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최초의 영광
요한복음 2:12
이태원교회(梨院)
◇主之榮光非但此時爲始也, 已於靜居나사렛時服役勤勉中潛在, 而但人不能知之耳. 人心好奇, 非奇異不能知, 故主欲顯己爲神子, 不以聖言聖行顯之, 種行異蹟于人前者, 欲顯其爲神之子也. 事父母時已顯之, 盡其愛敬而事之. 至예루살넴聖殿, 與長老問答, 人不爲奇, 每於節日必隨父母上京, 篤守主訓, 人亦不爲奇, 在家從父之業, 事木役爲木手, 事物堅固, 利歸他人, 人皆稱之而亦不爲奇. 與隣里互相親睦, 言無虛僞, 爲靑年之模範, 世皆稱之而亦不爲奇者何也? 世人但見外貌, 不能見內容, 故務外則世人也, 務內則信徒也. 主常務內於靜處, 聞神之言見神之容, 自信自樂如田寶深藏矣. 主責바리새人, 如灰墓者, 彼嘗務外欺衆故責之, 其結果亡身亡國, 非徒害人從以自害, 如沐猴而冠也. 吾人當效則救主, 當事盡忠不務虛僞可也. 主之蓄德, 如草木含蓄至春發榮也. 至於微時涵養神性, 至가나昏筵而發榮也, 春風吹入昏因之家, 衆賓皆歡而特爲欠事者, 惟食物苦乏也. 歡樂求於物資, 此世人之情也. 今日之社會不平皆由此也. 人之問題勞動問題亦皆由此也. 主嘗言食物苦乏, ◇主曰我時未至云者, 將以待乏也. 又將待其主人之懇望, 下人之服從設備俱存後乃可也. 無此諸般施設而空然祈禱有何益也? 盖祈禱云者何也? 必不出情欲可也. 「얍四章三節」主人之懇望, 主母之曲請, 婢僕之順從, 皆由於悅人, 使衆賓無至失望, 使昏筵完成也. 吾人空然祈禱者多, 順從與祈禱幷不相離, 無順從之心, 亦無祈禱之心也. 故順從而祈禱必見榮光. ◇今此榮光卽愛之煥發也, 如油燈發火, 主之心如太陽當空, 無物不照容光必照, 其光芒之爀爀, 人不敢仰視, 勿論誰某信則有榮也. 如物直面太陽則有光也. 以其改行有榮也. 倫頓有一惡人飮酒賭博, 毆人辱人無所不爲, 其婦不勝生活之苦而死亡, 亦不悲痛, 幸有一女信主, 朝朝勸其父信主, 甚至苦惱而不聽, 其女每泣使其父雖頑, 不耐其女之泣, 某主日隨其女至敎堂聽道, 至信則得救, 此人不勝冤抑, 至講畢至壇前, 泣告曰如我罪人信則亦得救乎? 大聲痛哭. 其後此人乃眞信, 爲傳道人, 其榮耀一家一洞, 家內平和爲榮光也. 世之榮光無過於此, 妻子好合如鼓瑟琴云, 使後之夫人見日光照玩娛如聖光, 日日登山見之, 余曰僉位不願見虛僞之榮光, 與人和平互相愛護爲榮光也.
◇ 주님의 영광은 이때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나사렛에서 조용히 계시며 근면하게 노력하는 가운데 잠재해 있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기이함을 좋아하고, 기이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려 하시지 아니 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이적을 행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모를 모실 때 이적을 나타내시어 사랑과 존경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렀을 때 장로(長老)들과 문답하던 일을 사람들은 기이히 여기지 않았고, 절일(節日)마다 반드시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키셨으나 사람들은 기이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도와서 제작한 물건이 견고해서 그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되어, 사람들은 칭찬은 했지만 기이히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이웃 마을 사람들과 서로 화목하여, 하시는 말에 허위가 없고, 청년들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칭찬했지만 기이히 여기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만 그 외모만 보고 내면을 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면에 힘쓰고, 믿는 자는 내면에 힘을 씁니다. 주님은 조용한 곳에서 내면을 힘쓰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믿고 스스로 즐기기를 마치 밭의 보물을 깊이 감추어 놓은 것처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을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저들이 외양 꾸미기에 힘쓰며 대중을 속였기 때문에 그렇게 나무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몸을 망치고 나라를 망쳤으니, 이는 남만 해친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해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원숭이를 목욕시켜 사람의 관을 씌운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본받아서 진실한 마음으로 허위에 힘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덕을 쌓으신 것은 초목에 기운을 쌓아두었다가 봄이 되면 발휘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성품을 묻어두셨다가 가나의 혼인 잔치에 이르러 영광을 발휘하셨습니다. 봄바람이 혼인집에 불어 들어와 여러 사람이 즐거워할 때 음식이 다 떨어져 흠잡을 일이 생겼습니다.
기쁨을 물질에서 구하려는 것이 세상의 일반적인 정입니다. 오늘날 사회의 불평도 모두 이 물질의 부족 때문에 생깁니다. 사람의 문제, 노동 문제도 다 이것 때문에 생깁니다. 주님이 일찍이 음식물이 모자라는 문제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 주께서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그것이 모자라기를 기다린 것이오, 또 장차 주인이 특별히 그 물질의 부족함이 채워지기를 바라고, 하인들이 복종하며, 설비한 기구들이 모두 갖추어지고서 이적을 베푸셧습니다. 이러한 시설이 없이 공연히 기도만 하면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기도가 무엇입니까? 인정과 바람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됩니다.(욥기 4:3). 주인의 간절한 바람과 주님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과 종들의 순종은 손님들로 하여금 실망하지 않게 하여, 혼인이 완성되도록 하려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공연히 기도하는 자가 많이 있지만 순종과 기도는 아울러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곧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역시 기도하는 마음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종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 지금 여기서 말하는 영광은 곧 사랑을 밝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치 기름 등불에 불을 붙인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마치 하늘에 태양이 떠 있는 것 같아 비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태양의 가장자리에 비치는 광망(光芒)의 번쩍이는 빛은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면 영광이 있습니다. 마치 물건이 태양에 직접 비치면 빛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영국 런던에 악인(惡人)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술 마시고, 도박하고, 사람을 구타하고, 욕을 보여 못 된 짓이라고는 안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내가 생활고에 못 견뎌 사망하였으나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딸이 한 사람 있었는데 다행히 주님을 믿었습니다. 아침마다 그 아버지에게 권하여 주님을 믿으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딸은 늘 울면서 호소하였더니, 그 아버지는 미련스러웠지만 그 딸의 간청에 못 이겨 어느 주일에 딸을 따라 교당에 와서 강론을 들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회개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강론이 끝나자, 강단 앞에 이르러 울며 고하기를 ‘나 같은 죄인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이 사람은 참된 신자가 되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영광의 빛은 한 집안과 한 마을을 비춘 것입니다.
집안이 평화롭게 되는 것도 영광입니다. 세상의 영광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시경> 소아편에 ‘아내와 자식이 서로 잘 화합하니 마치 거문고와 비파가 어울려 연주하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매 맞았던 부인과 등산을 같이 하며, 서로 광명을 보며 마치 하나님의 빛을 보듯 즐겁게 살았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허위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여 서로 애호하면, 그것은 영광이 됩니다.’