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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라(히브리서 6장 1~12절) - 다시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복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와 같고
복음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 말합니다.
그럼 젖이나 먹는 자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 야곱의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창세기 35장 8절을 보면 ....
창35: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밧단 아람에서 벧엘로 돌아오려던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숙곳에 이르러 정착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부르며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러한 야곱의 모습이 젖이나 먹고 있었다는 의미로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모는 산모를 대신하여
아기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백성을 믿음의 용사로 만들어 주기 위하여 주신
율법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디나 사건을 통하여 벧엘로 올라가게 되는데
비로소 유모 드보라가 죽었다는 것으로
젖이나 먹던 야곱이 율법에서 벗어나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사닥다리 꿈을 꾼 곳으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열고
교회를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신 곳을(복음) 말합니다.
야곱이 비로소 벧엘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은
이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믿는
십자가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다는 뜻인데
이러한 야곱이 모습이 젖이나 먹고 있다가
비로소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야곱의 모습을 통하여 젖이나 먹는 자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가 누구인지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
그럼 이번에는 젖이나 먹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열왕기하 2장 23~24절을 보면 ....
왕하2: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왕하2: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이 말씀의 문맥을 잠시 살펴보면 19~22절까지는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빠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 말씀은 율법은 좋으나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의 근원에 메시아 언약을 상징하는
소금을 던져 물을 고친 것으로 엘리사가 율법을 먹고
있던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것을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복음의 말씀으로는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조롱하는 자들이 작은 아이들로
대머리여 올라가라며 엘리사를 조롱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엘리사는 복음을 상징하고
작은 아이들은 젖이나 먹는 자들로 율법을 상징하는데
율법이 복음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이스마엘이
젖을 뗀 이삭을 조롱하는 모습과 같은 것으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복음을 조롱하는 작은 아이들이 심판받는 모습을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는 자들은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심판받음을 구약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으로 돌아가면 심판받음을 말하고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그리스도의 초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여겨 주시려고 주신
율법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을 지켜 의롭다 여김을 받으려는 자들은
종과 다름이 없다고 갈라디아서 4장 1절은 말합니다.
갈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유업을 이을 자는 아직 믿음은 없지만
장차 복음을 깨달아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를 말하는데
믿음이 자라지 못한 상태는 종과 다름이 없다는 것으로
율법에 매여 있어 어린아이와 같이
젖이나 먹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으로
율법을 지켜서는 의롭다 여김을 받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런 사람은 아들이 아닌 종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고 복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다시 유대교로(율법으로) 돌아가지 않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7절과 에베소서 2장 8절을 보면 ....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고 완전한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4~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한 후에
다시 돌아와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본문의 의미는 유대교를 믿다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개종한 자들이 복음을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다면 회개할 수 없다는 뜻인데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민수기 20장 11~12절을 봅니다.
민20: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광야 생활 40년이 지났는데도 백성들이 여전히 목마르다 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게 하여 마시게 하라 하셨지만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반석을 쳐 물을 내어 마시게 한 것은
출애굽기 17장으로 반석을 치는 것은 율법의 저주하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으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목마르다 하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믿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하나님은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어 마시게 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복음을 깨달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친 것으로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십자가를 나타내지 못하고
다시 반석을 쳐야 물이 나와 목마름을 해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해주신 일을
반복 해주셔야만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모세는(율법을 따르는 자)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교로 돌아가면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처럼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욕되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은 이 말씀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본문 7절부터 봅니다.
히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자주 내리는 비를 땅이 흡수하여 뿌린 씨가 잘 자라
합당한 채소를 내면 농부가 기뻐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인데
이는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농부이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대속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의 말씀을 사도들을
통하여 전해 들었으면 복음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따르지 않고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따르게 되면
심판을 받는다고 이어지는 8절은 말합니다.
히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는 것은
창세기 3장 17~19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에도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타락하여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었으므로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사탄이 믿음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평생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18~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땅은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내 마음을 말하는데
뿌려진 씨가 자라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사탄이 방해하는 모습을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동일한 말씀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려도 길가밭, 돌짝밭, 가시밭과 같아서
씨가 자라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복음을 따르는 자들은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사탄이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므로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밭에 채소만 먹는다는 것으로
유대인들처럼 율법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고 성령을 보내어
복음을 맛보게 했다는 것인데
뱀의 유혹에 넘어가 복음을 배척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해주신 일을
다시 반복해야 되는냐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반복해달라는 것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모습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본문 9~12절은 말하는데 ....
히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6: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 하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이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서로 사랑하며 살았던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으로
이들을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뜻이며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고 본향을 끝까지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히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히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복음을 떠나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요한계시록 3장 16~17절을 보면 ....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물질적으로 아주 풍부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다는 것으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여 예배는 드리되 자신이 섬기고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들어간 말씀만 듣고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며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
당연히 구원받는 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알려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장 2~4절에
에베소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수년간 담임 목사로 목회하던 곳으로
율법과 복음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과 다른복음을 잘 구별할 능력이 있어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복음을 잘 지키며
게으르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처음 사랑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흠 없는 유월절 양을 잡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다 불에 구워 먹고 출애굽한 것을 말하는데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은 십자가 사랑을 말합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어 다른복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믿음 화하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와 동일하게 진리의 말씀과
다른복음이 무엇인지 지식적으로는 잘 알고 있고
또 진리의 말씀만 전하는 교회를 다니며
다른복음에 흔들리지 않고 그 말씀만 듣고 있을지라도
마음판에 새기는 믿음의 용사가 되지 못한다면
구원받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망의 말씀을 잊지 마시고 늘 불쌍히 여겨 주셔서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여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