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무덤이 두 곳인 까닭
1830년 11월 2일 폴란드 바르샤바역에서 한 소년이 기차에 올랐다. 이름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사진)이었다. 그 무렵 이미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의 명성을 얻어 연주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그에게 고향에서 작은 소포가 배달됐다. 한 줌의 흙이 들어 있었는데, ‘이것은 조국 폴란드의 흙’이라 적혀 있었다.
쇼팽은 빈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행복했다. 프랑스 여류 소설가이자 사교계의 별인 조르주 상드(1804~1876)를 만나 모정과 애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객지 생활의 고독과 우울에다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쇼팽은 폐결핵으로 쿨룩거리고 있었다. 연상의 상드는 어머니처럼, 아내처럼, 간호사처럼 쇼팽을 보살폈다.
1935년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다. 뉴욕 빈민가의 야간 법정을 맡고 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 판사 앞에 누더기옷을걸친노파가 끌려 왔다.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였다. 노파는 울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사위란 놈은 딸을 버리고 도망갔고,
딸은 아파 누워 있는데, 손녀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하지만 빵 가게 주인은 비정했다.
고소 취하를 권면하는 라과디아 판사의 청을 물리치고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라과디아 재판장이 노파를 향해 이렇게 선고한다. 할머니,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벌은 받아야 합니다. 벌금 10달러를 내시거나 아니면 열흘 간 감옥에계십시오.”
선고를 내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갑자기 모자를 벗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거기에 넣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어서 이렇게 최종 판결을 내렸다.
“여러분, 여기 벌금 10달러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벌금을 완납했습니다.
나는 오늘 굶주린 손녀들에게 빵 한 조각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살고 있는 죄를 물어 이 법정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자를 법정 경찰에게 넘겼다. 그렇게 모인 돈이자그마치57달러50센트였습니다. 대공황의 불황속에서 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판사는 그중에서 벌금 10달러를 뺀 47달러 50센트를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다.다음날 아침 뉴욕타임스는 이 훈훈한 이야기를 이렇게 보도했다.
'빵을 훔쳐 손녀들을 먹이려 한 노파에게 47달러 50센트의 벌금이 전해지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게 된 빵가게 주인과 법정에 있다가 갑자기 죄인이 되어 버린 방청객, 그리고 뉴욕 경찰들까지 벌금을 물어야 했다.
현재 뉴욕 시에는 공항이 두 개 있다. 하나는 J.F.K. 공항 이고, 다른 하나는 라과디아 공항이다.
전자는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이고, 후자는 바로 피오렐로 라과디아 재판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이후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면서 맨해튼을 오늘날 맨해튼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라과디아 공항에는 그곳 주차장의 특이한 주차위치 표시에 담긴 일화(逸話)가 있다.
그곳 주차장 바닥에는 ‘Judges(법관)' 그 옆에는 ’Handicapped(장애인)'와 'Senators (상원의원)'라는 주차표시가 나란히 있다.
아무리 법관이 존경받는다는 사법국가 미국이라 지만, 그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어째서 장애인이나 상원의원보다 법관의 주차 위치가 더 좋은 곳으로 지정되었을까?
그것은 한 법률가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우러나온 인간애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훈훈했던 즉결법정을 회상하기 위해 공항 주차장의 가장 좋은 위치에 법관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
월요일 아침 온도차가 매우 심하네요 그러나 좋은 가을철
우리나라 판사라는 양반들도 미국에 이런 판사같이는 못하더라도 무엇에 매수되어 판결을 질질 끈다던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말아주기를 기도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