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의 홍장암
강릉에 가면 경포호와 경포대가 있고, 경포대와 경포해변의 중간쯤에 紅粧嵓이 있다. 이곳에는 고려 말의 선비와 기생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설화가 서려 있다. 그 내용은 조선 초기인 15세기 중반에 서거정이 지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박신(朴信)이 젊어서부터 명망이 있었다. 강원도 안렴사(按廉使)로 있으면서 강릉 기생 홍장(紅粧)을 사랑하여 애정이 매우 깊었다. 임기가 차서 돌아갈 참인데, 부윤 조운흘(府尹 趙云仡)이 홍장이 벌써 죽었다고 거짓으로 고하였다.
박신은 슬피 생각하며 스스로 견디지 못하였다. 강릉부(府)에 경포대가 있는데 형승이 관동에서 으뜸이다. 부윤이 안렴사를 맞이하여 뱃놀이하면서, 몰래 홍장에게 화장을 곱게 하고 고운 옷을 입게 하였다. 별도로 배 한 척을 준비하고, 늙은 관인(官人)으로서 수염과 눈썹이 희고, 모습이 처용(處容)과 같은 자를 골라 의관을 정중하게 하여, 홍장과 함께 배에 실었다.
또 채색 액자(額子)에다, 신라 거룩한 시대의 늙은 안상은(新羅聖代老安詳) 천년 전의 풍류 놀이를 아직도 잊지 못했도다(千載風流尙未忘) 듣건대, 사화가 경포대에 논다 하기에 / 聞道使華遊鏡浦) 참지 못하고 목란 배에다 홍장을 실어 왔노라(蘭舟不忍載紅粧)이라는 시를 적어 걸었다. 노를 천천히 저으며 포구에 들어와서 물가를 배회하는데, 거문고 소리와 피리소리가 맑고 또렷하여 공중에서 나는 듯하였다. 부윤이 안렴사에게, ‘이 지역에는 옛 선인의 유적이 있고, 산꼭대기에는 차 달이던 아궁이가 있고, 또 여기에서 수십 리 거리에 한송정이 있고, 정자에 또 사선(四仙)의 비석이 있으며, 지금도 신선의 무리가 그 사이로 오 가는데, 꽃피는 아침과 달 밝은 저녁에 간혹 본 사람도 있소. 그러나 다만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 갈 수는 없는 것이오.’ 하니, 박신이 말하기를, ‘산천이 이처럼 아름답고 풍경이 기이하나, 마침 정황이 없소.’ 하면서 눈에 눈물이 가득하였다.
조금 뒤에 배가 순풍을 타고 눈 깜짝 할 동안에 바로 앞으로 왔다. 노인이 배를 대는데 얼굴 모습이 기괴하고 배 안에는 홍기(紅妓)가 노래하며 춤추는데 가냘프게 너울거렸다. 박신이 놀라서 말하기를, ‘필연코 신선 가운데 사람이다.’ 하였다. 그러나 눈여겨 보니 홍장이었다. 온 좌석이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고 한껏 즐긴 다음 놀이를 마쳤다. 그 후에 박신이 시를 보냈는데, ”젊어서 부절을 가지고 관동을 안렴 하였는데(少年持節按關東) 경포대에서 놀던 것이 꿈속으로 드는구나(鏡浦淸遊入夢中) 대 아래에 목란 배를 다시 띄우고 싶지만(臺下蘭舟忠又泛) 홍장이 쇠잔한 늙은이라 비웃을까 저어하네(却嫌紅粧笑衰翁)”라고 하였다.
지금은 공원처럼 꾸며놓았으나 사람들이 잘 찾지는 않는 곳이다.
강릉에 가면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