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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아(超我)의 봉사
중안 / 조상진
그동안의 피로를 푸는 데는 군산에 있는 나의 옛집 2층이 최고의 장소이다. 아파트가 아니고 단독주택이라서 한가롭고 사방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리면 나의 유일무이한 별장인 셈이다. 럭셔리한 부분은 하나도 없고 소박할 따름이지만 남향에서 들어오는 따사한 햇볕은 흔한 커튼조차도 통과하지 않고 직바로 비추이는 곳이다.
금요일 오전 아내와 함께 1박 2일 휴식하러 가기 위하여 공주 유구읍내를 자동차 운전하며 지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형님 내일 아침 07시에 만날 수 있나요?”라고 로터리클럽 총무에게서 갑작스레 걸려온 것이다. 단톡방을 통해서 행사계획을 보기는 했지만 나는 휴식이 더 중요하다. “나 지금 군산에 내려가는 중인데,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다. 내일 오전 예산 덕산온천에서 로터리클럽 연수회가 있으니 같이 참석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30대의 젊은 시절에도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잘 나가는 젊은이들은 모두 JC (청년회의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었고 모두 집안이 좋거나 돈 많은 자식들이 주축 되어 있었으므로 사회적 행세가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JC에 소속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은 그보다는 조금 아래 수준인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좀 높아진 사람들 중심으로 로터리클럽이 있었는데 이제 60대로서 천안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1년 전, 이 젊은 친구로부터 로터리클럽 가입추천을 받았던 것이다.
JC나 라이온스, 로터리클럽의 공통요소는 사회적 봉사(service)이다. 내가 젊은 시절이었던 80년대 전후에는 우리 한국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정말 많이 있었고 이러한 이웃들에게 따스한 봉사의 실천은 큰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와 문화 사정은 많이 달라졌고 불우한 이웃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이를 최대한으로 보호 지원하는 시스템도 상당히 갖추어져 있다. 경제적 도움뿐만 아니라 인격적 보장을 위한 인권으로도 각종 법률과 제도로서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종 봉사단체들도 많은데 종교단체는 물론 언론방송을 통해서 모금되는 기부단체들도 유행처럼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내일 09시에 예산 덕산 땅에 도착하려면 07시에 만나야 된다고 하니, 나의 1박 2일의 충분한 휴식계획은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봉사의 목적을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겸손의 미덕을 무시할 수도 없고 실무자인 총무의 요청을 외면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승낙을 해버렸다.
그러자 옆에 동승한 아내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니 내일 07에 만나려면 오늘 밤에 다시 올라온다는 것이요?” 아차 아내가 옆에 있는 것도 깜박한 채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결정을 내린 것이니 다시 전화를 걸고 번복해야 하나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여행겸 휴식을 하러 2시간 30분을 운전하여 내려갔다가 곧이어서 다시 돌아오려니 나의 건강상 한계도 문제가 된다. “여보 화내지 말고 일단 내려가 보자, 그리고 다시 생각해 봅시다”라고 달래고 나서 자동차 페달을 계속 밟았다. 한참을 달리는데 길가에 무언가 쓰러져 있다. 조심조심 속도를 늦추고 자세히 바라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로드 킬을 당했는지 피를 흘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는데 아내는 무섭다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봉사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있지만 말 못 하는 짐승에 대한 사랑도 봉사의 실천이라는 생각에 따라 차를 세웠다. 살아 있으면 차에 싣고서 동물보호소에 인계하기 위하여 상처를 확인했는데 머리 부분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고 흔들어 보는데 미동도 없으므로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이다. “아 오늘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가던 길을 재촉하여 군산에 도착하였다.
텅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우리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너무 정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통유리의 베란다 창을 통하여 내다보이는 무성하게 자란 백목련 나무가 “주인님 오셨어요?”라고 인사하듯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한다. 가지 사이로는 산비둘기 한 쌍이 내려와서 머리를 위아래로 꾸벅인다. 역시 “오랜만입니다”라는 환영 인사일 것이다.
목적지에 잘 도착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하다. 조금 후에 다시 천안으로 뒤돌아 갈 것인지, 아니면 번복하는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인지.
“여보 여기 오니 기분 짱이지? 그런데 오늘 밤에 다시 올라가면 안 될까?”, “꼭 내일 아침 만나야 하나요?” 이 부분에서 긴장이 되었고 한번 말한 약속도 중요했다. 나의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고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없지만 부부간의 문제와 타인과의 문제에서 어느 것이 우선할까. 작년 로터리클럽에 가입하고 나서 신규회원 교육받은 내용 중에서 나의 마음에 신선하게 꽂히도록 한 구절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초아(超我)의 봉사’ 즉 스스로를 넘어선 봉사라는 의미로 해석되므로 남을 위한 봉사는 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 자신의 여가를 즐기는 여유와 가정의 행복 추구도 중요하지만 좀 더 범위를 넓혀서 행복을 만들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여보 우리 둘의 여행은 우리 둘의 문제지만 내일 만나야 할 약속은 많은 사람들과 관계되어 있으니 조금 후에 다시 올라가자”라고 아내를 설득하였고 아내도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이튿날 07시 정확하게 약속장소에 나갔고 예정된 09시 행사 시작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관계자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로터리의 발전을 위하여 공공 이미지 향상이 필요하며, 세상은 우리가 이루는 성과를 통해 로터리를 알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교육내용은 나의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평소에는 봉사라는 개념에 대하여 크게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왔지만, 나라의 혜택이나 도움을 받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이 모여 자금을 기부하고 국내외의 어려운 이웃들을 상대로 현장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은 높게 평가되어야 할 대목이 분명하다, 왜 ‘초아’라는 단어를 굳이 강조하는가. 새삼스럽게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2. 봉건적 근성
중안 / 조상진
충청도는 양반고을이라는 말을 누가 어디서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남아 있다. 천안에 와서 살게 된 지 10년이 되었고, 능수버들과 천안삼거리가 지난날 전라도에서 서울을 오르내리던 시절에 국도를 달리면서 지나갔던 추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하나뿐일 시절에는 명절 때가 되면 교통지체가 심해서 국도를 통한 우회가 많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국도가 싫지 않고 오히려 고속도로보다 더욱 아기자기한 주변 경관이 좋아서 시골 농촌에 살았던 어린 시절 풍경이 회상되기도 한다. 그렇게 천안, 공주, 부여, 서천 지방을 국도를 타고 다니다 보면 고산준령은 아니지만 병풍처럼 둘러진 산야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어서 평야 지대가 많은 전라도와 비교가 된다.
서해에 가까운 아산, 예산, 홍성, 서산, 지역에도 마찬가지로 심상치 않은 산들이 나름대로의 위세를 뽐내고 있다.
산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은데, 천안 태조산, 공주 계룡산, 아산 망경산, 예산 봉수산 등등 풍수지리설과 연계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풍수지리는 곧 벼슬의 등장을 품고 있기 때문에 조선왕조 시대에는 큰 관심사안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벼슬은 글공부를 하는 선비들의 등용문이 되었으므로 권력 향유의 바로미터가 되었던 것이다.
벼슬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출세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과 함께 나라로부터 하사된 토지를 사유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지는 것이다.
하사된 농지는 그 지역 백성들에게 소작을 주게 되고 백성들은 소작료를 바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살 길이 많은 현대의 삶과 비교할 때는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나라 땅이 모두 국왕의 소유인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 전근대의 왕조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경험하였던 것이고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서 영국은 1215년 마그나카르타를 통하여 자유와 민주의 길을 시작하였고 프랑스는 1789년 시민 혁명을 일으켰으며 미국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의 길을 열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거듭한 것이 근대 이후 역사이다.
그렇지만 조선은 1910년 한일합방의 치욕으로 500년 역사의 조선이 망국을 당하였고 스스로 독립을 외치기는 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며 1945년 세계 2차 대전의 종료와 함께 미국의 도움으로 해방을 맞이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일련의 자유와 민주의 세계사적 흐름을 살펴볼 때, 한반도에서의 충청도위상이 클오즈업 된다, 특히 충남 지역에서 역사적 충신열사가 많이 배출된 배경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3.1 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를 위시하여 이동영 독립투사, 조선조의 박문수 어사, 이순신 장군, 추사 김정희, 맹사성 등등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배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충남지역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은가 하는 문제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우선 자연환경에서부터 그 이유를 찾아본다. 한반도의 지형은 동고서저(東高西底)형이고 산세는 북고남저(北高南底)형이다. 따라서 조선조 권력의 중심지 한양을 중심으로 북동쪽인 의정부, 가평, 춘천, 원주 등등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준령들이 많고 농지가 적다. 남서쪽인 충남지역에는 해발 500m 전후의 비교적 낮은 산들이 마을과 농지들을 둘러싸고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벼슬에 꿈을 가진 젊은 선비들이나 한양에서 벼슬을 하다가 잠시 한양을 떠난 사대부출신들이 기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었던 것이다. 우선 공부를 하기에는 조용한 산속이 좋다, 한양에서 북동쪽은 기온이 춥고 산세도 험하고 농지도 적기 때문에 식량공급이 원활하지도 못하다. 따라서 한양 이남은 기온과 식량뿐만 아니라 한양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언제라도 벼슬길이 다시 열릴 경우 복귀를 기대하기에 최적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는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전국각처에서 과거시험에 응시하고자 한양을 찾았고, 벼슬길에 성공하여 권력을 누리다가 재기를 기다리거나 낙향하려던 선비들이, 한양에 가까우면서도 학문연마에 최적지인 충남지역을 선호하게 되면서 이 지역은 양반선비 출신들이 지속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점점 마을을 형성하면서 충청도를 대변하는 정체성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선조의 특수성으로서 양반과 상민의 관계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벼슬을 갖게 되면 영원히 양반으로 행세하고 그 가족들도 자동적으로 양반선비로 이어졌기 때문에 양반가족은 논밭에서 노동을 하지 않았고 소작인 주민들은 선비들이 원하는 대로 곡물을 바쳐야 하는 봉건적 사회이었다. 모든 권한과 권리는 양반들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나라에서 또는 양반들로부터 혜택이 많이 부여되면 될수록 기뻐하게 되는, 주인과 노예의 성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가 없는 사회 제도하에서는 항상 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우리 조상들 삶의 패턴은 지금도 유전자적으로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보이는 것이다.
21세기 현대사회는 자본주의가 실현되고 있고 나름대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형식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반국민 대중들은 조선조에서 뿌리 박힌 노예적 근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일례로서, 지난 4.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도의 중심이고 인구 70만 명에 이르는 천안시에서 후보자 3명 전원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사실을 제시하고 싶다. 그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사항으로 1인당 25만원 지급과 1주일 4.5일 근무가 주효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각 자에 따라 평가 의견을 달리한다 해도 노예들은 나라가 주는 혜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한국 속담도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성숙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은 노예근성이 없는가. 그렇지 않고 노예가 노예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한 망국적 포퓰리즘을 남발한다고 보는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말하기를, 덕자요산(德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 라고 가르쳤는데 덕 있는 자는 산을 즐기므로 불필요한 재물을 탐하지 않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찾아서 농사에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화이부동, 동이불화라는 가르침을 통하여 군자는 나라를 위하여 화합을 추구하나 끼리끼리 나눠 먹는 짓을 하지 않았고 소인은 전체적 화합에는 관심 없고 편을 갈라 나눠먹는 짓을 좋아한다고 질타하였다, 고전은 현재의 거울이므로 성숙된 민주사회로 가는 발전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
3. 모델이 따로 있나요
중안/ 조상진
일반적으로 모델이라고 하면 패션쇼를 생각하게 되고 그 쇼 행사장에 출연하는 남녀 주인공들은 실제로 뛰어난 인상과 몸매를 갖고 있다. 그리고 직접 쇼가 열리는 현장에 참석한다는 자체도 아무에게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히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처지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하는 영상을 통하여 그림으로 접하게 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천안 공주대학교 체육관에서 ‘코리아모델선발대회’를 직접 관람하게 되었다. 어제 지인으로부터 전화로 초청안내를 받고 행사정보를 알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안내광고를 받기도 하였지만 나의 고정관념에 따라 그 행사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무관심한 상태였던 것이다.
약속된 오후 2시에 맞추어 10분 전 도착하였는데 행사장 주변이 한산하고 주차장도 여유가 있다. 잘못 찾았나 싶어 공연장 입구를 바라보니 화환이 몇 개 있고 코리아모델선발대회 라는 간판이 붙어 있으니 제대로는 찾아왔다.
내부로 들어가니 평소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공주대학교 김교수가 가슴에 꽃을 달고 반겨준다. 행사 팸플릿에서 김교수가 이 행사의 대회장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오늘 제대로 참석하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최자는 (사)한국방송문화예술진흥원과 대한민국모델협회이고 주관자는 한아방송(주) 천안지국으로 인쇄되어 있다. 처음 들어보는 방송 이름이고 일단, 주최와 주관의 명칭은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가한 좌석들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행사 시작을 알리는 남녀 사회자의 멘트가 있고 스스로 소개하기를 남자는 배우 출신이고 여자는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이라고 말하니 행사의 궁합이 명칭에서부터 잘 짜인 느낌이 든다.
식전공연으로서 특별무대팀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우선적으로 연령층이 다양하다. 70대에서 10대까지 남성과 여성이 한 명씩 차례로 패션쇼나 미인선발대회에서 볼 수 있는 T자형 무대에 나선다. 그런데 나의 오랜 관념상 모델이라고 한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먼저 미모와 그 미모에 걸맞은 의상이 눈길을 끄는 것인데 처음부터 청바지에 평상복 차림으로 선을 보인다는 점에서 어딘지 어색하고 서툴게 보인다.
하여간 주최자 측의 얼굴내기 인사말과 내빈소개가 끝나고 본선이 시작되었다.
채점기준은 워킹, 의상, 자기소개, 특기자랑 등 5개 부분이고 총 20명 참가신청에 13명이 출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1번 출연자는 71세 남성이다. 워킹은 그런대로 연습하면 큰 실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소개와 장기자랑이 심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노인의 자기소개의 멘트는 예상외로 시원치 않았고 장기로서 예스터데이라는 팝송을 중간정도 부르다가 퇴장하였다. 2번 출연자는 10대의 어린 소녀이다. 워킹이 부자연스러웠고 무표정한 상태에서 “저는 자신감을 쌓기 위하여 나왔습니다”라고 소개를 한 뒤 멈칫 멈칫 하다 퇴장하려고 하자, 남성 사회자가 “잠깐, 혹시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왔나요?”라고 묻자 “예...”라고 답변하자 장내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3번 출연자는 40대 여자이고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에 워킹도 여유가 있다. 자기소개에서 자신감을 얻고자 참가했다고 하고 취미는 골프와 여행이고 특기는 수영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출연하는 여성들은 얼굴이 뽀얗고 그런대로 날씬한 몸매는 갖추기는 하였지만 표정들은 어딘지 어색하거나 자연스럽지 못하다.
난생처음 관람하는 모델선발대회라서 이 분야에서는 문맹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 내릴 수는 없지만 그리고 관람자의 객석이 많이 비워져 있는 상태를 감안하면 좋은 점수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1차 심사가 끝날 때까지, 모델 후보자들이 원하는 점과 공연 시의 심리상태는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워킹과 의상 부분에서는 모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각자의 자기소개와 장기자랑에서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한결같은 입장들은 모두 자신의 자신감을 얻고 싶어 했고 공개적인 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로서 큰 만족을 느끼려는 듯 보였다. 실제로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델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해도 큰 불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방도시 차원에서 모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자신을 가꾸며 자신 있는 삶을 추구하는 마음과 자세는 유의미한 가치로서 충분하다. 행사용 팸플릿을 다시 열어서 대회사 내용을 읽어보았다 “10대부터 70대까지 학력, 국적도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꿈을 펼쳐주는 용기 있는 참가자 여러분! 겉으로 드러난 멋진 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열정과 꿈, 나를 사랑하듯 내 이웃, 내 나라, 세계를 사랑하는 큰마음까지 마음껏 펼쳐주십시오”라고 격려한다.
이제는 나의 오랜 고정관념도 고쳐야 할 것 같다. 모델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전유용이 아니고 누구나 용기와 꿈이 있으면 주어진 분야에서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누구나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출연자들이 밝힌 취미와 특기를 보더라도 골프와 수영, 여행을 즐기는 경제와 문화 수준으로 보아도 과거 못 살던 시대의 고정관념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집으로 돌아와 새삼스럽게 아내를 바라본다. 70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이에도 큰 주름은 없지만 내가 특별하게 해 준 것도 없다. 오늘 출연했던 모델 도전자들 중 68세의 여인도 있었다. 성별과 연령, 미모 수준을 초월하여 출연한 13명의 후보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슨 목적으로 참가 신청한 것일까. 그 해답은 워킹 스텝이나 포즈, 의상 수준보다는 자기소개와 장기자랑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이크를 잡는 손놀림이 서툴러서 겨우 잡은 마이크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는 어설프고 톤이 낮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멘트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를 바라보고 듣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를 눈치챘는지 사회자가 한마디 거든다. “오늘 출연한 모든 분들은 공연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아마추어 분들입니다. 참고해 주세요.” 그러자 관객들 모두 힘차게 박수를 친다. 맞다. 내가 보아도 그 말이 사실인 것이다. 아무리 유경험자라고 할지라도 조명이 집중하여 비추고 관객들의 눈빛이 쏟아지는 분위기에서 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과장이다. 따라서 이 좋은 세상 대한민국 코리아에서 살면서 좀 더 자신의 존재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하여 용기를 발휘하여 모델선발대회에 참가한 13명 전원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다면 나도 내년에 열리는 대회에는 아내를 참가시키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서고 싶어 진다. 용기를 더 키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