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쓴 범일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P 160
인간의 생물학적 감각기관으로서의 전오근과 그 감각 대상으로서의 전오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 알려진 사실들이다. 석가모니 재세시의 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육근과 육경을 십이입처로 삼는 것은 두 가지 모순이 있다.
첫째, 십이입처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우친 법인데, 전오근과 전오경을 포함한 육근과 육경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므로 굳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독창적인 자각법이라고 할 수가 없다.
둘째, 십이입처는 일체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임에도 육근과 육경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시설하시는 일체의 본질을 규명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자각하신 일체 법으로서의 십이입처는 육근과 육경을 의미하지 않고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범일스님은 십이입처를 끌고 온 근거로 앞에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잘못된 근거임을 말하리라.
첫째, 지금 그대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법이 마치 세상에 없는 법을 아신 것처럼 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은 세상에 있는 법을 아신 것이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있는 무엇을 아셨겠는가?
그것은 바로 그대가 말하는 십이입처가 아닌 세상에 본래 그대로 있는 육경과 육근, 십이처와 여기에서 촉이 발생해서 생긴 십팔계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그대는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십이처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기에 설마 부처님이 이렇게 흔한 것을 아셨을까? 라고 생각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서 그대가 말한 십이입처를 공상해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것을 바르게 아신 것뿐이다.
지금 그대의 말하는 방식을 보면 그대는 외도와 불교도의 정확한 견해의 분기점을 짐작 못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 지금 그대가 주장하는 것이 그렇게 가리키고 있다. 여러 외도의 사상이 있지만 여기서는 다 설명 할 수가 없고, 간단히 말하면 외도와 불교도의 분기점은 조물주가 있는가, 없는가와 오온 이외의 我아가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이다. 다시 말하면 십이처, 십팔계 외에 다른 무엇이 있다, 아니면 없다는 말로 정리할 수가 있다. 외도의 견해를 가진 자들은 오온을 부리며 끌고 다니는 것이 오온 밖에 있는데 그것이 참나, 진아, 자성, 아트만 등이라고 말한다. 아니면 이 말을 돌려 신이 있다, 창조한 누군가가 있다고 한다.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래된 선종의 승려들도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거듭거듭 오온 이외의 무엇을 상정한다. 육근, 육경, 십이처 이외에 또 다른 무엇을 상정하는 이들은 외도의 견해를 가진 자들에 다름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예견하시고 독립적일 수 있는 그러한 我가 없다는 것과 나아가서 오온의 안이나 밖에서조차 어떤 얻을 수 있는 요소와,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我아가 없다는 것을 아셨다. 그렇기에 다만 십이처, 십팔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有部유부는 말할 것도 없고, 識식의 自證分자증분을 주장하는 경량부나 아뢰야식을 주장하는 유식학파와 勝義승의로 있다고 주장하거나 그대와 같이 십이처를 상정하는 등을 구경에는 다 논파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가 말했듯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십이처들이 모두가 다 아는 보편적인 것이기에 설마 이렇게 흔한 것을 말씀하셨을까라고 생각하는 뒤집힌 견해를 가지면 안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십이처 이외 또 다른 무엇을 상정해서 말하면 안 된다. 이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설명하겠다. 외도들은 십이처 이외 무엇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진실은 십이처 밖에 다른 무엇이 없기에 여래께서는 십이처, 십팔계만을 설하신 것이다. 이것이 전부다. 즉 외도들과 불교학파 가운데 낮은 수준의 학파의 논사들은 장애에 가려져 이것뿐인 것을 알지 못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장애가 없기에 이것뿐인 것을 아시고 이것만을 설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십이처만을 설하신 것에 허물이 없다.
둘째, 그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십이처만으로는 일체의 본질을 규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서 그대가 지어낸 십이입처가 있어야만 일체 모두가 인식의 영역임을 완전히 설명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은 것은 앞에 일체가 안의 인식의 영역 일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그대가 한 말의 오류를 파했을 때 이 부분은 이미 파했다. 즉 그대가 말한 식의 영역이라는 말로는 일체를 설명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