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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을 만나다
나는 시(詩)와 음악, 영화, 미술 등 예술분야를 두루 좋아하지만 음악 중에서는 특히 가곡(歌曲)을 좋아한다. 클래식음악도 좋고 온갖 악기연주도 좋다지만 제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도 사람의 몸으로 연주하는 목소리만큼 아름다울까 싶다. 그래서 나는 특히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을 때 더 감동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동요가 시작이었다.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가르쳐주는 동요는 물론 거의 다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 내가 라디오를 통해 듣는 음악은 동요나 옛날가요가 대부분이었고, 그때만하여도 나는 우리 가곡도 클래식 음악도 오페라도 팝송도 뮤지컬도 전혀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라디오로 「섬집아기」, 「엄마야 누나야」, 「과꽃」, 「나뭇잎배」, 「따오기」, 「고향생각」, 「오빠생각」, 「봉선화」 이런 동요가 그 맑고 순수한 아이의 목소리로 흘러 나올 때면 까닭도 없이 가슴이 뭉클하고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래들이 좋았던 이유는 그 서정적인 가사 때문이었다. 동요는 얼마나 아름다운 노랫말을 가졌던가. 그 시절의 동요는 모두가 아름답고 순수한 동심을 그리고 있어서 아직 시(詩)를 몰랐던 시절에도 저절로 나에게 막연하게나마 시인을 동경하게 하였다.
특히 「섬집아기」 2절을 들으면, 아기가 잠을 곤히 자고 있는데도, 갈매기 울음소리에 마음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서 콧날이 찡하였고, 「과꽃」은 언제나 누나들을 생각나게 하였으며, 「따오기」는 따옥 따옥하는 첫 구절만 들어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가슴 서늘한 그리움과 마음 한편으로 절절한 고통마저 느낀 노래는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로 시작되는 「유관순 노래」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여자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했다. 물론 나는 가슴 속에 깊이 담아두고 속으로 혼자 부르곤 하였다. 그리고 “옥 속에 갇혀서도...” 하는 고음부를 부르다보면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유관순누나가 생각났다. 실제로 본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누나처럼 정답고 불쌍했다.
그리고 유관순누나를 생각하면 무섭고 가슴 아팠다. 어릴 때 늘 보던 일제강점기를 다룬 독립투사들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칼을 옆으로 찬 순사가 등장하고, 그 놈들이 우리 유관순누나를 옥(獄) 속에 가두고 손톱을 빼고 불로 지지면서 온갖 고문을 하였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일제강점기시대의 소설들을 많이 읽고 좋아하다보니 내가 마치 그 시절의 시대에 살아본 듯하고, 그 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내면까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깝게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울분과 비통함이었고 슬픔과 분노였다. 그리고 그들이 한없이 가엾고 불쌍했다. 힘없고 가난하고 천대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던 그들.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 동생들, 친구들, 이웃들. 그렇게 힘도 없고 가난했던 그들이 오죽하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목숨을 걸고 대한독립만세! 를 외쳤을까.
이렇게 어린 시절 내가 즐겨 부르던 동요의 바탕은 나의 일생을 관통하는 음악적 정서였고, 그것은 나아가 우리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뮤지컬 등 평생 음악이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지탱해 준 감성의 보고였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음악을 좋아한 것은 어머니를 닮아서였던 것 같다. 당시 우리는 조그만 라디오 밖에 없었지만 어머니는 밤에 카바이드등 옆에 시보리틀을 놓고 앉아서 시보리를 뜨실 때면 라디오를 켜놓고 옛날 노래를 즐겨 들으셨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게 되었고, 그때 유행하던 노래들은 대부분 멜로디가 쉽고 가사도 어렵지 않아서 불과 몇 번만 들으면 나는 노래를 전부 외워 부르곤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스스로 노래를 부르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셨고, 내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구, 잘도 부른다 하시며 칭찬을 해주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온갖 노래를 다 불러댔는데, 그때 유행하던 옛날가요 중 유명한 곡은 지금도 거의 다 외울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옛날 생각이 날 때면 옛날노래를 듣는다. 그 시절의 노래들은 쿵짝 쿵짝 하는 그 곡조 때문에 아이들은 질색을 하지만 나는 옛스러운 그 노랫말과 곡조가 좋아서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 시절의 노래 속에는 우리 부모시대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추억에 잠겨 옛날을 회상하며 마음을 달래기에 최고인 것을 보면 나도 분명 나이가 든 탓이리라.
그후 나는 서울에 와서 고학하다가 아내를 만났고, 그녀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지만 우리나라 소설과 시(詩), 그리고 외국의 명시집과 명언집 한두 권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보다 훨씬 독서를 좋아하여 한국문학보다는 세계문학을 더 많이 읽었고, 세계사상전집을 구입하여 두고 읽을 정도로 철학과 에세이, 시(詩), 수필 등을 많이 읽어 독서의 폭이 넓은데다 피아노도 배우고 있었다.
또한 음악이나 영화, 미술 등 예술분야는 다 좋아했지만,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가곡,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팝송 등 다양한 음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야간고등학교에 다닐 때 무슨 행사였던가, 학급대표로 나보고 노래를 부르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내가 교단에 나가서 부른 노래는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아내는 그때 단순한 동급생의 입장에서 시커먼 얼굴을 하고 비쩍 마른 내가 교탁에 나가더니 얼굴을 쳐든 채 「굳세어라 금순아」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면서 평생 동안 나를 놀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자취방에서 라디오를 통해 우리 가곡(歌曲)을 처음 만났다. 자료를 찾아보면 가곡(歌曲)은 원래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서 조선사회의 지식층에서 애창되던 시조·가사와 함께, ‘정가(正歌)’라고 하여 판소리나 잡가 또는 민요처럼 일반 백성들에 의해서 구전되는 속가(俗歌)와 예술적으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내가 들은 가곡은 이러한 전통가곡이 아니라 서양 음악에서 말하는, ‘시(詩)에 곡을 붙인 성악곡’이었고 이를 전통가곡과 구별하기 위하여 ‘예술가곡’이라고도 부른다고 하였다.
내가 처음 들었던 가곡은 고진숙 시 조두남 곡의 「그리움」이었다. 나는 이 가곡을 듣고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반주만으로 부르는 테너의 음성은 그 자체로 맑고 아름다웠다. 나는 이게 뭐지? 하고 깜작 놀랐다. 그녀는 우리 한국가곡에 대하여 설명해주었고 이 노래 말고도 많은 가곡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 중에는 “해는 져서 어두운데~”로 시작되어 내가 고향에서 즐겨 부르던 「고향생각」도 있었다. 이 곡이 현제명 작사 작곡이며 처음에는 동요로 발표되었으나 뒤에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알았다.
나는 그때부터 우리 가곡을 들으면서 그 섬세한 시와 군더더기 없이 정결한 선율에 놀라 금세 가곡에 빠져 들었다.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들이 있었다고? 정말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내가 들었던 가요, 특히 옛날 남인수, 고복수, 황금심, 이난영이 부르던 옛날노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애환과 정서를 담고 있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노래를 부르면 옛날 추억과 어머니 생각이 나곤 했으나 다소 청승맞거나 통속적인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옛날 노래를 가곡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엣날노래를 좋아하지만 가곡을 듣는 순간부터 옛날노래와는 사뭇 다른 감동을 느꼈다는 뜻이다. 가곡은 노랫말이 시(詩)로 되어 있어서 그 자체가 우선 좋았고, 선율도 아름답고 격조가 있는데다 깊은 울림이 있어 듣는 순간 가슴을 적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후 내가 갈 때 마다 가곡을 들려주고 한국가곡 카세트테이프도 사서 주었는데, 어느 날엔가 라디오에서 박화목 시 채동선 곡 「망향」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는 듯
철 따라 핀 진달래 산을 덮고
먼 부엉이 이름 끊이잖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멘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 주렴아 그대여
내 맘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일레라.
(박화목시 채동선곡-망향)
전주(前奏)부터 바이올린이 예사롭지 않았던 이 곡은, 노래가 흐르는 동안에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노래가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는 듯~’ 하는 부분에서는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가슴을 타고 전류가 흐르는 듯 한 전율이 왔다. 그리고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멘가~’ 하면서 ‘날 사랑한다고 말해 주렴아~ 그대여~’ 할 때는 눈물이 났다.
그랬다. 나는 어쩌다 처음 대하는 시를 읽을 때, 노래를 들을 때 나도 모르게 온몸을 관통하는 전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신경림의 시 ‘갈대’를 처음 읽을 때도 그랬고, 김춘수의 ‘분수’, 류시화의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한 줄의 시를 읽을 때에도 그랬었다.
그런데 나는 가곡 「망향」을 처음 들었을 때 온몸이 전율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 감동을 맛보았다. 세상에...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와 곡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 곡은 그만큼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 곡을 카세트테이프에서 찾아 듣고 또 듣고 여러 번 들어 보았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하고 입속으로 그 노래를 따라 부를 때 나는 이미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봄날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그 노래를 부르면 내 마음은 그 하늘가 저 편에 아련하게 푸른 산, 고향, 그곳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 보리밭이 있고, 어머니가 계셨다.
우리가 버리고 떠나온 고향,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푸른 산 어느 모퉁길에서 아, 정말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아련한 환상이었다. 어여쁜 님이라니... 실체가 없는 환영이라도 설렜다. 그 어느 산 모퉁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는 그 어여쁜 님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그렇게 나타난 그 님의 이미지는 봄과 고향이라는 시공간(視空間)에서 아련한 그리움의 표상(表象)으로 다가왔으며, 여기서 나는 언제나 전신을 휘감는 이 절절한 가슴의 아픔으로 컥 하고 목이 메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가 아니고는 선사할 수 없는 순수의 결정(結晶)이자 감정의 절정(絶頂)이었다.
아, 왜 돌아갈 수 없는가, 그곳은 어디였던가, 현실세계의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있다면 내 마음속의 고향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잃어버린 날들의 덧없음이여, 과연 나를 기다려주는 이는 누구인가, 철 따라 핀 진달래가 산을 덮고 저 먼 곳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던 그런 고향이 내게도 있었던가.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그 고향은 지금도 있는 것일까...
그랬다. 그도 찾고 있었다. 시인도 여태껏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살아온 기억 저 편,
저 푸른 산 너머에 살고 있는
그 그리움의 절절한 대상은
어쩌면 숙명처럼 불러내야 할 내 사랑이었을 것이다.
나의 사랑이여, 부르고 불러도 다시 부르고 싶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멘가,
그대여, 제발 날 사랑한다고 말해다오.
그대여,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해다오.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해다오.
오, 그대여
내 맘속에 언제나 살고 있는 이 그대여...
나는 이 노래가 반드시 고향만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향은 꼭 푸른 산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가슴 속에는 이미 고향도 있고 어린 시절도 있고 그 어린 시절에 피었던 아카시아 꽃이 아직도 피고 있지 않았던가.
그랬다. 나의 사랑도 언제부턴가 내 가슴 속에 살고 있었다.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인가, 날 사랑한다는 그 말은.
언제나 내 맘속에 살고 있는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푸른 산도 있고, 고향도 있고,
나아가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내게서 살고 있는 생명의 근원이여,
그대는 내 영혼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생(生)의 원천인 것을 그대도 아는가.
아, 내 어찌 이 아름다운 시와 곡조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벅찬 그리움과 슬픔의 정조였고, 고향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는 정서와도 통하는, 언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곡의 정수(精髓)였다.
https://youtu.be/xWwlTsWkuMg?si=HzXc9uEIWTdtwyue
첫댓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예전처럼 명곡들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곡들 만들어 주셔요~🙇🏻♀️
체칠리아님 감사합니다.
11월에 몇 곡 녹음하려고 준비 중 입니다.
저도 체칠리아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던 음악들이 많아서 작곡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많은 음악 들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