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최미경
평생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나서 상실감을 극복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앓는다고 한다. 친구의 남편이 명예퇴직 후 소소한 일상을 블로그에 올린다고 하여 가끔 들어가 볼 때가 있다.
친구의 남편은 요즘 번호별로 색칠만 하면 되도록 세팅되어 나온 명화 그리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미술은 엄두를 못 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보타니컬 아트를 평생교육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를 오랫동안 간직하다 퇴직하고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이 대단히 용기 있어 보였다. 나도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를 오랫동안 간직하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자연 시간의 일이다.
자석에 붙는 것과 붙지 않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톱밥과 쉿 가루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톱밥은 아버지가 손수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며 생긴 톱밥을 모아 주셨다. 책에서 본 쇳가루는 마치 연필심을 갈아 놓은 듯했다. 연필심을 갈아서 준비물로 가지고 갔는데 둥그런 손잡이가 달린 자석에 붙지를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쇳가루를 구할 길이 없어서 가방 손잡이 끝에 달린 쇠를 칼로 긁으면 될 것 같았다. 한참 쇳가루를 모으고 있을 때 교무실에서 돌아오신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부끄러워 애써 선생님 눈을 피했다. 수업을 다 마치고 종례 시간에 나라고 지목하지 않지만, 준비물을 구하기 위해 가방 손잡이에 달린 쇠를 긁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라도 수업 준비물을 챙기려는 그 친구는 크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나는 그날부터 훌륭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몇 해 전에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제자가 학교를 졸업하고 어린이집에 취직했다며 꽃다발과 선물을 사서 찾아왔다.
나같이 부족한 선생을 찾아준 제자가 고마웠다. 배우는 것에 한이 맺혀서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그 제자는 나보다 족히 서너 살은 많아 보였다.
교수님 제 생전에 선생님 소리를 듣다니 꿈만 같아요.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은 가져 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나 또한 늦은 나이에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쉰이 넘은 나이에 대학에
학생으로 입학했고 나는 쉰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외래교수로 처음 강단에 섰다.
그날의 떨림과 감동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지만 그 느낌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내 입에서 떨어지는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뜬 학생들의 모습에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그 학생은 몇 년이 지났어도 나를 예쁜 교수님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초보 운전하듯이 더듬거리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즐거웠다.
부모가 자신의 자양분을 뽑아서 자식에게 주고, 스승은 그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후학들에게 나누어 준다.
어리숙한 나에게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선생님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말의 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