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본연의 기능 퇴색과 회복의 가능성>
전쟁 후 피폐해진 서민들을 위한 ‘대안 책’이었던 공동주택은,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국가의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되어 번개 불에 콩 구워먹는 식의 국가 안정화 정책으로 본연의 자아를 잃어버렸다. 빠르게 지어내야 하는 공동주택 속 전문가의 의견은 묵살되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우지끈 뚝딱 아슬아슬한 거주공간을 탄생시킨 수도 서울. 자본주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반세기동안 급격히 만들어진 도심이 만들어낸 ‘주거 기능의 빈부격차’는 세계기후변화 협약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 인증제도에서조차 옵션이 되어 주거 본연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주택의 내·외부를 경계 짓는 곳인 현관은 전용면적 대 비율로 따져보면 평균 2%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오피스텔, 고시원, 도시형 생활주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간적 주택규모의 제약 때문에 실용적 기능이 비교적 적었던 현관은 주거 내 여러 공간 중 가장 적은 면적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 공간이 지닌 의미는 여전히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전통적으로 신발을 벗는 문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2002년 (주)원도시 건축 세미나 ‘위기의 거주와 거주의 위기’에서 故정기용은 “다시 말해서 집은 특별한 장소이고, 존재는 장소에 거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는다. 이는 한국인들이 거주하기 위한 첫 번째 의식이다.”라며 현관이 지닌 의미는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덧붙여 박목월의 시 <가정>에서는 가정으로 진입하기 직전 맞이하게 되는 현관 같은 곳에서 ‘나’와 ‘가족’의 연결성을 맞이하고 연민과 같은 따뜻함을 인지하게 됨을 보여준다. “지상에는/아홉 켤레의 신발./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여기는/지상./연민과 삶의 길이여./내 신발은 십구 문 반( 十九文半).//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 문 반(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 다시 말하자면, 현관은 E.hall이 말하길, “자신의 외부세계에 집중하던 관심을 방향 전환시켜 내부의 상실되고 소외된 본연의 자아를 다시 찾는 일로 향하게 하던” 공간이 아닐까.
■중간 공간(매개 공간)으로 회복하기까지
현관의 사전적 의미는 ‘건물의 출입문이나 건물에 붙이어 따로 달아낸 어귀’이다. 현관이 우리나라의 주택평면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일본 건축이 우리나라에 많이 도입된 일제 시대 후반기부터였다. 전통한옥에서의 현관이라 부를 만 한 것은 딱히 없지만 굳이 현관의 유전적 인자를 따져보자면 ‘대청이나 툇마루’가 있을 것이다. 대청과 툇마루는 출입의 기능뿐만 아니라 실내외를 연결하는 매개공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근대로 오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사이에 지어진 근대한옥에서는 전통주택에서 볼 수 없었던 현관과 복도 등의 공간요소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1920년대 건립된 근대 한옥으로 ‘산업은행관리가’와 ‘오정동 선교사촌 크림하우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산업은행관리가’와 ‘오정동 선교사촌 크림하우스’를 통해 근대 일제 시대의 현관은 출입 시 신을 벗고 신는 행위 이외의 기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옛 우리 주거의 매개공간이 사라진 형태로 변형되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소의 비용으로 주거 공급과 위생적으로 폐허가 된 가로를 깨끗하게 정비하여 당시 국가의 위신을 세워줄 수 있다고 판단 된 모듈적이고 네모반듯한 아파트는, 획일화 된 양적 공급으로 주택시장에서 질적 향상에 대한 소비자 욕구를 일으켰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 IMF 외환 위기에는 ’98년 분양가 자율화 및 소형 평형 의무 공급제 완화라는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주택시장의 다양화가 가속되었고 다양한 평면도와 실험적인 평면유형 도입이 가능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주택시장이 과거 공급자 주도 시장에서 점차 소비자 주도시장으로 변화되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개별적인 차별화 전략을 강화시켰다. 그 차별화 전략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현관전실’이다. 주동의 엘리베이터 홀과 현관사이에 공간을 두어 이를 거쳐 현관을 출입하도록 하는 ‘전이, 매개, 완충 공간’의 역할이 회복되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