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 낳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부모의 정상적인 성관계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믿으면 잘못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고대인의 '성에 대한 터부'만 물려받지 않았다면 사실 이러한 믿음이 오히려 더 타당하다.
성서는 이사야서 7장 14절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로 번역한다.
이 문장의 처녀에 해당하는 고대 히브리어는 알마(עַלְמָה ʽalmâh)이다.
* 고대히브리어 사전 참조
https://dict.naver.com/hbokodict/#/entry/hboko/da91c424707f42f9a9cab64448d9f725
알마(עַלְמָה ʽalmâh)는 젊은 여인을 뜻한다. 성경험이 없는 미혼녀를 지칭하는 낱말은 베툴라(בְּתוּלָה bethûwlâh)가 따로 있다. 결혼하기 전의 알마라면 처녀겠지 하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굳이 아버지 없는 단성생식이라는 무리한 설정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
이사야 7:14 외에 알마(almâh)가 사용된 구약성서의 구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창 24:43)
*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출애굽기 2:8)
소고 치는 처녀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뒤따르나이다. (시68:25)
[주] 영어 성서는 damsel(KJV)이나 maden(NIV, NASB)로 번역하지 굳이 처녀라 하지 않는다.
*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아가1:3)
[주] 영어 성서는 대체로 maiden(NIV, NASB)으로 번역하나 킹제임스버전(KJV)이 특이하게 virgin으로 번역했다.
*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아가 6:8)
[주] 이곳도 maiden(NASB)과 virgin(NIV, KJV)이 공존한다. 왕과 즐기는 젊은 여자들은 처녀일 거라 생각해서 그리 번역했을까? 그렇다면 왕은 처녀와 한번 잠자리하고 버린단 말인가?
*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한 자취며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잠언 18-20)
그렇다면 처녀라는 뜻의 베툴라(בְּתוּלָה bethûwlâh)는 구약성서 어디에 쓰였을까?
이 낱말은 무려 50회나 사용되는데, 특이하게도 동정녀나 미혼녀 외에 도시, 국가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창세기 24:16)
*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사무엘하13:2)
*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사무엘하 13:18)
[주] 다말이 다윗의 딸이라 맥락을 따라 공주로 의역했다.
*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아모스5:2)
*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예레미아18:13)
[주] 함락당한 도시를 비유할 때도 이 낱말을 사용했다.
바른 번역은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사정이 있다.
기원전 300년부터 번역된 70인역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성서는 고대 히브리어 알마(עַלְמָה ʽalmâh)를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 parthĕ- nŏs) 즉 남자와 성경험이 없는 여인 즉 동정녀로 번역했다. 고대 히브리어로 동정녀는 베툴라(בְּתוּלָה bethûwlâh)이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어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 parthĕ- nŏs)는 여성에게만 쓰이는 낱말이 아니라 남녀 불문하고 성관계를 경험한 바 없는 사람에게 쓰는 용어이다. 그래서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 parthĕ- nŏs)는 우상숭배에 타협하지 않은 교회를 빗대는 용어로 요한계시록에도 등장한다.
* 고대 그리스어 사전 참조
https://dict.naver.com/grckodict/#/search?query=%CF%80%CE%B1%CF%81%CE%B8%CE%AD%CE%BD%CE%BF%CF%82
마가, 마태, 루가는 오순절에 성령 감화를 체험했거나 목격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최초로 복음서를 저술한 마가는 예수의 잉태나 성장기를 언급하지 않고 세례자 요한과의 연관성부터 서술했다. 그는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삶을 시작한 기점을 요한의 세례에 이은 성령 감화 또는 강림으로 보았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런 요소를 집어넣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 하느님과 태초부터 함께한 로고스(λόγος, lŏgŏs)로 설명한다. 이는 헬라 철학의 영향이다.
반면, 마태와 루가는 오역된 이사야서 7장 14절을 바탕으로 동정녀 잉태 설화를 창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고대 문화에 팽배했던 성 터부와 남녀 차별 및 처녀 숭배와 무관하지 않을 것고, 심지어 여신 숭배 형태의 우상숭배 문화와도 밀접하다. 고대인의 관념에 묶인 교리를 수정해야지 21세기 사람들더러 3000년, 2000년 전의 가치관에 생각과 믿음을 끼워 맞춰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상한 신격화가 유지되면 될수록 그리스도는 우리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첫댓글 최종 수정일 20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