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섭리에 관하여
1항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행위들과 모든 상황을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보존하고 인도하고 처리하고 통치하신다. 자신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로,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예지와 자유롭고 변함없는 자기 뜻의 결정을 따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공의와 선함과 자비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그렇게 하신다.
1. 창조와 섭리
창조는 끝이 났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라 할 수도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완성이라는 면으로 보면 그렇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만들어진 시계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인과적인 관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분인 줄 알지만 그렇게 알고 있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을 지닌 자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수도 없는 생명이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겨울에 졌던 꽃이 봄에 다시 피어납니다. 그래서 창조는 계속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창조역사를 하지 않으신다면 세상은 다시 처음의 상태로 빠질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붙드시고 필요한 모든 걸 공급하실 뿐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섭리는 마치 부모가 자녀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 섭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핵심은 세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고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어떤 순간도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형편에도 인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섭리는 신자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가르침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자이시고 세상을 지금도 다스리시는 줄 알면 삶의 태도가 분명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섭리를 인식하고 있어도 실제 삶에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섭리는 앎의 문제가 아닙니다. 섭리는 믿음을 삶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머릿속에서만 절대 다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인과적인 법칙들에 익숙합니다. 모든 걸 그런 관점에서 보려 합니다. 우연적인 발생의 이면에는 어떤 식으로든 밝혀질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성과 판단을 믿는 것임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인과관계는 삶에 있어 중요합니다. 성경도 이것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창조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꼭 기적만이 아닙니다. 모든 이면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모든 건 하나님이 정하시고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인과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또의 당첨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왜 어떤 이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이것을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그들은 죽어야 했고 그것으로 끝나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보존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존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지극히 미세한 것에서 거대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인식하든 못하든 너무도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안다면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것이 보존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하루 나를 살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갑자기 병이 들거나 사고로 생명을 잃어 더는 세상에 보존될 수 없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가장 높은 지혜와 거룩하신 뜻을 따라 일어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보존이 삶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든지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존하실 뿐 아니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법적인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말씀으로 다스려지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보존하신다면 하나님의 통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 여부와 관계 없이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고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세상에 끊임없이 말씀으로 만물의 생명을 소생케 하고 유지하는 것과 같이 다스림 또한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법적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다스림은 신자가 바른 태도를 지닐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 바른 태도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그는 분명 자기 뜻과 마음을 따라 살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이러한 상태를 분명히 자각할 수 있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그런 예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엘리 제사장이 좋은 예가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에 대해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사무엘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 엘리에게 전했을 때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라고 답합니다. 언뜻 보기에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해 바른 이해와 태도를 지닌 것이 아니라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계속 말씀으로 경고하셨음에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숙명적 운명론이 되거나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바르게 알았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사무엘의 아들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에게 하듯 그렇게 사무엘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의 아들들의 문제는 사무엘과 달리 엘리의 잘못된 이해와 태도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섭리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이 세상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에 답하기 전에 보존과 다스리심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바로 죽이지 않으시고 그들을 보존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세상을 남겨두신 것도 은혜요,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무지개로 하신 것도 은혜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믿지도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 셀 수 없는 이들이 있음에도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꽃도 풀 한 포기도 하나님이 입히십니다. 예수께서 그러면 하물며 너희는 어떻겠냐?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섭리는 하나님의 지혜가 어떠한지 알게 합니다. 높고 깊은 하나님 지식의 부요함을 알고 겸손히 그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섭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합니다. 세상 만물은 그냥 서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걸 붙들고 있습니다. 나도 그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놓을 때 그 모든 게 사그라져 버립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높은 자를 낮게 낮은 자를 높이 올리신다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며 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우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개인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보존하시고 돌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신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섭리는 신자로서 바른 태도를 지니게 합니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자기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주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참된 신자는 자기 삶이 하나님께 찬양이 되며 감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혹여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을까 늘 고민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 행동과 말에서 정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있는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이 깨닫지 못할 뿐이지,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제사장들이 되었으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알고 세상 모두가 알았습니다. 그들만 몰랐습니다.
질문
1. 하나님의 섭리를 평소 느끼며 그에 합당한 태도를 지닌 삶을 살아왔습니까?
2. 삶은 인과관계와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을까요(보존과 통치의 관점으로)?
3.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