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광주매일 2004년 8월17일자)
경제를 이념논쟁으로 푸나?
-이재창(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
최근 참여정부의 정체성 논란이 경제계로 번지면서 좌파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는 우리 사회는 이념편향을 버리고 시장경제 원리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좌파논리를 버려야 재집권에 성공한다"는 민감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아 파장이 크다. 게다가 참여정부 일각의 '반시장적 논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참여정부는 좌파정권"이라고 주장한 안국신 중앙대교수의 발언과 맞물려 좌파논쟁이 장안의 화두거리다.
최근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인 '성장 및 효율'과 참여정부 경제철학인 '분배 및 형평'사이에 한판 대충돌이 벌어졌다.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과 해법이 시장경제론자인 중앙대 안국신 교수와 노노믹스의 브레인 이정우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이 너무도 상반된 견해를 보인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거장들이 이처럼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물론 학문적인 것과 실무를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이론적 근거도 모두 있게 마련이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확실한 원칙과 그에 따른 줄기가 탄탄해야 한다.
안 교수는 국민의 정부가 초석을 놓은 신자유주의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좌파적 분배주의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신행정수도 이전, 재벌정책, 노사관계, 사회복지·분배정책,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등을 나열하며 참여정부 집권 실세의 정체성의 위기가 비관적인 경제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정책기획위원장은 부동산정책과 사교육비 대책 등이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룰수 있는 정책이라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데 왜 한 마리만 선택할 것을 강요하느냐"고 주장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 부총리도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 친시장과 반시장, 좌냐 우냐하는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다"며 "반시장적, 근본주의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비판한 것이다.
하여튼 수출이 내수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평등원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좌파정권 때문이고, 생산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좌파 정권을 견제하려는 우파 세력 때문이라는 식의 논조가 대립하면 할수록 문제는 심각하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활력을 잃고 장기적 성장잠재력이 추락하는 근본원인이 대통령과 측근 386세력 등 참여정부 집권실세의 불확실한 정체성에 있다는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한국경제가 참여정부 들어서서 곤두박질 치고, 돈 있는 기업가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기업인들이 왜 외국으로만 탈출하려는지 정부는 알아야 한다. 이는 바로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참여정부가 좌파적 정책을 밀고 가는 데 따른 정권의 정체성과 불안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기적절한 처방과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의 평가도 장·단기를 떠나 효과와 비용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장기적으론 성장과 분배도 좋던 나쁘던 함께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책결정과 집행의 정치과정, 재정의 사회적 위험 흡수, 고용 없는 성장, 생산성의 장기 침체, 안정화 수단의 한계, 기업가정신의 추락 등 이미 신뢰를 잃은 현실을 도전의 원천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 세금 인하, 부동산 규제 완화 등 가능한 모든 경기부양책을 백지상태에서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등 우리 경제병(病)의 심각성을 느낀것 같아 다행이다.
이제 우리 경제는 병의 뿌리를 치료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 경기부양책이나 금리인하가 아니라 그 어떤 처방으로도 이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사회 전체에 번진 총체적 불신·불안·불확실한 전망 때문이다. 경제 거장들의 속내가 무엇이든 간에,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역들의 입씨름들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거나 다름없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헤게모니 싸움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경제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이며 정책당국자들의 궤변이라는 사실을 모두 명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들을 생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