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2:17-20,
오늘은 2장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겨울이 오면 말하기를 '나는 겨울이 참 좋다. 왜냐하면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추위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주니 좋고. '봄이 오면'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좋고. 여름은 푸르른 초목과 시원한 물놀이와 풍성한 과일을 먹으니 좋고, 가을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풍성하니 좋고, 매사가 긍정적인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왜 이렇게 춥지, 그래서 말하기를 겨울은 춥고 게을러져서 싫고.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뒹글어 처량하고 쓸쓸해져서 싫고.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불고 노곤해서 싫다.'하고 매사에 '싫다', '싫다' 소리를 연발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 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여건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그래서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하고. 혼자 있게 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복음의 길이 열리면 복음을 전할 수 있어 감사하고, 다치고 고난당하고 순교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니 감사하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7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여기서‘얼굴’‘프로소폰’은 몸으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 있으나 마음은 늘 그들에게 가있고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말하지만 성도들간의 사랑은 장소나 시간에 묶이지 않아야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간의 사랑은 인간의 정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전5:3절“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영적인 교류는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아도 기도로서 영으로서 교류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영적인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17절을 보면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 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열정’‘엔 폴레 에피뒤미아’에서 ‘폴레’는 많은, 큰, 후한, 등이고 ‘에피뒤미아’는 욕망, 동경, 사모함의 의미입니다. 두 단어를 합치면 보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서 다시 만나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최대한으로 만나기를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서 믿음의 플러스가 되기도 하고 마이너스가 되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믿음의 공동체가 서로 연합하여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롬1:13절“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8절입니다. 사단은 성도들 앞에 장애물을 놓아두는 것이 그들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이 아니고 여러번 되풀이해서 너희에게 가고자 시도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막았다’는 ‘엥콥토’는 군사적 용어로서 적군이 도주할 때 적군의 도주를 중간에서 막아서 방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단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고자할 때 방해를 해서 갈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뭘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에는 사단의 방해가 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너무 싫어하여서 결사적으로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도들이 걸려 넘어져서 시험에 들고 고통스러워 할때 마귀는 춤을 춥니다. 이런 시험에서 돌파하는 일은 기도와 말씀묵상 뿐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바로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4:15절을 보면“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옆에서 마귀가 말씀을 채 가기도 한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행13:6-12절에서 8절에 보면“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마술사가 복음 전파를 방해했는데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마술사를 주목하여 보고 책망합니다. 10절“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하고 11절에 그의 눈을 어둡게 하여 맹인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사단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사탄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아야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역경과 방해에도 주님의 일을 완수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의 군사가 도시기를 축복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19-20절입니다. 사역의 대한 평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이 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 마지막 종말의 날에 주님의 심판대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인하여 ,상을 받으려고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영광이고 기쁨이라 합니다.
빌2:10절“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그 앞에 모든 무릎이 꿇게 되고, 상을 받게 되는데 그 열매가 너희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어느 날 그리스도 앞에 설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날에 바울이 소망과 기쁨이라는 것은 종말에 날에 받을 영광스러운 상을 생각할 때, 그 기쁨이 주체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또 ‘자랑의 면류관’이란 머리에 쓰는 관입니다. 의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의 자랑이고 영광이란 것을 말하며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벅찬 감격으로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3:5,6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기전에 자신의 지파나 학문이나 가문을 자랑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살았으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부터 육적인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빌3:7-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적 기준의 자랑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배설물처럼 아무 쓸데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자랑보다 주님 앞에 내세울 것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과 복음의 열매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의 열매인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영광이고 기쁨이라고 확신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13절) 모진 고난과 환란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4-16)
특히 1:3절을 보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말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신실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진정한 면류관은 성도들이 퇴보 없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가르침에 잘 따라서 성장해 줄 때 기쁨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그루미 달빛아래 박보검이라는 탈렌트의 뒷이야기를 들어 보니 인사성이 밝고 참 겸손하다, 옆 사람에게 배려심이 많고 작던지 크던지 최선을 다하는 배우다, 등등 칭찬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들으면서 참 잘컸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그의 부모님이 들으시면 정말 기쁠 것입니다.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서 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성도들을 교회로 이끌었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신앙으로 이끌어 주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자라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 일이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영광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좋은 열매를 결실하여 마지막 날에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