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시간표
유종인
하늘의 키를 재러 올라갔던 아카시나무는
이끼를 가슴에 덮고 누워 있다
공중(空中)에 두엄 낼 밭이 없어
새들은
환삼덩굴과 깨진 돌비석, 죽은 개뼈들 위에 내려놓는다
까마귀 소리는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고
붉은머리오목눈이 재잘거림은 성긴 덤불숲을 꿰맨다
아, 허공의 주리를 튼 듯 왜자한 직박구리들,
꿩들은
어깨에 쟁기를 멘 듯 허방 고래실을 내달린다
동고비는 말수가 적고
곤줄박이는 샘물 다시느라 꼬리 추임새가 자자하다
노랑턱멧새와 박새는 또 소소한 구설(口說)이고,
새소리 허공에 구첩반상을 차려도 넘치는 소리의 가짓수
똑똑히, 세보겠다
오색딱따구리는 너도밤나무 줄기에 부리를 찧는다
이 새뜻한 새소리를 누가 다 듣나
했더니 묵묵한 바위들이 습습한 이끼들이
솔수펑이 늘씬하게 굽은 나무들 빛과 바람에 섞어서
다가오는 저녁 시장기와 더불어
어둠은 제 겨드랑이에 끼고 듣는다
자다가
잠결의 소리로 달리 들어도
어쩐지 물리지 않는 영원의 문턱이다
눈길을 쓸다
공원 관리사(管理舍)의 대빗자루 몰래 가져다
정자 낀 연못에서 산길 초입까지
눈길을 쓴다
몇 바닥 쓸지도 않고 허리가 당겨
절로 하늘을 본다
저 하늘은 누가 쓸까
괘난 걱정도 웃음이 되는데,
입김이 장천(長天)이다
개 발자국 하나 없는 눈길은 쓸기도 아깝다
아까워서 못 쓸겠다 중얼대며
눈길을 또 쓸어나가니,
눈밭은 묵묵부답으로 집자(集字)해 놓은 공책일까
하늘이 펑펑 세로로 내려 쓴 것을
나 홀로 땀 뻘뻘 가로로 쓰는 길,
세상엔 글을 써 어지럽히는 붓 말고
이렇게 글을 쓸어 비워내는 붓도
그래야 한 길 겨우 열리는 마당 붓도 있나
백비(白碑)도 아마 촘촘히 새겨놓았다
누군가 몰래 쓸었을 것이다
누군가 몰래 말을 치웠을 것이다
할 말을 다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눈길을 쓸어보라, 눈길을 치워보라
말이란 처음부터 덮는다
말이란 처음부터 가린다
말이란 처음부터 옮는다
말이란 처음부터 묻는다
말이란 죽는다 처음부터
순백의 침묵이란 말마저 다 치워보라
흙 속에 코를 박고 우는 돌멩이들
흙 속에 귀를 빼고 웃는 돌멩이들
쉬었다 다시 눈길을 젖히니
못 보던 개가 옆에서 꼬리를 흔든다
뒤돌아 보니,
달빛에
큰 붓에 매달린
내 그림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