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는 충청도의 한 부유층 자재로 태어났다. 학교도 다니며 그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붉어진 형과의 유산 상속 마찰은 그를 노숙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박 씨의 형은 부모님이 남겨 놓은 많은 유산을 전부 가로채기 위해 박 씨를 속였다. 당시 결혼 전이었던 박 씨는 ‘결혼 전까지 유산을 관리해주겠다’는 형의 말에 유산 전부를 형에게 넘겨줬다.
이후 시간이 흘러 박 씨는 결혼을 했고 유산 절반을 요구했지만 박 씨의 형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박 씨는 여러 차례 형에게 유산을 나눠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유산 전부가 형의 이름으로 되어 있던 터라 어쩌지 못했다. 오히려 키워준 은혜를 모른다며 박 씨의 형은 박 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이후 박 씨의 가난한 삶이 시작되었다. 공사판부터 시장 잡일까지 박 씨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허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박 씨의 아내는 집을 나가버렸다.
아우가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도 비정한 형은 동생 박 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 삶에 회의를 느낀 박 씨는 전국을 떠돌며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었다는 염씨는 젊은 시절 건설 붐이 일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용 트럭을 몰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귀국해서 집도 마련하고 큰 트럭도 샀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에 휘청이기 시작한 삶은 2005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했다. 1억원에 달하는 차량 할부금을 내지 못했고, 급기야 2007년부터는 종각역에 자리를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