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품질관리(QC)의 발전사
수리학적 품질관리를 실행시킨 시조는 미국의 슈하르트(walter Andrew Shewhort;1891~1967)라는 통계학자였다. 1926년 그는 벨 연구소(Bell laboratory) 제조공장에 적용할 ’슈하르트 컨트롤 차트‘를 창안해냈다. 각 공정의 작업 결과를 수치로 측정하여 이 수치가 일정 범위 내에 들어있으면 합격시키는 차트였다.
세계 제2차 대전시 미국은 각종 군수품을 대량으로 생산해야만 했고, 군수품이 불량하면 패전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 방위산업 업체에서는 이 ‘슈하르트 차트’가 생명이었다. 미군 당국은 이를 ’Z-1’표준이라고 불렀다. 1945년 맥아더 사령관은 미군에 납품되는 모든 군수품을 생산하는 일본 업체에서 Z-1표준을 강요했다.
바로 이 단계에서 일본 통계학의 거두인 ‘가오루 이시가와’와 ‘다구치 겐이치’가 뛰어들어 일본의 독특한 품질관리의 역사를 열기 시작했다.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에서도 일본은 먼저 미국을 모방한 후,
미국 제품을 능가하는 made in japan을 만들어냈듯이 품질관리 영역에서도 일본은 먼저 미국을 모방한 다음 일본 고유의 창작물로 발전시켰다.
미국의 품질관리는 사후관리였다, 품질검사(Quality Inspection), Z-1표준은 일단 제조-가공된 제품이 합격품인가 불합격품인가를 걸러내는 역할만 수행했지, 불량품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사전 조치 즉 예방조치를 취하는 품질관리가 아니었다. 미국의 품질관리는 경찰관 식 품질관리였다. 경찰이 목 좋은 곳에 숨어있다가 위반 차량을 잡아내듯이 미국의 품질관리 요원들은 계축기와 슈하르트 차트(Z-1 표준)를 가지고 불합격품을 찾아내 폐기하는 일만 했다. 시간도 많이 소요됐다. 왜냐하면 작업자들은 품질관리 요원들이 나타날 때까지 초조하게 검사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불량품으로 확인되면 거기에 투여된 원가는 증발돼 버린다. 그래서 일본은 사전 품질관리, 불량품질이 발생하지 않게 일하는 방법을 품질관리팀과 작업팀이 함께 사전에 토의 연구한다.
이런 일본식 품질관리 기법을 미국도 도입하였다. 미국의 감사원과 군 계약 감사국(DCAA:Defense Contract Audit Agency)은 우리 감사원처럼 사후 감사를 하지 않고, 사전 감사를 하여 낭비를 사전에 예방한다. 여기에 더해 일본의 품질관리는 전사원적 품질관리로 발전했다. Company wide quality control! 정문의 경비원도 품질에 영향을 미치고, 출근 시의 버스기사도 품질에 영향을 끼친다. 이들이 불손, 불쾌한 언행을 보이면 여러 사원들의 기분이 상한다. 화장실이 불결해도, 구내식당이 불결해 보여도 기분이 상한다. 직장 내에서 사원들간에 불쾌할 일이 생겨도, 상급자로부터 불쾌한 말을 들어도 기분이 상한다. 기분이 상한 사람들이 제품을 만들면 불량품이 발생한다는 것이 일본 사원들의 종교다. 그래서 상하좌우 모든 회사원들은 늘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한다.
대한민국 전철 차량 제조 공정을 하루종일 관찰한 적이 있다. 작업자들에 기율이 없었다. A가 사용했던 작업 도구를 B가 찾아 헤메고, 일하는 사람과 앉아서 잡담하는 사람이 범벅돼있었다. 작업 도구를 찾으러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의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바로 이들에게 시간은 자유재였다. 민주노총 요원들이 일하는 현장이었다. 일본에는 5S라는 기율이 있다. 작업장에서 준수해야 하는 5가지 원칙이다. 정리, 정돈, 청결, 기름치기, 작업 기율들이다. 작업 도구는 반드시 사용 후 제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작업장이 깔끔하게 청소돼 있어야 하고, 작업도구가 항상 청결하게 유지돼야 하고, 작업의 기율이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그 작업장은 난장판이었다. 2000년의 일이었다.
일본은 어떻게 품질관리에 눈을 뜨게 되었는가? 전후의 일본 통계학자들은 JUSE(Japanese Union of Scientist and Engineers)라는 클럽을 만들어 미국이 낳은 품질 이론가들을 줄줄이 모셔다가 공부를 했다. 슈하르트 박사는 일본에 ‘통계학적 품질관리(SQC;Statistical Quality control)를 가르쳐 주었고, 쥬란 박사는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프로젝트로 전환하여 집단지혜를 동원해 해결하라는 것을 강조했다.
데밍 박사는 “모든 의사결정은 여론, 직관, 경험에 의해 하지 말고 오로지 자료와 사실에 기초해서 하라. 이 세상에서 자료 없이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은 오직 신뿐이다.” 과학적 의사결정을 강조했다. GE의 품질관리 책임자였던 피겐바움(Fiegenhaum)박사는 TQC(Total Quality Control), 전사적 품질관리를 강조해주었다.
이것이 CWQC(Company Wide Quality Control)로 발전한 것이다. 일본 QC는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온라인 QC와 오프라인 QC, 온라인 QC는 공장 라인에서 생산된 제품의 품질이 설계된 품질을 얼마나 정밀하게 반영했느냐에 대한 품질관리이었고, 오프라인 QC는 제품의 클라스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품질 향상 노력이었다. 예를 들면 전구의 수명을 1,000시간에서 2,000시간으로 늘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오프라인 품질은 Quality of Design이라 하고, 온라인 품질은 Quality of Conformance라 한다. 전자는 제품의 격을 의미하고 후자는 정밀성을 의미한다.
일본에는 데밍상(Deming Prize)이 있다. 미국인 스승 ‘데밍’을 기리는 상이다. 데밍상에는 비단 일본 기업들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 외국 기업들도 도전한다. 데밍상은 세계 전체 산업계의 노벨상이다. 데밍상 수상업체가 만든 제품은 눈 감고 사도 후회할 일이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승전국이 낳은 석학을 모셔다 열심히 배우고, 그의 이름을 따서 산업계의 노벨상을 제정할 수 있겠는가? 수리공학적 품질관리! 그게 무엇인지 한 가지만 소개해 본다. 1950년대 당시 일본 타일 제조 회사들 중 ’이나타일‘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타일을 빚어 거대한 ’로‘에 구으면 타일의 사이즈가 균등하게 구워지지 않았다. 쥬란 박사의 가르침에 따라 이 문제를 프로젝트화했다. 도사급 전문가, 경험자들이 달려들어 의견을 냈다. 결론이 나왔다. “타일의 규격이 일정해지려면 기다란 ’로’에 불길을 골고루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 누가 기다란 ‘로’에 불길을 골고루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 따라서 균등 사이즈에 대한 꿈은 실현이 불가능하다.” 이에 젊은 수학자가 나타나 실험을 했다. 수학의 편미분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타일을 구성하는 재질은 7가지였다. 6개 요소는 종전대로 집어넣고(other things beeing equal) 한 개씩의 요소에 대해 양을 가감해 가면서 구워보았다. 이런 실험을 7개 요소 모두에 대해 할 참이었다. 그런데! 석회의 분량을 2%에서 5%로 증가시키니까 불길의 강약에 관계없이 타일의 규격이 일정하게 나왔다. 이것이 수리공학적 품질관리의 웅변적 사례였다. 데밍 박사, 경험과 여론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지 말고 오로지 수리적 결론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라는 가르침의 결과였다.
한⸱일간의 시스템 격차
일본 품질관리는 그 자체가 시스템이다. 1993년 필자가 [시스템이냐 신바람이냐]라는 책을 냈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는 시스템이 무엇인지 그 의미조차 알지 못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체계’, ‘조직’ 뭐 이런 것들로 해석돼 있는데 감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1993년 당시까지 한국에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은행 객장의 ‘순번대기번호표 장치’가 바로 시스템의 표본이라고 설명했고, 그로부터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유행됐다. 은행 객장에는 질서가 없었다. 각 데스크 직원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섰다. 새치기도 있었다. 흰 장갑을 낀 청경이 질서를 유지하지만 고객들은 무질서로 인해 신경을 쓰고 기분이 상했다. 사회의 저명한 식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한국병’이라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질서가 정연한데 한국의 은행들에는 무질서가 판을 친다면서 이를 민족성 탓이고 의식 탓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한동안 은행 객장에는 질서가 없었다. 식자들은 이 무질서를 의식 탓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는 의식 탓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었다. 은행 객장에 순번대기번호표 시스템이 등장했다. 그 간단한 시스템 하나 설치되니까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질서가 좋아지지 않았느냐 무질서는 의식 탓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무질서한 것은 거기에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 사회를 만들려면 두뇌들을 유치해 시스템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세 대의 공중전화기가 있다. 한국 사람은 세 줄을 서고 미국 사람들은 한 줄을 선다. 짧은 줄을 선택해 섰더니 나중에 온 사람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이때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일찍 와야 소용없다. 줄을 잘 서야 한다. 운이 좋아야 한다. 결국 요행이 차례를 결정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는 것이다. 반면 한 줄을 서면, 3대의 전화기 중 먼저 끝나는 전화를 먼저 온 사람이 차지한다. 논리가 차례를 정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선진국 시민에는 요행 의식이 아니라 논리 의식이 자라게 된다. 결국 시스템이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상이 필자가 1993년 처음으로 사회에 던진 메시지였다
1983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내렸다. 내리기 전 기체 내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손님은 택시 미터기 요금에 싱가포르 돈으로 5달러를 더 얹어주라고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전기장판 전기줄처럼 꼬불꼬불 줄을 섰다. 바닥에 선이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을 차례대로 많이 세우는 방안이었다. 택시가 일렬로 들어와서는 7개 가닥으로 나누어 섰다. 한꺼번에 7대의 택시가 손님을 태우고 떠났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도 김포공항에는 택시도 일렬, 손님도 일렬로 섰다. 한 번에 한 개 택시가 짐과 사람을 싣고 떠나야 두 번째 택시가 전진했다. 외국에서 와 오래 기다리는 손님들이 몹시 짜증을 냈다. 택시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손님은 더 많이 기다려야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손님을 카운트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을 세어서 택시회사에 연락하면 택시회사에서 손님만큼 택시를 보내주었다.
시너지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스템이 내는 에너지의 준말이다. 마을의 동쪽과 서쪽에 신발가게가 있었다. 하루에 열 켤레씩 팔렸다. 뚝뚝 떨어져 있던 가게를 한 곳으로 몰아놓았더니 하루에 100켤레씩 팔렸다. 당시 떨어져 있던 가게는 한 군데로 모았을 뿐인데 10배의 효과가 난 것이다. 각기 떨어져 있을 때는 낱개 가게였지만 합쳐놓으니까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생긴 것이다. 10배의 효과를 낸 것은 바로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효과인 것이다. 인쇄촌이 있고, 물류촌이 있고, 자동차 공장촌이 있다. 관련 업체들이 이웃에 종기종기 붙어있어야 하나의 완성품이 빨리 그리고 적은 물류 비용으로 생산될 수 있다. 먹자촌에는 음식 업체들이 경쟁을 한다. 하지만 먹자촌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 사실을 모를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행정 수도를 서울과 세종시로 분할시켰다. 정부 부처는 서로 회의도 많이 한다. 청와대와 국회를 자주 드나들어야 한다. 민원인은 한 건의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서울, 과천, 세종시를 여러 차례 다녀야 한다.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활이 지옥이고, 공무원들의 시간이 도로에 다 증발되고 비용과 교통 혼잡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필요하게 야기되었다. 이런 결정은 망국적 결정이다. 그런데 그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박근혜는 어쩌다 한 약속을 지킨다며 오기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2012년 이후의 결정이었다. 일본의 한 작은 기업도 이런 무모하고 무식한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국가 품격이고 과학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