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9:9-10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밀레의 이 그림은 추수를 마친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여자들을 그렸다. 여자들 저 뒤편으로 거대하게 쌓아 올린 곡식 무더기가 있고 옮기기 위한 수레도 있고 곡식단을 나르는 이들도 있다. 완전히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줍는 일도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여자들은 추수가 끝나기를 기다려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다. 여자들의 손에 이삭이 조금씩 쥐어져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왼쪽 여자의 손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곡식 이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삭에서 떨어진 낱알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이삭이 거의 없어서 곡식 낱알이라도 주우려고 허리를 더 굽히고 밭의 풀을 헤집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편 멀리에 있는 사람들은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여자들의 옷은 다소 우중충한 색이다.
화가 밀레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높이 쌓인 곡식단과 밭에 떨어진 아주 적은 몇 가닥의 이삭. 여유 있게 추수를 마치고 축제라도 준비하는 듯한 사람들과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어서 이삭이라도 주워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이 가난한 사람들이 대조되고 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이 있으면 다시 줍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하신다. 추수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자들이 와서 주워갈 이삭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와서 주워갈 것이 있도록 놓아두라고 하신다.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이삭을 그래도 여유 있게 남겨두는 과정에서 남겨두는 사람의 마음이 구두쇠의 태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밀레의 그림에서처럼 엄청나게 많이 곡식을 거둔 사람도 구두쇠가 되면 인색해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게 된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은 각박한 삶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은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없고 오직 본능에 충실한 동물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명하시고 있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겨지는 이삭이 그렇게 많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전체에서는 별로 축이 나지 않는 그런 정도의 것이다. 사실상 크지 않은 것, 작은 것을 남겨둠으로 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이해를 해도 투자한 것에 비해서 얻은 결과는 훨씬 더 풍성하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결국은 많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각박한 삶, 구두쇠와 같이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이삭이 남겨져 있지 않은 들에서 곡식 낱알을 찾는 것과 같이 행복과 기쁨을 그처럼 찾기 어려운 삶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에서 여자들은 각박한 삶, 구두쇠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힘겨운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