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경주 교동법주’의 유래
경주시 교동의 일명 ‘경주 최부자네’ 집안에서만 이어져 내려온 법주로 배영신(裵永信)이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시키고 있습니다.
배영신은 현재 50여 년째 이 술을 만들어오고 있다. 경주의 만석꾼 최씨네 집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만 전수시켜온 독특한 술로 연한 갈색의 감미로운 맛과 향기, 마시고 난 뒤의 깨끗한 뒤끝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궁중술이라고도 부르며 최씨네 선대[최국선]가 궁중 내 간장 · 된장 등 염장을 감독하는 사옹원의 관리로 있으면서 임금이 마시는 곡주의 제조법을 집안에 전승시켜 시작되었습니다.
재료로는 찹쌀, 밀누룩, 집뜰의 우물물이 쓰이며, 최씨네 집안의 뛰어난 물맛이 술의 질을 좌우했으며, 제조 방법은 먼저 술쌀의 1/10에 해당되는 찹쌀죽을 쑤어서 누룩과 배합, 5~10일 발효시킨 후 모주를 만들고, 여기에다가 다시 쪄서 말린 찹쌀 고두밥을 배합시킨 뒤 숙성과정을 거쳐 100일 정도가 지나면 법주가 되며, 술의 발효와 숙성정도가 술의 질을 판가름하기 때문에 매우 섬세한 수공이 필요합니다.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밀주조금지법에 따라 맥이 끊길 뻔 했으나, 지금은 국세청의 허가를 받아 시판도 하며, 알코올 도수가 16도로 지금도 가내사업으로 여전히 전수되고 있습니다.
최씨 집안은 조선 중기 이곳 교동으로 이주를 하여, 여기에서 12대 동안 만석지기의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였습니다. 최부자는 가뭄이 들어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 곡식을 풀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아주 인정 넘치는 부자였습니다. 집안의 곡식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들을 처벌하지 않고, 음식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고, 농민들이 못살겠다고 일어나 부자들의 집을 공격했을 때에도 최씨 집안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최씨 집안의 선행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준 것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일제강점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최준 선생은 조선 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공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문화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0년 경주 고적 보존회를 설립하고, 1932년 동경동지를 편찬 하는 등, 신라 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해방 직후, 선생은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니, 곧 오늘 영남대학교의 전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