 소박한 낭만이 있다. 비록 배는 고팠지만 마음만은 더 부러울 게 없는 것이 시골이다. 이 마당가 멍석을 펴고 두 팔을 깍지 끼고 누워 하늘을 보는 게 하나의 체험이고 놀이이다. 무수한 별무리들이 제각각 반짝인 그 모습을 보고 동경을 동심으로 엮어보는 것이다.
때때로 보아 온 별똥별은 하늘을 가로질러 산 너머 남쪽 그 어느 곳으로 고속비행을 하며 추락한 모습들, 유성이 떨어진 이름모를 그곳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고 싶은 먼 미지의 세상이었다.
멍석에 나란히 누워 하늘의 별을 헤며 생각에 잠기고 또 잠기고 했었다. 현실에 맞지 않아도 단란한 그 꿈은 이상처럼 높기만 했다. 높이 떤 북극성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뱃사람, 길 가는 나그네의 이정표가 되고 길잡이가 되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항법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들은적이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하나가 자기 할일을 다하는 불가사의한 전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별밤 하늘의 무수한 수수께끼는 나름대로의 진귀한 아름다움이고 고적함과 더불어 선예한 무언가가 숨겨진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나의 인생 끝에 오는 저 별은 무슨 별로 남을까. 사람이 죽으면 이름모를 별이 된다고 하던데 새삼스럽다.
오늘도 여전히 그 별이 찬란히 빛나는 밤이다. 그 여름밤을 별빛과 풀벌레소리, 바람소리에 젖어가는 취향을 멀리하지 못하고 있다. 늘 동반자가 되어 있다. 여름 소리와 별과 바람, 안개와 풀벌레를 친구 삼아 살아가고 싶다. 빛나는 은하수가 더 선명하게 빛나는 게 좋고 우리도 언젠가는 여름밤 자연적 소리 속에 별무리들을 보며 꿈꾸었던 저 하늘의 어느 한 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꿈꾸며 그리웠던 나의 별은 어느 별일까. 진정 그리운 그 별은 지금도 어딘가에 빛나며 하늘에 걸려 내리고 있을 것이다. 별ㅇ은 동화속 이야기 처럼 옛날 옛적 부터 이야기 되어 전해져 오고 풀벌레 애달프게 짝사랑하는 기다림으로 내 따스한 가슴아래 잠들어 살포시 꿈꾸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