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김훈 작가의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김훈 작가가 오랜 세월 준비해왔던 작품인 만큼 세밀하면서 묵직한 서술이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의사 안중근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안중근 의사라는 표현을 듣고 안중근이 Doctor인줄 알았다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 웃지못할 헤프닝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을 항일운동에 몸바친 투사로 알고 있는 우리가 안중근에 대하여 아는 것은 또 무엇인가. 영웅, 투사,...적어도 내 기억에는 학창시절 수도 없이 들었던 항일투사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크게 기억되는 인물이 안중근이다. 어느집에서였나 한번쯤은 쉽게 볼 수 있었던 안중근의 글과 손바닥이 찍힌 액자도 그러하다. 안중근의 절연한 의지를 한눈으로 보는 것 같아서, 안중근의 손은 볼때마다 명치끝에서 뭔가 모를 아픔이 꿈틀거린다.
이 책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의 안중근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주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마주하는 상황들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라면 이 순간에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질문과 함께 어어지는 감동은 아..하는 감탄사만으로는 무언가 표현이 부족한 느낌이다. 작가의 치밀한 검증과 고뇌가 느껴지는 서술들을 곱씹으며 읽었다.
영웅 안중근을 중심으로 그와 그를 둘러싼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편견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이책이 주는 묘미이다. 세상은 결과만을 기억하지만 그 결과물 뒤에 가려진 우리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결과를 평가하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책은 그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안중근이 체포되고 안중근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과 처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 생명의 절박한 외침과 사회적 명분, 정치,,,냉혹한 현실을 체감한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삶을 대하는 마음을 다잡을 뿐이다. 그만큼 아픈 현실이다. 마지막 순간을 신께 의지했던 안중근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했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던 그였지만, 가족의 아픔앞에서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중근이 그가 떠난 뒤 가족의 삶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 안중근에 대한 찬사보다 인간 안중근과 그의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 글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무거운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