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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리 고성내 여러 거리의 모습
▶ 따리 동문과 동문 옆에서 간단한 춤을 즐기는 노인들
동문 그 아래 추녀 끝에는 풍경 하나 걸려있다. 바람이 불면 청아한 맑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에 자비심이 저절로 생긴다는 풍경이 창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제법 큰 맑은 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바이족은 무식한 원나라의 몽골군과 길을 알려 준 나시족을 모두 용서하였는가?
▶ 따리 고성내를 흐르는 물길
히말라야 산맥이 휘돌아 동남쪽의 마지막 끝이 바로 창산이다.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있고 그곳에서 눈 녹은 물이 사시사철 흘러내려 따리 고성을 지나 얼하이 호수로 들어간다. 창산에서 따리 꾸청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길이다. 졸졸졸 흐르는 수로를 따라 대나무도 심어놓아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길이다. 버드나무 낭창하게 피어있는 그 길을 따라 올라간다. 이 물이 따리를 먹여 살리는 물이다. 식수로 쓰고 농사를 짓고 그리고 얼하이로 들어가 물고기를 키운다.
▶ 물길 중간에 만들어진 이름 모를 정자
▶ 오화루의 밤과 낮
▶ 남문에서 오화루로 가는 길의 밤과 낮
남문과 북문 사이에는 가운데 오화루(五華樓)라는 누각이 아름다운 문이 하나 있다. 누각 위엔 美麗花都 萃福大理(미려화도 췌복대리)라 쓰여져 있는데 따리는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꽃이 만발하여 사람이 살기 좋다는 뜻의 "아름다운 꽃의 도시, 복을 모으는 따리시"란 뜻이 아닐까? 이 문은 남문과 북문사이의 길인 푸싱루라는 復興路에 있는데 중간 지점이 아니고 남문에서 훨씬 가깝다.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고 그 문의 방향이 남문과 북문과의 일직선으로 놓여있고 오화루가 약간 토라진 듯 방향을 살짝 돌려놓았다. 서문인 창산문은 옥이로라는 길에 있고 동문격인 얼하이문은 인민로에 있어 방향이 완전히 어긋나 있다. 오화루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 따리 남문의 밤과 낮
남문 입구에 커다란 돌에는 고성만보(古城漫步)란 글이 중국답게 붉은 글씨로 써 있다. 배낭 여행자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글인 것 같다. 느긋하게 고성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경하라고 친절히 안내하는 것 같다.
▶ 남문 밖 음식점들 앞에 늘어 놓은 식재료
▶ 대리석을 절단해 그대로 액자에 넣은 것으로 산수화 못지 않다
▶ 기념품 가게에서 종업원이 은 세공을 하는 모습
▶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운남 18괴를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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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리 고성내 이모저모
고성 안으로 들어오니 가게마다 은 세공품과 옥, 대리석 세공품들이 넘쳐난다. 은 세공품이 이곳의 특산물인가보다. 젊은이들이 이곳 저곳에서 망치와 간단한 연장으로 직접 두드려 만들고 있다. 길거리를 걷다가 이상한 먹거리가 보인다. 云南 18怪라 써 있는데 그럼 이것들이 이 지역의 괴이한 18가지 중의 하나라는 말이지만 18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그 숫자도 36괴가 되고 그 이상도 되니 그게 바로 괴이한 일이다.
▶ 젬베에 넋이 나간 일행
▶ 운남 특산 꾸어차오미센을 파는 가계
중국 운남성의 대표 국수'궈차오미센' 전문점으로 따리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궈차오미센은 호수안에 있는 작은 섬에 서재를 만들어 놓고, 글만 읽어대는 서생의 부인이 글 읽는 남편에게 밤마다 야식으로 국수를 날라다 주곤 했는데, 수십m의 좁은 다리를 건너 국수를 갖고가면, 국수가 다 식어있어서 맛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이 국수 위에 닭고기 국물 육수를 부어놨더니, 남편에게 도착할때까지 국수가 식지 않아 남편이 그 국수를 맛있게 먹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과거에 급제해서 '다리를 건너는 쌀국수'라는 뜻의 '過橋米線'이 탄생했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보니까 중국에 과교미선 컵라면이 나와 있었다.
▶ 따리국의 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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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호텔로 쓰이고 있지만 과거 따리 왕국의 황궁
이미 당나라 때는 남조국, 송나라 때는 따리국이 이곳에 독립된 국가로 있었으며 수 백년 이상 유지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두문수라는 사람이 자신의 회족 이름인 "술탄 술라이만"의 중국식 의미로 "총통병마대원수"로 칭함에 따라 이렇게 이곳에 현판으로 흔적이 남아있다. 청나라가 이곳을 지배할 때 회족을 살해하는 쿤밍 대학살사건(1856년)이 생기자 두문수는 회족과 바이족, 그리고 만주족인 청나라에 반감을 갖고 있던 한족의 세력을 규합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따리를 중심으로 윈난성 일대를 장악하여 20여 년간이나 지배를 했던 중국내 유일한 이슬람 국가인 평남국(平南國)을 건국하였다. 결국 청의 반격으로 지도층은 모두 살해당하고 두문수와 그의 가족들은 자살을 함으로써 그는 50년의 짧은 생은 아침 이슬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꿈은 구름처럼 흩어지고 만다. 중원의 입장에서는 소수민족 반란사건으로 기록하고 있겠지만....
▶ 양런지에(洋人街)의 야경
서양 관광객이 많이 머문다는 양런지에에는 다른 곳보다 서양 음식점과 빠, 카페가 유난히 많고 거리 곳곳에서는 라이브로 노래가 흘러 나온다. 그런데 이곳에서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은 서양인 보다 동양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띤다. 그럼 동양인은 양인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