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래전 일이지만 동양악기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옛 이야기를 해 드립니다.
근 십년쯤 전에 엑스포 공원에서 칭기즈칸 축제가 있었는데요, 마두금을 손에 든 몽골인 사진이 나와있는 찌라시를 보고 기대에 부풀어 찾아갔습니다.
아침 일찌기 갔더니 이런! 이런! 공연은 한참 기다려야 하고 전시장 (게르)은 일부밖에 안 열었다네요. 거금 1만원을 내고 입장했는데.. (ㅜㅜ 캐안습)
그래도 일부 오픈된 전시장안에 들어갔더니 각종 전통 의상과 가재도구 등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앗! 있다! 있다! 바로 기대하던 마두금 (몽골어로 모린 후르 : Morin Khuur) 이 눈앞에 있는겁니다.
그 악기를 자세히 살펴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건 모양만 다르지 거의 완전한 바이올린 (또는 첼로) 이었습니다.
우선 몸통의 모양은 약 30Cm 사방의 사다리꼴이지만 그 구조나 재료는 거의 같아 보입니다. 바이올린처럼 비슷한 f 홀, 약간 굴곡진 앞 뒷판, 재질도 거의 유사한 (스프러스, 단풍목) 목재, 가장자리의 퍼플링, 심지어 내부의 사운드 포스트 까지 있습니다 . 게다가 매우 닮아있는 테일피스 및 엔드핀, 브릿지의 형태도 외곽이 조금 다르고 크기가 비올라보다 더 크지만 중앙에 하트문양 등 그대로 짝퉁이더군요.
사용하는 활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중간쯤 되는데 그 구조는 전혀 똑같아서 프로그, 8각형의 조임나사, 헤드 부분이 완전 닮은 꼴입니다.
원래 마두금은 앞면 재료가 양가죽으로 되었었는데 근래에 서양악기를 대부분 본뜬 것 같습니다. 사실 마두금과 바이올린은 그 조상이 같은 먼 친척지간이라 할 수 있는데, 제가 왕년에 나름대로 조사 연구해 본 바로는 그 시조가 아랍 (지금의 이라크) 지방의 "라밥" 이라는 찰현악기로 이것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는데 칭기즈칸이 이를 가져가서 형태를 바꾼것이 마두금, 해상을 타고 동남아 (인도네시아) 로 전파된 "레밥" 이 지금도 "가믈란" 음악에 사용됩니다.
또한 서쪽으로 전파되어 "르바브", "레베카", "케멘체" 등으로 불리워졌고 점차 개량되면서 "비올" 족이 탄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동양권에서도 복잡하게 전파되어 중국의 "얼후"나 일본의 "코큐" 우리나라의 해금 등으로 전래된게 아닌지....
서양악기와 다른점은 바이올린의 스크롤 대신 말의 머리 형태 (중국 같으면 용머리), 현의 재료는 활과 똑같은 말총 (활털은 몽골산이 최고랍니다), 지판이 없어 손가락으로 눌러서 음정잡는 것 등등이 다릅니다 (줄 수는 2줄)
마침 공연을 시작한다는 안내에 공연장으로 갔는데 관객은 저 혼자 뿐이더군요. 공연 순서대로 수십명이 출연하여 승마술, 서커스, 마두금 연주 등을 하였는데 1인 관객을 위해 애쓰는 걸 보니 어째 좀 뻘쭘했는디.... 특히 마두금 연주는 2곡을 하였는데 몽골 전통음악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옛 가요인 "엽전 열닷냥" 을 기가막힌 애드립을 넣어 연주하는데 기립박수를 안 할수가 없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전시장 안내인을 찾아가 서툰 영어로 마두금을 좀 만져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네들이 머무는 방 (역시 게르 천막) 에 데려가 악기의 줄을 맞추고 잠시 연주해 보고나서 나에게 건넵니다. 줄은 2줄인데 좀 특이한점은 음정이 4도 간격으로 조율되고 고 저음 줄의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또한 특이한 왼손 주법으로 손가락 끝으로 줄을 누르는 것 외에 두 줄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옆으로 밀어서 음정을 내는 방법도 있어 신기했습니다.
일단 악기를 받아들고 첼로 비슷한 자세로 몇개 음계를 파악하고 나서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를 해 보았는데 좀처럼 음정이 안맞더군요. 몽골인이 몇소절 들어보더니 미국의 유명한 곡이냐고, 나도 들어본적이 있다고 서툰 영어로 말을 붙여옵디다. (니캉 내캉 서툰 영어로 고생좀 했지요)
밖에 나오니 몽골 기념품 판매대에 마침 마두금이 중고품으로 판매되는 것이 있었는데 너무 비싸서 (45만원) 눈요기로 만족했습니다.
앞으로 종종 악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을 올릴 예정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다소 있어도 즐감하시길.....
첫댓글 역시 현악기에 깊은 관심이 오래 되셨군요. 경험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2년전에 제 학원에 몽골인 "잉히" 라는 여선생이 있었는데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