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과 대왕마마
박춘희
대왕마마는 몸의 이쪽저쪽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왕마마의 왼쪽 손에 놓인 책갈피에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습니다.
위로 들어 올린 오른팔 옷소매는 땟물로 얼룩졌습니다.
무릎 위의 곤룡포 자락에도 새의 배설물이 말라붙었습니다.
대왕마마는 저만치 앞에 늠름하게 선 장군의 동상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동상을 받치는 기단석 옆면에는 거북선들의 조각이 보였습니다.
기단석 아래 바닥을 보며 대왕마마가 묻습니다.
“장군, 바닥의 주변이 왜 그리 지저분한가?”
장군이 민망한 듯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집회 때 흘러내린 촛농 자국이옵니다.”
“바닥의 울긋불긋한 색칠은 또 무엇인가?”
“무슨 퍼포먼스를 한다면서 뿌렸던 물감 자국이옵니다.”
“뭐라? 퍼포먼스라고!”
“아, 아니올시다. 예술 행위라고 하겠사옵니다.”
“쯧쯧쯧, 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미세먼지로도 숨이 턱턱 막히거늘! 장군, 그 사람들은 언제쯤 올 것 같은가?”
“날이 좀 풀리면 곧 찾아올 것이니 염려 마시옵소서, 대왕마마!”
4월 어느 날,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동상 아래에 섰습니다.
“대왕마마! 곧 목욕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책임자의 말이 끝나자, 남자들은 동시에 허리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남자들은 걸음을 옮겨 장군 동상으로 향했습니다.
거북선 앞에 남자들이 나란히 서자, 책임자가 다시 외칩니다.
“장군님! 대왕마마 목욕을 끝내고 바로 장군님 목욕을 진행하겠습니다.”
남자들은 이마에 오른손을 붙여 군인처럼 경례를 했습니다.
남자들은 맡은 역할에 따라 빠르게 자리를 옮겼습니다.
기중기 두 대를 동상 가까이로 옮기면서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압력이 센 세척기에 긴 호스가 연결되었습니다.
책임자가 기중기에 올라가 대왕마마 동상에 물부터 뿌렸습니다.
겨우내 켜켜이 쌓인 먼지와 티끌, 새의 배설물이 물살에 씻겨 나갔습니다.
비누거품이나 중성 세제를 섞으면 더 쉽고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상의 색이 변하거나 흠집이 생길까봐 깨끗한 물만 사용했습니다.
1차 세척이 끝나자, 극세사 수건으로 찌든 때를 정성스럽게 문질러 닦았습니다.
“대왕마마, 간지러우셔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귀, 코, 입, 수염까지 하나하나 조심조심 닦아냈습니다.
곤룡포 앞가슴에 새겨진 용의 비늘은 울퉁불퉁하므로, 손끝이 더욱 섬세하게 움직였습니다.
“대왕마마, 개운하시지요? 곤룡포도 말끔한 새 옷처럼 바뀌었습니다.”
봄볕에 금빛으로 빛나는 용안을 보며 책임자가 들뜬 목소리로 말합니다.
“제가 대왕마마 목욕을 시켜드렸다고 하면,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국어책을 더 큰 소리로 읽습니다. 저는 많이 배우지 못했고,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두 분을 씻겨드릴 수 있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남자들은 대왕마마 목욕작업을 마쳤습니다.
대왕마마는 장군 동상 쪽으로 향하는 작업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자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나라가 안전하고 자유롭게 유지되고 있다네!’
장군 동상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화강석입니다. 화강석의 촘촘한 틈새에 낀 촛농, 물감, 껌 자국을 물로 지우려면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장군 동상의 높이에 맞춰 기중기를 한참 위로 올렸습니다.
책임자는 기중기를 타고 장군 바로 가까이에 붙었습니다.
장군의 투구와 부릅뜬 눈, 겹겹이 겹쳐진 갑옷의 주름을 정성껏 씻어냈습니다.
긴 칼을 움켜쥔 손가락과 팔꿈치까지 꼼꼼하게 닦았습니다.
근엄하고 어둡던 장군의 표정이 한결 밝고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장군님의 칼을 누가 감히 만질 수 있겠습니까? 청소업자인 저에겐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책임자의 말에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왕마마께서 그대들을 무척이나 기다리셨소.’
세 시간 만에 목욕이 끝났습니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들이 젖은 장갑을 벗으며 소리쳤습니다.
“장군님과 대왕마마! 내년에 다시 뵐 때까지 무탈하시기를 빕니다!”
그 순간, 광화문을 지나던 시민들이 산뜻해진 두 동상을 우러러보며 손뼉을 쳤습니다.
노란 개나리색 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말했습니다.
“저도 하늘을 날아 갈 듯 기분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