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한국고전번역원>-고전산책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오늘날 염치를 찾다보니, 삽살개 뱃속에나 남아 있구나.
예사로 솥을 긁을 적에, 부엌 향해 엎드려 있고자 하지 않네.
今日看廉恥 靑狵肚裏存 尋常櫟釜際 不欲向廚蹲
금일간염치 청방두리존 심상력부제 불욕향주준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15권, 「갈역잡영(葛驛雜詠)」
해설
위 시는 삼연(三淵) 김창흡의 「갈역잡영(葛驛雜詠)」 173수 가운데 제14수로, 김창흡이 66세였던 1718년에 인제의 갈역(葛驛)에 머물며 지은 것이다. 「갈역잡영」에는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내용이 종종 보이는데, 이 시도 그중 하나이다. 김창흡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사사(賜死) 된 일을 계기로 조선 전국을 유람하거나 산림에 은거하며 살았다. 어쩌면 김창흡은 누구보다도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가장 잘 느꼈을 것이다. 그는 위 시에서 몰염치한 당시 세태를 꼬집으며,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탐하지 않는 삽살개가 오히려 인간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염치, 즉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조되어 왔다. 14세기 에스파냐의 작가 돈 후안 마누엘(1282∼1349)의 우화집 『루카노르 백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살라디노라는 술탄이 있었다. 그가 신하의 부인을 좋아하게 되어 신하를 먼 지역으로 보내고 신하의 부인에게 사랑 고백을 하였다. 신하의 부인은 술탄에게 조건을 달았는데,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해오는 것이었다. 술탄은 그 답을 얻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답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뉴스와 신문을 보면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싶은 기사가 너무도 많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해보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부끄러움이라고 할 것이다. 부끄러움은 시대와 동서양을 초월하여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일 것이다.
글쓴이 신로사
한문고전번역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