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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질의와 응답 2993번. 구원 받은 사람도 타락하여 지옥에 갈 수 ... / 구원은 확정적이고 영원한 것입니다. 2015-06-19. 히6:4-6, 빌2:12, 딤후4:18, 요6:70-71, 롬9:17-18
목사님, 여러모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목사님 위 표제 답변 중 아래 글에 대한 문의를 드립니다.
"이신득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한번 믿음으로 구원 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하다는 사실은 진리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이 받을 하나님의 징계나 환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질문은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입장도 아닌 성경에 기초해서 아래와 같이 보고 있는데 목사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첫째 구원은 변한다.
히브리서 6:4-6절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은 구원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부연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둘째 한 번 구원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빌립보서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서 구원은 현재형으로 늘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여 믿음의 인내를 감당하여 최후 승리하기까지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닙니다. 현재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하여 방종하거나 다시 불신앙에 머무른다면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교리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셋째 성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간 예를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로 사울과 가롯유다를 들겠습니다. 사울은 초대왕으로 택정함을 받아 처음엔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겼지만 후에 그는 죄를 범하고 회개를 거부하고 자살로 최후를 마쳤습니다. 가롯유다는 3년간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회개하지 않고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따라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말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안이하게 만들고 성도를 심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목사님도 이점을 한 번 깊이 기도하여 주시고 다시 한 번 구원에 대한 말씀을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 답>
구원은 확정적이고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의 정의
미완성 상태의 구원은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영접했다는 자기 의지나 생각에서 나온 믿음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내리신 선언에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치심입니다.
구원은 성령의 감동과 역사에서 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영접을 전제합니다.
이 영접은 성령의 인 치심을 받게 되는데 그 증거로 그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내주하시고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로써 그 사람은 구원을 이룬 사람이며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구원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대한 성령의 인 치심은 한번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는 일도 한번뿐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움직인다면 다시 말하면 이런 사실이 그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자기 구원에 대한 믿음은 자기 믿음일 뿐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순간,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쉽게 말합니다. 인간의 의지로 결정된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믿음이 자주 흔들리게 되며 믿음과 불신앙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왕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1. 첫 번째 질문
= 첫째 구원은 변한다.
히브리서 6:4-6절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
① 문제의 풀이
이 문제의 키는 4-6절에 있습니다. 첫째로 '한번 빛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한 번 빛을 받았다는 말은 빛을 소유했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잠시 동안 빛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빛의 소유자인 것이 아니라 빛의 비췸을 잠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얻기까지는 빛의 비췸을 여러 번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의 비췸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하시고 어느 정도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때로는 은혜를 주시기도 하시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도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씨앗의 비유에서 돌밭에 떨어진 씨는 분명 구원이 보장된 경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드리고 그 말씀에 소망을 가지고 그 말씀으로 인한 시험이 오기까지 얼마간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그가 신앙에서 떨어지기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으로 착각을 주었으며 구원받은 무리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 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비췸만을 받아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빛을 받아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사란 표현은 성령이 주시는 각가지 은사를 말합니다. 은사는 고전12장에는 성령의 9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성령의 은사는 구원받은 표적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시는 은사가 아닙니다.
옛날 사울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예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람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발람의 당나귀는 성령의 역사에 따라 사람의 방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은사를 받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해야 할 것이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은사를 받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성령에 참여한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에 참여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참여한다는 말은 잠깐 동안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부흥회 같은 곳에서 크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다든가 어떤 환상을 보았다든가 성령의 부인할 수 없는 역사를 체험한 상태를 성령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았다는 말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순종은 지속적으로 계속하지 못합니다. 말씀으로 인한 시련이 올 때에는 말씀에서 떠나게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세의 능력이란 말은 영생과 천국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소망을 말합니다. 그런데 6절에서 이르시기를 만약 이런 생활을 하다가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락은 죄에서 영영히 떠난 상태 곧 옳은 길에서 벗어났다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뜻으로 믿음에서 영영히 떠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② 이 말씀의 참뜻을 생각하자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타락하기 이전까지는 얼마간 교회에 나와서 알곡처럼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자신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신의 거짓된 모습이 들어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타락하는 일이 그 일입니다. 이 타락의 동기가 어떤 죄에 기인했든지,다른 사람의 권면에서 온 것인지 환경의 변화에서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때 이들은 믿음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들은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가라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적으로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멸망의 자리에 이르거나 구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결국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임을 8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생활의 결실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랜 신앙생활 중, 아무런 열매가 없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해당되기 쉬운 것입니다. 열매가 없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런 경우에 해당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경종으로 삼아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두 번째 질문
= 둘째 한 번 구원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빌립보서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① 구원을 얻었다.
엡 2: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얻었나니 란 말씀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뜻으로 구원 문제가 과거형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구원은 이미 얻은 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얻었다는 말은 약속에 의한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우리의 부활의 완성으로 성취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약속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내 스스로가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성령으로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성령의 증거로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② 구원 하시리니
다음에 딤후 4:1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구원이란 낱말은 우리의 완성된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책임지시고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그 구원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행실이나 의로움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신 일, 그 일이 구원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③ 구원을 이루라
본문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아직도 소망 중에 있는 미래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와의 사이에는 도달 과정이라고 하는 시간이 흘러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역에서 부산행 특급 열차를 탔습니다. 차표도 끊었습니다. 열차 안에 자기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서울은 출발했지만 아직 부산에 도착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 역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시험 역도 있고 환난 역도 있으며 유혹 역도 있습니다. 이 같은 역은 아직 우리가 지나가 보지 못한 역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생애 중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인생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차표를 잃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앉은자리도 확실히 지켜야 합니다. 열차를 내려도 안 되고 누가 무어라 해도 열차를 바꿔 타면 안 됩니다. 적어도 구원의 열차를 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운동장에서 달려가는 일로 비유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구원의 과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두렵고 덜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자세에 대하여 두 가지로 일러주었습니다. 하나는 항상 복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순종의 생활 없이는 누구든 자기의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이런 과정에서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은 무엇보다도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구원을 이루는 생활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질문
= 셋째 성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간 예를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로 사울과 가룟유다를 들겠습니다. 사울은 초대왕으로 택정함을 받아 처음엔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겼지만 후에 그는 죄를 범하고 회개를 거부하고 자살로 최후를 마쳤습니다. 가롯유다는 3년간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회개하지 않고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기는 했지만 그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그를 부를 때부터 주님은 그가 멸망의 자식인 줄 아셨으며 주님을 제사장들에게 팔아먹을 장본인 일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룟유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6:70-71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이처럼 가룟유다는 원래가 마귀에 의해 그의 인생이 조종되었고 마귀가 인도하는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그런 자가 어찌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을 수 있으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까?
사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섬기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사울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가 아닙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과도기적인 조치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바울은 바로의 경우를 들어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롬9:17-18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맺는 말
'타락한다' 혹은 '타락했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죄에 깊숙이 빠져 스스로는 그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죄를 범할 수는 있습니다. 다윗과 베드로의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돌이켜 회복했습니다. 그들은 죄로 명망 받았다가 다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두번 째로 다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상태에서도 그들의 구원은 변함이 없었고 그 구원의 상태에서 회개하였으며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또다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의 그 구원이 영원히 변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견지에서 정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성도들은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구원 받은 성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구원 받았고 나는 이제 구원을 보장 받았으니 죄를 범해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식의 믿음은 정말로 구원 받은 사람의 신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참 성도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다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회개해야 하며 곧 죄에서 돌이켜 말씀을 따르는 생활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생애를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성도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확실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성도들로 죄에서 멀리하게 하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생애를 살아가게 하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2993-1번. Re: 질문 하나 더 드립니다. / 생명책에 언제 내 이름이 기록되나?. 2015-06-21
목사님, 답변 감사합니다만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목사님들이 세례를 줄 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고 합니다. 세례를 줄 때 목사님들은 세례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선포를 하셨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하는 세례예식을 할 수 없으셨을 것이고, 목사님이 세례선포를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세례를 준 성도들은 모두 다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면 맞는 것인지요?
목사님의 말씀대로 한 번 구원 받은 자는 그 구원이 결코 변치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이름들이 하나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서 말씀을 버리고 타락하거나 배교한다면, 그 사람은 비록 목사님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하였지만 그 구원은 결코 영원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저의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에 의하여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빌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시민권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지 못하고 행함이 뒤따르지 못하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말 것입니다. 아래 말씀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결과적으로 세례를 통하여 구원의 확증을 받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구원을 지키지 못하면 그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따라서 한 번 구원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목사님이나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지키지 못하면,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위에서 참고한 말씀대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이런 관점의 성경해석이 옳다고 확신하는 데 그렇지 않은지요?
<응 답>
생명책에 언제 내 이름이 기록되나?
1. 세례와 구원
세례와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세례는 일정기간 교회에 출석한 일과 세례 받는 사람의 신앙고백에 따라 목사에 의해 주어지는 의식입니다. 구원은 목사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또 목사가 세례 받는 성도들에게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구원을 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는다면 그 사람의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면 그 세례는 세례의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세례 받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목사는 세례 받는 사람의 세례 받음을 선포하지 그 누구도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하지는 않습니다. 구원을 선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2. 생명책에 기록되는 일
사람의 이름이 언제 생명책에 기록되느냐는 문제는 신학적으로도 논쟁이 많은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시기는 창세전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때 그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장3절로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절 말씀을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이름이 이미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형제는 아래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 질문 1... 나는 부모님의 결합의 결과로 어쩌다가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며 내가 태어나고 아니고는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 내 스스로가 하나님을 찾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천만 다행히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런 과정으로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또 언제든지 내가 예수를 믿었을때 처럼 내가 원하면 내 임의대로 하나님을 떠날 수 있고 내가 죄를 범했을 때 예수를 떠날 수 있다. 그때에 내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삭제될 것이고 나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두려워하며 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죄를 지어서도 안 된다. 아마도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나는 안일한 가운데 죄악 중에 신앙생활을 하며 즐거히 살아갈 것이다.
* 질문 2... 나는 예수를 믿기전 하나님도 몰랐고 예수도 몰랐다. 믿을 생각도 가진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후 나는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내 존재를 아셨고 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것을 예정하셨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생명책에 있는 내 이름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은 죄악 중에 살아온 나에게 은혜를 베프셔서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으로 나로 예수를 믿게 하셨다. 내가 예수를 선택한 게 아니라 나로 예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장하셨다. 구원의 보증으로 하나님은 나에게 성령을 주셨고 거듭나게 하셨으며 나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도록 내 인생을 인도하신다. 혹 내가 죄를 범할지라도 그 죄에서 나를 돌이키게 하시고 나로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주시고 천국에 이르기까지 나를 지켜 주실 것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생활을 평생 계속할 것이다. 이런 생활이 나의 신앙생활에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혹 내가 잘못된 생각으로 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징계의 책찍을 통해서 올바른 믿음으로 돌이키게 해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에 내가 타락하여 생명책에서 지어지고 지옥에 떨어질 두려움을 갖지 않고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려고 힘쓰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
형제의 신앙도 물론 2번의 경우일 것으로 확신합니다.
구원은 최종적이고 궁극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제의 말처럼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궁극적이며 최종적입니다. 한번 주셨다가 무슨 이유로 다시 빼앗는 구원은 불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아닙니다.
다시 회수 당할 수도 있는 구원에, 다시 지옥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는 구원에 누가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까? 한번 확실히 준 선물을 다시 빼앗는다면 그것은 선물도 아니요 은혜도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구원을 믿고 천국을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얼마나 불안할 것입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래의 행실을 모르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자녀로 삼으셨다가 그 다음 날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나를 피로 값주고 사신 그 자리에서 내 동이치시고 지옥에 보내시는 것입니까?
죄를 범하고도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예수의 이름만 믿고(믿는 것으로 착각) 구원 받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해는 믿는 것도 믿어주는 것도 자유입니다만, 이 사람들은 애초부터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를 구원 받을 사람들에게 적용 시키려 하니 이상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잘못된 성경적용
(1)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란 믿음을 가진 구원 받은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 받지 못할 불신자들의 행위를 가리킨 것이며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을리 없는 것입니다.
(2)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란 믿음의 승리자를 의미하며 이들은 구원 받은 성도를 말합니다. 이들의 이름은 그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에서 결코 지어짐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보장이십니다.
(3)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주 거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의 차원에서 주신 경종이십니다. 말씀대로라면 한번이라도 범죄한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될 것이니 모세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베드로도 모두 생명책에서 지어졌을 것이며 생명책에 남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맺는 말 : 성경전체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잘 살피시고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놀라운 은혜를 좀 더 깊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2015년6월22일 민 병 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