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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물고기 살린 원효ㆍ혜공 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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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하던 두 스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원효 스님과 혜공 스님이 주인공이다. 노스님들의 장난이란 다름 아니라 서로의 도력(道力)을 테스트 하는 것이다. 진짜 도인이라면 스스로 도를 드러내는 것조차 마다할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속설이고 전설일 뿐이다. 그러나 전설 속에 들어 있는 익살과 해학 너머에 알싸한 교훈도 있다. 우선 벽화를 살펴보자. 양양 문수사 원통보전 2층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깊은 산골 맑은 계곡이 보인다. 삭발한 머리카락과 수염이 흰 스님은 앉아 있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 스님은 서 있다. 두 스님의 눈과 오른손이 물속을 향해 있고 물속에는 몇 마리의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을 치고 있다. 그게 전부다. 두 스님과 물고기가 벽화의 핵심이다. 이 그림은 천태종 여러 사찰에서 벽화로 볼 수 있다. 그림의 내용은 경북 포항에 있는 오어사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다. 오어사의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다. 도행(道行)을 펼치던 원효 스님과 혜공 스님은 어느 날 물가에서 서로의 법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가 다시 살리는 내기였다. 스님들이 하기에는 지나친 내기지만 두 스님은 그 정도의 도력은 충분히 갖추었기에 가능한 내기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두 스님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먹고 냇물을 향해 대변을 보았는데 두 스님 중 한 스님이 배설한 물고기만 다시 살아서 물속으로 헤엄을 치고 다녔다. 그것을 본 두 스님은 서로 ‘나의 물고기(吾魚)’라고 우겼다고 하여 절 이름이 오어사가 됐다는 전설이다. 대개의 전설은 내용이 통일되지 않는다. 어떤 설에는 두 스님이 천렵을 하여 물고기를 끓여 먹고 “우리가 명색이 수도자인데 물고기를 먹어서야 되겠느냐” “그럼 살려 주면 될 것 아니냐”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살려 보자” 이렇게 하여 끓여 먹었던 물고기를 다 생환(生還) 시킨 이야기로 전개되기도 한다. 어느 이야기가 됐건 분명한 것은 뱃속에 들어갔던 물고기를 다시 살려 내는 스님들의 법력이 핵심이다. 거창하게 불살생이나 자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설프게 꾸며진 이야기 속에 원효와 혜공 스님의 도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조선 중기 전북 지역에서 활동했던 진묵대사(1562~1633)의 일화에서도 보인다. 진묵대사가 길을 가다가 천렵을 하여 물고기를 끓여먹는 소년들을 만났다. 대사가 펄펄 끓는 가마솥을 들여다보자 장난기가 발동한 소년들이 “스님 먹고 싶으세요? 그럼 다 드세요” 라고 조롱을 한다. 이에 스님은 말없이 솥을 비웠다. 그러자 소년들은 “스님이 물고기를 드셨으니 이제 파계를 한 것”이라며 더 세게 놀렸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물고기를 죽인 것은 너희들이지만 살리는 것은 바로 나다”라며 물을 향해 앉아서 배설을 했고 물고기들이 살아서 냇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진묵 스님은 물고기를 향해 “다시는 미끼를 탐해 낚시에 걸려들지 말고 깊은 곳에서 놀아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 역시 진묵스님의 도력을 강조한 설화다. 진묵스님은 아주 많은 이적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어쩌면 고승의 높은 도력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포교의 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원효와 혜공 그리고 진묵 스님. 물고기를 다시 살려 내는 이야기가 불교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전해 오는 것은 중생들이 언제나 ‘큰 도인’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큰 도인은 어디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